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王)이 방문(訪問)한 포천의 진산
왕방산(王訪山, 737m)
沙月 李 盛 永
북쪽 계곡 깊이울마을(포천시가지 반대편)에서 올려다 본 왕방산
<개요>
  한북정맥(漢北正脈)이 의정부와 포천의 지경 축석고개를 지난 다음 백석이고개 좀 못 미쳐서 북쪽으로 한 기맥을 벋치는데 이 기맥은 어야고개-화암령 지나 해룡산(661m), 곧 이어 오지재고개 다음에 왕방산을 솟구치고 계속 북쪽으로 국사봉(754m)-종현산(586m)로 이어지고, 좀 더 나아가다가 한탄강 영평천을 만나 북쪽에 종자산(643m), 지장봉(877m)을 건너다 보며 끝난다. 동북쪽은 포천읍에서 신북면으로 87번 국도가 넘는 물어고개(問禮峴)에서 매듭짓는다.
왕방산 개념도


  그러니까 왕방산은 포천시와 동두천시를 가르는 지경으로 단일 봉으로는 덩치가 큰 산이다. 남서쪽 오지재고개에서 동북쪽 물어고개까지 무려 8Km나 되는 길고 펑퍼짐하게 벋은 육산이다. 산이 길면 물도 길 듯이 북쪽 깊이울계곡은 3.5Km나 되고 깊어서 계곡에 들어가면 봄, 여름, 가을까지 습한 기운을 느끼게 된다. 그 이름도 '깊이울계곡'이다.


<산이름 유래>
  ‘왕방산(王訪山)’ 산 이름은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왕이 방문한 산’이란 뜻이데 그 유래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설이 있다.

  (1) 신라 49대 헌강왕(憲康王: 서기875-885년)이 이 산의 동쪽에 있는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보덕사(普德寺)를 친히 방문한데서 산 이름을 왕방산이라 부르고, 절 이름도 한 때 왕방사(王訪寺)라 부르다가 언젠가 다시 보덕사로 환원하였다 한다.

  (2) 포천읍지(抱川邑誌)와 견성지(堅城誌) 기록에 의하면 조선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이 산에서 사냥을 하며 무예를 익혔고, 왕위에 오른 후에도 단오절과 중추절에 이 산에서 강무(講武: 임금이 참관하는 무예시범)를 했다 하여 왕방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왕방산 정상 표석


  어느것이 유력한 설인지는 알 수 없으나, 불교가 융성했던 신라 때 왕이 경주에서 먼 길을 와서 보덕사를 방문한 것을 칭송해서 산 이름을 왕방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좀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그러나 조선 태조 이성계와 관련된 설도 조금 설득력이 있는 것은 이 곳에서 동쪽으로 멀지 않는 곳 퇴계원을 지나 흐르는 왕숙천(王宿川)은 태조가 묵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고, 팔야리(八夜里)는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들어가기 전에 여덟 밤을 머물은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지명의 유래가 남아 있기 때문에 같은 맥락에서 왕방산의 이름도 지어졌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제 때는 서울의 인왕산(仁旺山)처럼 왕방산도 ‘왕방산(旺訪山)’이라 표기하여 일제가 지명까지 폄하(貶下) 왜곡(歪曲)하는 수난을 당했다가 최근에 복권이 되었다 한다.

<정상에서의 조망>
  산은 바위가 별로 없는 부드러운 육산(肉山)이라 소나무와 참나무가 잘 자라서 도중에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뚜렷한 전망대가 없고, 정상 동남쪽 100m 쯤에 닦아놓은 헬기장에서 포천 시가지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나 정상에는 낮은 반송처럼 생긴 소나무 두 세 그루가 있을 뿐 나무가 없고 억새 밭이 펼쳐저 있어 동서남북으로 전망이 좋다.

  북쪽:이 산에서 이어진 국사봉(國師峰, 754m)이 건너다 보이고, 그 오른쪽으로 흘러내려 기맥을 매듭 짓는 종현산(586m), 더 북쪽으로 영평청과 한탄강을 건너 종자산(643m), 지장봉(877m), 고대산(832m)이 일렬로 줄 서 있다.

  서쪽: 경기의 소금강산이라 불리는 소요산(逍遙山, 586m), 임꺽정의 전설을 이고 있는 경기 오악(五岳)의 하나 감악산(甘岳山, 675m)이 손에 잡힐 듯이 보인다.

