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보사찰(僧寶寺札) 송광사(松廣寺)
沙月 李盛永(2007. 4. 5)
    「月刊山」 1999년 12월호에 장흥의 천관산이 고흥의 팔영산과 함께 소개되어 호남 5대 명산에 드는 산이라고 알고는 언젠가는 가 볼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시골집 가는 길과 외져 있어 가 볼 기회가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2007년 3월 21일 우리 부부가 시골집에 가는 길에 천관산으로 둘러 갈 생각이었는데, 박영배 부부가 같이 천관산을 가기로 했다.
        21일 08:00-12:30 오산역에서 만나. 오산-목포, 목포-장흥 관산읍을 지나 천관산도립공원에 도착하여 경내 담소원에서 중식
                13:00-17:30 천관산 구정봉능선으로 등산하여 봉황봉능선으로 하산
                17:30-19:00 천관산-보성 회천 율포해수욕장에 도착하여 녹차해수온천욕 후 석식
                21;00 식사한 집에서 민박

        22일 07:00-08:30 율포해수욕장 출발, 도중에 보성다원 전경 감상, 고흥 녹동항에 도착하여 조식
                09:00-12:00 소록도로 건너가 국립소록도병원 내부 중앙공원까지 산책하며 구경
                12:00-14:00 소록도-송광사 이동, 중식, 송광사 구경
                5:00-16:20 송광사-남원 고속버스터미널 이동, 우리 부부는 시골로, 박영배 부부는 서울로
< 송광사 구경 >
    소록도에서 송광사로 가는 길을 고흥반도 동쪽 길을 택했다. 팔영산(八影山)을 지나치면서라도 보고가기 위해서였다. 가는 길에 나로도도 먼발치로나마 보았다.
고흥반도 남단의 진산 천등산(550m)
< 팔영산(전남도립공원) >
남쪽 영남면사무소에서 바라 본 팔영산(609m)
북쪽 능가사 쪽에서 바라 본 팔영산
1봉 유영봉, 2봉 성주봉, 3봉 생황봉, 4봉 사자봉, 5봉 오로봉, 6봉 두류봉, 7봉 칠성봉, 8봉 적취봉
(팔영산에 얽힌 전설)     옛날 중국 위나라 왕이 하루는 세수를 하려고 세숫대야의 물을 들여 다 보다가 세숫물 속에 아름다운 여덟 개(八)의 산봉우리 그림자(影)가 비친 것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탄복하여 신하들을 불러 이 산을 찾아내라고 엄명을 내렸다.
    신하들이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보았지만 중원에서는 찾을 길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산하가 아름답기로 이름이 난 조선에 와서야 고흥 땅에서 이 산을 찾아내었다. 그래서 그때까지는 팔전산이라 부르던 산 이름을 팔영산(八影山)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보성-벌교간 2번국도변의 피라미드를 닮은 산
송광사 입구 집단시설지구
길상식당에서 또 산채비빔밥으로 점심
송광사 안내판
송광사 표지석
(승보종찰조계산송광사)
차도와 보도가 별도 설치된 송광사 가는길
도보로는 황토를 깔았다.
공덕비군
송광사 일주문 앞
앞에 보이는 문이 일주문인데 수리 중이었다.
송광사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문
<송광사 사천왕>
사천왕(四天王):     불법(佛法)과 불법에 귀의하는 사람들을 수호하는 외호신(外護神). 사대천왕(四大天王) 또는 호세사천왕(護世四天王)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고대 인도종교에서 숭상하던 귀신들의 왕이었으나, 불교에 귀의하여 부처와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다.

    수미산(須彌山) 중턱에 있는 사왕천(四王天)의 주신(主神)으로 동쪽의 지국천왕(持國天王), 남쪽의 증장천왕(增長天王), 서쪽의 광목천왕(廣目天王), 북쪽의 다문천왕(多聞天王)을 일컫는다.
    위로는 도리천을 다스리는 제석천(帝釋天)을 섬기고 아래로는 팔부중(八部衆)을 지배하는데, 사천왕의 부하로는 견수(堅手)·지만·항교(恒橋)가 있다.

