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鎭安)고원의 바람막이, 금남정맥(錦南正脈) 제일봉
운장산(雲長山, 1,126m)
沙月 李 盛 永
    함양-장수 지경의 영취산(1076m)에서 백두대간을 떠난 금남호남정맥(錦南湖南正脈)이 진안고을의 마이산(馬耳山)을 지나 전주-진안의 지경 모래재에서 금남정맥호남정맥이 갈라진다.
    호남정맥이 남으로 호남지방을 일구러 가는 동안, 금남정맥(錦南正脈)은 전북 북부의 만경강 지류 고산천을 흘리고, 금강 남쪽의 한밭(大田)과 놀뫼벌(論山), 곰나루(熊鎭: 公州)를 일구려 북쪽으로 출발하여 연석산(920m) 지난 곳에 큰 산을 솟구치니 금남정맥 제일봉 운장산이다
서쪽 완주군 봉동읍에서 바라 본 운장산
    운장산의 옛 이름은 구절산인데 산세가 수려(秀麗)하고, 웅장 (雄壯)하다. 정상의 세 봉우리, 가운데 주봉(1126.9m)서봉(1122m) 그리고 동봉(1127m)의 조화로움이 빼어난 풍광(風光)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서봉(西峰)은 기암(奇巖)으로 이루어져 운치가 있고 사방이 막힘이 없이 훤히 트여있어 조망이 좋다. 옛날 귀봉 송익필, 율곡 이이 등 다섯 성인이 교유하면서 올라 학문을 토론했다 하여 오성대(五聖臺)라 불리어 오고 있다.

    뿐만아니라 동쪽으로 벋어 각우목재 지나 젖꼭지 모양의 무명봉(1087m), 두건(頭巾) 쓴 모양의 복두봉(1018m), 더 나아가 용담호 서안에 아홉 봉우리의 구봉산(九峰山, 1002m)를 솟구친다.
    1999년 초에 제주도 딸네에 갈 일이 있어 김포공항에서 남는 시간을 보내려고 공항대합실에서 서성이다가 내외가 그림가게에 들렸다가 어느 산 그림에 두 사람의 눈길이 함께 쏠려 결국 그림을 사게 되었는데 그 그림이 북쪽에서 바라 본 운장산 그림이다. 80호 짜리니까 꾀 큰 그림이다. 지금은 우리 아파트 현관에 들어서면 맨 먼저 눈길이 가는 자리에 걸어 놓으니 소파에 앉으면 운장산이 한 눈에 들어 온다.
운장산 그림
왼쪽으로부터 동봉, 주봉, 서봉, 그림은 세 봉우리가 실제보다 가까이 붙게 그렸다.
서봉에서 바라 본 주봉
주봉 정상 표석
서봉에서 바라 본 동봉
주봉에서 바라 본 서봉
서봉 정상, 오성대(五聖臺)
<정상에서의 조망> 특히 운장산 서봉은 조망 제일의 산봉이다.
    북쪽: 활목재-피암목재를 지나 북쪽 금남정맥의 연장선상에 흰 색갈의 대둔산이 묘하게 생긴 수석을 감상하는 것 같고, 그 동쪽 구름처럼 그어진 띠 속에 서대산이 희미하게 윤곽만 보인다
서봉에서 바라 본 북쪽 전망(금남정맥 산줄기)
사진 아래 55번 국도가 금남정맥을 넘는 고개가 피암목재, 그 오른쪽이 외처사동

    동쪽: 가까이 여인네 젖꼭지 같은 바위봉이 솟은 1042m봉(그 모양으로 보아 유두봉-乳頭峯-이라 불렀으면 좋겠다)의 길죽한 능선 위에 복두봉의 윗 부분이 이름 그대로 두건 쓴 머리처럼 올라와 있고, 구봉산은 감추어져 보이지 않는다.
    멀리 하늘금에는 덕유산 향적봉에서 남덕유산까지 백두대간 능선이 꿈틀대는 공룡(恐龍) 같다. 좀 더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백두대간이 육십령에서 가라 앉았다가 서서히 올라 채면서 금남호남정맥을 분기시키는 영취산(1076m)이 식별되고, 그 위로 남한 제2의 백운산(白雲山, 1279m), 그 오른쪽에 금남호남정맥의 첫 작품으로 기다란 용마루 같은 장안산(1237m)이 보인다.
    또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덕유산 북쪽 끝머리 길게 그리는 하늘금에 세 개의 봉우리가 왼쪽으로부터 민주지산, 석기봉, 삼도봉이 보이니 그 너머가 바로 ‘나의 고향’부항이 아닌가.

