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좌에 걸터앉아 오른손을 뺨에 대고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의 불상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 國博, 올 11월 부터는 반가사유상 두 점, 나란히 전시할 계획>
沙月 李盛永(2021.2.4)
2021년 2월 4일자 조선일보 Culture 난에 '반가사유상 두 점, 나란히 전시'
'國博(국립박불관), 이전엔 해마다 교체 전시, 올 11월 부터 함께 선보이기로'라는
제목으로 Culture 난에 국보78호와 83호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에 관한
허윤희 기자의 짧은 글과 두 불상의 6개 영상을 올렸다.

2009. 5. 9-15, 6일간에 조선일보가 주관하는 '日本속의 韓民族史 탐방'에
우리 부부가 참여하여 교도 광륭사에 소장된 일본 국보1호
목조 미륵보살(彌勒菩薩)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을 탐방하였다.

지금까지 이 불상이 신라에서 만들어 일본에 전해 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일본인들 중에는 일본에서 만들었다는 주장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재질이 춘양목(春陽木: 소나무의 한 별칭)이라는 것이 확인되어
기존 알고 있는 신라 제작설이 타당성이 있다고 보며,
일본 제작설은 일본의 자존심을 세우려는 주장으로 보인다.
조선일보 기사와 함께 '반가사유상'과 '춘양목'에 관한 이야기를 올린다.

국보 제78호와 제83호
(金銅製)‘한국의 미소’ 라 불리는 두 점의 반가사유상.
국보 78호 반가사유상(왼쪽)은 태양과 달이 결합한 화려한 관을 쓰고 있으며,
두 가닥의 장식이 양쪽으로 어깨까지 늘어져 있다.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은 세 개의 산처럼 솟은 삼산관(三山冠)을 썼고
얼굴은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은 소년처럼 통통하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의 대표 명품으로 꼽히는 국보 78호와 83호 반가사유상 두 점이 올해 11월부터 새로운 공간에서 나란히 전시된다.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두 작품을 상설 전시하는 440㎡ 규모의 전용 공간을 2층 기증관 입구에 마련하겠다”며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 찾아가듯 반가사유상을 중앙박물관의 대표 브랜드로 키우겠다”고 3일 밝혔다.
국보 제78호와 제83호
지난 2015년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고대불교조각대전'에서
국보 78호(왼쪽)와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이 나란히 전시된 모습. /국립중앙박물관
국보 제78호 정면
태양과 달이 결합한 화려한 관을 쓰고 있으며,
두 가닥의 장식이 양쪽으로 어깨까지 늘어져 있다.
몸에는 긴 천의(天衣)를 둘렀는데, 탄력적이고 부드러워 보인다./국립중앙박물관
국보 제78호 우측면
오묘한 미소와 균형 잡힌 자세, 아름다운 옷 주름이 인상적인
삼국시대의 대표적인 반가사유상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오른발을 왼쪽 무릎 위에 걸치고[반가·半跏] 깊은 생각[사유·思惟]에 잠긴 두 불상은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걸작이다. 하지만 3층 불교 조각실 안에 있어 접근성이 떨어지는 데다 두 점을 1년마다 교체 전시해 한 점은 늘 수장고에 있었다. 두 작품이 함께 전시된 것은 지난 2004년과 2015년 특별전 단 두 번뿐이었다. 민 관장은 이날 신년 기자 간담회에서 “10년 전 전시과장으로 외국 박물관을 접촉할 때마다 반가사유상의 출품 가능 여부가 전시 규모를 결정지을 정도로 해외 전문가들이 최고로 꼽은 작품”이라며 “11월 1일 공개되는 전시장은 전통 디자인에 현대적 감각을 더하겠다”고 말했다.
국보 제83호 정면
세 개의 산처럼 솟은 삼산관(三山冠)을 썼고
얼굴은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은 소년처럼 통통하다./국립중앙박물관
국보 제83호 좌측면
입은 살며시 다물었으면서도 미소를 머금어
깨달음의 희열을 드러내는 동시에 조형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국립중앙박물관
2024년 완공되는 ‘문화유산 과학센터’도 기대를 모은다. 총 사업비 274억원, 연면적 9350㎡ 규모. 재질·분야별 보존과학 데이터를 축적해서 유물에 대한 진위 검증에 활용할 계획이다. 민 관장은 “잊을 만하면 나오는 게 문화재 진위 논란인데, 가장 큰 문제가 전문가의 안목과 경험이라는 주관적 판단에 의지하기 때문”이라며 “국립박물관 소장품을 중심으로 공·사립 박물관의 지정 문화재 데이터를 우선 쌓고, 이를 기반으로 국공립 기관이 요청하는 유물에 대한 진위 검증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허윤희 기자
국보 제78호와 제83호
아침에 배달된 종이 조선일보에는 설명 없이 이 그림 하나만 실려 있고 ,
위 나머지는 인터넷판 조선일보에 실려 있었다.
일본 국보 1호
코류지(廣隆寺)의 미륵보살(彌勒菩薩)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관련 이야기들
< 2009. 5. 9-15, 6일간 '日本속의 韓民族史' 탐방
일본국보1호 반가사유상재료-춘양목(春陽木) 이야기>
일본 국보 제1호 광륭사 미륵보살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좌측면과 정면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이란 불상(佛像)의 한 자세를 말하는데 ‘반가부좌(半跏趺坐)를 하고 앉아 사유(思惟)하는 형상을 하고 있는 불상’을 말한다. 반가부좌(半跏趺坐)는 결가부좌(結跏趺坐)의 상대적인 말이다.

