수십번 올라도 물리지않는 철따라 곳따라 무궁무진한 절경
설악산 (雪嶽山, 1708m)
沙月 李盛永(2007. 4. 5)
    백두대간이 금강산의 잔영을 향로봉에서 말끔히 지우고 진부령-미시령을 지나는 동안에 갖가지 산의 아름다움을 구상한다. 그리고 황철봉-마등령에 올라 구상한 아름다운 산의 작품들을 펼쳐 놓을 자리를 정한다.

    백두대간은 우선 설악에 들어서는 초입의 1092m봉에서 동쪽으로 대 작품을 하나 펼치는데 속칭 '울산바위’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크고 잘 생긴 바위다.

    다음은 마등령에서 무네미고개까지 대간 마루금에다 공룡의 등뼈처럼 생긴 이른바 공룡능선이란 작품을 꾸미면서 동쪽 외설악과 서쪽 내설악의 각 작품들을 조심스럽게 저마다의 정해진 제자리에 알맞게 갖다 놓는다. 특히 마등령에서 동쪽으로 장군봉까지 벋은 끝자락의 적벽(赤碧), 범봉-희야봉-왕관봉으로 이어지는 천화대 능선, 흑범길, 염라길, 석주길암릉, 신선대에서 동쪽으로 벋은 칠형제봉암릉의 암봉들, 설악골, 잦은바위골, 용소골 등 계곡의 계류와 폭포, 거기에다 철따라 색갈을 바꾸는 수목이 어울려 보는 이로 하여금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는 천불동계곡의 서편을 꾸민다.

    대간은 무네미고개에서 잠시 쉬면서 희운각의 시원한 샘물로 원기를 축척한 다음 속칭 '죽음의 계곡’의 서편 능선을 따라 무려 해발고도 500여 미터를 치켜 올려 대청봉(大靑峰, 1708m)을 솟구친다. 한라산, 지리산 다음으로 우리 남한에서는 세 번째로 높고도 아름다운 명실상부한 설악산 만들어 진 것이다.

    대간은 대청봉에 우뚝 서서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며 이곳에서 할 일이 또 있음을 알고 갈 길을 잠시 멈추고 대청봉 동쪽 부분의 작업을 시작한다. 화채능선이다. 힘써 꾸며놓은 공룡능선과 천불동계곡이 동해바다 쪽에서 너무나 속속들이 들여 다 뵈니, 잇발을 감추는 입술 처럼 동북방으로 넌지시 화채능선을 벋치면서 서편 공룡능선의 작품에 조화되게 동쪽을 향하여 칠성봉암릉, 저봉암릉, 집선봉암릉, 봉화대암릉 등의 암봉들을 만들어 ‘천 개의 불상이 세워진 계곡’이라는 뜻의 천불동(千佛洞)을 꾸민다.

    또 화채능선 동쪽 끝자락에는 토왕성폭, 개토왕폭, 비룡폭, 육담폭 등 물의 작품을 있을 자리에 배열하니 비로소 북쪽은 울산바위, 서쪽은 공룡능선, 남동쪽은 화채능선 그 한복판에 천불동계곡의 비경들을 감추는 외설악(外雪嶽)이 완성된다.

    완성된 외설악의 작품에 만족하는 듯 대간은 서쪽 중청봉으로 한발 내려 딛고 서서 내륙쪽을 바라본다. 우선 설악의 범위를 서쪽으로는 인북천까지로 잡고 오른 발을 한 발 내딛어 소청봉에 서서 수렴동을 향해 힘찬 암릉을 내 뻗으니 '용아장성릉(龍牙長城稜)’이다. 용의 어금니(龍牙) 같은 암봉들이 줄지어서 서쪽 구곡담계곡을 굽어보며 동쪽 가야동계곡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성릉(城稜)이란 산 줄기가 성처럼 적 방향은 수직에 가깝게 급경사이고, 아군 방향은 비교적 완만한 형태의 능선을 말한다. 잘 알려진 것으로는 설악산에 용아장성릉이 있고, 계룡산에 자연성릉이 있다.

    대간은 이제 왼발을 끝청봉에 내려 딛고 출발선에 선 단거리 경주 선수처럼 인북천과 한계천의 합수점을 향해 힘차게 달려나가니 곧 '서북능선(西北稜線)’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서북능선이 만들어지는 동안에도 대간은 계속해서 달리는 방향의 오른쪽에다 능선과 계곡을 조화롭게 진열한다. 구곡담계곡-수렴동계곡-백담계곡으로 연결되는 내설악 주계곡을 비롯하여 쌍폭계곡, 백운계곡, 큰/작은 귀때기청계곡, 가는골, 흑선동계곡을 흘리면서 수많은 폭포를 만들고 계곡과 계곡 사이의 능선에는 오묘하게 생긴 암봉들을 배열한다.

    그뿐인가 서북능선의 끝자락에 가서는 대승폭, 십이선녀탕을 만들어 마치 외설악의 화채능선 끝을 폭포로 끝마무리 하듯 내설악도 계류와 폭포,탕,소,담 등 물의 축제로서 끝맺음을 하니 내외의 조화로움이 더해진다.

    설악산은 예로부터 '신성하고 숭고한 산’이란 뜻으로 '설산(雪山)’또는 '설봉산(雪峰山)’이라 하였는데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한가위(음력8월 15일)에 내리기 시작한 눈이 이듬해 하지(夏至: 음력 6월 21-22일)나 되어야 녹기 때문에 설악(雪嶽)이라 한다.’고 기록되어 있고,
    영조때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선생의 지행록(地行錄)에는 위의 내용에 더하여 '바위로 된 산봉우리의 빛깔이 결백(潔白)하여 설악(雪嶽)이라 한다’고도 하였다.

