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錯覺)
沙月 李 盛 永(2009, 2, 14)
  내가 육사 몇 학년이었는지 잘 기억나지는 않은데 영어 부교재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어느 산골에 주민들의 건강을 돌보고, 병을 고쳐주는 고마운 일을 하는 착실한 의사 한 분이 살았다. 본동뿐만 아니라 산골이라 먼 곳은 차로 한 시간씩 가야 하는 벽촌 마을까지도 싫다 하지 않고 전화만 받으면 눈이오나 비가오나, 낮, 밤을 불문하고 차를 몰아 달려 갔다. 그래서 주민들로부터 큰 신망과 존경을 받고 있었다.

  어느 날,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 한 밤중에 멀리 떨어진 산골에 사는 어느 아낙이 곧 아이를 낳을 것 같다면서 빨리 오라는 전화가 왔다.
  얼른 불을 켜고 신속한 동작으로 옷을 입고, 왕진가방 속에 권총 한 자루를 챙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날씨가 험한 날이기도 하지만 밤중에는 어디서 무슨 일이 있을지 몰라 밤에 집을 나설 때는 항상 권총을 챙기는 것이었다.

  밤길에 폭우가 쏟아지고, 세찬 바람이 불기 때문에 원조등 라이트를 켰지만 멀리까지 보이지 않았다. 온 신경을 집중해서 앞을 주시하며 조심스럽게 꾸불꾸불한 산골 길을 달리는데 한 모퉁이를 돌자 길가에 장성처럼 서서 손을 들어 차를 세우는 사람이 시야에 비쳤다.

  깜짝 놀라 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세우고, 창문으로 바라보니 우산이나 우의를 입지 않아서 온 몸은 비에 흠뻑 젖어 있었고, 젊은 편이지만 행색은 무척 초라했고, 지쳐있는 것 같았다.
  의사라는 직업 의식이 나타나 무의식 중에 ‘저러다가 감기 들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서 뒷좌석에 타라는 손짓을 했다. 옷이 많이 젖어 있기도 하고, 앞 좌석에는 큼직한 왕진 가방이 놓여 있기 때문에 사람이 앉을 자리가 없었다.

  깜깜한 밤이라 빽미러로 봐도 그 사람의 얼굴이나 형상이 잘 보이지 않았다. 험한 길에 폭풍우 때문에 뒤에 태운 사람에 대한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한참을 달렸을 때 의사는 운전대를 잡은 오른팔 아래 점퍼 주머니에 ‘재빠른 손길’을 느꼈다. 의식적으로 왼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오른손을 호주머니 속에 넣어 보았다.

  호주머니 속에 있어야 할 지갑이 없었다.
  순간적으로 뒷좌석의 젊은 친구를 생각했다. ‘저 녀석이 내 지갑을 빼갔구나! 꽤씸한 녀석!’
  의사양반은 오른 손으로 조용히 왕진가방을 열었다. 그 속에 있는 권총을 집어 들었다. 차를 멈추고, 눈은 빽밀러를 보면서 총구를 뒷좌석으로 돌렸다. 그리고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의사 양반: “이 봐! 젊은 친구! 지갑 내 주머니에 넣어!”
  젊은 친구: “?”
  의사 양반: “어서! 이 방아쇠 당기기 전에 지갑 내 주머니에 넣어란 말야!”
  젊은이는 영문도 모르겠다는 의아한 표정으로 자기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서 의사 점퍼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나 의사양반은 젊은 친구의 얼굴 표정을 보지 못했다. 차 속이 어두워서 그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의사: “차에서 내려!” 그리고 혼자 소리로 ‘너 같은 놈은 차를 태워줄 가치가 없는 놈이야’
  바깥에는 여전히 비가 억수로 쏟아지고 있었다. 젊은이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지만 의사양반은 젊은이의 얼굴을 볼 겨를도 없이 얼른 문을 잠그고 차를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를 달려서 산부가 있는 집에 도착했다. 이미 진통이 시작되고 있었고,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고 쉽게 아기를 순산했다.
  산후 취해야 할 조치를 모두 하고, 일주이 분 약도 주면서 주의사항과 신경 써야 할 산후 조리법을 뒷바라지하는 할멈에게 일러주고, 산모나 아기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즉시 전화 하라고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혹시 아까 그 녀석이 나타날까 봐 긴장을 했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집에 오자마자 피곤하기도 하고, 설친 잠을 빨리 보충해야겠다는 생각에 곧 자리에 들어 잠에 빠져들어갔다.

