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거불필재양장(手변崔 車不必在羊腸)
沙月 李 盛 永(2010, 1, 1)
  어제 기축년(己丑年: 2009년) 섣달 그믐날 밤에도 홈페이지에 올릴 ‘용인8경(龍仁八景)’ 자료를 찾는다며 어영부영하다가 자정이 넘어서야 자리에 들었다.
  그러니까 한 해의 마지막 날에 ‘한 해를 되돌아본다’느니, ‘송구영신(送舊迎新)’이라느니 하는 말들은 나와는 무관한 듯---

  이렇게 늦게 자리에 드는 날은 어김없이 아침 여덟 시가 넘어서 집사람의 아침 먹으라는 재촉을 받고서야 자리에서 나오는 것이 십상인데, 웬일인지 오늘 경인년(庚寅年: 2010년) 새해 첫날은 여섯 시가 좀 넘어서 자리에서 나왔다.

  아침에 눈을 뜨자 문득 최거불필재양장(手변崔 車不必在羊腸), 이 구절이 머리에 떠 올랐다.
  ‘넘어진 수레가 반드시 험한 길에서만 있는 것은 아니라오’(험한 길에서만 수레가 넘어지는 것은 아니라오) 라는 뜻이다. 좋은 길에서도 수레가 넘어질 수 있으니 항상 조심하라는 말이다.

  나의 방계(傍系) 선조이면서 세종 때 집현전 학자로 있던 저헌(樗軒) 이석형(李石亨)이 한 동네 살면서 친하게 지내던 경보(敬甫) 김예몽(金禮夢)이 집의(執義: 종3품)로 근무하는 사헌부(司憲府)가 의정부(議政府)의 오해를 받아 탄핵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경보에게 보낸 글(詩)의 마지막 구절이다.

聞憲府見 心변午 政府被劾奉簡執義金敬甫(문헌부견오정부피핵봉간집의김경보)
<사헌부가 의정부에게 오해를 받아 탄핵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집의 경보 김예몽에게 보내는 글>
  巍巍相府理陰陽(외외상부이음양) 높고 높은 의정부는 음양(陰陽)을 다스리고
  稟稟烏臺振紀綱(품품오대진기강) 늠름한 사헌부는 기강(紀綱)을 떨치네
  大小相維爲體統(대소상유위체통) 크고 작은 것이 서로 얽혀 체통(體統)이 되고
  君臣共濟是明良(군신공제시명량) 군신이 협력하니 이것이 명량(明良)이네
  但將吾道行如矢(단장오도행여시) 다만 오도(吾道)는 화살처럼 곧게 가는 것인데
  肯惜殘 身변呂 學括囊(긍석잔궁학괄낭) 자신만 돌보아 말하지 않을손가
  莫向人間道夷險(막향인간도이험) 여보게 친구여! 인간의 길에 이험(夷險)을 말하지 마소
  手변崔 車不必在羊腸(최거불필재양장) 험한 길에서만 수레가 넘어는 것은 아니라네

  * 경보(敬甫): 광산인(光山人) 김예몽(金禮夢)의 자(字)이다.
    명량(明良): 현명한 임금과 어진 신하가 잘 화합하는 것,
    오도(吾道): 나의 갈 길, 여기서는 유학(儒學)의 길을 말함
    이험(夷險): 평탄한 곳과 험한 곳, 이로운 것과 해로운 것, 득실(得失)

  아마 어제 아사달홈페이지 회원게시판에서
  「교수신문이 각 대학 교수, 일간지 칼럼니스트 등 지식인 21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강구연월(康衢煙月)'이 새해 사자성어로 뽑혔다」는 정홍규 동기의 글을 읽고, 답글을 하나 올리고 잤더니 아침에 갑자기 "내가 새해에 금언(金言)으로 삼아야 할 말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에서 이 구절이 떠오른 것 같다.

  왜 이 구절이 떠올랐을까?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것도 있는지는 모르지만, 뒤돌아 보면 지난 해 나는 두 번 넘어진 적이 있다.
  한 번은 친구에게 전화를 잘못해서 옛 친구로부터 큰 오해를 받았는데 아직 풀지도 못하고 해를 넘기고, 또 한 번은 인척 어른에게 전화를 안 해서 오해를 받고 역시 풀지 못하고 해를 넘긴다. 하기는 음력 설이 남았으니 이후라도 풀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까 하나는 전화를 잘못해서 얻은 오해이고, 또 하나는 전화를 안 해서 얻은 오해이니 이들은 모두 전화(電話)로 인해 '넘어진 수레들'이다.
  새해는 특히 전화에 신경을 써야겠다고 다짐도 한다.

  인생살이 하다 보면 생각지도 않은 오해를 사는 일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안 해온 것은 아니지만, 생각은 하면서도 등한히 했기 때문이다.

  새해부터는 험한 길이건, 좋은 길이건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에 또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새해를 출발하려 다짐한다.

  새해 벽두(劈頭)에 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