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5대 명산, 16번째 육상국립공원, 만든 조물주도 감탄한 '기암(奇岩)전시장'
월출산(月出山, 812.7m)
沙月 李盛永(2003. 4. 28)
동편에서 바라 본 월출산
가운데가 천황봉, 왼쪽이 사자봉, 매봉, 오른쪽이 장군봉.
    호남정맥(湖南正脈: 진안 마이산-광양 백운산)이 화순-장흥 지경의 깃대봉에서 한 기맥을 분기시키는데, 이 기맥(가칭 土末岐脈)이 영암과 강진 땅의 지경에 첫 작품으로 근사한 바위산을 꾸미니 월출산(月出山)이다.
    기맥은 계속 남하 하여 해남 땅에 두륜산(700m)과 달마산(489m)을 짓고 땅끝마을 (土末)에서 남해 바다에 잠긴다.

    월출산은 설악산, 북한산, 속리산, 주왕산과 함께 바위가 산 경관의 핵심을 이루는 산이다. 기상천외의 기암 풍치를 사방으로 흩어 놓아 비록 규모는 작지만 다른 산들의 이름난 바위는 모두 축소하여 갖다 놓은 듯하다.

    월출산이 비록 높이나 넓이는 작지만(41.88평방Km) 마지막 16번째 육상(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것도 이 기암풍치(奇岩風致)의 덕분이다.

    월출산은 평지에 불쑥 솟아 오른 산이다. 산의 북쪽 영암쪽에서 월출산은 바라보면 고작 해발 20-30m 의 낮은 영암벌에서 무려 해발 800m의 바위산이 치솟았으니 지리산이나 설악산에서 느끼지 못했던 높이를 느끼게 한다. 월출산은 산 아래로 다가서면서 더 높아 보인다.

    제1봉은 천황봉(天皇峰, 812.7m), 제2봉 향노봉(香爐峰743.1m), 제3봉 구정봉(九鼎峰,705m), 제4봉 사자봉(獅子峰, 667m), 제5봉 장군봉(將軍峰, 510m) 등이 주봉인데 사자봉은 북한산의 인수봉, 구정봉은 속리산의 문장대 (文章臺)를 닮았고, 산 동편 끝 불티재에서 이들 주봉을 한눈에 바라보노라면 마치 설악산 용아장성능을 보고 있는 듯이 느껴진다.
월출산 천황봉(왼쪽)과 구정봉(오른쪽)(1997년)
    2008년 1월 22일 조선일보 조용헌 살롱(485) '바위 봉우리의 구멍'에 구정봉에 대한 설명이 게재되었다.
    바위 봉우리의 구멍
    영암에 가면 월출산(月出山)이 있다. 나무나 흙이 별로 없고, 산 전체가 전부 바위로만 형성되어 있는 산이다. 더군다나 주변에 높은 산이 없고, 평지에 홀로 돌출되어 있는 산이라서 그 위세가 대단한 산이다. 일본의 수석애호가들은 이 산 전체를 거대한 수석으로 본다. 어떻게 보면 산 전체가 불꽃처럼 화염이 이글거리는 산이기도 하다.
    월출산은 고려시대에도 임금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성소였다. 산 정상에는 고려시대에 천제(天祭)를 올리던 유적지가 몇년 전에 발견되기도 하였다.

