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湖南), 호서(湖西) 어원 소고
沙月 李 盛 永(2005.12.1)
  2004년 12월 19일 일요일 낮, 어느 TV에 ‘스타 골든벨’이란 프로가 방영되었다. 고등학교 학생 100명을 놓고 벌이는 ‘도전 골든벨’ 프로를 본 따서 각계의 스타들을 모아놓고 좀 코믹한 이야기들을 곁들여 진행하는 재미있는 프로였다.

  프로가 진행되는 동안 내게 관심을 끄는 문제 하나가 있었는데 ‘호남의 어원’에 관한 문제였다. 문제가 호남이란 말은 어느 강의 남쪽을 일컫는 말인데 그 강의 이름은 무엇인가’ 였고, 정답은 금강이었다.

  ‘호남’이란 말은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부터 나오니 한 평생 살아가면서 무수히 많이 듣는 말이다. 더군다나 이 말이 현대 정치사에서는 지역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매우 중요한 뜻을 지니는 정치적인 말이 되었다. ‘호남푸대접’이란 말도 생겨났고, 상대적으로 ‘호남공화국’이라는 비꼬는 말도 생겨났었다.

  말이라고 다 어원을 알고 쓰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많이 쓰고, 우리나라 어느 지방을 가리키는 말이니 어원 쯤은 알고 쓰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런데 말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오랜 세월에 걸쳐 생겨나면서 그 어원이 명확하게 기록되어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먼 후대에 와서 학자들이 거슬러 올라가 그 어원을 찾다 보니 정확성도 떨어지고 학자마다 다른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TV에서 '스타골든벨'을 시청한 때부터 '호남(湖南)'과 함께 '호서(湖西)'의 어원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여기 저기 문헌과 유적을 관심깊게 살펴보았다.

  호남이란 말은 수 없이 듣고, 또 쓰지만 이와 유사한 말로 ‘호서(湖西)’란 말은 매우 생소하다. 그렇지만 호남이나 호서 나 똑 같이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말들이다. 이홍식박사 편 한국사대사전(교육도서 발행)에서 ‘호남(湖南)’을 찾아 보면 “전라남도, 전라북도 양도를 합쳐서 부르는 말, 호강(湖江: 금강) 이남(以南)의 지역이란 뜻이며, 호중(湖中)이라고도 한다.” 라고 되어있고, ‘호서(湖西)’“충청남도, 충청북도 양도를 합쳐서 부르는 말, 호강(湖江) 이서(以西)의 지역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책의 ‘벽골제(碧骨堤)’ 를 찾아 보면 호남과 호서에 대한 설명이 전혀 다르다. 벽골제(碧骨堤)는 “신라 때의 저수지로 전북 김제군 부량면에 있었는데 신라 흘해왕(訖解王) 21년(서기330년)에 쌓은 것이라 한다. ---(중략)--- 벽골제의 남쪽을 호남지방(湖南地方)이라 하고, 서쪽을 호서지방(湖西地方)이라 한다” 고 되어있다.

  전자는 호강(湖江) 즉 금강(錦江)을 기준하고 있고, 후자는 벽골제(碧骨堤)를 기준하여 호남과 호서를 구분하고, 정의하고 있는데 같은 책에서 한 가지 말의 어원에 대하여 다르게 설명하니 혼란스럽지 않을 수 없다. 방송국의 스타 골든벨 프로에서는 전자를 기준하여 정답을 말하고 있다. 즉 지금의 금강 이남지방을 호남지방이라 한다는 얘기다. 과연 맞는 정답일까?

  이 두 가지 기준에 대하여 생각 좀 해 볼 필요가 있다. 호강 즉 금강으로 말 할 것 같으면 장수 남쪽 수분재(水分嶺, 水分峴)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 진안의 용담댐-무주읍 서편-영동의 양산-심천-옥천의 동이면(금강휴게소가 있는 곳)을 지나 대청호로 흘러 들었다가- 댐을 빠져 나오면서 서남쪽으로 흘러 신탄진을 지나고- 공주 곰나루를 지나- 부여, 강경을 지나 장항과 군산 사이로 서해에 흘러 든다.