결가부좌(結跏趺坐)의 자세는 선종(禪宗)의 좌선(坐禪)하는 자세로 오른쪽 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놓고, 왼발을 오른쪽 넓적다리 위에 놓고 앉은 자세, 속칭 ‘양반다리’ 라고 말한다.

반가부좌(半跏趺坐)는 반가(半跏), 반가좌(半跏坐)로 줄여서 말하기도 하며, 의자나 어떤 물체에 걸터앉아 왼쪽 다리는 꼿꼿이 세우고 오른쪽 발을 왼쪽 무릎 위에 올려 놓고 앉은 자세를 말한다. 속칭 ‘반 책상다리’라고 말한다.

사유(思惟)는 ‘생각하고 궁리한다’는 뜻인 사고(思考) 또는 사색(思索)과 같은 뜻이지만 좀더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용어로 국어대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각각 정의되고 있다.
① (일반)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는 것(thought)
② (철학) 개념, 구성, 판단, 추리 등을 행하는 인간의 이성(理性)의 작용이며, 인간은 이것에 의하여 논리적인 대상(對象)의 인식이나 관계의 파악 등을 할 수 있다. 사고(思考), 사색(思索) (thinking)
③ (불교) 대상(對象)을 분별하는 일, 또는 정토(淨土: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아주 깨끗한 세상, 서방정토)의 장엄을 관찰하는 일, 선정(禪定)에 들어가기 전의 일심(一心), 여의륜관음(如意輪觀音)의 뺨에 댄 손을 사유수(思惟手)라 한다. (thinking)

그러니까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이란 쉽게 말해서 어떤 물체에 걸터앉아 오른발을 왼쪽 무릎에 올려 놓은 반 책상다리를 하고, 오른 손을 뺨이나 이마에 대고 깊은 사색에 빠진 부처의 형상을 말한다.
결가부좌(왼쪽)와 반가부좌(오른쪽)의 자세
일본 교토(京都) 코류지(廣隆寺)에 소장된 목조(木彫) 미륵보살(彌勒菩薩)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이 일본 국보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독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가 이 불상을 보고 희랍이나 로마시대 이래의 서양 조각이 탈피하지 못했던 인간적 비린내를 말끔히 탈취(脫臭: 냄새를 없앰)한 초월(超越)의 경지를 보여 주고 있다고 하였고, 이 불상 아래 그의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다.
"그것은 지상에서 모든 시간적 속박을 초월해서 얻은 인간 존재의 가장 청정하고, 가장 원만하며, 가장 영원한 모습의 상징이었습니다.
나는 오늘날까지 철학자로서 일해왔으면서 이렇게까지 인간실존의 참다운 평화를 구현한 예술품을 접한 적이 없습니다."


