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하의 뿌리(華夏之根)
沙月 李 盛 永(2013. 6. 25)
박근혜 대통령이 27일 한·중 정상회담을 하러 베이징에 갔다가 29~30일 서안(西安)을 찾는다고 한다.
서안은 시진핑 주석의 '정치적 고향'이라 하는데 이는 중국 문화혁명 시절 시진핑은 중학생으로 시안에서 250㎞ 떨어진 농촌으로 하방(下放)되어 7년간 토굴에서 고생하며 청년 지도자로 컸기 때문이라 한다.

박근혜대통령이 서안을 가고, 함께 대화할 중국의 시진핑이 서안에 정치적 근거를 두고 있다는 서안(西安)과 화산(華山) 을 중국 사람들은 중화민족의 뿌리 즉 ‘화하의 뿌리(華夏之根)'라고 생각하고 있어 이 말의 근원을 좀 생각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내가 얻은 자료를 엮어 보려 한다.

나는 지난 4월 28일-5월 2일 간에 서안(西安) 화산(華山) 여행하면서 두 군데서 '華夏之根(화하지근)'이란 말을 접할 수 있었다.
하나는 화산 남봉(南峰) 낙안봉(落雁峰)인지 서봉(西峰) 연화봉(蓮花峰)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데 바위에 큼직하게 ‘華夏之根’이라 새겨 놓은 것을 분명히 보고 사진을 찍은 것 같은데 돌아와 아무리 뒤져도 없다. 제대로 셧터가 눌러지지 않은 모양이다.

<追伸>2017년 추석 연휴 중인 10월 5일 중화TV에 '중국 산행기 제5편 화산(華山)'이 방영되었는데
우연히 아래 영상에서 '華夏之根'(華자는 간자체)을 보았지만 카메라를 준비하는 동안 지나가버려 아쉬움만 남았다.
그런데 다음 날 6일 재방송이 있어 미리 카메라를 단단히 준비하고 있다가 아래 영상을 찍었다.
지난 4년동안 내 머리 속을 맴돌던 내게는 아주 귀중한 영상이라 여기 추신으로 올린다.
화산 암벽에 음각된 '華夏之根'
등산객들 머리 위에 華夏之根 글씨가 보인다.
두 번째는 화산(華山) 금쇄관(金鎖關) 문을 들어선 후 華山靑松詩集(화산청송시집) 이라는 작은 책을 한 권 샀는데 그 전언(前言)에 이 구절(華夏之根)이 있다.
華山靑松詩集(화산청송시집) 표지와 前言(전언)

이 책은 2010년 1월 1일 발간한 이수민(李壽民) 작의 시집인데 판권표지도 없는 것을 보니 간이 발간한 책인 모양이다. 노인의 얼굴을 자세히 보질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 뒷면에 작자의 작은 사진을 보니 혹시 그 노인네가 작자가 아닌가 싶다. 작자 소개에서도 1983년 이후 지금까지 26년간 화산 수로(修路: 길 보수) 보통공원(普通工員)으로 소개하고 있어 더욱 더 심증이 간다.
이 책은 122수의 시를 수록하고 있는데 얼핏 보기에 하나같이 화산(華山)을 찬미하는 시들 같다.

이 책을 사는 과정을 먼저 이야기 히고 넘어가야 겠다.
화산(華山)의 최고 급경사에 협소한 오운대(五雲臺) 계단길을 올라 금쇄관(金鎖關) 문을 들어서자 마자 오른쪽 좁지만 평평한 자리에 華山靑松詩集(화산청송시집) 이라는 작은 책을 10여권 놓고 좀 허름한 검은 옷을 입은 노인네가 반쯤 구부리고 서서 손님을 찾고 있었다.
나는 책 표지의 윗 글자만 보고 화산에서 찍은 영상들을 앨범으로 편집하는 과정에 필요한 화산에 관한 사진이나 설명문인 줄 알고 얼른 한권을 집어들어 표지를 자세히 보고, 책장을 넘겨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딴 판으로 한시(漢詩) 시집이었다.
실망하고 책을 제자리에 놓고 일어서면서 노인네 시선과 마주쳤는데 노인네는 나보다 더 실망한 눈초리로 책을 놓고 자리를 뜨는 나를 무척 원망스러워 하는 표정이었다.

