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계 줄행랑
沙月 李盛永(2011. 5. 22)
나무 위에 올라 간 고양이. 왜?
    병법에서 도망치는 계(計)가 36계란다.
    세불리(勢不利)한데도 미련하게 버티다가 제기불능으로 패하는 것보다야 적절한 시기에 꽁무니를 빼서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백번 현명한 처사일 것이다.
    그러니 도망치는 것도 훌륭한 병법의 계책일 수 있다.
    위 그림의 나무 위에 올라간 흰 고양이가 바로 36계를 택한 것이다.

    우리 시골집은 연중 반 이상 빈집이다. 우리가 시골집을 비우고 용인 아파트에 올라오면 야생고양이가 집주인 노릇을 한다. 그러니까 시골집 상주(常住) 주인은 야생고양이인 셈이다. 우리는 뜨네기 주인이고---
시골집 상주 주인 야생고양이
새끼도 치고, 일가를 이루면서 눈에 불을 켜고 밤낮으로 시골집을 지킨다.
    우리 시골집 이웃에 딱 한마리 집고양이를 기르고 있다. 나무 위에 올라간 흰 고양이가 이웃집 집고양이다.
    이놈은 야생고양이와는 달리 모든 동네사람들에게도 주인과 타인을 가리지 않고 따른다. 이따금 먹을 것을 주니까 그렇게 된 것 같다.

    우리가 시골집에 도착하면 어느새 알았는지 현관 앞에와서 알아듣지도 못하는 고양이 소리로 보챈다. 먹을 것을 내놓으라고 조르는 것이다.
    그래서 먹을 것을 주면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얼른 먹고 사라진다. 오래 머물지 않는 것을 보면 무슨 사연이 있는 모양이다.

    이 날도 뭐 먹을 것이나 달라고 조르려고 삽작문 밑으로 살그머니 들어오다가 이 집 상주 주인 야생고양이에게 들킨모양이다.
    야생의 법칙 '영역'을 침범했으니 가만 둘리가 없다. 가차없이 공격을 하니 세유불리를 가릴 겨를이 없다. 본능적으로 36계를 실천한 것이 나무 위로 도망간 것이다.

    그런데 집고양이는 순식간에 5M 쯤 높은 곳까지 도망갔는데 더 날쎄고 야성으로 단련된 추격자 야생고양이는 한 2m 쯤 올라가다가 포기하고 내려와 미련없이 다른 데로 가버린다.

    둘 사이에는 나무 위로 올라가는 목적이 달랐기 때문인 것 같다.
    집고양이는 잡히면 죽을 지도 모르니 목숨을 걸고 도망하는 것이었고, 야생고양이는 다시는 영역을 침범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죽어라 하고 나무를 올라갈 필요가 없었던 것 같다.

    둘이 쫓고 쫓기는 장면을 찍질 못해 실감이 안나는데 나무위에 올라간 집고양이의 두 그림의 표정에서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아이고 살았다!
꼬리는 안쪽으로 접고, 눈은 몹시 놀란 겁에질린 눈으로 추격자(야생고양이)를 내려다본다.
추격자가 가버리니 좀 안심이 되는 모양이다. 36계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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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三十六計(36계) >
    보통 도망가는 것을 말하는 36계(三十六計)는 「三十六計走爲上策」(삼십육계위상책)의 줄인 말로 중국 남북조시대 남조의 제(齊)나라 때 생긴 고사성어(故事成語)이다.
    전장에서 적과 싸우는데 36가지나 되는 꾀(計) 가운데 도망치는 것이 좋은 꾀가 된다는 뜻인데, '겁이 많은 자를 조롱하는 말'로 쓰이기도 하고, '자신이 없는 일은 주저할 것 없이 얼른 포기하거나 피하는 것이 제일'이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중국 남북조시대 남조(南朝)의 송(宋)나라에 이어 제(齊)나라를 세운 고조(高祖) 소도성(簫道成)은 자기 손에 비참하게 망한 송(宋)나라의 전철을 밟지 말도록 유언을 하고 죽었지만 제(齊)나라 역시 겨우 30년 만에 망하고 말았다.

    고조(高祖)의 조카 명제(明帝) 소란(簫鸞)은 갖은 음모와 포학으로 황제의 위를 강탈 한 후 반란과 보복이 두려워 자기를 반대해 온 형제와 조카들을 두 달 동안에 14명이나 죽였다.

    그런 혈육의 피바다 위에서 황제에 오른 소란(簫鸞)은 3년 남짓 해서 병을 얻어 자리에 눕게 되었는데 병상에서도 아직 살아 남아 있는 소도성(簫道成) 혈통을 받은 10명의 왕족들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후환을 없애려고 심복을 시켜서 10명의 왕족을 한꺼번에 죽여버렸다.

    이 때 제(齊)나라 건국 공신 왕경칙(王敬則)이 동쪽의 회계(會稽) 태수로 있었는데 소란(簫鸞)이 자기를 제거하기 위해 장괴(張壞)를 정동장군(征東將軍)으로 임명하여 회계와 경계를 맞대고 있는 오군(吳郡)으로 파견한 사실을 알자 즉시 반기를 들고 일어났다.

    처음에는 겨우 만명 밖에 안 되던 군사가 행궁 도중 몽둥이와 괭이를 든 농민들이 합세하여 10만명으로 불어나 무진(武進)을 넘어 흥성(興盛)에 육박하니 제나라 서울인 건강(建康: 南京)까지 얼마 남지 않게 되었다.

    왕경칙의 반란 소식을 들은 제나라 조정은 공포에 휩싸여 태자 보권(寶卷)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측근들을 누대 위에 올려보내 반란군 동정을 살피게 하였다.

    때마침 도성 북쪽에 있는 정로정(征虜亭) 불이 나서 연기가 피어 오르자 누대에서 살피던 측근이 태자 보권에게 달려와 "왕경칙이 벌써 정로정까지 쳐들어왔습니다"하고 보고하였다.

    보고를 받은 태자 보권은 어디로 달아나야만 할지 몰라 허둥대고만 있을 뿐이었다.

    이와 같은 조정의 상환을 전해들은 왕경칙은 만족해 웃으면서
    "단공(檀公 : 前代 宋나라를 섬긴 名將 檀道濟)의 서른여섯 가지 꾀 중에서 달아나는 것이 상책이라 했다. 너희 부자도 다만 달아나는 길만 있을 뿐이리라(三十六計走爲上策 汝父子唯有走而)" 라고 큰소리를 쳤다.

    그러나 왕경칙의 반란군은 흥성을 포위했을 때 도리어 관군의 기습을 받고 무기다운 무기를 갖지 못한 농민군이라 혼란에 빠져 패하여 왕경칙 등은 죽고 반란군은 해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