    또 '설악산(雪嶽山)’이란 이름은 세조때 김탁영(金濯纓: 金馹孫)이 설악으로 떠나는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생육신의 한 사람)을 위하여 지은 시에 쓴 것이 처음이라 한다.

    설악산의 5대 주봉을 이루는 대청봉, 중청봉, 소청봉, 끝청봉, 귀때기청봉 처럼 설악산의 높은 봉우리들에 '청봉(靑峯)’이란 말이 붙어 있는데 이는 조선 정조 때 문장이며 음성현감을 지낸 연경제(硏經齊) 성해응(成海應)이 지은 '동국명산기(東國名山記)’에서 유래한 것이며. 노산(魯山) 이은상(李殷相) 선생은 봉황대(鳳凰臺), 봉정(鳳頂), 청봉(靑峯)등은 모두 옛 신앙의 근원이었던 '광명(光明)’을 뜻하는 말이라 하였다.

    설악산은 1970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고, 1982년에 우리 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유네스코 생물보존지역으로 지정되었다. 또 1996년에 세계자연유산 등록을 신청했으나 주민들이 반대하는 바람에 아쉽게 지정되지 못했다.

    귀때기청봉을 저만치 바라본 안부에서 대간은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한계령에 내려서 쉬면서 점봉산을 중심으로 한 남설악을 구상한다. 설악산국립공원이 설정되면서 점봉산 일대를 포함하면서 이 일대를‘남설악’이라 부르지만 설악산은 한계령에서 끝맺음 한다.

    내가 설악산을 맨 처음 찾은 것은 1971년 진해 육군대학 72정규과정에 수학중일 때 수학여행으로 경주 태종무열왕릉과 김유신 장군 묘, 포항의 포철 건립지, 묵호항까지의 해군 LST 항해 그리고 설악산 구경이었는데 설악산은 비룡폭포와 울산바위 앞 흔들바위 정도였다.
    설악산 수학여행을 마치고 대학내에서는 학생들의 아마추어 사진전시회가 열렸는데 지금도 인상에 남는 두개의 사진이 있다. 하나는 비룡폭포 가는 길의 출렁다리에 하얀 운동복 차림의 학생들이 간격도 일정하게 건너가 꼬불꼬불한 산길을 오르는 사진인데 제목은 '선(線)’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또 하나는 경주 김유신 장군 묘에 참배하는 사진인데 학생들과 학교 직원들은 두 번 절하고 일어섰는데 당시 총장 김익권 장군은 첫번째 절하고 아직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가 한참 후에야 일어난 다음 다시 두 번 째 절을 하여 또 몇분 간인지 하여튼 지루하게 엎드려 있다가 일어났다. 사진은 학생들이 무료하게 지켜보고 서 있는 가운데 장군 혼자 엎드려 있는 장면인데 그 사진의 제목이 또한 걸작이라 '고금(古今)의 대화(對話)’였다.
    옛 장수와 오늘의 장수가 무슨 밀담을 나누었을까? 아마 '통일’이 아닐까?

    두 번째로 설악산에 온 것은 80년도 단풍도 다 진 11월 초로 기억된다.
    휴가를 얻어 평생에 처음으로 집사람과 단 둘이 여행을 떠난 것이 설악산이었다. 대령으로 진급도 했고, 합참에 과장(부대계획)으로 있어 화진포 휴양소에 들 수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용기를 낼 수도 있었던 것 같다. 춘천으로 가서 인제행 배가 끝나 양구행을 타고 또 버스로 어렵게 갔던 기억이 난다. 이때도 사실상 아는 코스가 육대시절에 와 본 비룡폭포와 울산바위 였기 때문에 그 코스를 밟았다. 그래도 이때는 울산바위 꼭대기까지 올랐는데 그때 집사람이 허름하게 설치된 급경사 계단을 오르내릴 때 쩔쩔 매던 품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때 내가 짓궂게 찍은 사진들을 볼 때나 그 후 등산으로 단련된 후 다시 올랐을 때는 우리내외는 여유 있게 옛날 얘기 많이 했다.
< 부부 설악산 울산바위와 비룡폭포 >
소양호 선착장에서
소양호 유람선에서
설악동계곡 다리에서
울산바위 가는 길
계조암 흔들바위
계조암에서 울산바위 배경으로
울산바위 철계단 오르고 내리고
울산바위 정상
저 아래 보이는 길이 미시령 오르는 길
비룡폭포 가는 길 출렁다리
비룡폭포
11월 갈수기라 폭포가 초라하가 짝이없다.
화진포 육군휴양소에서 망중한
    설악산 정상 대청봉은 모두 네 차례 올랐는데 이번에 다섯 번째다. 맨 처음은 큰딸 미애가 의과대학 3학년 때인 것 같다. 의과 공부에 찌든 심신을 좀 풀어 줄 겸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용기와 인내심을 경험하게 할 생각이었다. 오후 늦게 오색에서 올라 설악폭포에서 야영하고 대청봉에 올랐다가 양폭에서 또 1박을 야영하고 설악동으로 나왔는데도 무척이나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 미애와 함께 부부, 오색-대청봉-설악동 >
설악폭포 지나 휴식하며
맨 아래 사진 배경은 남설악
정상이 가까워지나보다
정상에서
대청봉 정상에서 찍은 사진이 있었는데 미애 결혼 때 함 속에 넣어 주었나 보다.
천불동계곡 양폭에서
양폭대피소 부근 야영 텐트속-지친 부녀
그래도 미애는 웃고 있다. 어릴 때부터 무척 야물었으니까---
양폭 부근 경치
    두 번쩨는 96년 10월 어느날 아사달산악회 등산으로 역시 오색에서 영시에 출발하여 대청봉-설악동으로 당일로 빠지는 A조에 내외가 끼어 등산했다. 대청봉에서 일출을 보기는 했지만 마침 가지고 갔던 방한모와 오리털 파카를 입고서도 추위에 무척 떨었던 기억과 마지막 설악공원에서 설악동 주차장까지 걷는데 녹초가 되었던 기억이 난다. 휴일에 너무 많은 인파가 몰려 우리를 태우고 온 관광버스가 공원 안 주차장으로 들어 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97년 10월에 작은딸 미영이를 미애처럼 훈련시키려고 역시 오색으로 올랐다가 한계령으로 내려왔다. 대청봉 서쪽 사면에서 중청봉-끝청봉 일대의 오색 화려한 단풍을 바라보는 아름다움과 끝청봉에서 바라보는 내설악의 경치-한껏 물든 단풍과 내설악 암봉들이 어울린 풍경은 언제까지나 잊지 못할 것 같다.
    끝청봉-한계령 코-스가 휴식년제에서 풀린지 얼마되지 않아서 계속되는 거친 돌밭 너덜길에 혼줄이 난 기억이 난다. 또 한계령에 도착하여 오색에 두고 온 차를 가지러 가려고 안동 어디에서 왔다는 효도관광차에신세를 졌다. 차비 대신 노래 하라는 안내양의 넉살에 '내마음 별과 같이’와 앵콜송으로 '흙에 살리라’를 불렀더니 시골서 온 노인네들의 정서에 꼭 맞았던지 신명 나게 치는 박수 장단과 춤으로 한때 흥겨웠던 기억이 난다.
< 미영이와 함께 부부, 오색-대청봉-서북능-한계령 >
대청봉 정 상 표석에서
중청봉 기슭에서 끝청봉을 배경으로
끝청봉에서 내설악을 배경으로
서북능선
    네 번째는 2003년 2월 17일-19일 간 육사 동기생 10명이 2박 3일로 첫 날 한계령에서 서북능을 따라 눈산행을 하여 중청대피소에서 1박하고, 둘 째 날은 천불동계곡으로 하산하여 육군청간정곤도에서 1박하고, 세 째 날은 임청수 동기가 사장으로 있었던 통일전망대 구경을 하고 귀경하였다.