댓 발짝 걸어가다가 노인 앞으로 되돌아와 책 한권을 다시 집으며 "두얼첸?" 하니 노인네는 무척 반가운 눈치로 두 손 손가락을 모두 펴고 기운없는 목소리로 "쓰위안" 이라한다. 10위안, 우리돈으로 1800원이다. 얼른 지갑에서 10위안짜리 지폐 하나를 꺼내 주니까 몇 번이나 허리를 굽신거리며 "세세" 를 반복한다.

자리를 뜨는데 30대쯤으로 보이는 여인이 내 곁으로 다가서며 말을 거는데 짐작으로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는 것 같아 무심결에 "코리안"이라 했더니 "아유스피크 잉글리쉬" 하고 영어 아느냐고 묻는다. "베리 푸어" 라고 답하니까 웃으면서 '오늘 좋은 일 했다'며 노인에게 책 한 권 팔아 준 것이 그녀는 무척 보기가 좋았던 모양이다.

지금까지 내가 상식적으로 아는 '華夏'(화하)의 華(화)는 중국 사람들이 자신들 종족을 이르는 말로서 중화(中華) 사상을 말하고, 夏(하)는 중국 신화의 삼황오제(三皇五帝)의 마지막 임금 순(舜)이 황하치수(黃河治水)를 잘한 우(禹)에게 임금자리를 양위(讓位)하여 세운 중국 최초의 국가 하(夏)나라를 말한다.
따라서 화하(華夏)는 '한(漢)나라 이전에 중국을 칭하는 말' 이고, 한(漢)나라 이후에는 한족(漢族), 한자(漢字), 한문(漢文) 등 漢(한)자가 곧 중국을 칭하는 말로 華夏(화하)는 잘 쓰지 않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그래서 나이가 꽤 많은 사람도 '華夏'(화하)라는 말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

중국의 식자들은 이번 여행에서 오른 서안(西安)의 화산(華山)이 '중국 민족의 뿌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돌아와서 인터넷을 뒤지다가 안원전(安原田)의 21세기 담론의 글「‘화하(華夏)’명칭의 수수께끼」'華夏'(화하)에 대한 개념을 잘 설명하는 것 같아 관련 내용을 발췌하였다..

● 안원전(安原田)의 21세기 담론 「‘화하(華夏)’명칭의 수수께끼」
“화하족(華夏族)은 화산(華山)주변과 화수(夏水)근방에 정착하게 되면서 얻어진 이름이다”, “실제로 문명수준이 비교적 높은 중원지역 존칭의 하나로 문화수준이 높은 지역을 하(夏)라고 하고 그러한 종족을 화(華)라 하는데 화하(華夏)를 합쳐서 중국(中國)을 칭한다.” 이렇게 습관처럼 쓰게 된 칭호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상이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화하(華夏)’라는 명칭은 익히 알려진 중화민족의 호칭이다. 그러나 ‘화하(華夏)’라는 명칭의 유래는 무엇인지 왜 중국인을 ‘화하민족(華夏民族)’, ‘화하의 자손(華夏之孫)’으로 부르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상이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화하족(華夏族)은 한족(漢族)의 전신(前身)으로, 한대(漢代)이후에는‘한인(漢人)’, ‘당인(唐人)’이라는 호칭이 있었으며 선진(先秦)시대에는 ‘화(華)’또는‘하(夏)’라고 불렀다.

‘화하(華夏)’라는 두 글자의 해석에 있어 《좌전(左傳)》, 《맹자(孟子)》등에는 ‘화(華)’, ‘하(夏)’를 ‘이(夷)’와 서로 대응되는 것으로 해석하였는데 예를 들면,
①《좌전(左傳)》에 “변방이 하(夏)를 도모하지 않고, 이(夷)가 중화(中華)를 어지럽히지 않는다"(裔不謀夏, 夷不亂華) 라는 말이 나오고,

②《맹자(孟子)》에는 “이(夷)를 이용해 하(夏)를 변모시킨다"(用夷變夏)라는 말이 나온다.

