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끼마레
沙月 李 盛 永(2006.7.28)
    요즈음 신문지상에서 전교조가 인적자원부 앞에서 벌이고 있다는 ‘성과급 차등지급 반대 시위’ 와 ‘성과급 반환 서명운동’ 소식을 읽으면서 내가 처음으로 인센티브(성과급)를 받던 지금부터 약 10년 전의 일이 생각난다. 내가 소속해던 대전 국방과학연구소(ADD)에도 인센티브 제도가 처음으로 시행되었다. 이 때 소내(所內) 자유게시판에 등장한 ‘데끼마레’ 라는 글 한편이 생각난다. 육사 후배의 글이었다.

    이보다 좀 먼저 내가 국방부 평가분석실에 근무할 때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성과급이 시행되고 있었고, 우리나라에도 성과급 지급 문제가 민간회사와 공공기관에서까지 대두 되고 있을 때, 미국인이 쓴 성과급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해외 판매를 주업으로 하는 어느 회사에 성과급 지급은 판매에서 남긴 이익 금액을 기준으로 차등 지급하는 것이 상례인데 이 ‘이익금액 기준’ 에 대한 허점을 논한 글이었다.

    성과급(成果給)이란 말 그대로 성과를 올린 직원에게 성과만큼 차등적으로 추가 급료를 지불해서 직원들 간에 경쟁심을 유발시켜 업무효율을 올리고자 하는 제도이다.
    그 ‘성과(成果)’ 라는 것을 판정하는 객관적 기준이 있는 업무 즉 생산량이나 판매량 같이 수치로 환산할 수 있는 생산직이나 판매직 같은 분야에서는 성과급의 ‘성과에 따른 차등 지급’ 이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 성과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없는 분야에서는 성과급 지급이 오히려 직원의 단결과 효율 증진에 역효과를 가져 올 수도 있다.
    그런데 이 글은 이익금이라는 객관적 기준이 있는 ‘상품 판매’에 있어서도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A와 B, 두 사람의 해외판매원이 동일한 상품을 해외에 판매하고 있는데, A는 2개를 팔면서 정직한 가격으로 팔아 100만불의 이익을 남겼고, B는 1개를 팔아 역시 100만불의 이익을 남겼다. 그러니까 B는 후진국에 상품을 팔면서 상품가격을 올려 받아냈기 때문에 적게 팔면서도 많이 판 A와 동일한 이익금을 올린 것이다. 속말로 바가지를 왕창 씌운 것이다.

    이 때도 A와 B는 ‘이익금’이란 측면에서 똑 같은 성과를 올렸기 때문에 이에 따른 성과급은 똑 같이 지급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례인데, 이 글쓴이는 그게 잘못됐다는 것이다. 글쓴이의 논지는 이러했다.

    A는 당장의 회사 이익면에서는 B와 똑 같은 성과를 올렸지만 A는 부품 판매와 유지에 따른 서비스 시장을 넓혀 장차 더 많은 회사 이익을 올릴 수 있는 여건을 조성했다. 더욱 더 중요한 것은 판매 대상국에 판매가 지속 될 수 있는 ‘신뢰(信賴)’ 라는 무형의 자산을 창조했다는 것이다.

    반면에 B는 당장은 A와 동일한 성과를 올린 것은 사실이지만, 후속 부품과 서비스 판매 시장은 A의 1/2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판매 대상국에 ‘신뢰를 잃을 가능성’ 을 키웠다는 것이다. 대체로 판매 대상국은 그 상품에 관한 한 후진국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속아서 샀지만 점차 후진국도 속은 사실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에 다음부터는 거래선을 다른 데로 바꿀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당장의 회사 이익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A와 B의 성과는 동일하지만 장래를 내다본 성과는 B보다 A가 훨씬 크다는 것이다. 내 딴은 감명 깊게 읽은 글이었다. 특히 무기수출 시장에 있어서는 ‘독점’ 을 이용한 바가지 가격이 횡행하는 때였다. 똑 같은 무기를 팔면서 한국에 파는 가격과 이스라엘에 파는 가격이 천지 차이인 경우가 허다 했고, 사는 나라의 그 무기 또는 대체무기의 개발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과학기술 수준에 여하에 따라 가격이 춤을 추는 때였다.