    월출산에서 유명한 봉우리는 구정봉(九井峰)이다. 가장 높은 봉우리는 아니지만 옛날부터 수많은 가도객들이 이 구정봉에서 기도를 올리면 영험(靈驗)을 본다고 생각하였다.
    왜 이름이 정(井)자가 들어간 구정봉인가? 이 봉우리 정상의 바위에는 바당바위처럼 사람 수십명이 앉아 있을 수 있을 만큼 넓은 공간이 있다. 그리고 이곳 저곳에 구멍을 파 놓았다. 이 구멍들은 지름이 대략 30-50Cm 정도 되는 크기이다. 큰 구멍은 세숫대야 크기만 하다. 자세히 보면 자연적인 구멍이 아니라 사람이 인위적으로 파 놓은 구멍들이다. 이 구멍이 9개다. 구정봉이란 이 9개의 구멍을 우물로 간주하고 지은 명칭이다. 그러므로 이 9개의 구멍에는 평상시에도 물이 차 있다.
    구정봉이란 이 9개의 구멍을 우물로 간주하고 지은 명칭이다. 그러므로 이 9개의 구멍에는 평상시에도 물이 차 있다.

    비가 오고 나면 빗물이 고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고대인들은 험준하고 높은 바위 봉우리 꼭대기에 이러한 구멍들을 파 놓은 것인가?
    '기도'를 하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한다. 바위가 불이라면 여기에는 반드시 물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화기(火氣)를 저장할 수 있다. 물은 불을 저장하는 기능이 있다. 기도발이란 물이 불을 저장할 때 나오는 영험이다.
    우리 할머니들이 새벽에 정화수를 떠 놓고 기도를 올린 이치도 이와 같다. 따라서 산꼭대기에서 기도를 하려면 물이 필요하다. 하지만 산꼭대기 또는 바위 봉우리 정상에 자연적으로 물이 고여 있기는 어렵다 보니 인위적으로 구멍을 파 놓은 것이다.
    월출산만이 아니라 북한산 인수봉, 속리산 문장대를 비롯하여 전국 곳곳의 암봉에 이러한 구멍들이 있다. 이러한 지점들은 고대인들의 성소(聖所)이자 기도터들이다.
천황봉 서편(위)과 동편(아래) 모습
천황봉 서편은 바위들을 적절한 공간에 조화롭게 진열한 것 같고, 동편은 밀식(密植)한 것 같다.
향로봉(왼쪽)과 구정봉(오른쪽)
사자봉(오른쪽), 무명봉(가운데), 매봉(왼쪽)
매봉 왼쪽 아래 구름다리가 보인다
    산을 올라서 보는 월출산의 암봉미는 또 다른 맛이 있다. 최고봉 천황봉의 동편은 크고 높은 기둥형상의 암봉이 굵직한 능선 줄기에 어금니처럼 굳건히 뿌리를 내린 듯 서서 장관을 이루는 반면, 서편은 온갖 기교를 다 부린 크고 작은 바위 탑들이 능선과 비탈에 진열해 놓은 듯한 '바위전시장'이다. 가로 세로 교묘하게 얽히고 설켜서 건드리기라도 하면 와르르 무너질 것만 같이 느껴진다.
월출산 동편 (위)과 서편 (아래)의 바위모양 비교
    월출산 바위는 이를 만든 '조물주도 감탄했다'는 바위 절승(絶勝)이다. 금강산, 설악산보다 더 아름다운 자태라 평하는 이도 있다. 그래서 월출산은 예로부터 구례 지리산, 정읍의 내장산, 장흥의 천관산, 부안의 변산과 함께 호남5대명산(湖南五名山)으로 꼽혀 왔다.

월출산 기암 탄생의 비밀은 지질학자들이 '절리(節理)'라는 말로 설명한다. 화강암체가 지표에 드러나 식으면서 굳을 때 내부 응력작용으로 평탄하게 쪼개지는 결 즉 절리가 생기게 되는데 금강산 총석정이나 무등산 입석대는 수직 절리만 생긴 것이고, 이 곳 월출산은 수직에 더하여 수평절리까지 생겨서 크고 작은 바위 덩어리가 생겨나 오랜 세월동안 풍화작용으로 모서리가 깎여서 무수히 많은 호박돌 같은 바위들이 탑을 쌓은 것 같은 모양으로 탄생하였다는 것이다.
수직 수평 절리로 형성된 월출산 바위
    월출산은 삼국사기에 '월나악(月奈岳)'이라 하였고, 지금의 영암읍과 군서면 즉 월출산 북쪽 일대가 월나현(月奈縣)이었다고 한다. 또 신라 때는 이 산에서 소사(小祀)를 지냈다고 한다.