  아침에 잠을 깬 의사는 간 밤이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리 속을 스쳐갔다. 담배 한대 피우려고 설합을 열었는데 담배갑 옆에 지갑이 하나 놓여있었다. 늘 쓰던 자기 지갑이었다.

  ‘어! 어제 밤에 돌아와 지갑을 꺼낸 적이 없는데---’
  얼른 일어나 옷장 문을 열고 어제 밤 왕진 갈 때 입고 갔던 점퍼의 오른 쪽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이게 웬 일인가? 거기에도 지갑이 하나 있었다. 얼른 꺼내보니 그건 낯선 초라한 지갑이었다. 속을 뒤져보니 돈이라고는 1달라 짜리 지폐 두 장이 들어있을 뿐이다.

  어떻게 된 일인가? 어제 밤을 되돌아 생각 해 보았다.
  폭풍우 속에 차를 몰고 왕진을 갔던 일, 도중에 어떤 젊은 녀석을 뒷자리에 태웠던 일, 그 녀석이 내 호주머니에서 지갑을 빼갔던 일, 권총을 꺼내서 지갑을 도루 넣도록 하고 그 녀석을 차에서 몰아낸 일, 임산부가 아들을 순산한 일-----

  ‘그 녀석이 내 호주머니에서 지갑을 빼갔던 일’ 그것이 바로 ‘착각(錯覺)’이었던 것이다
  이 착각 때문에 의사양반은 비에 흠뻑 젖은 젊은 친구를 ‘쓰리꾼’도둑으로 생각했고, 착실하고, 주민들에게 신망이 두터운 의사양반이 차에서 쫓겨난 젊은 친구에게 ‘권총강도’가 된 것이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지만 인간사에 이런 착각은 어디서나 있을 수 있는 이야기다. 만물의 영장이니 뭐니 하고 살지만 인간의 사고(思考)에는 늘 착각이 끼어들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인간들은 하루 하루를 착각(錯覺)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크게 과장된 말은 아닐 것이다.

  설 지나고 시골집이 궁금해서 우리 내외는 시골집에 갔다.
  집집마다 고추 농사의 시작인 고추 모를 붓고 있었다. 우리는 여기서 계속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고추 모를 길러서 심을 수가 없다. 작년과 재작년에 고추 모를 부어 봤는데 공연히 이웃 집에만 성가시게 하는 것 같고, 우리 고추농사래야 겨우 6판(약 150주)면 되니 올해는 시장에서 사다 심기로 했다.

  지금 당장 할 일이라고는 복숭아나무와 배나무의 전지(剪枝)였다. 전지를 할 때나 봉지를 쌀 때나 해마다 되풀이되는 것은 ‘올해는 과감하게 잘라내고, 솎아내서 적게 남겨 크게 키운다’고 작정을 하지만 정작 전지가위나 봉지를 들고 시작하면 이 가지 저 가지, 이 열매 저 열매를 만지작거리다 자르거나 따내지 못하고 만다.
  그리고 배나 복숭아를 딸 때 가서야 너무 많이 남겼다고 후회를 한다. 이것이 프로와 아마추어 농사꾼의 차이인 것 같다.

  아침을 먹고 나는 뒷밭에 올라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텔레비전 앞에 앉았던 집사람이 소리를 쳤다.
  “여보! 여기 새가 창문에 와서 부딪쳐 떨어졌어요”

  나는 얼른 거실 창문으로 갔다. 바깥 베란다 돌 바닥 위에 한쪽 날개 죽지를 길게 늘어뜨리고, 한쪽 다리를 쭉 벋은 것이 꽤 중상인 것 같다. 박새였다.