③동한(東漢) 허신(許愼)의 《설문해자(說文解字)》에는 “화(華)는 번영(繁榮)이고, 하(夏)는 중국의 사람이다" (華榮也 夏中國之人也) 라고 해석하고 있다. 중국(中國)’은 원래 중원(中原)을 가리키는데, ‘사방(四方)’ 혹은 ‘사이(四夷)’와 대칭(對稱)되는 말이다.

④《시경 소아 육월서(詩經 小雅 六月序)》중, “사이(四夷)가 서로 침입해오면 중국은 쇠약해진다(四夷交侵, 中國微矣).”라는 문구가 있는데, ‘중국’을 ‘사방’의 상대적인 개념으로 두었음을 잘 보여준다. ‘夏(하)’와 상대적인 ‘裔(상)’ 역시 먼 변경의‘사방’을 가리킨다.

⑤장태염(掌太炎)선생은 고대 중국이 하(夏)라는 종족명(種族名)과 화(華)라는 국명(國名)을 썼다고 여겼는데 하(夏)는 하수(夏水)에서, 화(華)는 화산(華山)에서 나온 말로, 통상적으로 “화하족(華夏族)이 화산(華山)의 주변과 화수(華水)의 변두리에 정착한 것에 기인하여 얻은 이름이다.”라고 여겼다.

⑥갑골문(甲骨文)에‘화(華)’는‘河(하: 황하)’의 가장 중요한 신(神) 바로 다음으로 섬서(陜西) 관중(關中)지역의 화악(華岳)을 가리킨다. 이 일대는 주(周)나라가 낙읍(洛邑 : 洛陽)으로 도읍을 옮기기 전의 중심지역으로서, 구석기시대의 남전인(藍田人)부터 신석기시대의 앙소문화(仰韶文化), 용산문화(龍山文化)에 이르기까지 그 주위는 모두 문화유물이 집결된 지역으로서 전설 속 황제(黃帝)와 주족(周族)이 모두 이 일대에서 활동하였으므로 화산(華山)은 초기 화하문화(華夏文化)의 상징이 되었다.

⑦전백찬(?伯贊)은 화하(華夏)가 실제로 역사상 ‘하족(夏族)’의 한 분파라고 여겼다. 역사상의 하족(夏族)은 일찍이 오늘날의 감숙(甘肅), 하남(河南), 산서(山西)일대에서 활약했는데, 후에 자연환경의 변천에 따라 하족(夏族) 역시 잇따라 사방으로 옮겨갔다.

그 중 중원일부로 동천(東遷)한 분파는 후에 동하(東夏) 또는 화하(華夏)라고 불렀으며, 서쪽 감숙(甘肅)으로 이동한 분파는 서하(西夏) 또는 만하(蠻夏)라고 불렀고, 원래 지역에서 계속 머무른 이들은 후에 대하(大夏)라고 불렀다. 따라서 동하는 서하와 구별되고 화하는 만하와 구별된다. 또 대하(大夏)는 동하(東夏), 서하(西夏)와 구별되는 칭호로 쓰였는데 이는 하족(夏族)의 미칭(美稱)이자 총칭(總稱)이다.

⑧범문란(範文瀾)은 화하(華夏)라는 명칭의 가장 기본적 함의는 역시 문화에 있다고 여겼다. 문화수준이 높은 주례(周禮)지역은 하(夏)가 되고 그 사람이나 종족은 화(華)로 칭하며 화하(華夏)를 합쳐 중국을 칭한다는 것이다.

