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이 많이 머문 산
성주산(聖住山, 677m)
沙月 李 盛 永
  금북정맥이 청양을 지나 서남쪽으로 벋어 청양-보령 지경의 백월산(570m)에 이르러 방향을 90도 꺾어 서북으로 진출하여 금북정맥의 제1봉 오서산을 솟구치는데, 백월산에서 계속 서남으로 벋은 기맥이 보령시와 천수만이 코앞에 내려다 보이는 곳에 솟구친 산이 성주산이다.
성주1리에서 올려다 본 성주산(677m)
  기맥이 성주산에 이르기 직전 문봉산(633m)에서 남쪽으로 한 갈래의 기맥이 벋어 성주산 정남쪽 건너편에 만수산(575m)을 일구어 그 사이에 화장골, 심원골, 물탕골 등 깊고 그윽한 골짜기들이 감추어져 있다.

  성주산은 오서산과 함께 보령의 명산이다. 성주산의 더 오래된 이름은 숭암산(崇巖山)으로 지금도 성주산 남쪽 기슭에 있는 백운사의 옛 이름 또한 숭암사(崇巖寺)였다고 한다. 그 후 어느 때인가 '성인(聖人)들이 많이 머문 산' 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 성주산(聖住山)이다.

  신라 말 도선국사(827-898)가 이 산에 들려 성주산을 주제로 지었다는 한시(漢詩) 한 수가 조선환여승람(朝鮮還與勝覽)에 전해지고 있으며, 화장골 입구 성주산자연휴양림 관리사무소 앞에 돌에 새긴 시비(詩碑)가 있다.

  만수산 서편골짜기 화장(花藏)골에는 예로부터 모란형의 명당 8개소가 감추어져 있다고 하여 ‘성주8묘’라고 불리어져 명당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았다고 한다.

  성주산 입구에는 신라말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였던 대가람 성주사지(聖住寺址, 사적제307호)가 있다. 성주사는 백제 29대 법왕(法王)이 왕자였을 때 신라, 고구려와의 전쟁으로 희생된 전몰자들을 위령하기 위하여 오합사(烏合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한 백제의 대표사찰이었다 하며, 통일신라 말 명승이며 성인으로 추앙 받던 무염국사가 주지로 부임하면서 성주사(聖住寺)라 개명하였다고 한다.

  무염국사가 주지로 부임할 당시만 해도 불전 80칸, 수각 7칸, 고사 50여 칸에 달했고, 수도하는 스님이 2,000명이 넘었다고 한다. 경내에는 최치원이 지은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국보 제9호), 오층석탐(보물 제19호), 중앙삼층석탑(보물 제20호), 서삼층석탑(보물 제47호), 동삼층석탐(충남유형문화재 제26호), 석등(충남유형문화재 제33호) 석계단(문화재자료 제140호)등의 유적들이 보존되고 있다.
성주사지 조감도, 현장, 설명문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국보 제9호)
오층석탐(보물 제19호)
중앙삼층석탑(보물 제20호)
서삼층석탑(보물 제47호)
동삼층석탐(충남유형문화재 제26호)
석불입상
석계단(문화재자료 제140호)
  신라 구산선문은 통일신라 이후 불교가 융성할 때 유명한 중들이 중국에서 달마(達磨)의 선법(禪法)을 이어받아 종풍(宗風)을 일으킨 아홉 개의 산문으로
  (1) 실상산문(實相山門): 남원 실상사(實相寺- 洪陟國師)
  (2) 가지산문(迦智山門): 장흥 보림사(寶林寺- 道義國師)
  (3) 사굴산문(사堀山門): 강능 굴산사(堀山寺- 梵日國師)
  (4) 동리산문(桐裡山門): 곡성 태안사(泰安寺- 惠哲國師)
  (5) 성주산문(聖住山門): 보령 성주사(聖住寺- 無染國師)
  (6) 사자산문(師子山門): 능수 쌍봉사(雙峰寺- 道允國師)
  (7) 희양산문(曦陽山門): 문경 봉암사(鳳巖寺- 道憲國師)
  (8) 봉림산문(鳳林山門): 창원 봉림사(鳳林寺- 玄昱國師)
  (9) 수미산문(須彌山門): 해주 광조사(廣照寺- 利嚴)를 말한다.