    1998년 10월 10일 결혼 34주년 기념일에 여름휴가를 얻어 충주 중원탑, 단양8경의 구담봉, 사인인, 중,상선암(10일), 영월 청령포, 동강 어라영, 태백 함백산, 정선 소금강(11일)을 거쳐 설악산 울산바위(12일), 내설악 백담계곡(13일)을 한바퀴 돌았다.
    내설악쪽을 꼭 가 보기로 맘 먹은 것은 지난해 미영이와 함께 서북능으로 하산하면서 끝청봉에서 바라본 풍광이 너무 멋있었기 때문이다.
    일성콘도에서 2박하면서 첫날은 울산바위를 오르고, 둘째 날 일찌감치 미시령을 넘어와서 백담사계곡을 따라 수렴동대피소까지 갔는데 계속되는 가을비에 더 높이 올라가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고 돌아서 버렸다. 계곡의 맑은 물, 먼 산의 은은한 단풍, 개울을 따르는 등산로 주변의 오색 색동단풍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 34주년 결혼기념 부부, 울산바위, 백담사-수렴동대피소 >
설악산 신흥사 청동대불 앞에서
계조암 흔들바위
울산바위 배경
울산바위 철계단
더 넓고 튼튼하게 다시 설치했다.
울산바위 정상 남쪽면
울산바위 정상
내설악 백담사 정문
백담사 다리에서 바라보는 백담사계곡
백담사계곡 물가
수렴동대피소 직전 다리
    산을 오른 것은 아니지만 95년 1월 1일 새해 첫날에 휘림이네와 아현이네 우리식구 모두 함께 어느 콘도에 2박하면서 대포항 바닷가에서 일출도 구경하고, 설악공원에서 첫돌이 열흘 쯤 남은 휘림이와 사진도 찍으면서 즐겁게 지낸 기억이 새롭다.

    99년 7월 중순 주말에는 우리 6남매의 연례 모임을 거진우체국 콘도에 2박하면서 첫날 울산바위를 오르고 둘쨋날 동해안 통일전망대를 갔던 것이다.

    '월간 山’ 1999년 3월호 국립공원 시리즈 첫번째로 연재된 설악산 편을 읽는 중에 "마등령(馬登嶺) 모른다면 '설(雪)’자도 꺼내지 말라”는 글을 읽고 금년 가을에는 꼭 마등령을 밟아야겠다고 마음 먹고 있었는데 마침 기회를 잡았다. 시월 중순 쉬는 토요일을 이용할 수 있도록 콘도가 예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우리 내외와 둘째 딸 미영이 그리고 동생 정영이가 가기로 했는데 둘 다 일이 생겼다며 포기하는 바람에 우리 내외의 호젓한 산행이 되었다.

    콘도에서 새벽 5시 40분에 나서 소공원 주차장에 주차하고 6시 정각에 매표소를 통과해서 금강굴 입구, 적벽 밑, 세존봉 밑, 금강문, 마등령, 나한봉, 1275m봉, 천화대암릉이 시작되는 무명봉, 범봉 북쪽, 설악골로 빠졌는데 매표소에 도착한 것이 오후 4시니까 꼭 10시간을 산행했다.

    온 몸이 굴신을 못할 정도로 뻐근했지만 '월간 山’의 필자 말이 과장되지 않았다고 내외는 몇 번이고 말하곤 했다. 적벽 아래서 올려다보는 암벽! 그 이름에 걸맞게 윗 부분이 불그스레한 홍조를 띄고 '야망을 가진 자 마땅히 도전 해 보라’ 며 도도하기 내려다 보고 있다.