이 목조(木造) 반가사유상은 우리나라 국보 제83호인 신라 금동(金銅) 반가사유상과 자태가 너무나 흡사하여
① 한반도(신라)에서 만든 것이 건너갔다는 설.
② 한반도(신라)에서 건너간 장인이 조각한 것 이라는 설.
③ 같은 영향권의 일본 조형이라는 설.
등이 쟁점으로 되어왔으나 ①번 설이 일반적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 일본의 한 전문가가 와서 신라 금동상을 면밀히 살펴보더니 동일 공방(工房)에서 동일 장인이 동일 의장(意匠)으로 만든 것이라는 설을 내 놓았다.
광륭사가 신라의 호족인 진하승이 세웠다는 사실, 그리고 622년과 629년 두 차례에 걸쳐 신라에서 건너온 불상을 이 절에 안치했다는 기록이 문헌상에 있다.

일본 목불상들의 재질을 연구한 고바라 박사는 일본 목불상은 거의가 활엽수인데 비해 이 반가사유상은 침엽수인 조선 소나무로 만들었다고 증명하여 이 반가사유상은 신라에서 만들어 일본에 보내졌다는 것이 유력한 학설이 되고 있다.
(다음 정영호교수 강연-춘양목으로 밝혀진 이야기 참조)
동행한 단국대 정영호(鄭永鎬) 석좌교수의 강연 장면
조선일보사 '일본 속의 韓民族史' 겔러리에 전시된 것.
* 日本 속의 韓民族史(교도-오사카지역) 관광 바로가기(클릭): 교도-오사카지역 관광
정영호(鄭永鎬) 강연-춘양목(春陽木)으로 밝혀진 이야기(요지)
* 위 정영호 교수의 강연중에는 일본 국보1호 반가사유상의 재질이 조선솔 춘양목(春陽木)으로 밝혀지게 된 다음과 같은 요지의 이야기도 들어 있었다.
『일본의 어느 대학교 미술학과 교수가 학생 20여명을 데리고 광륭사에 소장된 미륵보살반가사유상(彌勒菩薩半跏思惟像: 일본 국보제1호) 견학을 갔다. 미술 전공 학생들인 만치 교수는 이 부처상의 품고 있는 미적(美的) 개요를 설명하고, 학생 한사람씩 나와 이 부처상에 대한 자신의 미적인 생각을 설명하고 이에 대한 다른 사람의 의견을 상호 토론 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시간은 많이 흘렀고, 교수 뿐만 아니라 이학생 저학생의 생각을 듣다보니 각자 자신들도 이 불상의 미적 가치에 대한 이해가 높아져 좋은 견학을 마치고 오후 늦게서야 해산하여 각자 집으로 돌아 갔다.

그런데 저녁 방송에 "오늘 오후 광륜사에 소장된 국보1호 반가사유상의 오른손 새끼손가락이 부러져 없어지는 사고가 발생하였다"는 짤막한 뉴스가 일본 전국에 퍼지면서 온 나라가 술렁이게 되었다.

그날 저녁 늦게 낮에 광륭사 반가사유상 견학을 갔던 미술과 학생 하나가 인솔해 갔던 교수 집 대문을 노크했다. 문을 연 교수도 찾아간 학생도 몹시 초조한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반가사유상이 훼손되었다는 방송을 들었기 때문이다.

교수 서재에 들어선 학생은 다짜고짜 교수 앞에 무릎을 꿇고
"교수님 제가 오늘 큰 죄를 지었습니다" 말문을 열었고, 교수는 놀란 표정으로 학생을 일으켜 앉힌 다음 무슨 일이냐고 차분하게 물었다. 교수의 침착함에 용기를 얻은 학생이 늘어놓은 이야기는 다음과 갔다.