    * 신라시대 하늘에 제사 지내는 의식 중에서 대사(大祀)는 서라벌, 중사(中祀)는 동쪽 토암산, 서쪽 계룡산, 북 태백산, 남쪽 지리산, 중앙 팔공산 등 5개소에서 지냈고, 소사(小祀)는 그 수를 알 수 없으나 지방별로 명산에서 지방 수령이 제사를 지냈다.

    도갑사 사적기에 따르면 '월출산은 중국 남부의 월저국(月?國)에서 문수보살이 나와 이 곳에 와서 살았기 때문에 유래한 것'이라 전하고 있다.
    또 구정봉 정상 근처 바위에 누군가 '動石(동석)'이란 글씨를 새겨 놓았는데 현재의 영암(靈巖)이라는 이름이 월출산 동석과 관련하여 생겨났다는 전설이 있다.

    옛날 월출산에는 세 개의 움직이는 큰 바위(動石)이 있었는데 그 동석 때문에 이 곳에 큰 인물이 나올 것이라는 소문이 중국까지 들어가 이를 시기한 중국 사람들이 장사들을 데리고 와서 밀어서 굴러버렸다. 그런데 그 중 하나가 스스로 찾아 올라가 제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신령스런 바위라는 뜻으로 '영암(靈岩)'이라 한 것이 지금의 영암 도시 이름이 되었다 한다.

    월출산은 이 외에도 월생산(月生山), 월산(月山) 등 '월(月)'자가 들어가는 이름도 있고, 소금강산, 화개산, 조계산, 보월산 등 모두 13가지나 되는데 '월출(月出)'이나 '월생(月生)'은 같은 뜻으로 산 서쪽 유서 깊은 구림마을에서 보면 마치 '달(月)이 이 산에서 생겨나서(生) 나오는(出) 것 같다' 하여 생겨난 이름들이라고도 한다.

    월출산이 영산이기 때문인지 몰라도 주변에서 큰 인물이 많이 났다. 일본에 문물을 전한 왕인(王仁)박사와 풍수지리의 비조 도선(道詵)대사가 이 산 서쪽의 구림(鳩林)마을태생이다. 구림(鳩林)도선대사가 태어날 때 비둘기떼들이 둘러싸고 보호했다 하여 얻은 이름이라 한다.

    지금도 산 서쪽 주지봉 아래 '왕인박사 유적지'가 보존되고 있고, 도갑사는 도선대사가 창건한 절이며, 여기에 수미대사와 함께 도선대사의 행적을 기록한 도선수미비가 보존되고 있다.

도선수미비
도선(道詵)대사와 수미(守眉)대사의 행적을 적은 비로 조선 효종4년(1653)에 17년이 걸려 세운 것,
높이 4.8m, 폭1.42m, 글자 수 1500자
    듯없이 한 두 점 뜬구름이 갈 곳을 모르는 듯 한가히 떠 있는 풍경은 생활에 쪼들린 사람들에게 한 때나마 한가한 여유를 주는 아름다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부부는 내가 대전 국과연에 근무를 시작한 1990년 겨울에 집사람이 내려와 눈길에 아이쟁도 없이 관음봉을 올랐다가 내려 올 때 미끄러워 혼난적이 있다.