    한국의 사찰에서는 대개 일주문(一柱門)과 본당(本堂) 사이에 천왕문(天王門)을 세워 그림이나 나무로 깎아서 만든 조각상을 봉안하고 있다.
    보통 사천왕상은 무장한 장군의 모습처럼 갑옷을 두르고 부릅뜬 눈, 잔뜩 치켜올린 검은 눈썹, 크게 벌어진 빨간 입 등 무서운 얼굴에 손에는 큼직한 검(劍: 지국천왕), 비파(琵琶: 다문천왕), 탑(塔: 광목천왕), 용(龍: 증장천왕) 등을 들고 발로는 악귀를 밟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공통적인 것은 복부의 요대 바클에 강자(强者)를 뜻하는 치우상(蚩尤像: 도깨비상)이 새겨져 있다.
증장천왕
지국천왕
다문천왕
광목천왕
송광사 대웅전 앞과 옆
단청이 아름답다. 가운데 사진의 멀리 보이는 산이 조계산 주봉 장군봉(884m)
    송광사는 우리나라 삼보(三寶)사찰의 하나로 승보(僧寶) 사찰이다. 고려 명종조(1174-1197) 보조국사(普照國師: 知訥)를 비롯하여 16국사(十六國師)가 이곳에서 배출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절에서 보지 못하던 승보전(僧寶殿)이 유난히 크고 화려하다.
    * 삼보사찰은 불보(佛寶)사찰 양산 취서산 통도사, 승보(僧寶)사찰 순천 조계산 송광사, 법보(法寶)사찰 가야산 해인사이다.
송광사 승보전(僧寶殿) 외부와 내부
모신 부처는 모두 승려상이다.
16국사 부도비
    송광사 16국사(十六國師):
        보조지눌(普照知訥: 804-880), 진각혜심(眞覺慧諶: 1178-1234), 청진몽여(淸眞蒙如: ? - 1252),
        진명휘원(眞明煇元: 1191-1271), 원오천영(圓悟天英: 1215-1283), 원감충지(圓監沖止: 1216-1292),
        자정(慈靜), 자각(慈覺), 담당(湛堂), 혜감만항(慧鑑萬恒: 1256-1355), 자원(慈圓), 혜각(慧覺),
        각진복구(覺眞復丘), 정혜(淨慧), 홍진(弘眞), 고봉법장(高峰法藏)
(한국사대사전)
    국사(國師):
        덕행이 높은 스님에게 주던 칭호의 하나. 고려 4대 광종이 혜거(惠居)에게 ‘국사(國師)’의 칭호를 내린 것이 시초.
        왕사(王師)가 국왕의 스승의 지위인데 비하여 국사는 나라(國)의 사표(師表)로서 왕사보다 높은 최고의 승직(僧職).
        광종25년(974) 혜거가 죽자 단문(手변旦 文)이 다시 국사가 되었는데,
        이 제도는 조선조 초기까지 이어지다가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이 시작되면서 폐지.
(한국사대사전)
    정혜결사(定慧結社):
        불교에서 결사(結社)는 '뜻을 같이하는 스님들이 모인 수향(修行)모임'을 말한다.
        정혜결사(定慧結社)는 고려 후기 보조지눌(普照知訥)의 주도하에 시작된 결사이다.
        정(定: 자신의 몸을 가다듬는 공부)과 혜(慧: 사물을 바로 바라보는 지혜)를 같이 닦아야 한다는 취지이다.
        당시 고려 불교가 세속화 되면서 승려들이 도는 닥지 않고 돈과 권력을 좋아하는 흐름이 있었다.
        이에 염증을 느낀 보조지눌(普照知訥)은 당시 승과(僧科)에 급제한 엘리트였지만 사찰의 주지로 나가지 않는다.
        보조지눌은 제도권 진입을 거부하면서 재야로 나가 기존 불교를 강하게 비판하는 운동을 한 셈이다.
        그래서 개성에서 되도록 멀리 떨어진 외딴 지역으로 내려가 결사를 선언했던 것이다.
        정혜결사(定慧結社)의 선언문의 첫 내용이 「人因地而到者 因地而起 離地求起 無有是處也」
        (인인지이도자 인지이기 이지구기 무유시처야) 이다.
        이는 '사람이 땅에 넘어진 자는 땅으로 인해서 일어서고, 땅을 떠나서 일어서기를 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 정혜결사(定慧結社) 도량은 순천 송광사(松廣寺)였다.
        송광사에서 이후 16명의 국사가 배출된 배경에는 이 정혜결사의 저력이 뒷받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7.10.20. 조선일보 조용헌 살롱 <結社의 역사> 중에서)
지장전(地藏殿)
멀리 보이는 산이 조계산 주봉 장군봉(884m)
성보각(聖寶閣)
만발한 매화 한그루
만개한 산수유
꽃이 핀 삼지(三枝)닥나무
한지(문종이) 원료 나무. 삼지구엽초처럼 한 지점에서 예외 없이 세 가지가 벋는다.
보통 닥나무는 한 가지가 길게 쭉 벋고 드문드문 작은 가지들이 나기 때문에 위로 길게 자라는데
삼지닥나무는 가지를 많이 벌어서 낮고 부채꼴을 이룬다.
종고루 아래 계류와 징검다리
조계총림대도장 표석
맑은 옹달샘
하마비(下馬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