  만수산 남쪽 만수리 계곡에 또 하나의 큰 가람이 있다. 무량사(無量寺)다. 통일신라 문성왕(839-856) 때 범일국사가 창건하였고, 고려 초에 중창하여 30여 동의 요사와 12 암자를 거느린 대 사찰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고, 조선 인조(1623-1649) 때 진묵선사가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무량사 경내에는 극락전(보물 제356호), 오층석탑(보물 제185호), 석등(보물 제233호)을 비롯하여 사천왕문, 명부전, 영산전, 천불전, 산신각, 극락전 후불탱(後佛撑), 동종, 당간지주, 매월당 김시습 부도와 영정 등이 보존되고 있다.

  성주산에서 서쪽으로 약 1Km 떨어진 장군봉(583m) 북쪽 청라면 의평리 광산촌에 냉풍욕장(冷風浴場)이라는 이색적인 풍물이 생겨났다.
  80년대 후반 석탄합리화정책에 의해 의평리 일대의 150여 개에 달하는 석탄광산 갱구에서 자연 냉풍을 파이프라인으로 옮겨 와 섭씨 30도를 넘는 한 여름에도 실내 온도 섭씨 12-14도를 유지하게 하여 한 여름에 10만명 이상의 피서객이 다녀간다고 한다. 또 냉풍욕장 주변 수백m 깊이의 폐광 속에서 흘러나오는 냉수와 냉풍으로 양송이 재배의 최적 조건을 만들어 양송이 재배가 성행한다고 한다.
  ◆ 2006년 아산회 성주산 특별산행 앨범
  일정: 2006년 1월 19-20일(1박2일) 중 20일 등산
  참여인원: B조 9명 [김홍규, 박영배, 반준석, 서태경, 이성영, 이종학, 임청수, 정영상(서태경 친구), 정태진]
  차량: 2대(임청수, 정영상)
  코스 및 시간: 성주1리-동측 능선-정상-서측 능선-성주1리(2시간)
성주산 등산지도
성주산을 향하여 출발
첫번째 휴식
급경사를 꾸벅꾸벅
성주산은 지난날 우리에게 석탄을 주어 산업발전과 서민의 겨울철 난방 그리고 산림녹화에 이르기까지 크게 베풀었고,
그 사명을 다 한 지금 원상으로 복구되어 새 나무와 풀을 키우고 있다.
전날 잘리지 않고 남은 소나무들이 예쁘게 자라 훌륭했던 옛 산의 풍광을 말해주고 있다.
성주산정상에서 일동
성주산 정상에서 등선주
성주산 전망-북쪽 금북정맥의 제1봉 오서산(791m)
성주산 전망-동쪽 백월산-성태산-문봉산
위사진 왼쪽 백월산, 금북정맥은 이 백월산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오서산으로 향한다.
성주산 전망-동쪽 백월산 너머로 칠갑산과 계룡산
백월산 왼쪽 위 하늘금에 칠갑산이 보이고, 오른쪽 아래 청양 시가지가 보인다.
우측 하늘금에 공주의 계룡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성주산 전망-서쪽 서해 천수만(위) 보령시민의 젖줄 청천저수지(아래)
아래사진의 윗물이 보령만, 아랫물이 청천저수지
성주산 전망-남쪽 옥마산 군사기지
석탄광산 복원지
성주사지 구경(조감도와 설명문)
성주사지 오층석탑 앞에서
석계단 위의 대웅전 대신 선 정태진
석불입상 구경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 구경
천덕면 장은리 미라네 굴집과 굴밥
박영배 단골집, 2003년 오서산눈산행후 오후 3시경 여기와서 목구멍까지 차도록 석굴을 구어 먹은 적이 있다.
서해안고속도로로 지나치며 바라 본 오서산의 두 얼굴
서쪽 사다리꼴(위)과 북쪽 삼각형(아래), 2003년 1월 아산회 17명이 칠갑산-오서산 눈산행을 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