    적벽 앞 깔딱고개를 한참 오르는데 앞 선 사람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 급한 김에 땀도 닦을 생각도 않고 전망바위에 섰다. 천불동계곡의 천화대 암릉의 침봉들과 건너편 화체봉기슭의 수백 아니 수천개의 바위 봉이 아침 햇살을 받아 저마다의 형상을 세상에 내 보이며 한껏 자랑한다. 흡사 대형 아파트단지에 모양도 크기도 제 각각인 빼곡하게 들어찬 아파트건물 같기도 하고, 천불동계곡 이름 그대로 천불(千佛)을 진열해 놓은 것 같기도 하다.

    마등령 능선 중턱에 홀로 우뚝 선 세존봉(世尊峯)! '세상사람 다 잠들 적에 홀로 찬 하늘에 치솟아 중생을 구버보니 그야말로 유아독존’그것이다. 마등령에서 바라보는 천화대암릉! 수백개의 암봉이 일렬로 다닥다닥 달라붙은 것이 석책(石柵)을 쌓은 듯 질서정연하다.

    백두대간에 올라 이름 있는 첫 암봉, 나한봉! 거한이 백두대간의 남진을 막으려 온갖 무기를 몸에 지니고 버티고 서 있는 듯하다. 두 번째 암봉 1275m봉! 북쪽에서 넘으려고 오를 때는 그저 높고 힘들다는 생각 뿐이었는데 넘어와 돌아보니 지금까지 이름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내게 작명의 기회를 준다면 '귀성봉(鬼城峯: 귀신이 쌓은 성곽)’이라 짓고 싶다. 양쪽에 망루가 있고 그 사이는 성벽은 아무리 공성에 능한 군사도 깨뜨릴 수 없는 하늘에 쌓은 성곽이다. 거기에 장팔사모를 빗겨 든 장비 같은 장수가 넘겨 다 보고 고함을 칠 것만 같다.

    천화대암릉의 윗 부분에 우뚝 선 범봉! 그 밑둥에 선 나 자신! 왜 이렇게 초라해 보일까? 도도히 하늘을 치받고 솟아올라 이 세상 아무에게도 범접을 허하지 않겠다는 기세다. 범봉 아래서서 눈을 동북쪽 온 길 공룡능선으로 돌린다. 세존봉,마등령,나한봉,귀성봉과 그들이 거느린 무수한 침봉들이 하늘금 위에 솟아있고, 그 아래쪽 설악골 병풍벽에 수만개의 바위가 아름다운 조각품이 되어 정연하게 진열되어 있다.

    반대편을 서남쪽을 돌아본다. 잦은바위골 건너편 칠형제봉암릉의 우락부락한 바위봉과 천불동계곡 건너 화채봉 북사면의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침봉들이 이룬 조화가 또 한번 감탄을 아낄 수 없는 장관이다.

    설악주능선(雪嶽主稜線) 세칭 '공룡능선(恐龍稜線)’은 마등령에서 신선봉(神仙峯 또는 神仙臺)에 이르는 구간을 말한다. 이번 산행은 하루 걸음으로 신선봉 부분을 빼고 '설악중진설악(雪嶽中眞雪嶽)’을 거의 주파하였으니 정말 값진 산행이었다고 생각되며 '월간山’의 이오봉 기자에게 감사한다.

    그 후 공룡능선은 한 번 더 주파했다. 2001년 10월 육사동기생 12명이 백담사코스로 올라 소청대피소에서 1박을 하고, 소청봉 갈림길에서 대청봉 초보 3명을 등산도사 박영배가 인솔해서 네 사람은 A조가 되어 대청봉을 오르고, 나머지 나를 포함한 8명은 B조로 희운각으로 내려가 아침을 해 먹고 마등령까지 공룡능선을 주파하고, 비선대로 하산하여 설악동에서 A,B조가 합류하였다.

▲ 정상에서의 조망
    설악산 대청봉을 오르는 사람들 그것도 오색에서 새벽 1시쯤 랜턴을 켜고 줄을 이으며 오르고 있는 사람들이나, 희운각이나 소청대피소 또는 봉정암에서 자고 아침 먼동이 트기도 전에 대청봉으로 오르는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하나같이 꼭 같은 그림이 들어 있을 것이다. 그것은 한 아름 되는 싯뻘건 해가 바다인지 구름인지 분간하기도 어려운 아침 노을을 뚫고 푹! 솟아오르는 장면이다. 그 장엄하고 신비스런 광경을 보겠다고 밤잠도 설치고, 우리 미영이는 콘택트랜즈까지 분실하면서 오르는 것이다.

    지리산 천왕봉의 일출은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이곳 대청봉의 일출은 그렇지는 않다. 대체로 일기가 일출을 보기에 좋은 편이지만 한가지 꼭 유의해야 할 것은 추위이다. 10월에 접어들면 오리털 파카에 방한모를 가지고 갈 것과 아랫도리는 얇은 내의를 입고 갈 것을 권한다.

    일출 그 다음에 일어나는 동쪽의 광경은 계속해서 감탄을 멈추지 못하게 한다. 공룡능선과 화채능선 그리고 그 사이 천불동계곡에 진열된 바위작품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저마다의 개성을 십분 발휘하려는 듯 아침 물안개를 뚫고 고개를 치켜든다. 정말 '찬란하다’는 표현으로 족할까!

▲ 울산바위 전설

    이 이야기는 1971년, 진해에있던 육군대학에서 72정규과정을 수학하면서 수학여행차 설악산에 갔을 때 강원도관광협회에서 나온 삼십대 중반쯤되는 젊은 안내원이 설악산 이곳 저곳 가는곳마다 얽힌 전설을 구수한 입담으로 재미있게 이야기 해 줬는데 흔들바위 쯤에서 해준 울산바위에 얽힌 전설이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1999년 7월중순에 다시 가보니 공원관리공단에서 울산바위 가는 길목에 이와 유사한 간략한 전설안내판을 설치한 것을 보고 내가 들었던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하고자 옛 기억을 더듬어 여기에 옮겨 놓는다

    옛날 조물주가(또는 나라에서) 금강산을 꾸미기로 하고 전국 팔도에 영을 내려 전국에 있는 묘하게 생긴 바위들을 아무날까지 금강산으로 집결시키라고 하면서 잘생긴 돌을 가져 온 자에게 푸짐한 상품을 내리고 보낸 수령에게는 상으로 벼슬을 올려줄 것이로되 이를 이행하지 않는 수령에게는 삭탈관직하겠다고 하였다.

