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과 저승의 거리

沙月 李盛永

불가(佛家)에서 이승은 사람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말하고, 상대적으로 사람이 죽어서 육신은 땅에 묻히거나 한 줌의 재가 되고, 혼령이 가서 사는 곳을 저승이라 하며, 저승은 극락(極樂)과 지옥(地獄)이 있다고 한다.

 

그러면 이승과 저승의 거리는 얼마나 될 까?
아마 대답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다. 상여가 개울을 만나거나 가파른 언덕을 오를 때면 거의 예외 없이 ‘먼 길 갈 사람 노자 돈이 적어서 못 가겠다’고 하면서 상여가 움직이지 않고 버틴다.

 

상주나 뒤따르는 사람이 돈을 걸고 절을 하면 상여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저승길은 무척이나 멀다는 것이다.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길이니 멀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을 지도 모른다.

 














(補) 상여

<2010년 3월 23일 故 李鉉允 장례>

 

(補) 서양사람들,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대체로 이승과 저승을 강 하나 사이로 보는 것 같다.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하는 찬송가 구절도 있고,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다"는 흔히 쓰는 말도 있다.

2012년 9월 19일자 조선일보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에 「광기와 폭력 뒤섞인 '현실 세계'...이승과 저승 가르는 江 위의 단테」라는 제하에 낭만주의 미술의 시대를 연 프랑스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Eugene Delacroix: 1798-1863)가 1822년 처음 파리쌀롱에 전시했던 '단테의 조각배' 그림을 설명하고 있다.













외젠 들라크루아의 '단테의 조각배'

1822년 켄버스에 유체, 189x246cm, 파리 루부르박물관 소장

 

들라크루아는 중세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의 '신곡(神曲)' 중에서 단테가 고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인도를 받아 지옥을 여행하는 장면을 그렸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를 태운 배는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스틱스강을 건너고 있다. 붉은 두건을 쓰고 요동치는 배 위에 간신히 서서 불타오르는 도시를 뒤돌아보며 떠는 왼쪽 사람이 단테다. 그 오른쪽에서 단호한 자세로 단테의 손을 잡아주는 이가 베르길리우스다.
다시 그 오른편에 서서 굳세게 노를 젓는 사공의 뒷모습과 그의 몸을 휘감고 나부끼는 푸른옷은 그들이 탄 배가 얼마나 강한 역풍을 거스르고 있는 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배를 흔드는 건 바람 뿐이 아니다. 지상에서 음란과 오만과 탐욕에 젖어 온갖 죄(罪)를 짓고 지옥으로 떨어진 저주받은 영혼들이 뱃길을 가로막았다.
단테는 광기와 폭력, 공포와 혐오가 뒤섞인 지옥의 악다구니판에서 현실을 보았다. 이 모든 혼란 속에서 길을 열어주는 베르길리우스가 있다.

 

옛날 신라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였을까?
아사달 동기회(1962년 2월 26일 임관, 육사18기 동기회)가 지난 2000년 4월 12일에 1박2일로 추진한 경주 나들이 때 첫날 도착하여 바로 경주 남산을 올랐다. 남산은 금오산(471m)과 고위산(495m) 두 봉우리를 중심으로 남북 길이 8Km, 동서 폭 4Km에 40여 개의 골짜기로 이루어진 산군(山群)이다.

 

 

 

 

 

 

 

 

 

 

 


 

 

 

 

 

 

 

 

 

 

 



경주 남산 개념도

 

높지도 크지도 않는 경주 남산에 불상 80여 채, 탑 60여 기, 절터 110여 개소가 있으니 남산은 그야말로 신라 천년불교문화의 ‘노천전시장(露天展示場)’이다.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유물 밀집지역으로 유네스코가 경주 일대의 고적들을 포함하여 남산도 인류문화유산(人類文化遺産) 으로 지정한 곳이기도 하다. 

 

남산의 금오산 정서(正西) 28번 골짜기 냉골 입구에 웬만한 동네 동산 만한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 세 왕이 나란히 묻힌 삼릉(三陵)을 만난다. 계곡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계곡에 묻혔던 것을 발굴하여 안치하였다는 머리 없는 석불좌상(石佛坐像) 곁을 지나 조금 더 오르면 선각육존불 (線刻六尊佛) 앞에 서게 된다.

 

삼국유사에 ‘남산의 절은 하늘의 별처럼 많고, 탑은 하도 흔해 기러기처럼 솟아있다’고 표현한 것처럼 그 많고 흔한 남산의 돌부처 가운데 내가 유독 이 선각육존불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이 돌에 새긴 여섯 부처가 신라 사람들의 이승과 저승의 거리에 대한 생각을 유추할 수 있게 하는 빌미가 될 것 같기 때문이다.

 

남산에 있는 부처들의 유형을 보면 네 가지다.

① 선각(線刻), 돌의 평면에 요철 없이 선(線)으로서 음각(陰刻) 하여 부처의 상을 평면으로 그린 그림이다.

