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촌동(遁村洞) 이름의 근원
둔촌(遁村) 이집(李集)
沙月 李盛永(2010. 2. 10)
  서울 강동구 둔촌동(遁村洞)의 이름이 왜 생겼는지 관심을 가진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런데 ‘둔촌(遁村)’이란 말의 뜻을 새겨보려고 遁(둔)자를 옥편에서 찾아보니 ‘숨는다(隱)’, ‘달아난다(逃)’, ‘피한다(回避)’, ‘끊는다(絶)’등 뜻이 있고, 둔(遁)자로 시작되는 단어 몇 가지를 추려 보았다.
      - 둔갑(遁甲): 귀신을 부려 변신하는 술법의 한가지
      - 둔도(遁逃): 도망쳐 달아남
      - 둔사(遁辭): 책임을 회피하려고 억지로 꾸며서 하는 말
      - 둔사(遁思): 속세에서 은둔하려는 생각
      - 둔적(遁迹): 종적을 감춤
      - 둔피(遁避): 세상을 피하여 숨음

  이러한 말 뜻과 관련해 볼 때 ‘둔촌(遁村)’‘속세를 피하여 숨은 마을’이라 해석하면 좋을 것 같다. 그렇다면 누가 피해 숨은 마을일까?

  오늘 아산회 2월 정규산행으로 바로 둔촌동에 있는 근린공원 일자산(一字山)을 갔는데 거기에 바로 정답이 있었다. 일자산 등산로 중에 북쪽에 이집(李集)의 묘소가 있다고 이정표가 세워져 있었다.
인터넷에서 퍼 온 이집의 묘소
  이집(李集)이 누구인지 몰라 여기 저기 찾아 보니 고려 말 시인이요, 학자였던 사람으로 초명(初名)이 원령(元齡)이고, 호(號)가 호연(浩然)이었다. 나중에 이름을 집(集), 호를 둔촌(遁村)으로 고쳤다고 한다.
  둔촌(遁村)은 신돈(辛旽)의 권력에 항거하다가 영천(永川)까지 달아나 숨었다. 신돈이 주살되자 돌아왔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고, 세상과 등지고 살다가 죽어서 이곳 일자산(一字山)에 묻혔으니 일자산 아래 둔촌동(遁村洞)은 바로 둔촌(遁村) 이집(李集)‘영원히 숨어버린 마을’이란 뜻이 아니겠는가?

  한국사대사전(韓國史大辭典)에 실린 이집(李集)의 행적을 옮긴다.

  이집(李集)(고려 충숙왕2년, 서기1314년-우왕14년,1388) 고려 말의 시인이며 학자. 초명은 원령(元齡), 호는 호연(浩然), 둔촌(遁村), 광주인(廣州人) 이당(李唐)의 아들.
  충숙왕 때 과거에 급제하여 문장과 절개로 이름이 널리 알려졌으며, 당대의 대 학자 목은(牧隱) 이색(李穡),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 등과 교유하며 서로 존경하는 친구였다.

  합포(合浦: 경남 마산에 있던 지명) 종사(從事)를 지내고, 공민왕 17년(1368)에는 신돈(辛旽)을 논박하자 신돈이 죽이려는 것을 알고 늙은 아버지를 업고 밤낮으로 달려 영천(永川)으로 피신하여 최윤도(崔允道)의 집에서 은거하였다. 1371년 신돈이 주살(誅殺)된 뒤 개경으로 돌아왔다.

  봉순대부(奉順大夫)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 정3품)에 임명되었으나, 바로 사직하고 이름을 집(集)으로, 호를 둔촌(遁村)으로 바꾸고 여주(驪州) 천녕현(川寧縣)에서 자연을 벗삼아 시(詩)와 학문에 전념하였다.

  시에 특히 뛰어나 꾸밈과 가식이 없고, 직설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시풍으로 당대에 이름을 얻었다. 성격 역시 솔직 담백하고 뜻이 곧아서 옳지 않은 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였다. 그가 죽자 정몽주이숭인이 만사(輓詞)를 지어 애도하였다.

  조선조에 들어와 의정부 좌찬성(左贊成: 종1품)에 추증되었고, 현종 8년(1667) 한양에 구암서원(龜岩書院)이 설립되면서 이 곳에 배향(配享)되었다. 저서에는 《둔촌유고(遁村遺稿)》가 있다.


  둔촌의 시 한 수가 일자산 공원에 게시되어 있었는데 비오는 날씨에 카메라도 안 가져가 그냥 왔다. 다음 날씨 좋은 날을 골라 그의 시도 베껴오고, 묘소도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