    마침 울산 고을에는 조선 팔도에서 제일 크고 잘생긴 바위 즉 지금의 설악산 울산바위가 그기에 있었는데 울산현감은 이 울산바위를 보내면 당연히 일등을 할 것이고 그러면 승진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울산 현감은 원래 생김부터가 꼭 도둑놈 같이 우락부락하게 생겼고, 글 공부라고는 하지 않은 주제에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좀 있어 벼슬 욕심에 어떻게 어떻게 해서 줄이 닿아 전 재산 털어 넣고 느지막히 겨우 울산현감 자리 하나를 돈으로 산 위인이니까 실력으로 승진은 꿈도 못 꾸는 처지인데 이게 웬 떡이냐는 생각이 들도록 반가웠다.
    그래서 고을에서 가장 힘이 센 떡쇠라는 녀석에게 노자돈을 두둑히 주면서 꼭 아무날까지 금강산에 도착하라고 신신당부를 하면서 튼튼한 질빵을 달아 짊어져 보냈다. 원래 떡쇠는 힘도 세고 성실하고 착한 녀석인데 한가지 흠은 술을 좋아하는 것이었다. 이 녀석은 술자리에 앉으면 술이나 돈이나 한가지가 바닥이 나야 일어서는 녀석인데 언제나 돈이 바닥나 아쉽게 일어서는 것이었다.

    이것을 모르고 울산현감이 틀림없이 하려고 노자를 너무 많이 준 것이 탈이었다. 울산을 떠나 동해안 길을 따라 금강산으로 가는 길목에 주막이 좀 많은가! 주막마다 들려서 술독을 다 비워야 일어서니 어느 세월에 금강산까지 갈 것인지 예측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양양 땅을 지나 설악산 입구쯤 왔을 때 많은 장사들이 고성쪽에서 내려 오면서 하는 말이 금강산 꾸미는 일이 끝나 이미 품평까지 해서 상을 탔다면서 상품을 한아름씩 안고 오는 것이 아닌가.

    정신이 번쩍 난 떡쇠녀석, 눈앞이 아찔하다. 칼을 빼들고 목을 치려고 달려드는 울산현감의 도둑놈같이 생긴 성난 얼굴이 떠 올랐다. 이대로 그냥 울산으로 돌아갔다가는 뼈도 추릴 수 없겠다고 생각한 떡쇠는 지고 있던 울산바위를 설악산 지금의 자리에 내 부치고 그 길로 줄행랑을 놓아 어디론가 잠적 해 버렸다.

    잘 되고 있으려니 하고 이제나 저제나 승진 소식만 기다리던 울산현감에게 난대 없이 삭탈관직이 떨어지니 하루 아침에 백수건달이 되고 말았다. 이곳 저곳 떡쇠를 수소문 해 봤지만 알 길이 없고 이제는 수중이 용돈도 다 떨어지는 시기에 도착한 곳이 설악산 울산바위 앞이었다. 바위를 잘 보이는 흔들바위쯤에서 보니 그 잘생긴 바위가 원망스럽기도 하고, 앞으로 살아갈 길이 꿈만 같았다.

    그런데 흔들바위 바로 곁 큰 바위 아래 조그마한 절 계조암(繫祖庵)있는데 불공을 드리러 오는 신도가 무척 많아 하루에 시주 돈이 기백냥이나 된다고 하니 용돈에 찌들데로 찌든 이 건달! 생각이 없겠는가. 선듯 아이디어가 머리를 스쳐간다. 암자 마당으로 성큼 들어서면서 주지스님을 찾으니 마침 아침 불공이 끝나고 나오는 지라 점잖게 닥아가서 통성명을하고 무게있고 착 갈아앉은 목소리로 찾아온 연유를 꾸며댄 즉선 자기는 울산고을 현감이었는데 자기가 운송비를 대가며 울산에 있던 이 바위를 예까지 옮겨 놓았는데 이 바위가 하두 잘생겨서 이 절에 신도가 많아지고 번창하여 시주가 많이 걷히게 되었으니 의당 바위 값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보름간의 말미를 줄 터이니 바위 값 십만 냥을 마련 해 놓으라는 것이다.

    세상 물정이라고는 조금도 모르는 주지스님! 걱정이 태산이라 그날로 앓아 들어 눕고 말았겠다. 주지스님의 수발을 드는 동자스님이 앓아 누운 주지스님의 병 구완을 하면서 병이 근심에서 온 것임을 직감하고 그 근심을 물으니 자초지종을 말하면서 그 건달의 억지소리 인줄 뻔히 알지만 청을 들어주자니 절에는 그 만한 돈이 없고, 청을 듣지 않으면 행패를 부릴 것이 뻔하니 이를 모면할 수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걱정만 하다가 병이 났다는 것이다.