② 마애(磨崖), 돌의 면을 갈아서 요철을 만들어 부처의 모습을 입체감 있게 새긴 것이다.

③ 셋째 석조(石造), 돌을 쪼아서 만든 부처의 좌상(坐像) 또는 입상(立像) 조각이다.

④ 넷째 감실(龕室), 바위의 수직 측면을 움푹 들어가게 파고 그 안에 석조 불상을 안치한 것이다.

 

선각육존불(線刻六尊佛)은 그 첫 번째 유형의 선각(線刻)이다. 연 이어진 한 바위가 왼쪽 부분은 앞으로 나와 있고 오른쪽 부분은 뒤로 들어 가 있는데 왼쪽 앞으로 나온 면에 석가삼존불(釋迦三尊佛), 오른쪽 뒤로 들어간 면에 아미타삼존불(阿彌陀三尊佛), 합하여 육존불(六尊佛)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경주 남산 선각육존불

월명대사
가 죽은 누이를 위하여 향가 제망매가(祭亡妹歌)를 지어 노래불렀던 곳이라 한다.

평면에 그냥 선으로 그린 것이니 입체감도 없고, 오랜 세월에 돌이 침식되어 희미해진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선이 굵다가 가늘어지고, 깊다가 얕아지는 것이 비록 평면 그림에 불과한데도 마치 살아서 숨쉬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나는 이 선각육존불의 예술적 가치는 잘 모른다.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신라인들이 여기 이렇게 여섯 부처를 한 자리에 새겨 놓고 후세에 전하고자 하는 멧세지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왼쪽 앞으로 나온 부분의 석가삼존불(釋迦三尊佛)은 불교의 교조(敎祖) 석가모니(釋迦族의 賢者라는 뜻, 본명은 고다마 싣달타)를 가운데로 하여 그 왼쪽에 인간의 지혜(知慧)를 주관하는 문수보살 (文殊菩薩)과 오른쪽에 인간의 이(理), 정(定), 행(行)의 덕(德)을 다루는 보현보살(普賢菩薩)을 새겨 놓았다. 모두 이승의 인간을 제도하는 부처들이다.

 

오른쪽 뒤로 들어간 부분의 아미타삼존불(阿彌陀三尊佛)의 가운데 아미타불(阿彌陀佛)은 서방정토(西方淨土)에 있으면서 모든 중생을 제도(濟度)하겠다는 대원(大願)을 품은 부처들이다. 그래서 중생들이 이 부처를 염(念)하면 죽은 뒤에 극락세계에 간다고 한다.

 

아미타불 좌우에는 대세대지보살(大勢大至菩薩)과 대자대비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 새겨져 있다. 그러니까 오른쪽 부분의 부처들은 저승을 다스리는 부처들이다. ‘나무(南無: 부처에게 돌아가 의지한다.) 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염하는 것은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에 의지하오니 부디 죽어서 극락세계에 가게 해 달라’는 염원을 빌고 있는 것이다.

 

신라 경덕왕(서기742-765년) 때의 시인으로 알려진 월명(月明) 스님이 죽은 누이동생을 슬퍼하며 향가를 지어 불렀다는 ‘제망매가(祭亡妹歌)’가 바로 이 육존불(六尊佛) 앞에서였다 한다.

그 가사를 보면

            생사의 길 여기 있으니 두려워하고
            나는 간다는 말도 못다 이르고 가느냐
            어느 가을 이는 바람에 여기 저기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한 가지에 나고서도 가는 곳을 모르는구나
           아으, 미타정토에서 만날 나  도 닦아 기다리네

 

아마 월명스님도 ‘생사의 길 여기 있으니’ 하였으니 이 곳이 이승과 저승이 가장 가까운 곳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이승의 세계를 다스리는 석가삼존불과 저승의 세계를 다스리는 아미타삼존불이 한 바위 지척간에 공존하고 있으니 이 곳에서 죽은 누이의 혼령(亡妹)을 위로하는 제(祭)의 노래를 지어 부른 것도 저승으로 간 동생이 쉽게 이 간절한 노래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일보사 발간 1995년 5월호의 기획특집에서 이근후 교수(이대교수, 한국석불문화연구회 회장)는 이 육존불을 들어‘이승과 저승의 거리가 3m 밖에 안 된다’고 표현하였다. 수치야 무슨 의미가 있으랴 마는 아무튼 신라인들은 이승과 저승이 무척 가까운 곳에 있다고 생각한 것이 틀림없다.

 

문명의 이기(利器)에 톡톡히 덕을 보며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이승과 저승이 더욱 가까워졌다. 그 많은 교통사고, 화재사고, 개스폭발사고---그리고 예전에는 이름도 들어 보지 못했던 성인병이 극성을 부리니 말이다. 이승과 저승의 거리를 멀리 띄어 놓는 지름길은 각자 자기의 건강을 챙기는 길 뿐이라 생각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