오늘 반가사유상을 앞에 두고 교수님 강의와 학생들의 토론으로 지금까지 제가 미술에서 '미적 표현'이란 것에 대한 감각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어영부영 교수님들의 강의를 귓전으로만 듣고, 미술품들의 모양만 보는 정도로 지나 왔습니다.
그러나 오늘 광륭사의 반가사유상을 보고, 교수님과 반 학생들의 설명을 듣고는 나도 모르게 '이것이 곧 미(美)를 표현하는 기술(技術), 즉 미술(美術)' 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토론이 끝나고 해산 한 줄도 모르고 그 불상에 매료되어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상에 가까이 다가 가서 두 팔로 불상을 끌어 안은 것 같은데 오른팔 소매에 불상의 오른 손 새끼손가락이 결려 뿌러져 밑으로 떨어진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벌컥 겁이나서 주위를 돌아보니 학생들은 물론 다른 사람들도 보이지 않고 나 혼자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불이나게 집으로 돌아왔는데 방송에 '국보1호가 훼손 됐다'고 방송에 나왔습니다.
저는 죄책감에 혼자 경찰서에 자수할까 하다가 먼저 교수님을 찾아 왔습니다.고 고백하였다.

교수는 잠시 생각 하다가 "떨어진 손가락 조각은 어떻게 했느냐?" 고 물으니 학생은 "겁이 나서 얼결에 부처 앉은 자라 밑에 틈이 있어 거기에 넣고 왔습니다" 한다.
교수는 "알았다" 며 학생을 데리고 광륭사 불상이 있는데로 가서 불상의 새끼손가락 조각은 찾고, 주변을 살펴보니 미세한 조각 하나가 있는 것을 주어 손수건에 고이 싸가지고 학생과 함께 경찰서에 출두하여 학생으로 하여금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여 자수하게 하였다.
경찰서에서는 자술서를 쓰게 하고, 교수의 보증을 받고 석방하여 기다리도록 하였다.

이렇게 학생이 자수한 사실이 또 방송에 나오면서 시민들 중에는 '고의가 아니라 실수'라는점과 '즉시 자수하는 용기'를 칭찬하는 분위기로 바뀌었고, 담당 관청에서는 일본 국내 최고 전문 표구기술자를 모아 조각을 붙이고, 채색 등 정성들여 수선하여 감쪽같이 복원하고, 학생은 선처하였다.

일이 잘 풀린 후 교수가 주워서 손수건에 싸 온 새끼손가락의 미세한 조각을 DNA 검사한 결과 한반도에만 자생하는 '춘양목(春陽木)' 소나무로 밝혀져 이 부처가 신라 땅에서 조성(造成)되어 건너 온 것임을 과학적으로 입증하였다고 한다』


* 일본인 교수가 조선솔의 통칭인 적송(赤松)이나, 질좋은 소나무를 말하는 금강송(金剛松) 또는 황장목(黃腸木) 같은 이름을 놔두고 굳이 '춘양목(春陽木)'이라 한 것은 이 별칭이 일제(日帝) 때 생겨나 그 때 많이 유행했는데 특히 일본 목상(目商)들이 소나무를 이렇게 부르면서 일본에 알려졌기 때문에 다른 호칭은 잘 모르고, 이 호칭에 익숙했던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 일본 국보1호 반가사유상의 재질 조선솔 춘양목(春陽木) 이야기 >
교토-오사카 고속도로 공사로 인해 서행하는 10호차 버스에서 지루함을 덜기 위해
안내양의 양해를 얻어 동행자들에게 한 이야기(요지)
(이성영 인터넷 홈페니지 www.sungyoung.net >> 나무이야기 >> 소나무) 중에서)
○ 우리나라 산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소나무는 그렇게 흔한 만큼이나 우리민족과 애환을 함께 해 온 나무다.
① 애기가 태어나면 금줄에 솔가지를 달고,
② 소나무로 지은 너와집에서 살면서
③ 소나무장작으로 불을 지피고,
④ 송화가루 다식, 솔방울 술, 솔잎 송편을 만들어 먹거나 흉년 들어 소나무 껍질의 송기떡으로 부황(浮黃)을 이겨냈다. 그 뿐인가?
⑤ 늙어서 죽으면 소나무 관 속에 들어가 소나무가 둘러 싼 산등성이에 묻힌다.