    자초지종을 다 들은 동자스님! 자신만만한 얼굴을 지으며 그런 것이라면 걱정을 하지 말고 모든 것을 자기에게 맡기라는 것이다.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라 별 뾰족한 수가 없으니 동자스님이 하자는 데로 할 수 밖에-

    어언 보름이 지나 약속한 날이 되어 어김 없이 울산현감이었다는 건달녀석이 나타나 주지스님을 찾으니 주지스님은 출타했다며 안 나타나고 맹랑하게 생긴 동자녀석이 나오더니 반갑게 맞으면서 정중히 인사를 하고 응접실로 안내하여 차를 끓여 내온다. 다과상을 차린다 대접을 융숭히 하고 난 다음 점잖은 목소리로 주지스님의 말을 전한다면서 하는 말이-

    “며칠 전에 이 아래 마을에 용한 점쟁이가 왔길래 우리 절의 장래에 대하여 점괘를 봤더니 우리 절은 삼조사(三祖師)가 연이어 터를 닦아서 (繫祖) 그 후덕을 입어 이제야 번창 해 지기 시작하는데 요 근래에 저 큰 바위가 뒤를 막는 바람에 도리어 운세가 기울어져 이대로 가면 머지 않아 절이 망할 것이라 하니 저 바위의 덕을 본다면 그만한 돈 쯤이야 드릴 수도 있지만 덕을 보기는 커녕 절이 망한다니 큰 걱정이라 마침 현감어른께서 바위의 주인이라니 제발 딴 데로 치워 주기를 간곡히 부탁한다는 것이다.”

    동자의 말을 듣고 난 건달! 당장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러나 건달 노릇 하는 자가 이쯤의 난관을 극복하지 못할까! 점잖게 대답하는 말이-
    "아! 거 참 안됐구나. 나는 이 절을 극진히 생각해서 저 바위를 애써 울산에서 이곳까지 옮겨 놓았는데 이 절이 덕을 못보고 해를 입는다니 정말 미안하게 됐구나. 그렇다면 당장이라도 딴 데로 옮겨야 겠는데 보다시피 짊어질 질빵이 없어졌으니 당장 지고 갈 수가 없구나. 내 보름 후에 다시 올 터이니 짊어질 질빵을 전에 매었던 자리에 달아 놓던지 돈 십만 냥을 마련해 놓던지 양단간에 선택해서 하라고 전해라” 하고는 떠났다.

   <이 말을 들은 주지스님은 역시 걱정이 태산 같았지만 별 도리가 없으니 동자스님이 하자는 데로 할 수 밖에-
    우선 아랫마을 사람들을 시켜서 바닷가에 지천으로 깔려있는 갈대를 베어 묶어 세워 말린 다음 울산바위로 옮겨 건달이 말한 질빵자리라는 곳에다 차곡차곡 쌓아 올리고 밑에서 불을 지르니 갈대가 탄 자리에 소금 끼 있는 재가 달라붙어 멀리서 보면 영낙없이 흰 바위에 까만 질빵을 달아 놓은 것처럼 보였다.

    보름 후에 건달이 오면서 '무슨 제주로 그 큰 바위에 질빵을 달았으랴, 돈이나 준비 해 놨겠지’ 하면서 돈이나 받아갈 생각을 하면서 절로 향했다. 중간 울산바위가 한눈에 보이는 지점에 도착했을 때 동자스님이 기다리고 있다가 그를 맞이한다. 동자스님은 좀 퉁명스럽게 바위를 가리키며

    "현감어른께서 시킨 데로 바위에 질빵을 달아 놓았으니 한시라로 빨리 바위를 짊어지고 가시라”고 성화를 댄다. 건달이 하얀 울산바위를 바라보니 잘룩하게 조여진 자리에 영락없이 까만 질빵이 매여져 있지 않은가! 이 건달 할 말을 잃고 그 길로 돌아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을 놓았다는 이야기 이다.

    그때 질빵 자료로 쓰기 위하여 바닷가 갈대 풀을 베어 묶어서 말리려고 세웠던 자리에 집이 한 채 두 채 들어서 점차 번성하니 그 마을이 '갈대 풀(草)묶어서(束) 세웠던 자리’라 해서 이름을 속초(束草)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믿거나 말거나, 아니면 말고, 말도 못하나)

▲ 권금성(權金城)
    설악산국립공원의 설악동 입구 소공원에서 케이불카가 설치되어 있는 화채능선 끝자락에 있는 옛 성을 권금성이라 하는데 신라때 권(權), 김(金) 두 장수가 가족과 함께 이 곳으로 난을 피해와 쌓았다는 설이 있다. 산정에는 실료대(失了臺)와 방령대(放鈴臺)가 있다.
< 대청봉등산 앨범 >
沙月 李盛永(2007.11.10)
    작년부터 박영배 내외와 설악산 공룡능선 주파를 생각해 왔는데 작년에는 폭우로 수렴동계곡길이 완전 폐쇠되어 포기했고, 금년은 차일피일 하다가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시골집에서 감따기 추수를 마치고 돌아오니 불현듯 큰 산을 한 번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내외가 동시에 하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모르지만 1년에 한 번쯤은 건강에 대한 자신감, 생활의 활력소를 불어넣는데 큰 산 등산이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해 왔다.

    2007년 11월 6-7일 설악산을 다녀오기로 했다. 백담사코스를 선택한 것은 집사람이 9년전(1998) 여름, 이 코스를 올랐는데 비가 너무 와서 수렴동대피소에서 돌아간 적이 있기 때문에 집사람이 이 코스를 완주를 해 보고싶어 하기 때문이었다.(나는 2001년 육사동기생들과 이 코스로 올라 소청산장에서 1박하고, 공룡능선을 주파한 적이 있다)

    때가 좀 늦어 단풍도 다 진 철이지만 그런대로 좋았다. 나뭇잎이나 단풍들은 산을 치장하고, 단장하는 여인네의 고운 옷과 화장품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치장을하고 화장을 하면 화려하기는 하지만 진정한 아름다움을 감추어버리는 단점도 있다. 화려한 옷을 입고, 짙은 화장을 한 여인네 보다 수수한 차림에 화장을 한듯 만듯한 여인네가 더 아름답게 보일 때도 있는 것이다. "목욕탕에서 나오는 여인네가 제일 아름답다"는 말도 있다.

