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울산바위
沙月 李盛永(2013. 2. 20)
  설 세고 어영부영한 것이 벌써 1주일이 지났다. 2013. 2. 17.(일) 아침먹고 오늘 뭘 할까 생각중인데 집사람이 핸드폰을 받고 박영배 내외가 설악산에 가고 있는 중인데 생각 있으면 오란다고 했다.
  갑자기 설악산까지? 에라! 한번 해보자. 불이나케 서둘러 짐을 꾸렸다. 영동고속도로 양지IC - 중부내륙고속도로 여주JC - 양평IC - 홍천 - 인제 - 미시령 - 속초 설악산 델피노 콘도(옛이름 대명)에 도착했다.

  처음 계획은 18일 밤 눈이 온다니까 18일 울산바위나 오르고, 19일 일찍 서둘러 돌아올 생각이었지만 17-18 양일 날씨가 우중충 했지만 밤에 눈도 오는 듯 마는 듯 하고, 19일 아침에는 날이 더 할 수 없이 쾌청하다.
  마음이 바뀌었다. 서둘러 갈 필요없다. 한군데 더 가자. 금강굴로 정했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오랫만에 울산바위를 오르고 또 금강굴까지 올랐다. 정초에 기분좋은 2박3일을 보냈으니 1년 내내 즐거울 것만 같다.

  울산바위와 금강굴 등정에는 박영배 부부와 우리 부부 그리고 박영배 외손자 홍원기군(현 9살, 초교 2년)이 함께했는데 산길도 앞장서 잘가고, 활달해서 손자 데리고 산행하는 재미를 톡톡히 느꼈다.
< 울산바위 전설 >
한국 제일의 바위 울산바위 전경
위는 동쪽 콘도에서, 아래는 계조암 지나 울산바위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전경이다.
    이 이야기는 지금부터 44년인 1971년, 내가 진해에 있던 육군대학에서 72정규과정으로 수학하면서 수학여행차 설악산에 갔을 때 강원도관광협회에서 나온 삼십대 중반쯤되는 젊은 안내원이 설악산 이곳 저곳 가는곳마다 얽힌 전설을 구수한 입담으로 재미있게 이야기 해 줬는데 흔들바위 쯤에서 해준 울산바위에 얽힌 전설이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1999년 7월중순에 다시 가보니 공원관리공단에서 울산바위 가는 길목에 이와 유사한 간략한 전설안내판을 설치한 것을 보고 내가 들었던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하고자 옛 기억을 더듬어 여기에 옮겨 놓는다

    옛날 조물주가(또는 나라 임금님이라도 좋다) 금강산을 꾸미기로 하고 전국 팔도에 영을 내려 전국에 있는 묘하게 생긴 바위들을 아무날까지 금강산으로 집결시키라고 하면서 잘생긴 돌을 가져 온 자에게 푸짐한 상품을 내리고 보낸 수령에게는 상으로 벼슬을 올려줄 것이로되 이를 이행하지 않는 수령에게는 삭탈관직하겠다고 하였다.

    마침 울산 고을에는 조선 팔도에서 제일 크고 잘생긴 바위 즉 지금의 설악산 울산바위가 거기에 있었는데 울산현감은 이 울산바위를 보내면 당연히 일등을 할 것이고 그러면 승진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울산 현감은 원래 생김부터가 꼭 도둑놈 같이 우락부락하게 생겼고, 글 공부라고는 하지 않은 주제에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좀 있어 벼슬 욕심에 어떻게 어떻게 해서 줄이 닿아 전 재산 털어 넣고 느지막히 겨우 울산현감 자리 하나를 돈으로 산 위인이니까 실력으로 승진은 꿈도 못 꾸는 처지인데 이게 웬 떡이냐는 생각이 들도록 반가웠다.

    그래서 고을에서 가장 힘이 센 떡쇠라는 녀석에게 노자돈을 두둑히 주면서 꼭 아무날까지 금강산에 도착하라고 신신당부를 하면서 튼튼한 질빵을 달아 짊어져 보냈다. 원래 떡쇠는 힘도 세고 성실하고 착한 녀석인데 한가지 흠은 술을 좋아하는 것이었다. 이 녀석은 술자리에 앉으면 술이나 돈이나 한가지가 바닥이 나야 일어서는 녀석인데 언제나 돈이 바닥나 아쉽게 일어서는 것이었다.