    남쪽: 머리 속에 상상해 온 말의 쫑긋한 두 귀 마이산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부귀산(806m) 위에 두개의 도깨비 뿔이 나 있는데 눈의 초점을 맞추어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이 바로 마이산 두 봉우리의 꼭대기다. 그 서쪽으로 금남정맥이 호남정맥과 만나는 모래재가 있고, 호남정맥이 만든 첫 작품 만덕산 (706m)이고 그 오른편 멀리 전주 남쪽 중산도의 발상지 모악산(794m)이 보인다.
서봉에서 바라 본 서남쪽 전망(금남정맥 산줄기)
앞을 가로막는 산이 연석산, 그 너머에 금남/호남 정맥의 갈림 모래재가 있고, 그 우측에 전주 시가지가 보인다.
서봉에서 바라 본 남쪽 전망

    남쪽 전망의 백미는 지리산! 왼쪽으로 천왕봉, 중봉, 하봉의 세 봉우리가 뚜렷하고, 그 오른쪽에 마치 칼날에 이빨 빠진 것처럼 잘룩이 져 있다. 장터목이다. 오른쪽 끝에는 반야봉이 유아독존으로 솟아있는 그 사이 백 십리 능선이 하늘금을 그리며 꿈틀댄다.

    서쪽: 왼쪽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이 갈리는 모래재 오른쪽 벌판에 전주시가지가 펼처져 있고, 그 서쪽으로 끝이 하늘인지 들판인지 알 수도 없는 망망한 호남 평야가 펼쳐져 있다.

    운장산의 북쪽과 남쪽 물은 금강, 서쪽 물은 만경강으로 흐르지만 산 북쪽으로 흐른 물은 주자천이 되어 동쪽으로 용담호로 흘러들면서 그 깊은 계곡에는 항상 해가 구름 속에 있는 듯 하다 하여 운일암(雲日岩) 동시에 하루에 해가 반만 든다 하여 반일암(半日岩)이라 불리는 여름 피서 명소가 있다. 이 곳에는 비석바위, 대불바위, 삼형제바위, 보살암 등 비경(秘景)의 명소가 많아 요즈음 피서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운일암, 반일암
반일암은 봤는데 운일암은 안보이데예 = 로미오는 봤는데 쥴리엣은 몬봤심더

    운장산 서봉을 오성대(五聖臺)라 하는데 이는 조선조 중종때 서출 출신 학자 운장(雲長) 송익필(宋翼弼) 이 처사동에 은거하면서 교유(交遊)하던 이율곡(李栗谷: 이이), 성우계(成牛溪: 성혼) 그리고 제자 김종직(金宗直: 점필제), 정엽(鄭曄) 등과 함께 다섯 사람이 서봉에 올라 강론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송익필(宋翼弼)은 중종29년(1534)-선조32년(1599),자(字)를 운장(雲長), 호(號)를 귀봉(龜峰), 시호(諡號) 문경(文敬)으로 여산인(礪山人)이다. 이율곡(李栗谷), 성우계(成牛溪)와 사귀며 성리학(性理學)에 통달했고, 예학(禮學)에도 밝았으며, 문장(文章)에 능하여 조선조 팔문장(八文章)의 하나라 하였고, 시(詩)에도 능하였다. 문하의 김장생(金長生) 등이 스승의 예학을 계승발전 하여 대가(大家)가 되었다.
    저서로는 귀봉집(龜峰集)과 귀봉유세(龜峰遺說)가 유명하다. 운장산 북쪽 아래 처사동 (處士洞)의 이름도 글을 한 선비 송익필이 벼슬에 나가지 않아 처사(處士)로 호칭 한데서 비롯되었다.
2004. 9. 8. 아산회 운장산 등산
    일자: 2004. 9. 8.
    인원: 김홍규, 박명환, 반준석, 이성영, 정진덕, 정태진, 조성환, 조용수, 황익남(9명)
    차량: 황익남 9인승 승합차 1대
    이동 및 등산 코스: 서울-전북 완주군 봉동읍 이동(경부/호남고속도로)/ 봉동읍 초원회관에서 중식 /봉동읍-피암목재 이동 /피암목재-운장산 서봉 등산(등선주) /서봉-주봉-동봉-내처사동으로 하산(황익남, 조성환은 피암목재로 하산) /내처사동-시골집 이동, 도중 용담댐 구경
전북 완주군 봉동읍 초원회관에서 점심
운장산 가는 길 완주군 동상면 대아저수지 옆 운암산(雲巖山)
조용수의 호 운암(雲巖), 여기서 비롯되다(반론백신: 믿거나 말거나, 아니면 말고, 말도 못하나)
피암목재에서 운장산 서봉을 향하여 출발
서봉(1122m, 일명 오성대) 정상
서봉에서 등선주(登仙酒)
운장산 주봉(1126.7m)
1127m의 운장산 동봉
운사(運士)가 먼저 와서 내처사동 계곡에서 족욕(足浴)
용담댐 물전시관 앞
용담호


2004. 9. 10. 무주구천동계곡 수성대 사진(귀경시)
수성대 창암: 일사대
수성대 출렁다리
수성대 벽계수
서벽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