    하기는 중국 서안의 관광지 화청지(華淸池)에 가면 당현종의 애첩 양귀비가 온천목욕을 하고 젖은 머리를 말리는 양발정(陽髮亭)이 있다. 양귀비는 중국의 4대 미인에 들어가는 미인이지만 목욕 후 머리를 말리는 모습 즉 화려한 옷으로 치장하지도 않고, 화장이 다 지워진 상태가 가장 아름답다고 하여 이를 당현종이 바라보기 위해 외부에 잘 노출되는 정자를 지었다고 한다.

    지금의 설악산이 양귀비가 목욕을 하고 난 후, 나뭇잎으로 치장하지도 않고, 단풍으로 화장하지도 않은 상태라고 하면 좀 과장된 표현일까? 나뭇잎에 가려지지 않으니 숨어있던 암봉들이 잘 들어나 오히려 암봉미는 더 실감있게 감상할 수도 있었다.

    소청산장에 도착할 때까지 다음날 대청봉을 오를까, 공룡능선을 주파할까 결정하지 않았다. 소청산장에서 자고 난 후 콘디션에 따르겠다는 생각이었다. 피로가 가시지 않아 몸이 무거우면 대청봉을 올랐다 내려가고, 콘디션이 좋으면 새벽 일찍 희운각으로 내려가 일찍 아침밥을 해먹고 공룡능선을 주파하여 마등령에서 오세암을 거쳐 용대리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차를 거기 두엇으니 부득불 회귀형 산행이 될 수 밖에 없다.

    소청산장에 등산객이 많지 않아서 두 부부가 한방을 쓰게 하였고, 난방비 2000원을 더 내니까 방이 뜨끈뜨끈하게 덮여 주어 피로가 확 풀리는 듯하여 웬만하면 공룡능선을 주파해야겠다는 쪽으로 기울었는데, 집사람이 박영배 부인과 전화통화를 하고 나서 바꿔버렸다.
    “형님! 공룡능선은 다음에 함께 주파하게 남겨 둬요”그 한마디---
    거기다가 높은 곳, 맑은 공기 때문인지 금방이라도 별이 쏟아져 내려올 것처럼 초롱초롱하다. 날씨가 이렇다면 내일 아침 대청봉의 일출 또한 장관이 아니겠는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대청봉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하산할 때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가야동계곡과 오세암 쪽을 돌아서 가기로 했다. 그러나 다시는 이 길을 안 가겠다는 것이 나와 집사람의 이구동성(二口同聲)이다. 무려 열 한 번을 오르내리는 고개, 주로 계곡을 오가면서도 물경치도 없고, 둘러보는 경치도 없고 오직 지루함만 있는 길이다. 이 길로 오른다면--- 상상을 못하겠다.