⑨풍천유(馮天瑜)는 중화민족의 조상을 대개 화하(華夏), 동이(東夷), 묘만(苗蠻)의 3대 집단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⑩유이징(柳 言台 徵)선생은 《중국문화사(中國文化史)》에서, 중화민족의 구성은 다원화 발전의 한 과정으로, 설령 중화민족 중 가장 많은 인구와 역사를 가진 한족(漢族)을 예로 들어봐도 “그 혈통은 섞인 것으로, 순수한 단일 종족으로 이루어진 것이 결코 아니다. 수천 년에 흡수 동화한 타 종족은 매우 많다.”고 지적하였다. 중화민족(中華民族)의 형성은 실로 풍부한 역사적 함의(含意)를 지니고 있다.
    문화수준이 낮거나 주례(周禮)를 따르지 않는 사람이나 종족에 대해서는 그 방위에 따라서 동이(東夷), 남만(南蠻), 서융(西戎), 북적(北狄)이라 하였다.
진,한(秦,漢)시기에 각 민족마다 그 문화의 교류가 상당히 빈번해져‘중국(中國)’의 범위가 넓어짐에 따라서 화하문화(華夏文化) 역시 잇따라 발전되고 확대되었는데 화하문화를 받아들인 종족은 대개 화하족(華夏族)의 범주에 포함시켜 결국은 화하(華夏)가 중화민족(中華民族)의 칭호가 되었다는 것이다.


● 중국인의 조상 하화족의 중심지는 황하 중,상류(西安), 우리의 조상 동이족의 중심은 황하 하류
중국의 역사서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전설의 인물 삼황오제(三皇五帝)황제(黃帝)를 중국 민족(夏華族=漢族)의 시조(始祖)로 기록하고 있다.
고대 중국 전설시대의 임금 삼황오제(三皇五帝)
삼황(三皇) : 태호복희(太昊伏犧), 염제신농(炎帝神農), 황제헌원(黃帝軒轅)
- 태호복희(太昊伏羲) : 고대 중국 전설상의 임금, 처음으로 백성에게 고기잡이, 사냥, 목축 등을 가르치고, 팔괘(八卦)와 문자(文字)를 만들었다고 함.
- 염제신농(炎帝神農) : 고대 중국 전설상의 임금, 농사짓는 법을 처음으로 가르치고, 팔괘를 겹쳐서 육십사괘(六十四掛)를 만들었다고 함.
- 황제헌원(黃帝軒轅) : 중국 한족(漢族)의 시조, 소전(少典)의 아들. 원래 성은 공손(公孫), ‘헌원의 언덕’에서 출생하였다 하여 헌원씨(軒轅氏)라 불렀다. 기원전 2700년경 천하를 통일하고, 문자, 수레, 배 등을 만들고, 도량형, 악법(樂法), 역법(曆法), 음악(音樂), 잠업(蠶業) 등 많은 문물과 제도를 확립하였다 하며, 재위기간 100년이라 함.

오제(五帝) : 소호(少昊), 전욱(顚頊), 제곡(帝곡), 당요(唐堯), 우순(虞舜)

* 요순(堯舜) 당우(唐虞) : 통상 태평성대(太平盛代)를 말하는 상투어 '요순(堯舜)시절' 이란 말은 중국 고대요( 堯)임금과 순(舜)임금 때를 말하며, '당우(唐虞)시절'이라고도 한다.
앞의 요순(堯舜)은 임금의 칭호인 제요(帝堯), 제순(帝舜)에서 딴 것이고, 뒤의 당우(唐虞)는 요(堯)임금의 본명 요당(陶唐), 순(舜)임금의 본명 유우(有虞)에서 딴 것이다.

원래 황제헌원(黃帝軒轅)은 기원전(B.C) 2692년에 태어난 사람이다. 기울어진 염제신농씨(炎帝神農氏)를 대신하여 제위에 오르면서 공손씨(公孫氏) 성을 희(姬)로 바꾸었다고 하는데 희(姬)는 황하 중,상류의 한 갈래인 희수(姬水)에서 따 온 것이라 한다.
이는 곧 중국인의 뿌리인 황제가 황하의 중, 상류 지역에서 일어 난 족속임을 입증하는 기록이다. 즉 진시황에 의한 중국 대륙의 민족통일이 이루어지기 전 중국 대륙에는 황하 중, 상류인 서쪽에는 황제를 중심으로 하는 화하족(華夏族)이 있었고, 황하 하류인 동쪽에는 또 다른 족속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역사서들은 이들을 동이(東夷)라고 기록하고 있다.

중국의 고대 국가로 하(夏) 나라와 주(周)나라가 하화족이 주도하여 세운 나라로서 이들은 황하 중,상류 지금의 섬서성이 그 발상지이고 중심은 서안(西安)이다. 서안의 고대 신석기 반파유적(半坡遺跡)은 하화족이 남긴 문화 유적인 것이다.

