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참마속(泣斬馬謖)

沙月 李 盛 永

우리는 지면 특히 정치면에서 읍참마속(泣斬馬謖)이란 말을 자주 접하게 된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곧 ‘울면서 마속의 목을 잘랐다’는 뜻이다. 이는 삼국지에서 비롯된 이야기로 아깝지만 군령(軍令)을 세우기 위해서  희생시켜야 할 때 쓰는 고사성어다.

 

촉나라 군사(軍師) 제갈량(諸葛亮)이 조조군의 접근을 유리한 지형에서 조기에 차단하여 전투준비에 필요한 시간을 벌기 위하여 유능한 장수 마속(馬謖)에게 군사를 주어 보내면서 ‘병력을 이렇게 이렇게 배치하여 조조군의 진출을 차단하라’고 시켰다.

 

마속이 현장에 도착하여 지형을 살펴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제  갈량이 일러준 병력배치는 전술상, 현장 여건상 맞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었다. 월등히 우세한 조조군을 상대로 싸우는데 이 쪽의 유리한 것은 오직 지형 뿐인데 군사가 일러 준 방책은 유리한 지형을 이용할 수 없는 방책이었다. 그래서 마속은 자기 생각대로 병력을 배치했다가 싸움다운 싸움을 해 보지도 못하고 조조군에게 포위된 채 조조군이 전혀 피해를 입지 않고 촉진으로 진출하게 되어 미처 준비가 안된 촉군이 아주 난처한 입장으로 몰리게 되었다.

 

촉군은 많은 희생을 조조군에게 내 주고 겨우 사태를 수습한 후 제갈량은 마속의 책임을 물어‘참으로 아까운 장수지만 군령을 세우기 위해서는 할 수 없다’하며 울면서 마속을 처형했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제갈량이 병력을 어떻게 배치하라고 했는데 마속은 어떻게 배치하였는가? 하는 것은 다음 이야기를 위해서 잠시 유보하기로 한다.

 

1971년도 내가 진해 육군대학 #72정규 과정에 입학하여 공부도 열심히 하고, 축구도 열심히 하였다. 그때 토요일은 거의 예외 없이 총장 김익권 장군의 특강이 있었는데 선인들에 관한 옛날이야기를 많이 해 주었다. 그해 연말연시 휴무 때 학생 몇 명이 시내에서 한잔 하다가 시중잡배들과 시비가 붙어 싸움판이 벌어졌고, 헌병이 출동하여 진정되었으나 상대방이 입원까지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미 헌병계통으로 상부에 보고되어 엄단하라는 상부의 지시가 내려와 징계위원회를 열어 견책 처벌이 결정된 직후의 토요 특강 때 총장께서 흑판에 써 놓은 제목이‘읍참마속(泣斬馬謖)’이었다.

 

총장께서는 정규 육군대학에 온 앞날이 창창한  젊은 장교들을 처벌한다는 것이 정말 가슴 아픈 일이지만 군의 기강을 바로 잡기 위해 제갈량이 울면서 마속의 목을 자르는 심정으로 후배 장교들에 대한 징계의결서에 결재를 했다는 이야기다.

 

총장의 이야기는 ‘읍참마속’으로 옮겨갔다. 잠시 말을 멈추고 학생들을 휘- 둘러보던 총장은 ‘학생들! 삼국지 읽어 본 사람 손 한번 들어봐요’하였다. 거의 대부분 아니 전원이 손을 들은 것 같다. 그런데 육대에서는 학급의 자리는 어떻게 정하는지 잘 모르지만 초등학교나 중, 고등학교 때처럼 키순으로 정하는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반에서 제일 키가 크고, 우리 동기생 중에서도 아마 키가 가장 클 것으로 생각되는 ○○○소령이 맨 앞 줄 한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 큰 키에 긴 손을 들었으니 아마 총장 눈에는 그의 손 밖에 안 보였는지 즉시 그를 지명하면서

‘그 학생은 그래 몇 번이나 읽었나?’하고 물었다. 다른 학생들처럼 무심코 손을 들고 있었는데 갑작스런 총장의 지명에 깜짝 놀라 대답한 것이 이곳 진해 본바닥 사투리가 튀어나왔다. ‘열 두 번도  더 읽었심더’그런데 문제는 경상도 사투리에 익숙하지 않은 총장이 그 학생의 대답을 글자 그대로 12회 읽었다는 것으로 이해한데에 있었다. 그저 많이 읽었다는 표현일 뿐인데--, 총장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면서

‘그래? 지금까지 아홉 번 읽은 나보다 더 많이 읽은 사람을 보지 못했는데 오늘에야 만났구먼, 내가 삼국지에 관한 한 학생을 스승으로 모셔야겠군’ 하면서 교단에서 내려와 이 학생 책상 앞에서 공손히 절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이 학생 한번 뱉은 말을 주어 담을 수도 없고 그저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당황해 할 뿐이었다.