    월출산은 영암과 강진의 지경에 솟아 양쪽 면적도 비슷한데 사람들이 '강진월출산'이라 하지 않고 '영암월출산'이라고 하는 것은 강진 쪽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이 산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만 영암 사람들은 월출산이 바로 뒷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또 하늘 높이 불끈 치솟은 신령스런 월출산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곳은 영암쪽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신라시대 때는 '구림(鳩林)월출산'이라 불렀다 한다, 그것은 산 서쪽 서호면 장천리의 선사주거지가 2200여년전의 것으로 알려진 바와 같이 산 서쪽에 일찍부터 많은 사람들이 살았고, 군서면 구림리는 간척사업이 이루어지기 전인 신라시대 때는 국내는 물론 중국과 일본까지 오가는 무역항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신라 사람들이 구림에 와서 월출산을 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구림 운해
아산회가 등산하는 날 공교롭게도 구림일대에 낮은 구름(雲)이 바다(海)를 이루고 있었다.
    월출산에는 한 때 아흔 아홉 개의 절이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그 숫자가 말 하듯이 '많았다'는 뜻일 것이다. 최근 도갑사 계곡에서 10여 군데, 천황사계곡에서 여섯 군데 절 터를 찾아냈다고 하니 천체적으로는 매우 많은 절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 남아있는 큰 절은 서쪽의 도갑사와 남쪽의 무위사인데 크기는 도갑사가 크지만 운치는 무위사가 한결 뛰어 난다고 한다. 천황사는 2년 전에 화재로 소실되어 재건을 위한 불사를 일으키고 있다.

도갑사(道岬寺) : 월출산 서편 위치, 신라 문무왕1년(661) 도선(道詵)대사 창건, 조선 세조2년(1456) 신미(信眉)와 수미(守眉) 중건, 석가삼존불과 육광보살(六光菩薩)의 금동상, 삼층석탑과 오층석탑, 석조여래좌상, 해탈문 등 문화재가 보존되고 있다.

도갑사 대웅보전 전경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보물89호)은 고려 때 제작된 화강석의 앉은 자세의 불상, 전체높이 3m(불상높이 2.2m) 미륵암에 안치되어 있고, 광배와 불상을 붙여 조각하였으며. 구정봉 마애여래좌상과 생김이 흡사하다.

    해탈문(解脫門,국보50호)은 월출산 입구 팔각문, 정면 3칸, 측면 2칸, 가구(架構)는 이중홍량(二重虹樑: 상량이 쌍무지개 모양), 기타 세부 건축은 천축(天竺:인도) 양식을 따른 수법이라 한다. 1960년 해체, 보수할 때 중도리 밑에서 묵서(墨書)로 된 상량문이 나와서 조선 세조2년(1456) 도갑사 중건 때 건립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도갑사 해탈문
해탈문에서 절과 중생을 지켜주는 사천왕
불교에서 힘이 세고 전쟁을 잘해서 중국과 조선에서 군신(軍神)으로 추앙 받아 온 우리민족의 먼 조상 치우(蚩尤)의 상(도깨비상)을 사천왕상으로 삼고 있다.
    구정봉 마애여래좌상(국보144호): 고려초기 불상, 부처의 32상(像) 중 육계(肉?: 부처의 정수리 살덩어리), 소발(素髮: 부처의 머리에 백발), 백호(白毫: 부처의 미간에 난 흰 털)를 갖춘 통견의(通肩衣: 한쪽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을 입고 결가부좌(結跏趺坐: 선종의 좌선하는 자세)한 좌상. 두광(頭光)은 연화(蓮花), 신광(身光)은 화염형(火焰形)으로 주연을 둘렀다.

    신체 각 구성비가 적절하고, 안정성과 장중한 인상을 주며 각법(刻法)이 사실적이고 박력이 있으며 깊이 정성을 드려 전상(全像)이 웅대(雄大)하고 장쾌(壯快)하다. 도갑사 미륵암에 보존된 석조여래좌상(보물 89호)와 닮았다고 한다.

