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리고거(記里鼓車)
沙月 李 盛 永(2010, 12, 31)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우리나라의 북쪽 기점은 함경북도 온성부이고, 남쪽 기점은 해남현 땅끝(土末)이다'고 기록되어 있다,

  육담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서 해남 땅끝에서 서울까지 1천리, 서울서 함경북도 온성까지 2천리를 잡아 우리나라를 ‘삼천리 금수강산(三千里 錦繡江山)’이라 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우리나라 한반도의 남북 거리를 3,000리(里)라 하였는데 현대의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1,200Km이다.

  옛날에 이렇게 먼 거리는 어떻게 재었을까? 줄자를 들고 일일이 길 거리를 재었을까? 지금은 인공위성시대라 책상에 앉아 인터넷에서 구글지도만 열고 몇 번 클릭만 하면 지구상의 어느 지점이든 볼 수 있고, 거리도 잴 수 있다.

  그런데 조선시대쯤의 옛날만 해도 이런 것은 상상도 수도 없는 일이다. 조선조 말 대동여지도를 만들어 낸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만 해도 평생을 미투리에 감발하고 삼천리 방방곡곡을 누비며 땅 모양을 살피고, 거리를 재고 하였으니 말이다.

  일제로부터 광복된 직후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에도 간혹 선생님이 동네 별로 팀을 짜서 학교까지의 거리를 재어오게 하는 숙제를 내곤 하였다.
  세 사람이 한 조가 되어 50m 되는 긴 줄을 구해서 양쪽에 작대기를 잡아매고 두 사람이 작대기를 잡고 걸어가면서 앞사람이 땅바닥에 금을 그어 놓으면 뒷사람이 그 금에 와서 작대기 끝을 대면 또 앞사람이 금을 긋는 것을 반복하고, 또 한 사람은 횟수를 세고, 중요지점까지의 횟수를 기록하면서 따라가는 방식이다.

  김경훈 지음 『뜻밖의 한국사』라는 소책자에 조선조 세종 때 ‘거리(里)를 재는(기록하는, 記) 북(鼓)이 달린 수레(車)’ 라는 뜻의 기리고거(記里鼓車)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실려있어 흥미롭다. 세종실록에 있는 이야기라 한다.

  세종실록에 "세종23년(1441) 3월 17일, 왕과 왕비가 온수현(溫水縣, 지금의 온양)으로 가니, 왕세자가 호종(扈從)하고, 종친과 문무대신 50여명이 호가(扈駕)하였다.
  임영대군(臨瀛大君) 이구(李구
, 四大君), 한남군(漢南君) 이어(李 王於, 四君)에게 수궁(守宮)하게 하였다. 이후로부터는 종친들에게 차례로 왕래하게 하였다.
  임금이 가마골에 이르러 사냥하는 것을 구경하였다. 이 행차 때 처음으로 초여(艸아래封 與:
鳳輿인듯, 꼭대기에 황금으로 만든 봏황을 장식한 임금이 타던 가마)를 쓰고, 기리고(記里鼓)를 사용하니 수레가 1리를 가게 되면 목인(木人: 나무로 만든 인형)이 스스로 북을 쳤다.”고 하였다.
청나라 봉여(鳳輿)의 모습
기리고거(記里鼓車)의 정확한 형상은 알 수가 없지만,
이 청나라 봉여의 밑에 거리를 재는 바퀴를 달고,
북과 목인형을 붙인 모양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봉여는 사람이 메지만 초여는 밑에 두 바퀴를 달고
말이나 소가 끌게 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세종 임금은 왕비, 세자와 더불어 온천에 가는 길이었다. 이 때 처음으로 기리고거(記里鼓車)라는 수레를 사용했다고 기록 된 것이다. 그런데 이 기리고거(記里鼓車)라는 수레는 참으로 신기하게도 1리(一里)를 가면 나무 인형이 나와 스스로 북을 쳤다는 것이다.
  그러니 도로의 거리는 그저 수레를 타고 가고 싶은 만큼 가면 되는 것이다. 이 기리고거(記里鼓車)라는 수레가 바로 거리를 재는 기계였던 것이다.

  중국에 유학한 후 자격루 같은 기구를 발명했던 세종 때의 유명한 과학자 장영실(蔣英實)이 이것을 만들었을 법하다. 중국에는 송나라 때부터 이미 기리고거(記里鼓車)가 있었다.

  기리고거(記里鼓車)의 원리는 무엇일까? 중국의 예에 따르면 바퀴의 둘레를 이용했다. 즉 바퀴의 둘레를 1리(一里)의 1/100로 만들어 바퀴가 100바퀴 돌면 1리를 가르치는 북을 치게 한 것이다.
  바퀴가 굴러 한 바퀴가 될 때마다 바퀴에 이어진 톱니바퀴가 한 칸을 가게 되고, 이 톱니바퀴가 100번을 움직이면 저절로 나무 인형이 북을 치게 만든 것이다. 초보적이긴 하지만 발상이 멋진 자동화 기계였던 셈이다.

  세종12년(1430)에 길이에 대한 정확한 표준척(標準尺)을 제정하여 전국적으로 시행하였는데 세종23년에 온양온천에 가면서 기리고거(記里鼓車)를 타고 간 것은 새로 제정한 척도와 새로 고안한 거리측정기계 기리고거(記里鼓車)를 임금이 직접 시험해 보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세종 때 제정한 척도의 가장 기본은 주척(周尺)인데 1주척은 20.795Cm이다. 지금은 10리를 4Km로 알고 있지만 당시는 10리가 약 3,74Km였다. 따라서 1리는 374m이다.
  기리고거(記里鼓車)의 바퀴가 100번을 돌아야 1리 즉 374m이니까 한바퀴의 둘레는 1/100인 3.74m(374Cm)이고, 이둘레는 주척(周尺)으로 약18주척(18x20.795Cm=374.31Cm)이다.

  따라서 세종이 온양온천에 가면서 타고 간 기리고거(記里鼓車)의 바퀴 둘레는 18주척(374.31Cm)이고, 지름은 119.15Cm이니 수레의 크기도 상상해 볼 수 있다. 오늘날 자동차의 자동거리계도 기리고거(記里鼓車)의 원리와 대동소이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