  나는 얼른 작은 방으로 가서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가 새 곁으로 가서 사진 한 장을 찍었다. 날개 죽지는 좀 움츠렸지만 다리는 여전히 벋어있다.
  내 생각으로는 죽을 것만 같이 보였다. 그리고 뭘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몰랐다.
거실 창문에 부딪쳐 떨어져 정신이 얼떨떨한 박새 한 마리
  흥부가 제비다리에 당사실로 챙챙 감아줘서 날려보내 줬다는 이야기도 떠오르지 않았고, 그렇다고 무슨 조치를 해야 하는 지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 방으로 들어와 카메라를 두고 다시 베란다에 갔을 때 그 자리에 박새는 없었다.
  아마 정신을 잃었던 박새가 정신을 차린 후 줄행랑을 놓은 것 같다. 다행한 일이다.

  박새는 일년에 한 철만 찾아오는 철새도 아니고 딱새와 함께 일년 사시사철 이곳에 사는 텃새다.
  우리 시골집 주변에는 이 박새와 딱새는 봄, 여름, 가을 , 겨울 할 것 없이 언제나 볼 수 있다. 옛날에 그렇게 많던 참새보다도 더 쉽게 볼 수 있는 새들이다.
  또 집 근처에서 둥지를 틀고 새끼를 치니 바로 이곳이 나와 함께 그들의 고향인 것이다.
  그 동안 우리 시골집 주변에서 찍은 박새와 딱새의 영상물이 여러개 있다.
주방 후드구멍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친 박새
박새네집 경사(클릭): 박새네집 경사
부지런한 시골집 딱새스토리(클릭): 부지런한 시골집 딱새스토리
비극으로 끝난 시골집 딱새스토리(클릭): 비극으로 끝난 시골집 딱새스토리
  타향도 아닌 고향에서 살면서 박새가 거실 창문에 부딪쳐 떨어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그러나 집사람이 보는 앞에서 분명히 박새가 유리창문에 부딪쳐 베란다 바닥으로 떨어졌고 나는 카메라로 현장을 찍었다.

  야생의 새들은 사람보다 더 물체에 대한 인식 감각이 빠른 것으로 생각된다. 새들이 그렇게 빽빽하게 들어찬 대나무 밭에서도 요리조리 피하면서 빠른 속도로 잘 빠져 날아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 야생의 새가 뭣 때문에 유리창문에 날아와서 부딪친단 말인가?

  나는 문득 솔거(率居)황룡사(皇龍寺) 노송도(老松圖) 벽화의 생각이 떠올랐다. 신라 때 화가 솔거가 황룡사 벽에 노송(老松) 한 그루를 그림으로 그려놨는데 여러 새들이 진짜 소나무인줄 알고 날아와 앉다가 벽에 부딪쳐 떨어졌다는 이야기 말이다.

  그렇다면 박새는 우리 시골집 유리창에 뭘 보고 날아들었다가 부딪쳤을까?
  어느 해(2004년) 시골집 겨울 풍경을 찍어 홈페이지에 올린 생각이 떠올랐다. 귀경하자마자 홈페이지를 여러 보았더니 다음 두 개의 그림이 그 해답을 주는 것 같다.
시골집 감나무(오른쪽)와 거실창문에 비친 영상(왼쪽)
 
2004 고향 겨울풍경(클릭): 2004 고향 겨울풍경
  왼쪽 그림은 오른쪽의 삽작걸(?)에 있는 감나무가 거실 유리창에 비치는 것이다. 이 그림들은 눈꽃이 활짝 핀 겨울에 찍은 것이지만 올해는 혹심한 겨울 가뭄 때문에 눈을 구경하기가 힘든 때다.
  그러니까 박새는 거실 유리창에 비친 감나무 그림자를 진짜 감나무로 착각(錯覺)한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거기 한 가지에 앉으려고 날아들다가 생각지도 못한 인간이 만든 묘한 물건, 유리창에 부딪쳐 땅바닥에 떨어져 혼절을 했던 것이다.
  무수히 많은 착각(錯覺) 속에 살아가는 인간들뿐만 아니라 동물의 세계에도 착각이 있는 모양이다.

  착각(錯覺)에 대한 이야기는 다 했는데, 이왕 얘기가 나왔으니 솔거(率居) 이야기를 더 하고 끝내야겠다.