월출산 구정봉 마애여래좌상
    왕인박사: 왕인박사는 백제 14대 근구수왕(서기375-381년) 때 학자. 일본이 아라타와케(荒田別)등을 백제에 보내 학자를 구함으로 임금의 손자 진손왕과 함께 왕인을 보냈는데 논어 10권, 천자문 1권을 가지고 갔다. 해박한 경서의 지식으로 일본의 오오진주(應神主)의 신임을 받고 태자의 스승이 되었다. 이는 일본을 문화적으로 깨우치게 하는 중대한 계기가 되었다.

    자손 대대로 고오치(河內: 일본 서부)에 살면서 학문을 맡아 일본에 봉사하여 일본문화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일본 역사책 고지키(古事記)에는 그의 이름을 와니키시(和邇吉師,화이길사)라 하였고, 니혼쇼카(日本書紀)에는 와니(王仁)이라 하였다. 우리나라 역사책에는 그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베틀굴: 구정봉 동남쪽 바위 아래 깊이가 10m 쯤 되는 암굴이 있는데 베틀굴 또는 금수굴이라고 한다. 임진왜란 때 여인들이 이 곳으로 피난을 와서 베틀을 차려놓고 길삼을 했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고 한다.

    굴 속에 음수(陰水)가 항상 고여 있어 음굴(陰屈) 또는 음혈(陰穴)이라고 하는데, 굴의 외부나 내부 모양도 여근(女根)을 꼭 닮았다. 또 이 여근은 천황봉 중턱의 남근석을 바라보고 있다고도 한다.

베틀굴 내부(위)와 외부(아래)
천황봉 중턱의 남근석(동쪽면)
아산회 2003년 제4차특별산행 월출산 등산앨범
목포(木浦) 유달산(儒達山)구경:
    2003. 4. 26. 아사달산악회 정태진 총무가 목포 사위를 얻는 바람에 월출산 특별산행팀은 다른 동기생 및 부인 12명과함께 하객으로 참석하고 유달산을 올라 목포 구경을 하였다.

노적봉
노적봉 남쪽 기묘한 여근목(女根木)
이난영의 노래비
목포 시기지 전경(서→동)
영산강 하구와 삼학도 전경
유달산 정상
자원봉사 현장 가이드 할머니
100% 전라도 표준말(?)에 일어(日語)까지 구사, 눈을 지그시 감고 노적가리에서 영산강 쌀뜨물, 진도 울돌목의 명량해전까지 왕거미 똥구멍에 거미줄 나오듯이 그침이 없이 줄줄줄---차후 오를 분은 녹음기 지참 요망
월출산 등산 개요:
- 인원: 송덕근, 김광련, 김백환, 김실근, 김연종, 김정호, 김행일, 김희산, 박명환, 박범순, 박영배, 반준석, 서태경, 송일상, 심완식, 우재근, 이성영, 이종학, 장병용, 정진덕, 황익남 (21명)
- 코스: 도갑사-미왕재억새밭-향로봉-구정봉-석불(6명)-천왕봉-사자봉-구름다리-천황사(서동11Km종주)

월출산 지도
월출산 등산로: 주봉 천황봉을 오르는 등산로는 네 가닥
    (1)(2) 주능선 종주코스(동-서,서-동 11Km 종주형): 천황사-천황봉-도갑사 또는 역, 급경사 쇠사다리를 오르내리고, 구름다리 건너는 짜릿한 맛. 천황사-급경사 쇠사다리-숲지대 쉼터-구름다리-쇠사다리-매봉 정상-사자봉 뒤를 돌아서-주능선-금릉경포대코스 갈림길-통천문-천황봉 정상-내림길로 남근바위-바람재(구정치)-베틀굴(일명 금수굴) 위의 구정봉 갈림길-구정봉 마애여래좌상(월출산 최고의 문화재)-다시 베틀굴 위 구정봉 갈림길로 돌아 와서-향노봉-미왕재 억새밭-계곡길로 도갑사 또는 역순
    (3)월남사지 코스(남쪽 일주형): 순한 계곡 등산로, 가족등산에 안성맞춤. 경포대 계곡에 욱어진 삼나무등 남국의 정취가 물씬. 월남사지-매표소-금릉경포대-바람재 갈림길(오른쪽 길 선택)-산죽계곡길-주능선-통천문-천황봉 정상--내림길로 남근바위-바람재-베틀굴(일명 금수굴) 위 구정봉 갈림길-구정봉 마애여래좌상-다시 바람재(구정치)-남쪽 계곡길-바람재 갈림길-월남사지
    (4)무위사 코스(남쪽 왕복 또는 타 코스 연결형): 무위사-능선길- 억새밭- 미왕재- 향로봉-구정봉갈림길-구정봉 마애여래좌상-구정봉갈림길로 돌아와서-베틀굴-바람재(구정치)-남근바위 천황봉 정상- 하산은 선택