    요즈음 전교조가 성과급을 반환하겠다고 나서는 이유가 ‘차등지급 확대’ 에 대한 반발이라 한다. 지금까지는 교원들에 대한 성과급 지급을 10% 범위 내에서 차등지급했는데 교육인적자원부가 20%로 범위를 확대한다는 것에 반발하는 것이다. 성과급을 가장 많이 받는 사람이 봉급의 100%를 받는 다면 가장 적게 받는 사람은 지금은 90%를 받았는데, 앞으로는 80%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성과급의 차등 지급은 ‘교사 간을 이간질’ 하기 때문에 동일하게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현장에서의 성과에 대한 객관적인 측정 기준이 좀 모호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성과급을 동등하게 지급한다면 이는 ‘성과급’ 이란 이름과 정의에도 부합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효율성 증진’ 이라는 목적도 달성할 수 없는 억지인 것이다. 국민의 세금, 학부형의 주머니를 털어 모은 돈으로 효과도 없는 성과급 지급이 왜 필요한가 하는 의문을 던진다.

    조직원의 업무 수행에 대한 평가는 성과급 지급에서 뿐만 아니라 승진의 바탕이 되는 평정에서도 그 기준이 모호한 경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평정제도를 없애고 똑같이 진급을 시킬 수는 없는 것이 조직사회인 것이다. 평가 기준을 보다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방법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는 것이다.

    이야기는 본론 ‘데끼마레’로 돌아가자. 옛날 로마가 구주 대륙을 석권하고, 아프리카 북부, 중동을 포함하는 대 로마제국을 건설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로마 군대다. 당시 로마 군대 조직 중에서 핵심적인 것이 군단(軍團: Corps)으로 금년 독일월드컵에서 우승한 이태리 축구팀을 일러 ‘이태리 군단’ 이라 부르는 것도 로마시대 군대의 군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로마군단이 그렇게 강하고, 위력이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가 ‘전투 결과에 대한 책임’ 을 확실히 하는 데서 보다 강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데끼마레’는 곧 로마 군단이 전투에 패한 부대에 책임을 묻는 용어라고 한다.

    군단장이 전투에 패한 부대장을 불러 “귀관의 부대는 데끼마레다” 라고 선언하면 그날부터 정해진 기일 안에 부대원의 1/10을 사형에 처해야 한단다. 사형에 처해질 사람을 선별하는 권한(?)은 전적으로 그 부대 지휘관에게 일임한단다.
    통상 데끼마레 지정을 받은 중대장은 소대장을 불러 처형될 사람의 수를 나누어 정해주면서 선별해서 보고하도록 지시하고, 소대장은 분대별로 한 사람씩 지명해서 보고하도록 하는 데 분대에서 1명씩 ‘죽을 사람’ 을 선별 해 내는 방법에 관한 한 어떠한 제한이나 지침도 없고, 물론 본인의 동의 여부는 필요 없이 지정된 기일 안에 지정된 인원의 이름을 적어 내면 된다는 것이다.

    분대장이 분대원 중에서 1명의 ‘죽을 사람’을 선별해서 상부에 적어 내는 과정이 각양각색이라
    어느 분대장은 지난 전투의 과정을 심사숙고 해 보고 패전의 원인을 찾아 그 때 가장 큰 실수를 한 병사를 적어낸다.
    어느 분대장은 ‘정상 회복이 불가능하므로 분대 전투력 유지’ 차원에서 중상을 입고 입원중인 사람을 적어낸다.
    어느 분대장은 ‘민주적’으로 한다면서 투표를 통해 결정하여 적어낸다.
    또 어느 분대장은 평소에 분대장에게 좋지 않는 감정을 가지고 있던 병사의 이름 을 적어낸다.

