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띠꾸스(ANTIQUUS)
沙月 李 盛 永(2005. 3. 28)
  작년 여름 어느날 남수원 골프장에서 우리팀의 도우미 아가씨가 여느 캐디 같질 않고 부지런하고 친절할 뿐만 아니라 아는 것도 많은 것 같았다.(남수원골프장에는 모노레일 카터를 쓰기 때문에 4명 한 팀에 캐디 한 사람이 따른다)
  그래서 끝날 즈음 나의 홈페이지 주소 쪽지를 주었는데, 그녀의 이름도 얼굴도 다 잊어버릴 때쯤인 12월 초에 홈페이지에 들어 왔었는지 게시판에 ‘홈페이지를 두루 구경 잘 하고 간다’ 면서 홈페이지를 재미있게 잘 꾸몄다는 칭찬의 글을 남겼다.

  그리고 그녀는 본래 출판사에 근무했는데 답답한 회사생활에 획기적인 어떤 변화를 가지고 싶어서 골프장 캐디로 일을 좀 하다가 지금은 본연의 출판사 업무로 돌아와 일한다고 했다.
  캐디를 해 보니 사람을 많이 접촉하기 때문에 많은 것을 배우는 경험을 했다며 그러나 그녀는 출판을 전공했고, 책이 좋아 책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도 하였다.

  지난 3월초 그녀가 또 나의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을 남겼는데 그 출판사에서 ‘안띠꾸스’라는 서양 고서(古書) 내용을 중심으로 하는 인문 잡지를 격월제(隔月制)로 발간하게 되어 창간호 2월호(2005. 2. 15. 발행)를 보내주겠다며 주소를 알려달라고 하였다. E-메일로 주소를 보냈더니 며칠 후에 두 권을 부쳐와서 귀한 책을 얻게 된 것이다.
(한 권은 조성환 동기에게 선사하였음)
인문잡지 안띠꾸스 창간호 표지

  또 안띠꾸스는 신화 깊이 읽기, 앤티크 스토리, 영화 싸이콜로지, 아트 인테마 등에 관한 전문가들의 알기 쉽고 깊이 있는 문화, 예술강좌를 개설하는데 세부내용은 다음 주소의 그 출판사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알 수 있단다.
  안티꾸스 홈페이지 주소:http://www.antiquus.co.kr/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안띠꾸스’아주 오래된 옛 것’ 라는 라틴어라 한다. 이 잡지를 주관하는 분은 고서 수집가이고 이 잡지의 기획위원으로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를 제공한 '파리 세느강변의 셰익스피어 앤 캄파니' 글을 쓴 김준목씨며(그녀가 바로잡아 줌), '책을 만든 사람들'에 보니 그녀는 고객지원 담당으로 되어 있다.

  표지 설명을 보니 실제 그림은 앞의 사진 그림 밑에 세 사람의 수도사가 무엇을 열심히 필사 하는 장면이 더 있는 그림이다. 이 사진은 10세기 때 ‘상아로 만든 책 표지’ 인데 교황 그레고리우스가 어깨에 앉은 비둘기(성령)로부터 말씀을 듣고 필사에 몰두하고 있으며, 그 밑에 3명의 수도사가 그레고리우스 교황이 쓴 택스트를 베껴 쓰고 있는 그림이라고 한다.

  책을 읽는 도중에 고서점 순례 편에 김준목씨의 글 「파리 세느강변의 ‘셰익스피어 앤 캄파니’」가 요즈음의 세태를 다시 생각케 하고, 또 나의 옛 일 하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세느강변에 늘 사람이 붐비는 고서점 하나가 있는데 입구에 ‘SHAKESPEARE AND COPANY(셰익스피어 앤 캄파니)’라는 간판이 달려 있단다. 1951년에 처음 문을 열어 지금까지 54년을 유지해 온 서점의 주인은 88세의 휘트먼씨라고 한다.

고서점 셰익스피어 앤 캄파니 전경
서 있는 사람이 필자 김준목씨인 듯

  서점 주인 휘트먼씨는 젊을 때 그는 7년간 걸어서 세계를 여행했는데 멕시코에서 출발하여 미지의 수많은 늪과 사막을 지나 파나마에 혼자 걸어서 갔다고 한다. 젊은 날 무일푼으로 세계를 여행할 때 많은 이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다며 그 보답으로 세계 여러 나라의 젊은이들을 초청하여 자신의 서점에서 숙식을 제공하면서 많은 책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해오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셰익스피어 앤 캄파니 고서점은 이제 파리 시민이 세계에 자랑하는 보물이 되었고, 주인 휘트먼씨는 파리시장과 수많은 문화계 인사들이 그의 안부를 걱정하는 유명인사가 되었다고 한다.

  나는 이 고서점이 세계적으로 유명해 진 것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88세 고령의 책방 주인 휘트먼씨의 말과 생각이 가슴에 와 닿는 것이다.
  그는 항상 “이방인에게는 늘 최선을 다해 호의를 베풀어라. 그들은 변장한 천사일지도 모르니까--” 하며 중얼거리며 다닌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몇 켤레의 낡은 양말, 러브레터 그리고 노트르담사원이 바라다 보이는 작은 창문을 제외하고는 어떤 것도 자기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고 한단다.