  한국사대사전 에 보면 솔거(率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신라 초기 진흥왕 때의 화가. 어려서부터 그림에 열중했으나 벽촌이라 스승이 없어 천신(天神)에게 가르침을 빌어 꿈속에 단군(檀君)이 나타나 신필(神筆)을 주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림 실력이 뛰어나 황룡사(皇龍寺) 벽에 그린 <노송도(老松圖)>에는 새들이 날아들었다 하며, 이 외에도 분황사(芬皇寺)<관음보살상(觀音菩薩像)>, 단속사(斷俗寺)유마거사상(維摩居士像), 삼성사(三聖祠)<단군화상(檀君畵像)> 등이 있었다 하나 모두 전해지고 있지 않다.」


  또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21. 경주부(慶州府) 고적(古跡) 황룡사 黃龍寺) 조(條)에 '황룡사(黃龍寺) 벽에 노송(老松)을 그린 솔거(率居)'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있다.

 「신라 제24대 진흥왕(眞興王)은 즉위 14년 계유(癸酉:553)에 유사(有司: 담당관)에게 명했다.

 “월성(月城) 동쪽에 동궁(東宮)을 지으라!”

  궁궐을 지으려 땅을 파는데, 뇌성벽력을 치며 갑자기 황룡(黃龍) 한 마리가 나타나 하늘로 날아올랐다.
  “와아_ 용이다! 용 한 마리가 날아 올라간다!”
  “아냐, 두 마리다!” 용이 두 마리면 글자로는 ‘두 마리의 용 답(龍龍)’ 자가 된다.
  “아냐, 세 마리다!” 용이 세 마리면 ‘용이 가는 모양 답(龍 아래 龍龍)’ 자가 된다.

  놀랍지 않을 수가 없다. 왕도 놀랐다. 그래서 궁궐로 짓던 건물을 불사(佛寺: 절)로 바꾸었다. 황룡의 거처로 삼기로 한 것이다. 이름을 ‘黃龍寺’ 또는 ‘皇龍寺’라 했다.

  그 후 얼마 되지 아니하여 남해에 커다란 배(巨船) 한 척이 떠 와서 하곡현(河曲縣) 사포(絲浦: 지금의 蔚州 谷浦) 닿았다. 웬 배인가 싶어 세밀히 검사해 보니 공문(公文)이 있었다.
  “서축(西竺: 西天竺, 인도) 아육왕(阿育王)이 황철(黃鐵) 5만 7천 근과 황금 3만 푼(分)을 모아서 석가삼존상(釋迦三尊像
: 석가모니불, 관세음모살, 문수보살)을 주조하려 하다가 이루지 못하고 배에 실어 바다에 띄우고 ‘인연 있는 국토에 가서 장륙존상(丈六尊像: 높이가 16척, 약 4.8m 되는 불상)을 이루어지이다.’라고 축원한다.”
  그리고 불상 1기와 보살상 2기의 모양까지도 그려놓았다.

  왕은 사자를 시켜 그 고을 동쪽의 높고 메마른 곳을 택하여 동축사(東竺寺)라는 절을 세운 후, 그 3존불의 그림을 안치하고, 그 모양을 본따 장륙존상을 주조하여 황룡사에 안치하였다.

  이듬해 그 장륙존상이 눈물을 흘렸다. 눈물은 불상의 발꿈치까지 이르러 땅이 한 자(尺) 가량이나 젖었다. 사람들이 놀라 이상하다고 여겼는데, 이는 대왕이 돌아갈 조짐을 보여준 것이었다.
  이 황룡사는 이처럼 황실의 변화까지도 미리 알려주는, 말하자면 호국불사였다. 그리고 이 황룡사의 장륙존상과 같은 황룡사의 9층탑, 그리고 진평왕의 천사옥대(天賜玉帶)신라삼보(新羅三寶)라 하여 신라를 수호해 주는 세 가지 보물이라 여겨졌다.

  한편, 이 황룡사의 벽화솔거(率居)라는 환쟁이가 그렸다. 그는 출신 성분이 미천하여 그 족계(族系)를 알 수가 없는 사람이었지만, 태어날 때부터 그림을 아주 잘 그렸다.

