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어용인(死於龍仁)의 땅 한복판에 우뚝 솟은 진산(鎭山)
석성산(石城山, 471.3m)
沙月 李 盛 永
우리 아파트 뒤 산책등산로에서 바라보는 석성산 모습
◆ 사어용인(死於龍仁)
  예로부터 '생어진천(生於鎭川) 사어용인(死於龍仁)'이란 말이 전해져 왔다. '진천에서 살고, 용인에 묻힌다'는 뜻이다. 이는 진천이 살기 좋은 고장이고, 용인에 명당이 많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왜 이런 말이 전해져 오는지는 구체적으로 연구해 보지는 않았지만 나는'진천에 살기 좋다'는 말을 염두에 두고 지도를 보거나 중부고속도로를 따라 진천을 지나치다 보면 한 가지 느낌이 오는 것이 있다.

  사람이 사는 데 산이 너무 많다 보면 들이 적게 되니 자연 곡물이 풍족하지 못하고, 들만 있으면 산에서 얻는 혜택이 없기 때문에 맑은 물이 귀하고 너무 황량하기 마련이다.

  이런 면에서 진천은 산과 들이 적절히 분포된 이상적인 지형구조라고 생각된다. 서편에는 한남정맥과 금북정맥의 분기점 칠현산(516m)에서 금북정맥을 따라 덕성산(520m), 무제산(574m), 서운산(547m), 만뢰산(612m), 덕유산(412m) 등 강원도 산처럼 너무 험준하지 않은 해발400-600m의 적당히 높은 산들이 줄지어 솟아있고, 이 산들이 흘려보낸 수량이 풍부한 냇물들이 모여서 미호천이 되어 금강으로 흘러간다. 미호천과 그 지류 백곡천, 소평천, 한천천 등을 끼고 기름진 들이 펼처져 예로부터 곡물과 임산물이 풍부하여 진천이 살기 좋은 고장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삼천리 금수강산(錦繡江山)이라 하였는데 하필이면 용인에 특별히 명당이 많을까? 김대중이 부모의 묘를 용인으로 옮긴 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그런데 김성영 엮음 「한국풍수학」이란 책에 팔도 명당을 열거하고 있는데 용인의 명당은 하나도 없다.

  2000년도에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민속촌 옆 보라리 민속마을 쌍용아파트는 다른 아파트 보다 훨씬 긴 3년이 걸려서 완공되었다. 그것은 꽤나 높은 산 하나를 전부 들어내는 굴토작업이 꼬박 1년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굴토작업 과정을 유심히 지켜봤는데 그 큰 산을 하나 들어 내도 바위나 암반이 전혀 나오지 않고 계속 마사토 지질이었다. 그래서 시공사는 아파트 부지조성으로 돈 벌고, 마사토를 팔아서 돈을 벌어 꿩 먹고 알 먹고 일거양득(一擧兩得)으로 짭잘하게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내가 사는 아파트 부지만 우연히 그런 것이 아니란다. 용인 땅은 어느 곳을 파도 마찬가지로 마사토인데 묘지는 마사토 흙을 최상으로 꼽는다고 한다. 그래서 용인의 마사토 지질이 곧'사어용인(死於龍仁)'의 이름을 얻게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 용인의 산줄기와 큰 산들
  용인의 산줄기를 보면 크게 다섯 줄기다.
      (1) 남부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한남정맥,
      (2) 동쪽 지경 한남정맥의 초입에서 서남쪽 송전저수지 동쪽에 내린 산줄기,
      (3) 경안천 동쪽에 남에서 북으로 벋은 산줄기
      (4) 경안천 서쪽에 남에서 북으로 벋은 산줄기
      (5) 그리고 서쪽 지경에 서울을 향해서 북쪽으로 벋어가는 산줄기이다.

  백두대간 속리산 천황봉에서 분기한 한남금북정맥이 서북으로 거슬러 올라와 안성 땅 칠현산(516.2m)에서 갈라지는데 한남정맥(漢南正脈)은 칠현산에서 금북정맥과 결별하고, 서북진 하여 용인 땅으로 들어 서면서 안성과의 지경에 구봉산(九峯山, 465m)을 시작으로 미리내성지 북쪽에 문수봉(文殊峰, 404.2m), 명지대 남쪽에 함박산(咸朴山, 434.6m), 곧 이어 용인대 남쪽에 부아산(負兒山, 403.6m),솟구치고 잠시 북쪽으로 기수를 돌려 멱주현(메주고개) 지나 용인의 한 복판에 석성산(石城山, 471.5m)을 솟구친다.