    지금 군대의 전투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전적으로 지휘관에게 묻는 것과는 달리 결국 병사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실소를 금할 수 없지만, 그런대로 병사들에게 '전투에 패하면 전투에서 살아 남더라도 나도 죽을 확율이 10%'라는 인식을 심어주어 책임감을 고취시키고, 지휘체계를 확립하는데는 일조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또 이런것이 곧 '강한 로마 군단'의 전투력으로 이어졌는지도 모른다고 생각된다.

    국과연에서 처음으로 인센티브 즉 성과급을 지급하면서 유일한 방침은 ‘1/10 인원 즉 10% 인원에게는 성과급을 전혀 지급하지 않는다’ 는 것이었다. ‘100% 대 0%로 차등지급’ 이었던 것이다. 지금 전교조가 ‘100% 대 80%’를 놓고 차등지급 반대 시위와 반환운동을 벌이는 것에 비하면 훨씬 큰 차등지급이었다.

    국과연의 많은 연구원들이 초창기 70년대 초, 해외 유치과학자의 ‘파격적인 대우’ 차원에서 지은 아파트에 모여 살고 있었다. 그래서 연구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하루를 넘기지 않고 온 아파트에 퍼져나가는 것이 통상이다.
    그러니 성과급을 받지 못하는 1/10의 연구원은 연구소 안에서는 동료 연구원에게 창피하고, 집에 돌아가면 이웃 가족들 보기에 창피해서 이래 저래 근무 의욕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연구원 자신 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자존심이 상할대로 상해서 그 집은 마치 초상집 같은 분위기가 다음 성과급이 지급 될 때까지 이어져 갔다.

    연구 성과를 더욱 증진시키고자 국민의 혈세로 어렵사리 재원을 마련하여 성과급을 지급한 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오고 있었다. 그러자 이러한 실태를 누구보다 더 잘 아는 중간 계층의 책임자들, 이를 테면 부장과 실장급이 고민에 쌓였다.

    어느 실장은 평정에서 제일 하위를 받은 연구원을 성과급을 못 받을 사람으로 정한다.
    어느 실장은 순서를 정해놓고 돌아가면서 성과급을 못 받을 사람을 미리 정한다.
    어느 실장은 성과급을 받은 연구원으로부터 10%의 금액을 거출하여 받지 못한 연구원에게 위로금으로 지급한다.
    어느 실장은 연구원들의 비밀 투표로 성과급을 못 받을 사람을 정한다.
    어느 실장은 제비뽑기로 성과급을 못 받을 사람을 정한다.
    어느 실장은 평소에 말을 잘 안 듣는 연구원으로 결정한다. 등등 각양각색의 방법들이 동원되었다. 곧 로마군단의 ‘데끼마레’ 에서 ‘죽을 사람’을 골라 내는 방식들이 '성과급을 못받을 사람'을 골라내는데 등장한 것이다.

    이 때 소내 자유게시판에 이를 우회적으로 비판할 글이 곧 ‘데끼마레’ 였다. 당시 연구소 분위기 속에서는 '성과급을 못 받는 연구원'은 로마군단 데끼마레 에서 '죽을 사람'에 해당하였는지도 모른다.
    성과급 지급은 예나 지금이나 시행과정에 여러 가지 부작용을 불러 일으키고 있지만 아무리 부작용이 있더라도 이행되어야 할 철칙이 하나 있다. ‘차등 지급’ 이다. 차등 지급이 아니면 그것은 ‘성과급’ 이 아니라, ‘세금을 안 내는 봉급 인상’ 또는 '퇴직금이나 연금 계산에 포함되지 않은 봉급 인상' 에 불과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