    이것을 모르고 울산현감이 틀림없이 하라고 노자를 너무 많이 준 것이 탈이었다. 울산을 떠나 동해안 길을 따라 금강산으로 가는 길목에 주막이 좀 많은가! 주막마다 들려서 술독을 다 비워야 일어서니 어느 세월에 금강산까지 갈 것인지 예측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양양 땅을 지나 설악산 입구쯤 왔을 때 많은 장사들이 고성쪽에서 내려 오면서 하는 말이 금강산 꾸미는 일이 끝나 이미 품평까지 해서 상을 탔다면서 상품을 한아름씩 안고 오는 것이 아닌가.

    정신이 번쩍 난 떡쇠녀석, 눈앞이 아찔하다. 칼을 빼들고 목을 치려고 달려드는 울산현감의 도둑놈같이 생긴 성난 얼굴이 떠 올랐다. 이대로 그냥 울산으로 돌아갔다가는 뼈도 추릴 수 없겠다고 생각한 떡쇠는 지고 있던 울산바위를 설악산 지금의 자리에 내 부치고 그 길로 줄행랑을 놓아 어디론가 잠적 해 버렸다.

    잘 되고 있으려니 하고 이제나 저제나 승진 소식만 기다리던 울산현감에게 난대 없이 삭탈관직이 떨어지니 하루 아침에 백수건달이 되고 말았다. 이곳 저곳 떡쇠를 수소문 해 봤지만 알 길이 없고 이제는 수중이 용돈도 다 떨어지는 시기에 도착한 곳이 설악산 울산바위 앞이었다. 바위를 잘 보이는 흔들바위쯤에서 보니 그 잘생긴 바위가 원망스럽기도 하고, 앞으로 살아갈 길이 꿈만 같았다.
울산바위 앞 계조암
    그런데 흔들바위 바로 곁 큰 바위 아래 조그마한 절 계조암(繼祖庵)있는데 불공을 드리러 오는 신도가 무척 많아 하루에 시주 돈이 기백냥이나 된다고 하니 용돈에 찌들데로 찌든 이 건달! 생각이 없겠는가. 선듯 아이디어가 머리를 스쳐간다. 암자 마당으로 성큼 들어서면서 주지스님을 찾으니 마침 아침 불공이 끝나고 나오는 지라 점잖게 닥아가서 통성명을하고 무게있고 착 갈아앉은 목소리로 찾아온 연유를 꾸며댄 즉선
    자기는 울산고을 현감이었는데 자기가 운송비를 대가며 울산에 있던 이 바위를 예까지 옮겨 놓았는데 이 바위가 하두 잘생겨서 이 절에 신도가 많아지고 번창하여 시주가 많이 걷히게 되었으니 의당 바위 값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보름간의 말미를 줄 터이니 바위 값 십만 냥을 마련 해 놓으라는 것이다.

    세상 물정이라고는 조금도 모르는 주지스님! 걱정이 태산이라 그날로 앓아 들어 눕고 말았겠다. 주지스님의 수발을 드는 동자스님이 앓아 누운 주지스님의 병 구완을 하면서 병이 근심에서 온 것임을 직감하고 그 근심을 물으니 자초지종을 말하면서 그 건달의 억지소리인 줄 뻔히 알지만 청을 들어주자니 절에는 그 만한 돈이 없고, 청을 듣지 않으면 행패를 부릴 것이 뻔하니 이를 모면할 수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걱정만 하다가 병이 났다는 것이다.

    자초지종을 다 들은 동자스님! 자신만만한 얼굴을 지으며 그런 것이라면 걱정을 하지 말고 모든 것을 자기에게 맡기라는 것이다.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라 별 뾰족한 수가 없으니 동자스님이 하자는 데로 할 수 밖에-

    어언 보름이 지나 약속한 날이 되어 어김 없이 울산현감이었다는 건달녀석이 나타나 주지스님을 찾으니 주지스님은 출타했다며 안 나타나고 맹랑하게 생긴 동자녀석이 나오더니 반갑게 맞으면서 정중히 인사를 하고 응접실로 안내하여 차를 끓여 내온다. 다과상을 차린다 대접을 융숭히 하고 난 다음 점잖은 목소리로 주지스님의 말을 전한다 면서 하는 말이-


    “며칠 전에 이 아래 마을에 용한 도사 한 분이 왔길래 우리 절의 장래에 대하여 알아 봤더니 우리 절은 삼조사(三祖師)가 연이어 터를 닦아서 그 후덕을 입어 이제야 번창 해 지기 시작하는데 요 근래에 저 큰 바위가 뒤를 막는 바람에 도리어 운세가 기울어져 이대로 가면 머지 않아 절이 망할 것이라 하니 저 바위의 덕을 본다면 그만한 돈 쯤이야 드릴 수도 있지만 덕을 보기는 커녕 절이 망한다니 큰 걱정이라 마침 현감어른께서 바위의 주인이라니 제발 딴 데로 치워 주기를 간곡히 부탁한다" 는 것이었다.