그래서 옛 말에 ‘딸이 나면 오동나무를 심고, 아들이 나면 소나무를 심는다’ 하였다.
오동나무는 십 수년이면 장롱을 짤 수 있는 재목이 되기 때문에 좋은 혼수장만해서 시집 잘 보내려는 것이고,
소나무는 60년쯤 되면 관을 짤 수 있는 재목으로 자라기 때문에 좋은 관에 들어가 명산에 묻혀 집안의 융성을 도우라는 뜻이다.

○ 소나무는 원래 ‘솔나무’가 발음하기 좋도록 변음 된 것인데, ‘솔’은 우리말로 ‘으뜸’, ‘맨 위’, ‘우두머리’란 뜻의 ‘수리’가 ‘술’로 되고, 또 ‘술’이 ‘솔’로 변음 한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러니까 소나무는 ‘나무 중에 으뜸나무’란 뜻이다.

중국의 전국시대 말기 천하를 통일한 진(秦)나라 시황제가 태산에 올라 하늘에 제사(封禪)를 지내려 할 때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미쳐 피할 방법이 없었는데
마침 인근에 소나무 한 그루가 있어서 그 밑에서 비를 피하고 무사히 제사를 마친 후 그 소나무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시하여 공작(公爵) 작위(爵位)와 대부(大夫) 가자(加資)를 내렸다고 한다.
(加資는 '서기관', '이사관' 등 오늘날의 직급 호칭과 같이 조선시대 관직의 각 품계에 붙여지는 호칭, 정1품-종4품의 문관, 종친, 의빈의 품계에 2-3개의 '--大夫' 호칭이 붙고. 그 이하 관직에는 --랑(郞)이 붙는다.

그때부터 소나무를 ‘나무(木)의 공작(公)’이란 뜻의 목공(木公) 또는 공목(公木)이 한 글자로 합쳐져 송(松)또는 송(公아래木: 松의 옛글자) 자가 되었고, 이 소나무를 대부송(大夫松)이라 하여 ‘영광스런 일’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고 한다.

조선 세종 때 성삼문 등과 10여년 집현전 학자로 있던 이석형(李石亨)이 세조2년에 전라도 관찰사로서 익산을 순시 중에 옛 친구들인 사육신이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次益山東軒韻(차익산동헌운: 익산동헌의 운에 따라 짓다)’이란 짤막한 시를 지었는데 얼마 안 되어서 이 시가 사육신을 동정한 내용이라 하여 고변당하고 체포되어 세조가 친국하는 국문장에 끌려 나와 큰 화를 입을 뻔 했다.
이 시에 대나무와 소나무가 나오는데 대나무는 이녀죽(二女竹: 瀟湘班竹) 이라 하고, 소나무는 대부송(大夫松)이라 하였다.

시의 내용을 보면
虞時二女竹(우시이녀죽) 순임금 때는 이녀죽의 슬픈 일이 있었고
秦日大夫松(진일대부송) 진나라 때는 대부송의 영화로운 일이 있었네
縱是哀榮異(종시애영이) 이들은 슬픔과 영화로움이 다를 뿐이니
寧爲冷熱容(영위냉열용) 어찌 냉대하고, 열렬히 환대할 수 있으리

○ 소나무가 우리나라에 있게 된 기록으로는 ‘성주풀이’에 나오는 것이 가장 오래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천상천궁에 있던 성주님이 죄를 짓고 땅으로 내려와 경상도 안동 땅 제비원에 거처하면서 솔 씨를 받아 제비들에게 나누어주어 전국 이산 저산에 뿌려서 집 지을 재목으로 키워 냈다’내용이다.

