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怡雲)의 삶
< 구름을 즐기며 살다 >
沙月 李盛永(2020.7.25)
아사달산악회의 한 분파인 월요산악회가 서울대공원에 모여 과천매봉(지금은 중턱 약수터)을 오르고 점심 먹으로 가는 음식점이 몇 군데 있는데 그 중 누가 한턱 낸다고해서 격을 좀 높여서 가는 집에 이운정(怡雲亭)이라는 음식점이 있다

과천에서 인덕원으로 나가면서 오른쪽 마지막 동네 갈현동에 있는데 전철에서 좀 멀지만 음식점에서 승합차를 보내오기 때문에 예약할 때 시간을 정하면 대공원까지 차가 온다.

이 음식점의 이름에서부터 음식점 앞에 세워놓은 이동식 입간판 아래쪽에 다음 글귀가 품위가 있어 보인다.
이운정(怡雲亭) 이동식 입간판
‘나랏일에 몰두하느라 지쳐있는 이들'
다분히 정부과천청사 '관리고객님들'에게 따리 부치는 말이겠지만
그래도 '세상사는데 힘겨운 이들이
세상 일 잊고 만난 음식 먹으며
편안히 쉬었다 가는 곳입니다'
애교가 있고 품위가 있다.
그런데 '맛난'을 소리나는데로 '만난'으로 써놔서 누가 자세히 보면 웃겠네
아래 종이 받침에는 맞게 썼는데, 입간판이라고 과민했나?
또 이 간판과 똑 같은 내용의 글을 8절지 크기의 종이에 인쇄하여 식탁 음식 그릇 받침으로 깔아 놓기도 한다
개인당 그럿 받침 종이
이 받침 종이에는 ‘이운(怡雲)’ 이라는 말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중국 남조의 양나라 무제가 잠저(潛底: 임금이 되기 전) 시절 둘도없던 친구였던 유명한 도사(道士)이자 의가(醫家)인 도홍경(陶弘景,AD456~536)이 다음과 같이 양나라 무제(武帝)의 부름을 받았다.

“산중에 무엇이 있길래 그대는 미련을 두고 조정으로 돌아오지 않는가?”

도홍경은 이렇게 답시(答詩)를 써 보냈다..

산중에 무엇이 있냐고요?(山中何所有,산중하소유)
산마루에 흰 구름이 많지요.(嶺上多白雲, 영상다백운)
다만 홀로 즐길 뿐이지(只可自怡悅,지가다이열)
그대에게 가져다 줄 순 없지요.(不堪持贈君,불감지증군)

이 시에 쓰인 두 글자 3행의 이(怡)와 2행의 운(雲)을 따서 ‘이운(怡雲)’ 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이(怡)자의 뜻을 찾아보면 기쁘다, 기뻐하다, 기쁘게 하다, 즐기다, 즐거워하다, 온화 (溫和) 하다 등이 있는데 여기서는 ‘구름을 즐긴다' 는 뜻으로 해석되고 있다.

여기 이운(怡雲)과는 경우의 차이는 있지만 유사한 개념의 용어로 이은(吏隱)이란 말이 있고, 또 은일(隱逸)이란 말도 있다.
이운은 아예 벼슬을 하지 않고 세속을 벗어나 산중에서 경(經)을 읽으며 약초뿌리나 캐고 사는 삶이다. 아무 근심걱정 없이 자연을 벗하고 사는 소요로운 그야말로 은자(隱者)의 경지를 말한다,
이은은 부득이 한 사정이 있어 벼슬을 하고는 있지만, 남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게 조용히 하고싶어하는 '숨어서 하는 벼슬살이'를 말한다.
은일은 숨어있는 현자(賢者)를 발굴하여 임금이 특별(特別)히 벼슬을 주는 것을 말한다.
조선시대 벼슬하는 길은 세가지가 있었다. 첫째 가장 많이 차지하는 과거(科擧) 급제이고, 두번째가 조상의 공덕(功德)에 따른 음직(蔭職), 그리고 세번째가 위 은일(隱逸)이다.
또 이운의 경우 사람들은 그 사람을 처사(處士)라 하고, 은일로 관직에 나간 사람이나 이를 거절한 사람을 징사(徵士)라 호칭한다. '징발(徵發)된 선비(士)'라는 뜻이다.