그 이후로도 서안에는 진(秦), 한(漢), 당(唐)으로 이어지면서 15왕조 73황제가 이 곳에서 통치를 했고, 72황릉 있다고 한다.(황릉 수가 1개 적은 것은 당나라 때 여황제가 된 측천무후가 남편 고종과 합장 되었기 때문이라 한다). 이 또한 고대 중국 하화족의 터전이 서안을 중심으로 한 서쪽이었던 것을 말해 준다.

화하(華夏)집단은 황토고원에서 흥기하여 이 후 황하를 따라 동쪽으로 들어와 중국의 중부, 북부 일부지역으로 흩어졌는데 대략 지금의 앙소문화(仰昭文化), 하남용산문화(河南龍山文化) 분포지역과 같다. 화하집단은 황제(黃帝)와 염제(炎帝)두 갈래가 위주가 된다.

동이(東夷)집단의 활동지역은 대략 오늘날의 산동(山東), 하남(河南) 동남쪽과 안휘(安徽) 중부 일대 즉, 대문구문화(大汶口文化), 산동용산문화(山東龍山文化)와 청련강문화(靑蓮崗文化) 등이 분포하는 광범위한 지역이다. 전설 속 태고(太皐), 소고(少皐), 태양을 쏜 후예(后裔), 화하(華夏)의 시조라고 하는 황제와 악전고투를 치른 치우(蚩尤)가 모두 이 집단에 속한다.

그러나 진시황의 중국 통일 이후 동이족은 숙청되거나, 척박한 변방 특히 남방으로 쫓겨나거나, 화하족(한족)으로 동화되어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중원에는 실제 동이족은 존재하지 않고, 이 말(東夷)의 원래의 뜻은 '중국 대륙 동쪽(東)의 큰 활(大弓=夷)을 쓰는 족속'이란 뜻으로 민족을 지칭하는 말이었는데, 진시황의 중국 대륙 통합 이후로는 만주, 한반도, 일본열도 등 중국대륙 동쪽의 민족을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과 함께 ‘오랑케’로 비하(卑下)하는 말로 변질되었다.

중국 고대역사에서 전국시대(戰國時代) 말기에 진(秦), 초(楚), 연(燕), 제(濟) 한(韓), 위(衛),조(趙), 이른바 전국(戰國) 7웅(七雄)으로 정립(定立)되었다가 진시황의 진(秦)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는 과정을 보면 맨 서쪽의 서안(西安-咸陽)을 기점으로 점차 동쪽으로 정복해 나가 통일이 완성된 후 동쪽 끝에 있는 태산(泰山: 중국 五嶽 중 東嶽)에 올라 하늘에 천하 통일을 고유(告諭)하는 제사 즉 봉선(封禪)으로 마감한다.
전국(戰國) 7웅(七雄)으로 정립(定立)

황제(黃帝)는 중화민족이 공동으로 제사를 올리는 선조가 되었고, 화하집단 역시 연이은 승리로 자신들의 지위를 공고히 하여 오랫동안 중화민족(中華民族)을 대표하게 되었다.