  석성산 북쪽으로 영동고속도로 마성터널 위를 건너 이내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다시 영동고속도로 남쪽으로 건너와 영동고속도로의 남쪽 울타리처럼 신갈 경부/영동고속도로 교차로(JC)에서 대각선으로 경부고속도로를 건너 서북쪽으로 치솟아오르기 시작하여 용인 수원지경에 용인제2, 3봉 광교산(光敎山, 582m)과 백운산(白雲山, 564.2m)을 솟구친 후 용인과 결별하고, 의왕, 군포로 들어가 산본의 수리산(474.8m), 인천의 계양산(394.9m)을 지나 김포반도 끝 문수산(376.1m)에서 한강하구에서 서해바다에 잠긴다.

  한남정맥이 용인 땅 초입에서 서남쪽으로 벋은 산줄기(편의상 時宮岐脈)는 한남정맥의 문수봉에서 서남쪽으로 나아가 미리내성지 서쪽, 송전저수지 동쪽에 시궁산(時宮山, 514.9m), 삼봉산(三峰山, 414.7m), 쌍령산(雙靈山, 502m)을 솟구친다.

  경안천 동쪽 산줄기(편의상 太和岐脈)는 한남정맥의 문수봉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잡아서 곱돌고개를 지나 독조봉(獨朝峰, 437m), 금박산(金箔山, 418m), 말아가리산(馬口山, 595m)과 태화산(641m, 광주 역내), 외국어대 동편에 노고봉(老姑峰, 573.6m)까지 용인의 동쪽 울타리가 되고, 광주 땅으로 올라 가 발이봉(514m), 백마산(502m)을 지나 광주 시가지 남쪽에서 끝난다.

  경안천 서쪽 산줄기(편의상 南漢山城岐脈)는 한남정맥 석성산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잡아서 마성터널 건너 석성산 맞은편에 에버랜드 뒷산 향수산(香秀山, 457m), 곧 이어 법화산(385.2m), 수원-광주간의 43번 국도가 넘는 매지고개를 지나 용인 땅을 벗어나고 곧 성남(분당)과 광주(오포면) 지경의 불곡산(312.9m), 태재고개 지나 영장산(靈長産, 일명 맹산), 검단산(685m, 군사기지), 청량산(479.9m, 南漢山城), 팔당댐의 남쪽 보루 검단산(685m)을 끝으로 팔당댐 아래 한강에 잠긴다. 이 산줄기는 청량산 일대에 천혜의 요지 남한산성터를 제공해 준다.

  용인의 맨 서편 산줄기(편의상 冠岳岐脈)는 한남정맥의 백운산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잡아 고분치 지나 바라산(婆?山, 428m)으로 용인 땅은 끝나고, 성남으로 올라가 국사봉(540.2m), 이수봉(545m), 만경대(582.5m)등 청량산을 솟구치고, 과천 너머 맞은 편 서울, 안양, 과천의 지경에 관악산(631m)을 끝으로 노량진에서 한강에 잠긴다. 이 산줄기는 육백년 수도 서울의 남주작(南朱雀)을 꾸미는 사명을 띄었다.
용인의 산 21걸(해발 400m이상)
순위산이름높이순위산이름높이순위산이름높이
1말아가리산5958구봉산46515바라산428
2광교산5829향수산45716금박산418.5
3노고봉573.610형제봉44817삼봉산414.7
4백운산56711갈마산447.118건지산411
5정광산55012용실산44219문수봉404
6시궁산514.913독조산43720부아산403.6
7석성산471.514함박산434.621칠봉산400
◆ 석성산(石城山)
  석성산은 이산 동편 통화사 근처에 축성연대가 서기475년경으로 추정되는 길이 약 2Km의 성(城)이 있어서 성산(城山)이라 불러 왔는데 언제부터인가 그 성이 돌(石)로 된 성(城)이라 하여 석성산(石城山)이라 부르게 되어 지금은 성산과 석성산을 혼용하지만 주민들은 성상이라 많이 부르고, 시중에 나오는 지형도에는 석성산이라 표기되어 있다.