    동자의 말을 듣고 난 건달! 당장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러나 건달 노릇 하는 자가 이쯤의 난관을 극복하지 못할까! 점잖게 대답하는 말이-

    "아! 거 참 안됐구나. 나는 이 절을 극진히 생각해서 저 바위를 애써 울산에서 이곳까지 옮겨 놓았는데 이 절이 덕을 못보고 해를 입는다니 정말 미안하게 됐구나. 그렇다면 당장이라도 딴 데로 옮겨야 겠는데 보다시피 짊어질 질빵이 없어졌으니 당장 지고 갈 수가 없구나. 내 보름 후에 다시 올 터이니 짊어질 질빵을 전에 매었던 자리에 달아 놓던지 돈 십만 냥을 마련해 놓던지 양단간에 선택해서 하라고 전해라” 하고는 떠났다.

    이 말을 들은 주지스님은 역시 걱정이 태산 같았지만 별 도리가 없으니 동자스님이 하자는 데로 할 수 밖에-
    우선 아랫마을 사람들을 시켜서 바닷가에 지천으로 깔려있는 갈대를 베어 묶어 세워 말린 다음 울산바위로 옮겨 건달이 말한 질빵자리라는 곳에다 차곡차곡 쌓아 올리고 밑에서 불을 지르니 갈대가 탄 자리에 소금 끼 있는 재가 달라붙어 멀리서 보면 영낙없이 흰 바위에 까만 질빵을 달아 놓은 것처럼 보였다.

    보름 후에 건달이 오면서 '무슨 제주로 그 큰 바위에 질빵을 달았으랴, 돈이나 준비 해 놨겠지’ 하면서 돈이나 받아갈 생각을 하면서 절로 향했다. 중간 울산바위가 한눈에 보이는 지점에 도착했을 때 동자스님이 기다리고 있다가 그를 맞이한다. 동자스님은 좀 퉁명스럽게 바위를 가리키며

    "현감어른께서 시킨 데로 바위에 질빵을 달아 놓았으니 한시라도 빨리 바위를 짊어지고 가시라”고 성화를 댄다. 건달이 하얀 울산바위를 바라보니 잘룩하게 조여진 자리에 영락없이 까만 질빵이 매여져 있지 않은가! 이 건달 할 말을 잃고 그 길로 돌아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을 놓았다는 이야기 이다.