내가 알고 있는 나의 방계(傍系) 선조 중에 '징사(徵士)'로 불린 분이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와 연봉(蓮峰) 이기설(李基卨) 두 분이 있는데. 이중 식산공은 내가 직접 묘소에 가서 묘갈비(墓碣碑) 앞면을 찍어 온 적이 있어 아래와 같이 올린다
식산공 묘갈비
정범조(丁範祖) 찬, 이익운(李益運) 서,
경북 상주시 내서면 북장리 북장사 인근 천주산(天柱山) 중턱에 있음
학식이 높은 선비가 관직에 나가지 않고 향리나 심산에 묻혀 사는 사람을 '처사(處士)'라고 하고,
이런 분들을 찾아내서 임금이 불러 벼슬을 준 선비(처사)를 징사(徵士)라 부른다.
또 나의 방계(傍系) 선조 중에 조선조 세종대왕 때 삼장원(三壯元)을 하였고, 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신숙주등과 호당(湖堂)에 뽑혀 함께 공부하였으며, 또 그분들과 함께 십여 년간 집현전에서 학자로서 세종대왕의 문화창달에 일익을 담당했던 저헌공(樗軒公) 이석형(李石亨)이라는 분이 있다.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차지하는 계유정난(癸酉靖難) 때는 부친상을 치르느라고 난을 피해갔고, 사육신난(死六臣難)에는 전라도 관찰사로 나가 있었기에 피해갔지만 마음속에는 옛 친구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벼슬을 하기는 하지만 늘 목사(牧使), 관찰사(觀察使), 체찰사(體察使). 사신(使臣) 등 외지로 나돌면서 가는 곳마다 시문(詩文) 남겼는데 강음(江陰: 현 江華)를 순찰하며 남긴 시에 이은(吏隱)이 나온다.
江陰東軒(강음동헌) 강음 동헌에서

蕭條殘縣邑(소조잔현읍) 쓸쓸하게 쇠잔한 고을
牢落古江山(우락고강산) 적적한 고을일세
騁目饒淸興(빙목요청흥) 눈길 펼치니 맑은 흥 풍요롭고
憑軒似太閒(빙헌사태한) 난간에 기대보니 너무나 한가롭네
龍吟聞水府(용음문수부) 용의 울음소리 수부(水府:용궁)에서 들려오고
犬吠認人(견폐인인환) 개 짖으니 사람 사는 세계인줄 알겠네(: 家의 윗부분 갓머리 아래 環의 우편 부분)
吏隱今如問(이은금여문) 이은(吏隱)을 지금 묻는다면
宜於此往還(의어차왕환) 마땅히 이곳에서 오가리라 하겠네