- 등산시간 : 2003.4.27(일). 07:00: 도갑사 주차장 출발, 도갑사 구경 08:30: 미왕재 휴식 09:30: 향로봉 통과 10:30: 구정봉, 마애여래좌상 석불 구경 11:30: 천황봉 도착 12:00: 천황봉 출발 14:00: 천황사 주차장 도착 15:00: 중식후 서울로 출발
월출산 등산 사진

도갑사 대웅보전
도선(道詵) 수미(守眉) 비각
도갑사계곡 벽계수
미왕재 억새밭까지 등산
미왕재에서 구림(九林) 운해를 배경으로
미왕재-향로봉
돌아본 구림 운해
북쪽 구정봉 에서 바라 본 향로봉
가까이서 올려 다 본 구정봉
구정봉 정상 제일 큰 솥
구정(九鼎)은 '아홉 개의 솥'이란 뜻인데 구정봉 정상에는 이런 솥같이 생긴 웅덩이가 9개보다 많다.
구(九)자는 예로부터 '많다'는 뜻으로 구정은'많은 솥'이란 뜻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중국 주(周)나라 때 황실에 9개의 솥을 만들어 '구정(九鼎)'이라 하며 황실의 정통성을 상징 하였다.
솥(鼎)은 의식주 중 식(食)을 말하는 것으로 백성을 다스리는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문제를 뜻한다.
그런데 지금 21세기에 들어 와서도 구정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핵무기를 만드는데 열을 올리고 있는 집단이 있다.
망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 예고일 것이다.
뒤돌아 본 구정봉
구정봉 마애여래좌상 앞에선 아산회 六人幇
왼쪽으로부터 반준석, 박범순, 김정호, 김희산, 송일상(이성영촬영)
석불 맞은편 삼층석탑
향로봉-천황봉
천황봉 중턱 남근석(서쪽면)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올려 다 본 천황봉
드뎌 전원 월출산 천황봉 정상에 서다
천황봉 표석
1:25,000지도에는 808.7m, 1:50,000지도에는 812.7m인데 한국지리원에서 812.7m로 정정 중이란다.
천황봉 정상에서 서쪽 전망- 향로봉(왼쪽)과 구정봉(오른쪽)
천황봉 정상에서 동쪽 전망
끝 봉우리가 사자봉, 그 너머 영암들, 불티재로 오르는 13번국도와 쌍정제 저수지
구름다리-송덕근
구름다리를 건너다 뒤돌아 보며-이종학
일방통행 참다 못해-나
구름다리 배경-제1진
천황사 주차장에서 올려다 본 월출산
참 멋있는 산이다!
귀경길 우등 금호고속버스 안 풍경
월출산 바위 이모저모
기암 연봉(連峰)-노적봉
기암 연봉(連峰)-향로봉과 서북연봉
기암 연봉(連峰)-천황봉 동편
기암 연봉(連峰)-사자봉(오른쪽)과 무명봉()
기암 단봉(單峰)
기암괴석
< 1997. 10. 5. 우리 부부와 미영이가 함께 오른 사진 >
구정봉에서
천황봉을 오르면서
천황봉 정상에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