  석성산은 용인에서 일곱번째로 높은 산이지만 그 위치가 용인 땅의 가장 중앙에 위치하고 용인시가지에서 가장 가까워서 진산으로 삼아왔기 때문에 용인을 대표하는 산이다.

  남쪽이나 북쪽에서 석성산을 보면 뾰족한 삼각형이지만 동쪽이나 서쪽에서 보면 사다리꼴이다. 서쪽 구성면에서 바라보면 거대한 경사면의 큰 암장(岩帳) 같이 보이고, 용인 시내쪽에서 이 산을 바라보면 남성 같은 육중한 힘을 느끼게 한다. 또 가까이 다가가면 어머니 품속같이 포근함을 느끼게 하는 산이다.

동쪽 말아가리산에서 바라본 석성산 원경
서쪽 구성면 중리 동백지구에서 올려 다 본 석성산
왼쪽 두 번째 봉우리가 주봉 정상, 통신부대 M/W 안테나가 있는 봉우리가 봉수대
석성산 조망(眺望)
  석성산은 용인에서 일곱번째로 높은 산이면서 용인의 한 복판에 있기 때문에 용인 땅을 가장 많이 조망할 수 있는 산이다.

  정상에 서서 동쪽을 바라보며 하늘금을 따라 둘러보노라면 왼쪽에 용인 제1봉이며 말의 입(아가리)을 닮았다 하여 이름 지어졌다는 말아가리산(595m, 정상에는 각목에 馬口山이라 적은 엉성한 표목이 있다)과 그 오른쪽 가까운 거리 광주 땅에 태화산(641m)이 마치 연년생 형제처럼 정답게 서 있다.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가물가물하게 멀리 보이는 곳에 용인 제6봉 시궁산(514.9m)과 그 오른쪽 옆에 조금 낮지만 용인에서 가장 예쁜 산으로 평가 받는 삼봉산(414.7m)이 보인다. 그 방향에서 시선을 아래로 용인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방향을 뒤로 돌아서 서쪽을 바라보면 오른쪽 하늘금에 용인제2봉 광교산 주봉 시루봉(582m)에서 왼쪽으로 토끼봉((488m), 형제봉(448m), 시루봉과 토끼봉을 연하는 능선 너머로 산정에 통신 안태나를 무겁게 이고 있는 용인 제4봉 백운산(564.2m) 등 한남정맥 마루금의 산들이 줄을 서고, 왼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수원시가지, 시선을 낮추면 분당, 수지의 아파트 숲과 경부고속도로 양편에 우후죽순격으로 솟아오르는 아파트 단지들이 푸른 산을 배경으로 뚜렷하게 보인다. 이리저리 더듬어 가면 내가 살고 있는 민속마을 쌍용아파트도 식별된다. 서쪽에서 또 눈에 선 듯 띄는 것은 발아래 지금 한창 조성되고 있는 동백지구 아파트단지 부지이다. 구성으로 바로 통하는 길의 멱주현(메주고개)에서 어정 가구단지 사이에 황토색 속 살이 들어 나 있다.

  북쪽으로 바라보면 그래도 가장 많은 녹지가 펼쳐 있다. 하늘금에는 향수산(457m)이 있고 그 아래 골짜기에 어린이들의 꿈동산 애버랜드가 있다. 이 곳에서도 애버랜드의 놀이기구들 특히 우주여행이라 하던가 하는 공중높이 올라가는 물레처럼 생긴 기구가 뚜렷이 보인다. 시선을 가까이로 당기면 마성터널 동, 서로 영동고속도로가 힘차게 벋어있다.

  남쪽은 봉수대 3군 통신중계소 때문에 정상에서 잘 조망 되지 않는 것이 불만이지만 옛 봉수대나 현 통신중계소나 방법은 다르지만 양측의 의사를 소통하려는 목적은 같으니 참으로 깊은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중계소 주차장에서면 왼쪽 끝 문수봉(404.2m)을 떠난 한남정맥이 용인-안성을 연결하는 45번 국도를 지나 명지대학 뒷산 함박삭(434.6m), 아기(兒)를 업은(負) 형상을 한 용인대학 뒷산 부아산((負兒山, 403.6m)이 가까이 보인다.