이야기는 다시 이운의 주인 도홍경(陶弘景)으로 돌아가자.
도홍경은 중국 역사중 춘추전국시대를 제외하고는 가장 복잡한 시대인 5-6세기의 남북조시대 송(宋), 제(齊), 양(梁), 진(陳)의 남조 4왕조 중 송 효무제(孝武帝) 3년(AD456)-양 무제(武帝) 5년(AD536) 간에 걸쳐 81세를 수한 인물이다.
5 ∼ 6세기 남북조시대 요도
남조(南朝)는 5 ∼ 6세기 중국 남북조시대 에 양쯔강(揚子江) 하류지역을 점거하고,
건강(建康: 현南京)을 국도(國都) 로 한 4왕조에 대한 총칭.
4왕조는 송(宋:420~479) ·제(齊 :479~502) ·양(梁:502~557) ·진(陳:557∼589) 등을 가리킨다.
당나라 이연수(李延壽)가 쓴 《남사(南史)》는
송(宋)의 영초(永初) 1년(420)에서 진(陳)의 정명(禎明) 3년(589)까지
170년 동안의 사실(史實)을 기술하고 있다.
(여기 宋은 唐 다음의 忠臣 岳飛, 唐宋八大家 중에 歐陽修, 蘇洵, 蘇軾, 蘇轍, 曾鞏, 王安石 등 6명을 배출한 宋과는 다른 나라임)
이 남조에 앞선 오(吳: 三國誌의 東吳) ·동진(東晉: 삼국을 통일한 司馬懿 후손이 새운 나라)을 합쳐서 육조(六朝)라고도 한다.
양(梁)나라와 동진(東晉)이 나왔으니 관련 여담 좀 하고 넘어가자.
내가 나이 때문인지 평생 군대생활 한 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급격한 청력(聽力) 저하 때문에 어느새 중화TV를 누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듣지 않고 보기만 해도 되니까(자막).
작년 부터 금년까지 3-4회 재탕을 하는 '랑야방(琅邪榜)'이라는 드라마를 나올 때마다 보고 또봐서 이제는 다 외울 정도가 되었는데 이 드라마의 배경이 바로 양나라 때의 이야기다.
또 한문 배을때 입문서(入門書)라 할 수 있는 '천자문(千字文)'이 바로 이 양(梁)나라 사람 주흥사(周興嗣:470∼521)가 글을 짓고, 동진(東晉)의 왕희지(王羲之)의 필적 중에서 해당되는 글자를 집자(集字)하여 만들었다고 하며, 주흥사(周興嗣) 가 이 천자문을 짓고 하룻밤 사이에 머리가 하얗게 세었다고 하여 ‘백수문(白首文)’이라고도 한다 하였다.
양 무제(AD 502-516在位)에게 이운(怡雲)의 답시(答詩)를 써 보낸 도사 도홍경은 전조 제(齊)나라 무제(武帝)의 이른바 ‘영명(永明)의 치(治)’(AD483-483)가 시작되면서 40세(AD484)에 일찌감치 ‘이운의 삶’ 즉 구름을 즐기는 삶을 꿈꾸고, 제나라의 꽤 높은 관직을 내팽개치고 식솔을 끌고 강소성 모산(茅山) 산속으로 들어갔다.

모산은 강소성 구용현(句容縣) 동남 쪽 산으로 원 이름은 구곡(句曲)이었는데 한(漢)의 모영(茅盈: 주*)과 아우 모고(茅固), 모충(茅衷)이 이 곳에서 수도하여 등선(登仙)했다 하여 모산(茅山)이라고 부른다. 대모봉, 중모봉, 소모봉 세 봉오리가 있다.
(주)* 모영(茅盈)은 유주(幽州) 사람으로 기원전 145년 출생.18세 때 북악 항산(恒山)에 들어가 삽주(朮) 먹는 식이법(食餌法)으로 수행하여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린 신선이라 불리며 수백 명의 천관(天官)을 데리고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AD502년 제나라는 망하고 동일한 성씨 소씨(蘇氏)인 소연(蘇衍)이 양(梁)나라 무제(武帝)가 된 후에도 도홍경을 못 잊어 모산에 여러 번 사람을 보냈지만 응하지 않았다.
도홍경은 위 답시(答詩) 외에도 한 폭의 그림을 무제에게 보냈다. 무제가 그림을 펼쳐보니 소 두 마리가 그려져 있었다.
소 한 마리는 청산녹수 사이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고 있고, 다른 한 마리는 금으로 된 멍에를 쓰고 힘들어하고 있다.

무제는 이를 보고 더는 하산을 권하지 않았다.
다만 국가에 중대한 일이 생기면 사람을 그에게 보내 자문을 받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를 ‘산중재상(山中宰相)’이라 불렀다.
산중에 우유은일(優遊隱逸)하면서도 나라 일을 돕는 실사구시(實事求是)적인 인물을 이르는 말이다.