  벽화는 늙은 소나무(老松)였는데, 누가 보아도 그것은 실제 소나무처럼 보였다. 소나무 둥치의 껍질은 거북등처럼 주름진 모양이었고, 가지는 꾸불꾸불, 잎은 뾰족하면서도 싱싱하게 보여, 그대로 살아있는 소나무처럼 보였다.
  까마귀, 솔개, 제비, 참새들이 날아다니기에 지쳐 그 멋진 소나무에 깃들이려고 날아왔다가는 벽에 부딪쳐 떨어져 죽곤 할 정도였다.

  세월이 흘러 벽화의 채색이 낡아져서 그 절의 중 하나가 새로이 단청(丹靑)을 하였더니, 다시는 새들이 날아들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솔거의 그림을 신화(神畵)라고 불렀는데, 그의 신화는 분황사(芬皇寺)의 관음보살(觀音菩薩)과 진주 단속사(斷俗寺)의 유마거사상(維摩居士像)도 있다.

  삼국유사를 보면, 분황사의 관음보살(觀音菩薩)은 유일하게 여성이 지은 향가 ‘도천수대비가(禱千手大悲歌)’에 나오는 관음보살이다.

  제35대 경덕왕 때에 한기리(漢岐里)라는 곳에 희명(希明)이라는 여인이 아이를 낳았는데, 태어난 지 5년 만에 갑자기 눈이 멀었다. 그녀는 분황사의 좌전(左殿) 북쪽 벽에 그려져 있는 관음보살에게 달려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기도했다.
  “당신은 즈믄(千) 손, 즈믄(千) 눈을 가지셨사오니 그 하나를 덜어 내 아이에게 주옵소서.”
  그리하여 아이는 눈을 떴다. 그 관음상의 그림도 바로 솔거가 그린 것이다. 이처럼 그의 그림은 탁월한 영험성, 신성성도 지니고 있었다.

  또 하나, 진주 단속사도 향가와 관련을 가지는 절이다. 신라 제34대 효성왕(孝成王)이 잠저(潛邸
: 임금이 되기 전) 때에 현사(賢士) 신충(信忠)과 궁정의 잣나무 아래에서 바둑을 둔다.
  왕이 말했다. “내 그대를 잊지 않겠노라. 만일 내가 그대를 잊는다면 저 새파란 잣나무가 시들어 버리리라.”

  몇 달 후 효성왕이 즉위했다. 그리고 논공행상을 하는데, 그만 신충을 깜빡 잊었다. 신충이 왕을 원망하는 향가를 지어 잣나무에 붙였다.
  「잣나무는 가을이 되어도 시들지 않는데, '너를 어찌 잊을쏘냐’고 하던 님께서 어찌 자신을 잊었느냐」는 뜻이었다.

  잣나무는 누렇게 시들었고, 임금은 그것을 보고 자신의 실수를 깨달아서 즉시 신충을 등용했다.

  그런데, 그 신충이 경덕왕 때 홀연히 피세입산(避世入山
: 세상을 피해 중이되었다)했다. 그리고는 삭발하고 단속사를 창립하고 임금의 호락(好樂)을 간주(諫奏: 간하는 상소를 올림)한다.

  “옛적 걸주(桀紂)는 주색에 빠져 음탕한 즐거움을 그치지 아니하여 결국 국가가 파멸해 버렸는데, 그 복철지계(覆轍之誡
: 전철을 밟는 것을 경계함)를 잊지 마소서.”

  그 단속사유마거사상도 솔거가 그린 그림이었다. 권력자의 잘못을 날카롭게 꼬집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그림을 그렸던 솔거이다. 그러나 사서(史書)의 기록이 너무나 섬소(纖疏
: 가냘프고 어슬픔)하지만, 우리는 당신을 영원히,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추가>또 새가---
  2009. 3. 31. 우리 부부가 시골집에 가 있는데 또 새 한마리가 거실 창문에 부디쳐 땅바닥에 떨어져 얼떨떨한 놈을 집사람에 줏어들고 들어왔다.
  무슨 새인지도 잘 모르겠다. 몸통은 참새 색갈을 띄고 있는데 목도리와 머리에 노란 색갈의 털을 둘린 것이 참새보다 예뻐다.
거실창 밖에 떨어진 새를 들고 있다.
놓쳐서 화분위에 앉았다
다시 잡아 살펴보니 다친데는 없고, 정신만 얼떨떨한 모양이다.
새를 날려보내고 주범 거실창의 감나무 그림을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