석성산 봉수대(烽燧臺)
  지금은 군 통신부대가 점거하여 오를 수 없는 석성산의 제2봉 봉수대는 그 조선시대에도 당시 유일한 비상통신 수단이었던 봉수(烽燧: 봉은 밤에 불꽃으로, 수는 낮에 연기로)를 올리는 곳이다.
  성성산 봉수는 북쪽 서울쪽으로는 광교산과 통하여 관악산, 남산으로 연결되고, 남쪽 지방으로는 건지산과 통하였다 한다.
  지금은 군의 통신중계기지가 되어 있으니 이 봉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통신을 위해 생겨났는지도 모르겠다.

성산샘
  동쪽 통화사 위 약 300m쯤 계단 길을 밟아 올라가다 보면 꾀 넓은 공터가 나타나고 공터 동쪽 가장자리에 크고 잘 생긴 벚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산 쪽 오목한 바위 틈에 물이 맑고 수량이 꽤 많은 샘이 솟고있다. 지금은 위를 덮어 빗물이 들어가지 못하게 하여 놓았다. 사람들은 이 샘'성산샘'이라 부르는데 전해 내려 오는 전설이 있다.

성산샘
성산샘 공터 가장자리에 서 있는 벚나무
< 성산샘 전설 >
  옛날 서울 사는 큰 벼슬아치가 돌아가신 부친을 모실 명당을 찾아 지관을 데리고 남쪽지방을 다 둘러 봐도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용인 땅을 지나다가 성산이 마음에 끌려 산을 올라 이 곳 저 곳 둘러 보던 중에 동쪽 8부쯤 높은 곳에서 맘에 드는 명당을 찾았다.

  날을 잡아 이 곳으로 부친의 묘를 이장하기로 하였다. 상여가 길도 제대로 없는 험한 성산을 올라 현장에 도착했는데 인부들이 땅을 파니 땅 속에서 큰 물이 솟아나더니 그치지 않고 그냥 두면 산 아래 마을에 큰 물난리가 날 것만 같았다.

  벼슬아치가 크게 노하여 지관에게 어찌 된 영문인지 다그쳐서 물었더니 지관은 "이제 보니 이 산이 호랑이 형상이고, 이 터가 호랑이 눈이라 지금 호랑이 눈을 건드려서 호랑이의 눈물이 솟아나는 것이므로 그냥 두면 용인에 큰 물난리가 날 것 같으니 이것을 막으려면 그 옆에 있는 큰 바위를 옮겨 물구멍을 막아야 한다"고 하였다.

  벼슬아치는 급히 모든 하인과 상여꾼들을 동원해서 천신 만고 끝에 큰 바위를 옮겨서 물구멍을 막았더니 지관 말대로 큰 물은 잡히고, 바위틈으로 조금씩 샘물이 솟아 올라 지금 의 샘이 되었다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샘 뒤 큰 바위를 호랑이 눈물을 막은 바위라 하여'눈물바위'라 불렀다고 한다.

지관이 벼슬아치를 설득하여 옮긴 그 바위가 있던 자리에 묘를 썼는데 그 곳이 진짜 명당이라 대대로 자손이 번성하고 많은 자손들이 높은 벼슬 올랐다고 한다.

  그 후로 이 샘은 아무리 심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고, 아무리 큰 비가 와도 용인은 홍수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 조정암 사당
통화사 서편에 등너머에 있는 정암 조광조선생 영정을 모신 사당
정암 조광조선생 영정과 해설문
  통화사에 정암 조광조선생을 영정을 모신 사당이 건립 중인 것 같다. 설명문을 읽어보니 선생이 용인시 수지읍 독바위가 고향이라는 이야기가 있고, 그 외에는 좀 허무맹랑한 것들이 많아 한국사 대사전에 있는 조광조 선생의 약력을 요약해서 적는다.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 성종13년(1482)-중종14년(1519), 조선 중종 때 성리학자, 자 효직(孝直), 호 정암(靜庵), 시호 문정(文正), 본관 한양, 개국공신 조온(趙溫)의 5세손.