 

다시 교단으로 올라간 총장은 흑판에다가 무엇인지 열심히 그리기 시작하였다. 지형도였다. 두 개의 험준한 산봉우리를 표시하는 등고선이 그려지고 그 사이 안부를 넘어가는 길이 그려졌다. 조조군은 이 길을 따라 촉군 지역으로 진출하려는 것을 제갈량이 간파하고 마속을 보내서 지형이 험준한 이곳에서 조조군의 진출을 지연시켜 전투준비를 위한 시간을 벌려고 했던 것이다.

 

지형도 그리기를 다 끝낸 총장은 학생들 쪽으로 몸을 돌림과 동시에 앞자리 그 학생, 아니 총장의 스승이 된 그 친구에게 백먹을 건네주며 나와서 제갈량이 마속에게 일러준 병력배치를 그리라는 것이다.

 

이 학생 이곳 육대에 와서 열심히 배우고 수없이 많이 그려본 방어편성인지라 성큼 나와서 총장이 그려 놓은 지형도 위에 방어원칙에 충실하게 방어편성부호를 보기 좋게 그리고 내려와 자리에 앉았다.

 

학생이 방어편성도를 그리고 있는 것을 지켜보던 총장의 얼굴은 벌레를 씹은 듯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한참 학생이 그린 방어편성도를 처다 보고 있던 총장은 그 학생을 내려다보면서

‘학생! 정말로 삼국지를 열 두 번 읽었나?’학생은 할 말을 잃고 그저 빨개진 얼굴을 푹 숙이고 있었다. 이윽고 총장의 원안 설명에 들어갔다.

 

이 지형을 보면 정상적인 전술지식과 판단으로는 이 학생이 그린 것처럼 병력을 배치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속도 병서를 읽고 정상적인 과정을 거쳐 장수가 된 사람이니 현장에 와서 보고 이 학생처럼 양쪽 봉우리를 거점으로 하여 6-7부 능선을 연한 상단부에 병력을 배치하는 것이 정도라고 생각한 것이다.

 

오히려 제갈량이 일러준 하단부에 병력을 배치하는 방책은 우세한 조조군에게 일격에 유린당할 수 있는  현지 지형에 맞지 않는 잘 못된 방책이라고 생각 한 것이다. 그래서 이 학생이 그린 것처럼 병력을 높은 위치에 배치했더니 꾀 많은 조조는 이를 간파하고 우세한 병력의 일부로서 양쪽 봉우리의 마속군을 포위하여 견제하는 사이에 주력은 싸움 한번 하지 않고 그 안부를 통과하여 촉진 쪽으로 진출한 것이다.

 

그래서 제갈량은 아깝지만 군기를 세우기 위해서 부득이 울면서 마속을 처형했고, 이로부터 읍참마속(泣斬馬謖)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겨난 것이다.

 

그리고 이 학생은 총장에게 삼국지를 열 두 번 읽었다는 거짓말을 한 것이 되기는 했지만 육군대학의 정규 전술을 충실히 공부했다는 것도 또한 입증된 사건이 되었다. 끝


< 읍참마속(泣斬馬謖) >

  2003년 8월 5일자 조선일보 21면에 삼성경제연구소장 崔禹錫씨의 글로 삼국지 나를 사로잡은 명장면 ④ '읍참마속(泣斬馬謖)' 이란 제목의 글이 연재되었다. 전문을 옮긴다.


  삼국지에서 영웅호걸들이 스케일 크게 벌이는 인간드라마는 정말 흥미진진하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은 제갈공명이 울면서 마속을 베어 나라의 기강과 법질서를 잡는 장면이다.