  그러니까 금강은 장수에서 대청호까지 북쪽으로 사행(蛇行) 하다가 대청호에서는 서행(西行)하고 그 이후에는 서남행을 하면서 전체적으로는 서쪽으로 270도를 회돌이 친다.

  대동여지도에서 금강을 따라가 보면 수분현(水分峴)에서 시작하는 물을 서천(西川)이라 하는데 이는 장수현 서편을 스쳐 흐르기 때문인 것 같다. 진안 동편에 이르러서는 호천(狐川: 여우내), 금산 동편에 이르러 광석강(廣石江), 지금의 대청호 지역에 이르러 형강(荊江), 공주(公州) 웅진(熊津: 곰나루)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금강(錦江)이란 이름이 붙고, 부여(扶餘) 고성진(古省津)에서는 백마강(白馬江)이라고 되어있다. 이렇게 지역별로 각각 다른 이름으로 표기된 강 이름이 언제부터 전체적으로 금강(錦江)이라 부르게 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또 대동여지도에는 호강(湖江)이란 이름이 나타나지 않는다.

금강 대동여지도(1): 장수-진안 구간
아래서 윗쪽으로 흐른다.

금강 대동여지도(2): 무주-영동-옥천 구간
아래서 윗쪽으로 흐른다.

금강 대동여지도(3): 현 대청호-공주 구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흐른다.

금강 대동여지도(4): 부여-서천 구간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흐른다.

  호강 즉 금강을 기준으로 호남, 호서를 구분하는 데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의문이 생긴다.
  (1) 금강 이남을 호남지방이라 한다면 통상적으로 알려져 온 지금의 전라남북도 외에 충청 남도의 공주, 부여, 논산, 금산과 충북의 옥천, 대전이 호남지방에 포함되어야 하는데 이들 지역을 ‘호남지방’에 포함시키는 것은 당연히 무리가 있다.

  옛날부터 호남 5대 명산이란 것이 전해지고 있는데 부안의 변산, 정읍의 내장산, 구례의 지리산, 영암의 월출산, 장흥의 천관산으로 되어있다. 만약 옛날에 공주, 논산 등이 호남에 포함되었었다면 계룡산이나 대둔산이 당연히 이들을 제치고 5대 명산에 들었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은 것을 보아도 이들 지역은 옛날부터도 호남지방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2) 금강 이서를 호서지방이라 한다면 결국 호서지방이란 충남 서부 일부 즉 서천, 부여일부, 보령, 청양, 홍성 정도로 국한하는 말이 된다. 금강 이동의 공주, 논산, 대전 등지와 금강 북쪽의 공주일대, 연기, 천안, 아산, 예산, 당진, 서산, 태안 등의 충남지방과 진천, 청주, 영동, 보은, 청원, 음성, 중원, 충주, 제천 등 대부분의 충북지역은 호서지방에 들어갈 수 없을 터인데 그렇지 않다 점이다.

  구한말 의병활동을 엮은 ‘호서의병사적(湖西義兵事蹟: 李九榮 編譯, 修書院 발행)’을 보면 오히려 제천(堤川), 충주(忠州) 등 금강의 동북쪽으로 멀리 떨어진 지역이 그 중심이 되고 있는데도 ‘호서의병사적’이라 하였다.

호서의병사적

  영동 심천의 금강 동안에 있는 누각의 이름이 호서루(湖西樓)이다.
영동 심천 금강 동안의 호서루 전경

  속리산은 경북 상주와 충북 보은의 경계, 백두대간 마루금에 있는 산인데 그 서편 보은쪽 아늑한 계곡에 법주사가 있다. 속리산 최고봉 천황봉에 이른 백두대간은 여기서 서북으로 한남금북정맥을 벋어 경기도 안성 땅 칠현산(칠장산)까지 보낸다.
  그런데 이 한남금북정맥은 한강의 남쪽, 금강의 북쪽 분수령이다. 법주사는 이 한남금북정맥의 북쪽에 있기 때문에 법주사 계곡을 흐른 물은 금강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한강으로 흘러간다.

  즉 천황봉 서편 법주사계곡에 내린 물들은 사내리새터(법주사 관광 주차창및 상가지역)에서 한데 모여 사내천이 되어서남쪽으로 흘러 정이품송 동편을 지나고, 내속리면 사무소가 있는 내속리에서 크게 회돌이쳐 서북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옛날부터 우리나라 4대 명수(名水)로 알려진 달천이 되어 서쪽, 북쪽으로 몇 번 방향전환을 하여 충주 서편을 북으로 흘러 탄금대 서편에서 남한강으로 흘러든다.