  - 18세 때 부친이 어천 찰방으로 부임할 때 따라갔는데 그 때 희천에 귀양 온 성리학자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을 만나보고 자극을 받아 학문에 정진하여 중종5년(1510)에 진사시에 장원급제하고, 중종10년(1515)에 문과 알성시에 급제하여 성균관 전적(典籍: 정6품), 사간원 정언(正言: 정6품), 홍문관 수찬(修撰: 정6품), 교리(校理: 정5품), 응교(應敎: 정4품), 승정원 승지(承旨: 정3품 하), 홍문관 부제학(副提學: 정3품 상), 사헌부 대사헌(大司憲: 종2품)으로 세자부빈객(世子副賓客: 종2품) 겸직 등을 역임.

- 중종의 신임을 받아 유학자들을 관리로 많이 등용하고 숙폐(宿弊)를 혁파하고, 왕도정치를 구현하려 하니 기존 수구세력들의 저항을 받았는데 특히 부제학 때 상소하여 소격서를 폐지하도록 하여 왕실 내명부로부터 반발을 샀고, 중종14년(1519) 대사헌으로 중종반정(1506) 후 정국공신 책록이 너무 문란하므로 부당한 자들을 훈록에서 삭제할 것을 주장하여 전체 인원의 3/4에 해당하는 76명을 삭훈되었고, 당시 훈구파의 대표적 인물인 홍경주가 찬성에 임명되었다가 조광조의 탄핵으로 파면되는 등 개혁과정에서 많은 정적이 생김.

  - 신진 사림의 관계 진출로 간신으로 취급되어 벽지로 좌천되었던 남곤, 심정 등이 홍경주등 훈구파와 손 잡고 내명부를 앞장 세워 조광조를 거세에 나섰는데, 홍경주는 그의 딸 희빈 홍씨, 심정은 경빈 박씨와 결탁하여 벌레들로 나뭇잎에'走肖爲王(주초위왕)'을 새기게 하는 등 온갖 수단 방법을 모두 동원 함.결국 10월 15일 조광조와 그를 따르던 참찬 이자, 형판 김정, 대사성 김식, 부제학 김구, 도승지 유인숙, 승지 박세희, 응교 기준, 수찬 심연원, 공서린, 윤자임, 안정, 이구, 홍언필, 박훈 등이 채포 되어 홍경주 등은 이들을 그날로 처형할 것을 주장했으나 영의정 정광필, 우의정 안당, 신임 대사헌 유훈, 신임 대사간 윤희인, 전한 정응, 봉교 채세영 등이 역간하여 일단 취조를 받게 되었다. 취조결과 조광조를 비롯하여 8명이 귀양갔는데 조광조는 능주에 귀양갔다가 12월 20일에 사사되었다. 이를 기묘사화(己卯士禍)라 함. (KBS 연속사극 '여인천하'에 방영되었음)

  - 후에 영의정에 추증(推贈) 되고, 문묘(文廟: 성균관에 공자 모시는 사당)에 배향됨.
(한국사대사전)
석성산 등산앨범-(1)봄
석성산 등산로는 동편에 1개, 서편에 2개 그리고 북쪽에 1개가 있지만 북쪽은 마성터널 위를 따르는 능선길인데 애버랜드가 들어서면서 동네가 모두 없어졌기 때문에 이용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동편 등산로는 백령사-통화사-성산샘-헬기장-정상 코스인데 통화사까지는 승용차도 오를 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있고, 용인시가지 편이기 때문에 용인 시민들이 가장 많이 이용한다.

  서편의 중리-정상간에는 있는 등산로 두개 중 남쪽 길은 봉수대까지 올라도 통신시설 때문에 정상으로 바로 가지 못하고 통화사까지 내려가서 동편 등산로를 따라 정상으로 오르기 때문에 최근에는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옛 길의 흔적만 있고, 북쪽 길은 많지는 않지만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길도 나 있고 두 군데 이정표도 서 있다.

  내가 석성산을 처음 오른 것은 이재학씨의 '용인의 산수'를 읽고 용인에 살면서 그 중심에 용인의 대부분 지역을 한눙에 볼 수 있다는 용인의 진산 쯤은 올라봐야겠다는 생각으로 2003. 3. 4. 집사람에게는 이야기도 하지 않고 혼자서 홀가분한 차림으로 올랐다.