  요즈음 인터넷에서 사진 한 장, 음악 한 곡을 다운 받았다가 이름도 생소한 소위 ‘지적소유권 침해’ 라는 죄를 쓰고 재판을 받아야 할 사람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고 있는 오늘의 세태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다.
  지적소유권, 이를 가로채서 장사를 하며 이득을 취하거나 하는 상습적인 도둑들로부터 보호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사진이건, 음악이건 세상에 내놓고 더구나 만인이 볼 수 있는 인터넷에 올려 놓고 ‘보기만하고, 듣기만 해라. 가져가면 안 된다’ 고 한다.
  복사해 간다고 해서 훔쳐간 책처럼 원본이 없어져 주인이나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게 되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가져가지 말라면 내놓지 말던가, 아니면 못 가져 가게 장치를 하던가 할 일이지, 예쁜 그림이나 아름다운 음악을 누구나 보고, 듣고 그리고 가져 갈 수도 있게 방치해 내놓고는 가져간 사람을 지적소유권 침해 도둑으로 고소를 하고 있는 것이 지금 각박한 세상의 세태다. 아름다운 들꽃 한 송이를 꺽고싶은 것은 인지상정이 아닌가.
  예로부터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는 말도 있다. 지식을 얻고자 하는 열의를 꺽지 않아야한다는 말일 것이다.

  그에 비하면 휘트먼은 세계에 자랑하는 파리시민의 보물 '셰익스피어 앤 캄파니’를 소유하고, 그 속에 무수히 많은 세계의 희귀한 책들을 진열해 놓고 누구나 마음대로 보게 하면서 그것들이 모두 자기의 소유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니, 그의 생각과 지금 우리의 세태와는 하늘과 땅 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지 않는가.
  휘트먼의 생각대로 한다면 인터넷에 올린 사진이나 음악을 가져가서 다른 홈페이지에 올려 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 들을 수 있게 한다면 오히려 선전해 줘서 고마워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지금부터 30년 전의 일인 것 같다. 나는 1973년 소령으로 합참대학을 졸업하면서 합참에 근무하게 되었다. 전략기획국인데 전 같으면 고참 중령들이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빈둥거리는 양노원 같은 곳이었다.
  실제 작전권이 미군 장성인 유엔군 사령관에게 있으니 합참이라 곳은 기껏 그를 도와주고, 그의 작전운용을 우리의 국익에 반하는 방향으로 운용하지 않도록 감시(?), 조언하는 것이 고작이기 때문에 전략기획이라는 것 또한 언젠가 모르지만 작전권이 환수될 때를 대비해서 그냥 연습 삼아 기획문서들을 작성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973년부터는 사정이 달랐다. 율곡계획을 합참 전략기획국에서 작성하도록 대통령으로부터 권한과 임무를 부여 받았기 때문이다. 일은 하나에서 열까지 생소한 것이고 쓰이는 용어도 그 많은 군사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는 새로운 용어들이었다. 물론 심신이 고달프고 힘들었다. 그러나 신바람도 났었다.
  그렇게 해서 3년을 율곡계획 육군담당을 하다 보니 내 머리 속과 바인다에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듣도 보도 못한 생소한 자료들이 가득 차 있었다.

  열심히 한 덕분인지 1975년 3월 중령으로 승진이 되자 맨 먼저 내 앞에는 대대장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인사상의 돌다리가 하나 놓여 있었다. 그래서 미리 예측하고 윗 분들을 졸라 후임자 한 사람을 일찍 골라왔다. 육사 2년 후배로 머리도 좋고, 발도 넓은 유능한 장교였다.
  대대장 나갈 때까지 6개월 정도 합동근무를 하면서 업무를 인계하는 것이었다. 그 때쯤은 내가 윗 분으로부터 부여 받은 과제는 퇴근시간 후 남아서 과외시간에 해결하고, 일과시간 내에는 거의 찾아오는 손님에게 설명하고, 자료를 찾아 주는 마치 민원담당자 같았다.

  어느날도 특검단에 근무하는 육사 1년 선배(12.12. 후에 막강한 위치에 오른 사람)가 찾아왔다. 박대통령께서 율곡사업에 대한 감사권을 감사원에서 분리하여 국방부산하의 ‘(대통령)특명검열단’(약칭 특검단)에 주었기 때문에 특검단요원들이 율곡사업에 대한 감사를 할려고 하니 용어에서부터 개념, 절차 등 하나같이 낯설고 모르는 것들이라 그 선배도 자료도 얻고, 좀 배우러 온 것이었다. 마침 안면이 있는 후배이니 잘됐다는 생각으로 붙잡고 앉아 하루 해가 다 지나갔다.