  그러니까 법주사는 금강 수계와는 전혀 관계가 없고, 한강의 한 지류인 달천의 발원에 해당한다. 그런데 법주사 일주문은 '湖西第一伽藍(호서제1가람)'이라 편액되어있다.
속리산 법주사 일주문

  또 천안 광덕면 광덕산 자락에 있는 광덕사의 일주문 뒷면의 글씨도 ‘湖西第一禪院’(호서제일선원)이다.
천안 광덕면 광덕사 일주문

  호서대학교(湖西大學校)는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면에 있는 사립 종합대학교이며, 호서고등학교(湖西高等學校) 는 충남 당진군 당진읍에 있는 학교다. 이 모두 금강 북쪽 멀리 떨어져 있어 금강(호강)과는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 금강의 북쪽 한계인 금북정맥(錦北正脈)의 북쪽에 있어 물길 또한 곡교천/삽교천(아산), 대방들천(당진)이 되어 북쪽 아산만으로 흘러드는데 굳이 '호서(湖西)'란 말이 학교 이름에 들어있다.

  이들 사례들을 살펴보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쓰는 '호서(湖서)'란 말은 금강과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호강 즉 금강을 기준하여 호남지방과 호서지방을 지칭한다'는 말은 두 지방 모두 이미 알려져 왔거나, 지금 쓰여지고 있는 개념에 부합되지 않는다.

  벽골제(碧骨堤)는 전북 김제시 남쪽 월봉동과 부량면 경계에 있었는데 지금은 논으로 개간 되고 ‘벽골제수리민속유물관’ 만 세워져 있다. 이를 기준으로 호남과 호서를 구분하고 정의 할 경우에도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1) 벽골제 이남을 호남지방이라 한다면 벽골제북쪽의 군산, 익산, 완주 등지가 이에 포함되지 않는 다소 미흡한 점이 있으나 '호남'이라는 큰 덩어리로 볼 때는 어느정도 수긍이 간다.

  (2) 그러나 벽골제 이서를 호서지방이라 한다면 이는 언어도단이다. 호서지방이라는 것이 기껏 김제, 부안, 고창 등 전라북도 서해안 일부지방을 지칭하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벽골제를 기준하여 호남, 호서를 정의하는 것은 ‘호남’에 있어서는 다소 미흡하지만 어느 정도 부합되나, ‘호서’에 대해서는 전혀 맞지 않는다.

  그런데 영남(嶺南), 영동(嶺東), 영서(嶺西)‘영(嶺)’이 가리키는 지명이 다르다. 영남의 영(嶺)은 조령(鳥嶺)을 말하고, 영동과 영서의 영(嶺)은 대관령(大關嶺)을 말한다. 그렇다면 호남과 호서의 ‘호(湖)’가 가리키는 것 또한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굳이 개념에 맞지 않는 호강(湖江: 錦江) 또는 벽골제(碧骨堤)를 기준해서 호남과 호서를 모두 정의한 것이 아니라 호남과 호서가 각각 다른 기준에 의해 명명되고 정의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고 보면 호남의 어원이 ‘벽골제 이남’이라고 보면 호서의 어원을 제공한 것을 무엇일까. 호(湖)자가 호수를 말하는 것이니 오래 된 호수를 찾아보면 쉽게 떠 오른다. 제천의 의림지다. 의림지(義林池)는 삼한(三韓) 때 축조한 저수지로 김제의 벽골제(碧骨堤), 밀양의 수산제(守山堤)와 함께 삼한의 3대 수리 시설로서 우리나라 고대 농업기술이 수리부문에까지 고도로 발달하였음을 짐작케 해 주는 유적으로 지금까지 유일하게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호수다.

  결론적으로 내 나름대로 호남과 호서를 정의 한다면 호남(湖南)은 김제 벽골제(碧骨堤) 남쪽 지방 지금의 전라 남,북도를 말하고, 호서(湖西)는 제천의 의림지(義林池) 서쪽지방 지금의 충청 남,북도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