  남쪽: 가까이는 같은 기맥의 이웃산 해룡산(海龍山, 660m)이 코앞에 있고, 그 연장선 상으로 도봉산(道峰山, 716m), 북한산(北漢山, 837m)이 보인다.

  동쪽: 왕방산은 한북정맥의 핵심 준령을 관망하는 전망대다. 왼쪽으로부터 광덕산(廣德山, 1046m), 백운산(白雲山, 904m), 국망봉(國望峰, 1168m), 운악산(雲岳山, 일명 현동산, 936m), 수원산(水源山, 왕숙천의 발원), 죽엽산(601m) 등 한북정맥 마루금의 산들이 파노라마 치고, 그 너머로 하늘 금에 경기오악의 하나요 경기에서 가장 높은 화악산(華岳山, 1468m), 명지산(明智山, 1267m), 연인산(戀人山, 1068m)이 솟아 있다.

<왕방산 등산>
  지난 8월15일 연휴 동기간 모임 때 막내 매제가 “형님, 포천의 왕방산에 가 보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1990년 12월에 육사18기 동기회 ‘아사달 산악회’결성 초년에 왕방산을 등산한 적이 있는데 나는 대전 국과연에 근무하게 된지 얼마 되지 않은 때라 참여하지 못했었다. 그 때 참여했던 동기생들이 산 이야기 보다 김재창 동기가 6군단장으로 있으면서 포천막걸리를 산정까지 헬기로 공수해 왔고, 점심을 대접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언젠가 꼭 한 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해 오던 차였는데, 매제는 “등산도 좋지만 그 북쪽에 오리고기집이 큰 단지를 이루고 있는데 맛도 좋고, 값도 싼 편이고, 양도 많습니다. 한 번 날 잡아 가시죠” 한다.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날을 잡은 것이 8월 27일(토)이다. 강동 동생네 집에 차를 두고 매제 승합차에 합성하여 퇴계원-포천-물어고개로 가서 차를 두고 왕방산 동북쪽으로 부터 올랐다.

  등산로는 두어군데 급경사가 있지만 등산로는 대체로 완만한 산보길이다. 등산 거리가 4.8Km로 긴데다가 떨어진 도토리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줍는 바람에 오르는데만 두 시간 반이나 걸렸다.

  하산은 목표가 오리고기집이라 북쪽 계곡 깊이울계곡길을 택했는데, 역시 3.5Km나 되는 긴 계곡이고, 계류를 건너는 곳이 많아 - 12탄쯤 되는 것 같다 - 2시간 이상 걸렸다. 깊이울계곡의 계류는 큰 폭포(瀑布)나 소(沼)는 없지만 돌밭을 흐르는 맑고, 시원한 물이 내는 물소리가 정답고, 속세를 잊게 한다.

  귀경은 오리고기집에서 승합차로 물어고개까지 태워줬고, 포천시가지로 내려와 의정부 쪽으로 방향을 잡아 수락산 동쪽길로 해서 구리로 연결되는 외곽순환고속도로를 따랐다.
물어고개에 차를 두고
물어고개에는 問禮峴藥水(차 앞에 표석)가 있고 오른쪽 20m 되는 지점에 수량이 많은 약수가 있다.
왕방산 초입 급경사 지나
떨어진 도토리를 그냥 두지 못하고
등산로 1/3지점 527.8m봉 봉수대터에 세워진 이정표
봉수대터에서 헬기장까지
정상100m전 헬기장
1990년도 아산회가 왕방산 등산시 김재창 6군단장이 포천막걸리를 헬기로 보내왔다는 헬기장
왕방산 정상 표석에서
왕방산 정상 부근 아담한 소나무 한 그루
정상서 만난 고향이 경산이라는 부부
북쪽 국사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세워진 이정표
여기서부터 깊이울계곡이 시작된다.
깊이울계곡의 물건너기
깊이울계곡의 계류
마지막 사진에 보이는 등산객은 정상에서 만났던 부부의 부인, 다른 길로 와서 이곳에서 또 만났다.
깊이울계곡에서 되돌아보는 왕방산 정상
왕방산에서 만난 것들-다람쥐
야생화
버섯
산사춘 술의 원료 산사나무 열매
앙증스런 돌탑
깊이울계곡의 야영장
깊이울저수지 복판에 띄워 낙시터가 되는 바지
깊이울마을의 고목 대추나무와 그 연륜을 말하는 줄기
극성스런 비둘기 때문에 용수 그물을 뒤집어 쓴 수수이삭
가을을 말하는 코스모스 뒤로 밤이 익어가고 있다
오리고기집
귀경길 수락산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