이로써‘하화(華夏)’라는 명칭이 원래 종성민족(種姓民族)의 개념이 아니라 지역문화의 개념임을 알 수 있다. ‘화하족(華夏族)’이 실제로 가리키는 것은 문화적으로 공통된 전통을 형성하고 혈연적으로 하나로 융합된 황하중류지역에 거주하는 고대 중국의 각 민족에 대한 통칭이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여러 민족이 융합된 이후의 산물인 것이다.‘화하(華夏)’라는 명칭은 혈통보다는 문화적으로 묶인 집단의 개념 쪽이 훨씬 더 강하다. 쉽게 말하면 현재 중국 인구(약15억 추정) 중에는 몇%에 불과하지만 화하족(華夏族 : 漢族)과 혈통이 다른 56개 소수민족이 있지만 대부분을 차지하는 화하족(華夏族 : 漢族) 중에도 상당부분 진시황의 민족통일 과정에서 숙청되지 않거나 변방으로 쫓겨나지 않기 위해서 화하족에 동화된 우리 민족의 조상인 동이족(東夷族)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화하집단 및 기타 민족을 대표하는 한족(漢族)이 중화민족(中華民族)이라는 대가족에서 주도적인 지위를 차지하는 이유는 그 인구의 방대함 때문만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비교적 잘 발달된 문명과 문화 때문이라 하겠다. 중국의 역사 발전과정 중, 중원지역의 농업, 경제 문화의 발전은 주변 소수민족과 비교해보면 기본적으로 우세한 입지를 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중화민족(中華民族)이 몇 번의 민족 ‘대융합’ 과정에서 한(漢)민족의 문화는 강력한 전파력과 친화력으로써 늘 주변 소수민족에게 영향을 끼쳤고, 소수민족이 중원으로 유입될 시기에 그 권력을 장악하던 소수민족의 통치계층 역시 최후에는 어쩔 수 없이 한(漢)문화를 수용하여“야만적인 정복자가 최후에는 피정복자의 문명에 굴복 당하는”식의 역사적 장면을 거듭 출현시켰다. 동시에 ‘화하문화(華夏文化)'도 끊임없이 주변 문화로부터 장점을 취하여,“하(夏)”, “이(夷)”변화의 부단한 상호 조화로부터 모든 것을 총망라하는 드넓은 면모를 형성하였다.

모레면 우리 대통령이 중국에 가서 그 지도자 시진핑과 마주앉아 양국 관련 현안들을 논의 하고, 시진핑의 정치적 고향이요 중화민족의 뿌리 서안을 방문한다.

대통령이 두 번째로 방문하는 서안(西安)의 역사를 훓더보면
① 기원전(BC) 1122년에 주(周) 무왕(武王)이 동이족이 세운 나라로 알려진 상(商: 殷)나라를 멸망시키고 이곳을 수도로 잡았고,
② 기원전(BC) 1122년부터 춘추시대가 시작되면서 주(周)의 가장 강력한 제후국 진(秦)나라가 이곳 서남부 함양(咸陽)에 수도를 잡았고,
③ 기원전(BC) 221년 진(秦)나라 시황제가 이곳을 기점으로 하여 동쪽의 6국(楚, 燕, 濟, 韓, 衛, 趙)을 정복하여 천하를 통일하면서 함께 동이족(東夷族)을 몰락시켰고,
④ 기원전(BC) 207년 한(漢) 고조(高祖) 유방(劉邦)이 초패왕(楚覇王) 항우(項羽)와 함께 진(秦)나라를 멸망시킨후 항우를 패퇴시키고 이곳을 천하통일 한(漢)나로 수도로 잡았으며, 소위 실크로드를 개척하여 서방세계와 통교하면 서 이미 국제도시화 하였고,
⑤ 지금부터 1392년 전(서기621년)에 당(唐) 고조(高祖) 이연(李淵) 당나라를 세우면서 수도를 이곳으로 정하고, 실크로드 개척에 힘써 서안은 세계 최초로 인구 100만명이 넘는 국제도시가 되었다.

이렇게 서안(西安)은 중국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고도(古都)로서 앞서 언급한 데로 중화인들의 뿌리가 이곳에서 시작되어 우리 동이족을 중원으로 부터 몰아내는데 기지 역할을 한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2년 전부터 우리나라 제일의 기업 삼성(三星)이 이곳에 $70억(8조원)을 투자하여 반도체공장을 건설하고 있는 중이다. 대통령께서 한-중정상회담 후 이곳을 방문하도록 결정한 것은 참으로 잘 했다고 생각된다.
'화하의 뿌리(華夏之根)''동이(東夷)'의 후손들이 이 시대의 첨단 반도체기술을 심고있고, 동이 후손의 대한민국 대통령이 방문한다. 이 얼마나 감격스런 일이 아니겠는가?
과거 역사에 기죽지 말고 가슴 펴교 '옛날 당신네들이 중원 땅에서 몰아낸 동이(東夷) 후손의 대통령이 왔노라' 하고 큰 소리 치고 올 것을 부탁드리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