  사실 나는 그날 아침 출근하자 마자 과장님으로부터 과제를 하나 부여 받았는데 그렇게 급한 것이 아닌 줄 알고 또 일과 후에 해서 내일 아침에 내밀면 되지 않겠나 생각하고 열심히 성심껏 선배에게 설명도 하고, 자료도 꾸려 주었다. 그러나 워낙 생소한 용어들이라 잘 알아듣지 못해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어느 정도 됐는지 선배는 고맙다고 하고 내 옆 자리를 떠났다.

  잠시 정신 좀 돌리고 아침에 부여 받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관련 자료들을 책상에 꺼내놓고 있는데 과장님께서 나를 바라보며(과장실이 따로 없고 한 방에 과장님과 과원들이 마주 바라 볼 수 있도록 책상이 배열되어 있었음)
  “어이, 이중령! 아침에 그 과제 어떻게 됐나?” 하는 것이었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이었다. 속으로 그렇게 급한 것이란 이야기도 하지 않았고, 또 그렇다면 과원이 선배에게 붙들려 하루종일 자원봉사(?)하고 있는 것을 과장이 시종 봤으면서도 그 때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선배가 떠나자 마자 내놓으라는 것 아닌가?

  그렇게 바쁜 것이었다면 과장이 나서서 “이 보게 아무게! 이중령은 지금 바쁜 과제가 있으니 다음날 와서 하면 안되겠나?” 하는 정도의 말을 해서 과원으로 하여금 일 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해 주는 것이 과장의 임무가 아닐까 하는 불평스런 생각이 들어 나 또한 속에서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과장은 그 선배보다도 5년이나 선배이니 충분히 그렇게 제지할 수도 있는 입장이었는데 말이다. 그러나 대 놓고 과장님에게 맞설 수도 없고 고작 한다는 것이 목구멍으로 기어들어가는 혼자 말로 “바쁜 때 와서 조르는 바람에---” 하고 말 끝을 얼버무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과장님은 아무 소리 않고 있는데, 저 뒤 쪽에서
  “어이, 이중령! 나 여기 있어” 한다. 누군가 하고 돌아보니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그 선배였다. 분명히 밖으로 나간 줄 알았는데 잊어버리기 전에 스스로 정리하려고 빈 자리로 가서 앉아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웬만한 사람 같으면 ‘나 때문에 후배 이중령이 과장으로부터 업무 독촉을 받는구나. 참 미안한데---’ 하고 생각하면서 못 들은척 하고 가만히 있던지, 몰레 방을 빠져 나가야 할 일이었을 텐데 ‘나 여기 있으니 욕하지 마’ 하는 식이다.

  지금 생각하면 요즘 말로 참으로 싸가지(염체) 없는 소행이 아닌가. 순진한 나는 한참 동안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거기 버티고 서 있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 버렸다. 더구나 다음날 국방부 식당에서 특검단에 근무하는 동기생으로부터 그 선배가 나를 엄청 나쁘게 헐뜯더라는 말도 들었다. 그러고 보면 속말로 ‘뭣 주고 뺨 맞는 격’ 이 된 것이었다.

  얘기는 다시 지적소유권 문제와 관련된 얘기로 돌아가자. 어느날, 그날도 우리 부서와 업무의 범위 때문에 경쟁관계에 있는 부서의 사람이 찾아와서 어떤 과제에 따른 자료를 얻으러 왔다는 것이다. 국방부와 합참에 율곡업무가 새로 생기다 보니 부서간에도 수행할 업무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그 과제는 우리 쪽에 부여 될 것으로 미리 짐작하고, 며칠 전부터 야근을 하면서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 해 놓은 것이 있었다. 과장님에게 그 과제가 다른 부서로 떨어졌다는 것을 확인하고 자리로 돌아와 바인다를 꺼내 며칠간 모아서 정리한 자료를 내주고 설명까지 해 주어 보냈다.

  다른 부서사람은 입이 함지박처럼 벌어져 방문을 나간 뒤 나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던 후임 후배가 한 말을 건넸다.
  “선배님! 출세하기는 틀렸습니다. 어떻게 며칠간 야근하면서 어렵게 수집, 정리한 그 귀한 자료를 한 방에 그냥 내 줍니까?”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어떡하나? 그 일이 우리에게 떨어졌으면 그 자료가 내 이름으로 빛을 보겠지만 다른 부서에 떨어졌으니 그 자료들이 빛을 못보고 사장 된다면 아까워서 어떡하나. 다른 사람을 통해서라도 나라를 위해 유용하게 쓰여진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야지 않겠나?”

  내가 해놓고 생각해도 공자님 말씀 같은 말이었다. 후배 말처럼 그것이 내가 더 출세하지 못하는 현실적인 나의 한계 이었는지도 모른다. 반면에 그 후배는 3성 장군에 진급하고, 차관급 정부부처의 기관장까지 올랐으니 그 때 그의 말이 현실을 살아가는데 원안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의 공자님 같은 말은 요즈음의 지적소유권 관련 세태로 보면 한 낱 ‘공산(空山) 잠든 달을 보고 짖는 개소리’일 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파리의 고서점 '셰익스피어 앤 캄파니' 고서점 주인 휘트먼씨의 생각에서 본다면 그래도 이 사회를 아름답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에 조금은 기여했을 것이라는 위안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