    그때 질빵 자료로 쓰기 위하여 바닷가 갈대 풀을 베어 묶어서 말리려고 세웠던 자리에 집이 한 채 두 채 들어서 점차 번성하니 그 마을이 '갈대 풀(草)묶어서(束) 세웠던 자리’라 해서 이름을 속초(束草)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반론백신: 믿거나 말거나, 아니면 말고, 말또 몬하나)
< 설악산 가는 길 >
여주 금사면 금사교에서 바라보는
양평군 개군면-용문면 지경의 추읍산(582.9m)
용문 쪽에서 보던 추읍산과는 전혀 다른 모습.
영국군 전투모(철모) 같기도 하고, 해수욕장에 바캉스 온 멋쟁이 여인네 챙넓은 모자 같기도 하고---
설악산 백담사 입구 용대리에 세워진 풍력발전기군
미시령터널 서편 입구 못가서 서있는 장승같은 바위
< 델피노콘도 마당에서 바라보는 풍경 >
울산바위
아래 석조구조물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영국 솔즈베리 '스톤헨지'를 모조한 것 같다.
인공스톤핸지와 목마 위로 보는 설악산 주봉 - 대청, 중청, 소청봉
윗사진 왼쪽이 달마봉, 오른쪽이 울산바위.
< 콘도 베란다에서바라보는 풍경 >
울산바위
대청봉-중천봉-소천봉
콘도 광장의 목마
울산바위 능선 끝자락의 달마봉
미시령
용문 쪽에서 보던 추읍산과는 전혀 다른 모습
왼쪽이 백두대간 황철봉(약 1330m), 오른쪽이 백두대간 신선봉(1214m)
백두대간 신선봉과 마산봉
신선봉 자락에 험상궂은 바위 도사들
아침에 내다본 울산바위와 모조 스톤핸지
세계7대 불가사의(不可思議) 중의 하나 영국의 스톤헨지
BC 2800년 신석기시대 후반에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으며,
이를 만드는데 150만명의 인력이 필요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가축이나 운송수단을 사용한 흔적이 전혀없고,
제사를 지내는 종교적 장소? 천문 관측대? 외계인들의 활동 흔적?
지금 아무도 답을 내 놓을수 없는 미스테리다.
< 울산바위 등정 >
신흥사 일주문
신흥사 통일청동대불
그저 그저
"우리 손자 무탈하고, 공부 잘 하고,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게 해 줍시사---"
신흥사 앞에서 바라보는 달마봉능선과 울산바위
홍원기 찍사의 맹활약
마지막 장면은 나와 마주 찍는 장면
가설된 도보교
미끄럽다.
울산바위가 보이는 지점
아래는 음식점 야외 식탁
계조암 석굴 입구
아래는 1998년 10월, 우리 부부 결혼 34주년 기념 여행 때
계조암석굴 안과 밖
계조암 흔들비위
맨 아래는 아래는 1998년 10월, 우리 부부 결혼 34주년 기념 여행 때
봉사활동
보답
흔들바위가 생기게 된 경위
말로야 간단하지. 그렇지만 몇 억년은 족히 걸렸겠지
삼성각(三聖閣)과 큰 바위
울산바위 가는 길은 삼성각과 바위사이로 올라간다.
핸드폰으로 촬영
필요하면 다운받아가세요
울산바위 오름길
고무줄 멧트가 깔려서 걷기가 편하다.
울산바위 설명
처음 설치했던 계단길
1980년 11월에는 저 계단으로 올라갔다.
울산바위 전망대
울산바위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세존봉과 달마봉
잘 생긴 소나무와 소나무 애환 설명
본격적인 철계단 오르기
위로부터 2013년 2월, 1998년 10월, 1980년 11월
울산바위 철계단 오르는 모습 이모저모
골조는 철제지만 계단 바닥은 나무라
미끄럽지 않고, 소리도 나지 않아 오르내리는데 불편이 없다.
< 철계단 오르는 도중 남서향 180도 파노라마 >
남쪽 울산바위
대청봉 동편 (1330m)화채봉
대청봉(1707.9m)-마등령(1326.8m)간 공룡능선
마등령 세존봉
황철봉
북쪽 울산바위
철계단 오르면서 보이는 기암들
< 울산바위 정상에서 >
전망대 증명사진
"짠"
조손(祖孫) 합동 V 세레머니
할머니와 손자가 호흡이 척척 자-알 맞는구려.
맨 아래는 1998년 10월.
< 울산바위 정상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들 >
우리가 묵고 있는 댈피노 콘도
주목! 숙박하고 있는 방.
설악프라자골프장과 속초 영랑호
고성 학야리 운봉산
그 아래 우리 아들 시화(時和)가 27년전에 군 근무 했던 22사 사령부가 있다.
황철봉-마등령간 저항령(백두대간)
마등령-나한봉간 공룡능선(백두대간)
나한봉-신선봉간 공룡능선과 대청봉(백두대간)
대청봉은 구름에 싸여 안보이고 그 왼쪽은 화채봉,
올려다보은 울산바위정상 정망대
간식, 등선주(登仙酒)
< 하 산 >
출발
틈새 주목
틈새로 조금 보이는 계단이 최초 설치했던 울산바위 등정길.
1980년 11월에 왔을 때는 그 길로 올라왔다. 계단이 좁아 비켜가기가 힘들었다.
올라올 때보다 내려갈 때는 그저먹기.
올라올 때 지나친 기암
다시봐도 멋진 마등령 세존봉
스카이라인과 능선등마루선이 뚜렸하다.
공룡능선의 남쪽끝 신선대 위로 대청봉과 중청봉의 위용
적송(赤松) 노송
이곳 노송들의 다른 곳보다 더 많은 일제 수탈의 아픔을 받은 것 같다.
소나무 가지 사이로 보는 구름낀 대청봉
올라갈 때 놓친 계조암 애기석불과 소망돌탑
설악동 케이불카가 있는 권금성과 집선봉(우측)과 노적봉(좌측)
신흥사내 약수
신흥사 본당과 맞은편 화채봉
뒤돌아보는 울산바위
뒤돌아보는 마등령 세존봉
아이쟁 풀고, 울산바위 등산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