◆ 백담사(百潭寺)
백담사(百潭寺) 수심교(修心橋)
뒤돌아 본 백담사 전경
◆ 백담사-수렴동대피소 간 등산로 풍경
백담산장
등산길
뒤에 짐 진 사람은 수렴동대피소에 필요한 쌀과 부식(김치)를 조달해 오고 있단다.
벽계수
영시암(永矢庵)
영시암(永矢庵)! '영원한 화살(?)' 무슨 뜻일까?
시(矢)는 '화살' 외에도 '곧다(直)', '베푼다(陳, 施)' 등의 뜻이 있으니 뜻을 알 것도 같다.
복원불사 중이다.
다람쥐
수렴동길과 오세암길이 갈리는 삼거리
수렴동대피소
◆ 수렴동대피소에서 봉정암까지 등산로 주변 풍경
등산로
맨 아래 사진은 홍수피해 복구작업중인 등산로 교량, 지금도 우회해야 한다.
길 가에 선 엄청나게 큰 피나무
등산로 길에 가로 쓰러진 잣나무
아슬아슬하게 튀어나온 바위에 매달려 뿌리 박은 나무
소(沼)
쌍용폭포(雙龍瀑布)
왼쪽은 청봉골, 오른쪽은 쌍폭골 물이 만나는 곳에 두 개의 폭포가 한 웅덩이로 떨어진다.
무명의 폭포와 소
물가에서 점심
수렴동계곡으로 오르면서 왼쪽으로 올려 다 보는 용아장성능의 암봉들 이모저모
이 길은 이런 암봉들을 감상하는 재미로 힘든 줄도, 지루한 줄도 모르고 오른다.
사자바위 이정표와 사자바위
사자바위 이정표가 있는데 사자같이 생긴 것 같지 않다.
사진은 배경 암봉 때문에 바위가 선명하게 식별되지 않는다.
사자바위에서
세자매바위(가칭)을 배경으로
뒤돌아 내려다 본 온길 수렴동계곡
중청봉을 배경으로
중청봉의 희고 둥근 기상레이다 안테나가 보인다.
◆ 봉정암(鳳頂庵)과 주변 풍경
사자바위에서 바라 본 봉정암
봉정암 절집과 절을 지키는 사천왕처럼 생긴 바위
봉정앙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절이며,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사리탑이 있다.
봉정암 절집 막새기와에 치우를 상징하는 도깨비형상이 있다.
사천왕의 요대 박클에도 도깨비형상이 있는데---
노산(魯山) 이은상(李殷相) 선생은 봉황대(鳳凰臺), 봉정(鳳頂), 청봉(靑峯)등은 모두 옛 신앙의 근원이었던 '광명(光明)’을 뜻하는 말이라 하였다.
봉정암 뒷편 배경의 바위들
가운데 바위가 속칭 ‘부처바위’
중생을 상징하는 바위들을 굽어보며 설법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 절에 오는 사람이나 등산객에게 무엇인가 암시하며 설법하는 것 같기도 하다.
부처바위의 이모저모
봉정암 샘물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사리탑
우리나라에는 5개의 절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나 사라탑이 있다.
양산 영취산의 통도사, 평창 오대산의 중대사(사자암),
정선 함백산의 정암사, 영월 사자산의 법흥사,
그리고 이곳 인제 설악산의 봉정암이다.
◆ 봉정암에서 소청산장까지
등산객을 배려한 계단
급경사 계단이 한 번에 딛고 올라서기에 힘들게 높으니까 오른쪽에 반쯤 높이의 보조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등산객이 이곳에 이르렀을 때는 기진맥진한 상태를 고려한 큰 배려이다.
묘하게 생긴 쌍둥이 바위사이에 뿌리를 박은 소나무 한 그루
비바람에 넘어져서도 살아 있는 신갈나무의 끈질긴 생명력
죽어 천년의 주목 그루터기
왼손 중지 같은 바위
능선에 올라서 바라보는 울산바위, 천화대, 범봉
멀리 보이는 큰 바위가 울산바위이고,
가까이 왼쪽이 공룡능선의 천화대, 그 오른쪽 뾰족한 봉우리가 범봉이다.
◆ 소청산장
새로 증축한 소청산장
2001년에 왔을 때 있던 건물은 매점으로 쓰고 있다.
소청산장에서 내려다 본 용아장성능
소청산장에서 내려다 본 공룡능선
먼데서부터 황철봉, 마등령, 나한봉, 1275m봉, 천화대와 범봉, 신선대 북봉(신선대 남봉은 보이지 않는다)
저녁밥 준비 및 식사
소청산장 낙조 파노라마
서북능선 넘어 가리봉(1415m) 뒤로 해가 진다.
줌으로 당긴 파노라마
해가 진 후의 공룡능선 풍경
오른쪽으로부터 신선대, 천화대, 1275m봉, 나한봉, 무명봉(이상 공룡능선 주파시 넘을 5대 거봉)
이어서 마등령, 황철봉, 오른쪽 멀리 울산바위가 선명하게 보인다.
◆ 대청봉 해맞이
소청산장-중청대피소
05:30 출발, 아래 사진 불빛은 중청대피소 외등
속초시내 불빛
대청봉 위에 뜬 음력 9월 28일 그믐달
야간모드로 찍으면서 카메라가 흔들려 달이 여러개가 되었다.
대청봉 정상에서 기다리는 사람들
금방이라도 쏟아질듯한 초롱초롱한 별들을 보며 아침해를 기다린다.
여명
대청봉 일출 파노라마
줌으로 당긴 일출 파노라마
해맞이 끝
◆ 대청봉 정상과 조망
대청봉 증명사진
소청봉에서 함께 숙박한 부부
이른 아침 대청봉에서 둘러보는 조망: 오대산-계방산 (동남방향)
이른 아침 대청봉에서 둘러보는 조망: 점봉산 (남쪽방향)
이른 아침 대청봉에서 둘러보는 조망: 서북능-귀때기청봉, 가리봉 (서남방향)
이른 아침 대청봉에서 둘러보는 조망: 공룡능선(북쪽방향)
가까이로부터 신선대, 천화대, 1275m봉, 나한봉, 무명봉(공룡능선 5대 깔딱고개)
이어서 마등령, 저항령 건너 황철봉, 미시령 건너 신선봉, 진부령 건너 향로봉, 그 너머 삼재령(남한땅 백두대간 시발점)
아침 햇살을 받는 울산바위 모습
아침햇살을 받는 중청봉(1664m)
아침햇살을 받는 소청봉(1550m)
아침햇살을 받는 끝청봉(1610m)
아침햇살을 받는 귀때기청봉(1577m)과 가리봉(1519m)
◆ 중청대피소
대청봉 배경
대청봉 꼭대기에 아침해 뜨고
대청-중청평전(가칭)의 눈잣나무
잣나무가 거센 바람을 피해 땅에 누었다.(생존을 위한 지혜), 멀리 귀때기청봉
대청-중청평전(가칭)의 사스레나무
자작나무과, 백두산 해발 2000m 수목한계선에 띠를 이룬 최고산 수목
백두대간을 따라 여기를 거처 지리산까지 흘러왔다.
중청봉과 중청대피소
취사장에서 아침식사를 하였다.(라면을 국으로 하여 햇반)
◆ 중청대피소-봉정암 하산
하산 출발
뒤돌아 본 대청봉과 중청대피소
중청봉 북사면 비탈길
하늘엔 서운(瑞雲)이
천불동계곡 전망대와 천불동 계곡
소청봉 정상 헬기장과 이정표(봉정암과 희운각 갈림길)
소청봉에서 내려다 보는 용아장성릉
봉정암 사리탑봉 위에 헬기가 뭘 인양하고 있다.
소청봉 헬기장에 내리는 헬기
확성기로 소청봉 주변 등산객은 비켜라고 방송하고 내린다.
◆ 봉정암 - 오세암
용아장성릉 상에 있는 봉정암에서 오세암 가는길 이정표와 암봉
봉정암 사리탑봉에서 바라보는 용아장성릉
봉정암 사리탑봉에서 건너다보는 공룡능선
나한봉과 1275m봉 사이로 보이는 마등령오름길의 세존봉
1275m봉
천화대
천화대와 신선대 사이로 보이는 울산바위
신선대 북봉의 암봉들
가야동계곡 복구작업 때 사용하던 콘테이너박스 철수
오세암 가는 길의 기암봉들
오세암 가는 길에 바라보는 소청봉과 중청봉
◆ 오세암(五歲庵)
오세암 절집과 사적비
오세암고개에서 뒤돌아 본 오세암
◆ 영시암, 백담사를 향하여
오세암고개에서 바라 본 소청봉과 중청봉
오세암고개에서 올려다 본 공룡능선 암봉
왼편으로 마등령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
‘산자와 죽은자’ 젓나무
영시암, 백담사를 향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