  27세의 젊은 나이에 촉(蜀)나라 1세 군주 유비의 간곡한 청을 받아 그 진영에 합류한 공명은 오랫동안 나라의 기둥 역할을 하고 있었다. 국력이 약한 촉으로선 북쪽의 위(魏)와 동쪽의 오(吳) 사이에서 버텨내기가 무척 힘들었다. 인구는 위나라가 촉의 4배, 오나라가 2배나 되었다. 인재 층도 매우 얇아 공명이 이것 저것 다 챙겨야 했다.
  장기전으로 가다가는 불리하다고 판단한 공명은 유명한 출사표를 2세 군주 유선에게 올리고 위나라 정벌에 나선다.

  2세 유선은 그릇이 좀 모자라 공명도 다소 애를 먹었다. 출사표는 나라를 생각하는 공명의 애끓는 충정과 아울러 2세에 대한 걱정도 배어있다. 1차 북벌이 처음에는 잘 나가 상당한 전과를 올린다.
  이 때 촉의 맹장 위연이 장안(위의 서울) 기습작전을 제안한다. 신중한 공명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정통적인 공격작전을 편다.

  북벌전에서 가정(街亭)이란 곳이 전략적 요충이었다. 위나라 군사가 반드시 거쳐 나오게 되어 있는 곳이다. 매우 중요한 그쪽 지휘관은 위연 같은 역전의 장수가 갈 것으로 모두 예상하였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39세의 새파란 마속(馬謖)이었다. 모두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마속은 이론에 밝고 머리가 좋아 공명의 참모로서만 활약했을 뿐 실전경험이 전혀 없었다.
  공명도 마속을 떠나보내면서 단단히 당부를 한다. 가정 확보가 이번 전쟁의 관건이 된다며 길목을 지키되 높은 곳은 피하라는 주의사항까지 일러준다.

  전장에 도착한 마속은 공명의 당부를 무시하고 산 위에 진을 친다. 경험 많은 부하들이 위험하다고 말렸으나 고집을 부렸다. 군사이론을 들먹이며 두고 보라고 했다.
  그러나 노련한 위군의 대장이 물을 끊고 화공책(火攻策)을 쓰자 대패하고 말았다. 주위의 도움으로 마속은 겨우 목숨을 건졌으나 군사의 대부분을 잃어버렸다.
  이 때 조운, 위연 같은 노장들의 활약으로 전선이 총 붕괴되는 것은 겨우 수습했지만 위나라 정벌은 물 건너간 뒤였다.

  한중으로 서둘러 후퇴한 공명은 패전의 뒤처리에 착수한다. 맨 처음 마속을 끌어내어 군령위반으로 참수형에 처한다. 공명 자신도 최고의 지휘자로서 패전의 책임을 지고 3계급 강등을 차청했다.
  공명은 마속을 높이 평가하여 동생같이 아꼈다. 주위에서 전란 중이니 인재를 아껴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자는 권고도 있었으나 이럴 때일수록 나라의 기강과 법을 세워야 한다면서, 울면서 (마속의) 목을 잘랐다.
  공명은 법을 집행할 땐 "나는 저울 같아서 사람에 따라 무게가 다를 수 없다" 고 했다. 공명의 심경을 잘 아는 병사들도 같이 눈물을 흘렸다 한다.
  이렇게 공명은 법가(法家)의 엄격함으로 나라를 다스렸는데 그것이 공평무사하여 모두 두려워하면서고 경애했다.

  가뜩이나 인재 부족에 허덕이던 공명으로선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눈물이 나올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특히 1세 유비가 임종시에 "마속은 실력보다 말이 앞서니 조심해서 쓰라"고 한 특별당부가 생각나서 더 슬피 울었는지 모른다.
  유비라는 인물은 인재를 알아보고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데는 천부적 재능을 보인다. 그릇이 크고 덕성이 높은 유비와 머리 좋고 칼날 같은 공명이 좋은 콤비를 이뤄 나라를 다스렸는데, 유비가 죽고 난 후 한쪽에 구멍이 생긴 것이다.

  읍참마속을 두고 대부분 공명의 공평무사함을 칭송하지만 한쪽에선 공명의 한계를 말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을 잘 알아서 그에 알맞게 써야지 감당할 수 없는 자리를 주어 일도 망치고 사람도 망치고 나서 슬피 울어준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이다.
  역사는 되풀이 되는 것인데 지금이라고 그런 일이 없을까.


김선두 화백의 그림
읍참마속(泣斬馬謖)에 앞서 고민하는 공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