  그로부터 한 달 후인 2003. 4. 5. 우리 부부는 신도시공사중인 동백지구에 차를 두고 서편 등산로를 따라 석성산을 올라 동편 통화사를 돌아 하산하였다.
성산 등산 코스
동백지구에서 바라보는 석성산의 서쪽 얼굴
초입의 거칠은 등산로
정상표석에서(위: 2003.3.4. 아래:2003.4.5)
정상에서 바라보는 동쪽 용인제1봉(말아가리산, 595m, 왼쪽)
오른쪽은 광주시의 태화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영동고속도로
위는 마성터널 서쪽, 아래는 동쪽
동백지구 신도시 개발 현장
애버랜드 톨게이트와 애버랜드
산 봄의 전령사 생강나무꽃
만산홍 두견화, 진달래꽃
석성산 등산앨범-(2)여름
  우리 부부가 두번째로 석성산을 등산한 것은 2007. 9. 26. 한 여름을 약간 지난 더운 날씨였다.
신도시 동백지구에서 바라본 석성산
철 이른 코스모스
초입 완만한 등산로
명년 맨먼저 꽃을 피우려 준비하는 생강나무
칡넝쿨과 다래넝쿨과의 생존경쟁
막바지 급경사 등산로
나무계단 등산로
석성산 정상 풍경
정상 조망-서쪽 건설중인 동백지구 신도시 아파트
정상 조망- 북쪽 애버랜드 진입 톨게이트와 애버랜드
정상 조망- 북쪽 산꼭대기 마을
정상 조망- 동쪽 영동고속도로
성산샘
성산샘 곁 엄청나게 큰 벚나무
석성(石城) 유적
불사중인 통화사
조정암 사당
누리장나무꽃
이름 모를 산새
이름 모를 버섯
칡과 관목으로 없어진 등산로
뒤돌아 본 석성산
석성산 등산앨범-(3)가을
  2010. 11. 9. 11월 초순인데도 날씨는 12월 중순도 더 된 것 같은 추운 날씨다. 만산 풍엽(楓葉)을 제대로 감상하지도 못하고 한 철이 다 가버리는 듯한 초조감에 점심을 먹고 늦게서야 집을 나섰다. 목표 석성산(石城山), 우리 부부가 세번째로 올랐다.
동백신도시 성산마을 등산로 입구에서 바라보는 석성산
법화산
새로 만든 산신제 제단
장난감 같은 다리
안전로푸를 설치한 등산로
막바지 단풍
북쪽 봉우리에서 보는 석성산 근경
마지막 계단
새로만든 석성산 정상 표석과 증명사진
<삭성산 정상에서 둘러보는 조망>
용인제1봉 말아가리산(馬口山: 왼쪽)과 광주의 태화산(오른쪽)
용인 제2,4봉 광교산과 백운산
백운산은 광교산에 가려 안보임. 왼쪽 광교산 형제봉 위로 군포의 수리산 정상이 보인다.
용인제3봉 노고산
애버랜드입구 톨게이트와 애버랜드
마성터널 서쪽 영동고속도로
고속도로 왼쪽, 아파트 울타리가 한남정맥이다.
낮은 구능이 있었는데 아파트 지으면서 없어졌다.
그러나 지금도 이 선은 한남정맥으로 한강 남쪽 분수령이다.
이 선 오른쪽(북쪽)에 내린 빗물은 탄천이 되어 한강으로 들어가고,
왼쪽(남쪽)에 내린 빗물은 신갈저수지에 갇혔다가 오산천이되어남으로 흘러
진위에서 진위천을 만나 서남진하여 아산호에 모였다가 서해로 흘러든다.
마성터널 동쪽 영동고속도로
산꼭대기 마을(?)
관악산(왼쪽)과 청계산(오른쪽)
와지선의 막바지 불타는 단풍과 동백지구 신도시 아파트 풍경
으악새
뒤돌아보는 석성산
송우산악회(松友山岳會)
용인의 진산 석성산(石城山, 471.3m) 등산
沙月 李盛永(2012. 9. 11)
  송산회는 2012. 9. 11. 용인의 정 중앙에 용인의 진산으로 자리잡고 있는 석성산을 등산 했다. 마침 내가 사는 용인에 있는 산으로 등산코스를 정해준 백회장, 변고문 등에게 감사한다.
  10:00 분당선 구성역에 모여 820-12번 마을버스를 타고 동백지구 백현동 백현중학교 앞에서 하차하여 영동고속도로 마성터널 위로 한남정맥 마루금에 올라 북에서 남으로 석성산 정상을 올랐다.
  등산거리 1.2Km, 등산로길은 좋은편이지만 두번의 깔딱고개를 포함하여 4개의 봉우리를 넘어야 한다.

