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태양神 아래 이집트 王의 가족 사랑
沙月 李盛永(2014. 10. 18)
오늘 조선일보 A35면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에 기원전1355년경 이집트 제18왕조 아크나톤이 통치했던 '아르미나 시대'의 미술품 하나를 소개하고 있다.
2006년 봄 동기생 부부 9명이 지중해동부(이집트, 그리스, 터키) 관광여행 중에 이집트 '룩소'에서 구경했던 것과 과천 현대미술관에서 전시했던 투탕카멘의 유물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어 전문을 퍼와서 올리면서 옛날 관광앨범과 전시앨범을 링크한다.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태양神 아래 이집트 王의 가족 사랑
『유난히 긴 턱, 두툼한 입술, 좁은 어깨에 비해 지나치게 넓은 골반, 얄팍한 가슴과 축 처진 뱃살을 가진 한 남자가 정원에 앉아 가족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그는 이집트 제18왕조의 10대 파라오였던 아크나톤이다. 틀에 박힌 듯 이상적 양식을 추구했던 기존의 파라오 조상(彫像)들과는 전혀 다른 이 부조는 '아마르나 시대' 미술의 현실적인 특성을 잘 보여준다.

아크나톤의 원래 이름은 아멘호테프 4세였다. 하지만 그는 기존의 다신교를 일소하고 태양신 아톤을 유일신으로 내세우면서 자신의 이름도 '아크나톤', 즉 '아톤을 위하는 자'로 바꿨다. 수도 또한 텔-엘-아마르나의 신도시로 옮겼기에, 흔히 그의 재위 시기를 '아마르나 시대'라고 부르는 것이다.』
아크나톤과 그 가족
아크나톤과 그 가족, 기원전 1355년경,
석회석, 31.1 x 38.7cm, 베르린 이집트 박물관 소장.
『아마르나 시기의 미술은 과거 수세기 동안 이집트 미술이 일관되게 추구하던 권위적인 형태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 아크나톤과 왕비 네페르티티는 어린 세 딸들과 함께 생명의 힘을 발산하는 태양신 아톤의 상징, 일륜(日輪)의 비호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신성한 상징이 없다면, 엄마 몸에 꼭 붙은 두 아이들과 아이를 안고 뺨을 비비는 아빠의 모습은 여느 평범한 가족과 다를 것이 없다.

아크나톤의 파격적 개혁은 그의 사후 모두 원점으로 되돌아갔고, 그가 세운 도시와 신전들은 파괴되었다. 그 뒤를 이은 왕이 바로 투탕카멘이다. 2008년 DNA 조사에서 아크나톤이 투탕카멘의 아버지라고 밝혀졌다. 왕비 소생이 아니었던 투탕카멘은 아크나톤과 네페르티티의 삼녀(三女)이자 그의 배 다른 누이인 앙케세나멘과 결혼했지만, 10대에 급사(急死)했다. 이 작품 속, 천진한 세 아이들 중에 비극의 주인공 앙케세나멘이 있을지 모른다. 과연 누굴까.』끝
<투탕카멘 유물전에서 본 비슷한 그림 하나>
투탕카멘의 옥좌
금박을 입힌 나무에 은, 설화석고, 유리와 준보석 등으로 상감처리,
발 받침대는 금박을 입힌 나무에 상감처리,
높이 104cm, 너비 53cm, / 발 받침대 : 길이 63.5cm,
2006년 이집트 룩소 여행앨범(클릭): 이집트 룩소 관광앨범
투탕카멘의 유물(클릭) : 투탕카멘의 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