가정집 집터를 닦아 다질 때 지금은 포크레인이 왔다갔다하면서 다지지만 옛날에는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모닥불을 피워놓고 농주 한 사발씩 들이킨 다음 ‘지신밟기’를 하는데 이 때 이 성주풀이를 읊으면서 여러 사람이 이 곡조에 맞추어 집터를 밟아 다진다.
“천상천궁 성주님이 (대중 후창), 죄를 짓고 땅에 내려(후창), 경상도 안동땅(후창), 제비원의 솔 씨 받아(후창), 이산 저산 뿌렸더니(후창), 황장목이 되었네(후창), 앞집에 김대목(후창), 뒷집에 박대목(후창), 나무 내러 가자세야(후창)"

탄소연대 측정 등 과학적인 근거에 의거 소나무가 우리나라에 있었던 역사는 약 6,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3,000년 전부터는 전국적으로 많이 퍼져 자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우리나라에서 소나무의 역사가 이렇게 길고 또 사람과 친근하게 지낸 만큼 자연히 사람들이 고유의 우리소나무, 이른바 조선솔에 붙여 준 별칭도 적송(赤松), 미인송(美人松) 또는 여송(女松), 육송(陸松), 금강송(金剛松) 또는 강송(剛松) , 황장목(黃腸木), 춘양목(春陽木)매우 많다.

황장목(黃腸木)은 나라(왕실)에서 궁궐을 짓거나 왕의 관을 만들기 위한 질 좋은 조선솔 소나무를 베어와 말려서 켜면 속(창자, 腸)이 누런 빛깔이 나기 때문에 ‘누런 내장(속)을 한 소나무’뜻으로 붙여진 별칭이다.

황장목이 밀집한 지역에 벌목을 금하는 황장봉산(黃腸封山) 봉하거나, 황장금표(黃腸禁標)를 설치하였는데
지금도 문경 백두대간의 황장산에는 황장봉산 표석이 서 있고, 치악산 구룡사에는 황장 금표석이 돌에 새겨져 남아 있으며, 지리산 등 전국에 '황장산'이란 이름이 붙은 산은 모두 이렇게 해서 얻게 된 산이름이다.

춘양목(春陽木)은 일제 때 철도가 생기면서 태백산 남쪽의 봉화, 울진 등지의 질 좋은 조선솔 소나무를 춘양역(春陽驛: 현 경북 봉화군 춘양면)에 집결하여 기차로 전국 수요지로 실어 날은 데서 온 별칭이다.

춘양역에서 화차에 실려 철도로 전국 방방곡곡으로 운반된 강송 즉 춘양목은 유별나게 소나무를 좋아하던 우리 선조들에게 사랑은 받아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눈치 빠르고 돈 버는데는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있던 당시 주로 일본인 목상(木商)들은 아무데서 건 벌목해온 소나무를 ‘춘양목’이라 억지를 부리고 높은 가격을 받았다. 여기서 ‘억지춘양’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겨났다.

오사카항 크루즈선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내리자 젊은 두 여선생이 나를 찾아와서
"우리 주변 산에 그렇게 많은 소나무들을 보면서 살지만 오늘 버스에서 선생님의 이야기들은 대부분 금시 초문입니다.
우리 소나무가 일본의 국보1호 반가사유상을 만들었고, 일본사람들은 조선솔을 일제 때 자기들로 인해 생겨난 '춘양목'이란 이름을 부르며, '억지춘양'이란 말이 소나무에서 생겨났다는 것도 처음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한다.

나는 내가 틈틈이 채우고 있는 www.sungyoung.net 홈페이지 주소가 적힌 쪽지를 한장씩 주고 헤어졌다.
오사카항을 떠날 때 10번 버스 기념사진과 환송장면

크루즈 배 이름: 후지마루
이것도 '친일행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