  정상에서 간단한 간식과 막걸리로 등선주(登仙酒))를 하고 정상 표석앞에서 증명사진을 찍었다. 남봉의 군통신중계로 때문에 남쪽의 전망은 없지만 서쪽의 탁 트인 전망에 '아파트의 바다'라 할 정도로 쫙 깔린 아파트단지, 저 멀리 광교산, 청계산, 관악산, 북한산, 도봉산까지도 또렷이 보일 정도로 시계가 좋다.

  하산은 석성 유적이 남아있는 성산샘-통화사-한남정맥 남쪽마루금을 따라 내려오다가 서쪽으로 꺾이며 메주고개를 향하는 한남정맥과 갈라져 용인시청으로 하산하였다.
  정상 북쪽 마성터널 위로 한남정맥 마루금에 올라 정상까지 그리고 하산시 용인시청길로 접어들 때깨지 한남정맥을 종주한 거리만 해도 족히 5Km는 되겠고, 전체 산행거리는 6Km 정도 되는 것 같고, 정상에서 머무른 시간을 포함해서 등산시간은 3시간 반이다. 늙은이들이 겁도 없지---
  용인 시청앞 근처에 있는 용인돌솣설렁탕 집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시장이 반찬'이란 말이 실감나가 맛있게 먹고 막걸리 한잔씩도 하고 헤어졌다.

  석성산 등산에는 김광석, 김대식, 김용수, 김팔강, 문경연, 박동열, 박래옥, 백남해, 변동주, 이응두, 이진화, 임순경, 임영진, 그리고 나(이성영) 계14명이 함께 등산하였다.
10:00 분당선 구성역 1번출구 집합
동백지구행 마을버스 내부 풍경
백현중학교 앞 한 아파트 정문
백현중학교 담밑을 통과 석선산으로 출발
석성산 산길로 접어들고
빼놓지 않는 PT체조
석성산 북쪽 한남정맥 마루금 목표, 출발!
214계단 시작
214계단 끝
한남정맥 마루금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석성산 정상을 향하여 출발
깔딱고개 봉우리 넘으며 휴식
나무가지 사이로 겨우 보이는 에버랜드
동백지구 북쪽 끝자락 아파트, 한남정맥, 영동고속도로
석성산 정상표석 앞에서 증명사진
<석성산에서 바라보는 조망 파노라마>
서쪽 아파트 바다 동탄, 수원, 기흥, 죽전, 수지, 분당
내가 사는 민속마을 쌍용아파트도 이 속에 있다.
멀리 하늘금에 광교산, 관악산, 청계산, 북한산, 도봉산이 줄져 있다.
북쪽 백화산-남한산성-모현면 외대 캠프
아래사진 멀리 하늘금에 가평과 화천의 지경에 있는 중부지역 최고봉 화악산(1468m)이 보인다.
동쪽 광주시의 태화산(오른쪽)과 용인시 제1봉 말아가리(馬口: 595m)산(왼쪽)
에버랜드 원근경
간식 및 등선주(登仙酒)
헬기장 통과 하산
석성터 유적지 도착
석성터에 있는 성산샘
통화사 입구 조정암선생 사당
절에 유학자를 모시는 사당?
'호화청사 시비'로 메스컴을 많이 타는 용인시청 도착
용인시청 앞 조형물 '아름다운 미래'
용인시청 배경 일동
중식장소 용인돌솥설렁탕집
오후 2: 34 식당 독점,
'시장이 반찬' 숨도 크게 안쉬고 맛있게 먹는 송산회 회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