당(唐) 이현정(李玄靖) 찬(撰), 안진경(顔眞卿) 서(書) 도홍경(陶弘景)의 비석에 아래 탁본의 구절이 있다.
(우유구곡울위왕자지사 출입명정특총견여지귀)
"구곡(句曲: 모산)의 울림(鬱林
: 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진 숲)에 노닐면서도 왕사(王師)가 되어,
명정(明廷
: 明君이 있는 朝庭)에 출입하여 견여(肩輿: 가마)를 타는 존귀함(特寵)을 입었다"
세상만사가 다 귀찮아지면 그리워지는 게 있다. 세속을 벗어나 산중에서 경(經)을 읽으며 약초뿌리나 캐고 사는 삶이다. 아무 근심걱정 없이 자연을 벗하며 사는 은자(隱者)의 소요로운 경지. ‘이운’이 담고 있는 뜻이다.
그러나 ‘구름을 즐긴다’는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번뇌와 탐욕, 이런 저런 가지각색을 사연은 안고 사는 사람들 시쳇말로 먹고 살기 바빠 마음 편히 하늘의 구름 한번 쳐다본 적이 있었던가.
내가 고향 沙月에 선친이 남긴 것을 개축한 시골집이 있어 "이번에 가면 느긋이 있다 와야겠다"고 내려가지만 삼일이 안돼서 "빨리 올라가야겠다"며 집사람 졸라 올라오기 바쁘다. 운동도 해야겠고, 친구들 얼굴도 봐야겠고----

도홍경은 늙어막에 도교(道敎) 모산종(茅山種)의 창시자인 모산의 산중에서 유불도 삼교를 겸수(兼修)하면서, 도교의 외단술과 양생술을 깊이 연구했다.
갈홍(葛洪: 東晉 시대의 283~ 363년 도교학자로 호는 抱朴子) 이후 가장 뛰어난 연단가 (煉丹家: 道家에서 不老長生 약을 먹는 사람들)로 알려진 그는 의학에도 정통해 ‘본초경집주’, ‘명의별록’ 등의 의서를 남겼다.
도홍경이 은거한 모산은 도교 모산파(茅山派)의 성지이기도 하지만, 모산 삽주(茅蒼朮)라는 약초의 산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삽주는 우리나라 산에도 많이 나는데 지금은 약초로보다 이른 봄에 새싹이 국거리 재료로 아주 좋아 '삽주싹' 나물로 많이 뜯어온다.

이렇게 이운(怡雲)의 답시와 이를 쓴 사람이 유명해지자 이 말은 또 다른 데에도 쓰여졌다.
조선조 말 순조 때의 실학자 풍석(楓石) 서유구(徐有)의 방대한 저서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林園十六志 또는 林園經濟十六志 ) 의 제14분야의 명칭이 이운지(怡雲志)인데 선비들의 취미생활에 관해 서술한 것이다.(: 矩 아래 木)
임원경제지 필사본 모습
임원경제지 16분야는 본리지(本利志) 13권, 관휴지(灌畦志) 4권, 예원지(藝宛志) 5권, 만학지(晩學志) 5권, 전공지(展功志) 5권, 위선지(魏鮮志) 4권, 전어지(佃漁志) 4권, 정조지(鼎俎志) 7권, 섬용지(贍用志) 4권, 보양지(養志) 8권, 인제지(仁濟志) 28권, 향례지(鄕禮志) 5권, 유예지(游藝志) 6권, 이운지(怡雲志) 8권, 상택지(相宅志) 2권, 예규지(倪圭志) 5권 등 총 113권의 방대한 저서다.(: 艸 아래 保)

분야별로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본리지(本利志, 권1∼13):밭 갈고 씨 뿌리며 거두어들이기까지의 농사 일반에 관한 것을 다루고 있다. 전제(田制), 수리(水利), 토양지질, 농업지리와 농업기상, 농지개간과 경작법, 비료와 종자의 선택, 종자의 저장과 파종, 각종 곡물의 재배와 그 명칭의 고증, 곡물에 대한 재해와 그 예방, 농가월령(農家月令), 농기도보(農器圖譜), 관개도보(灌漑圖譜) 등에 걸쳐 서술했다.
② 관휴지(灌畦志, 권14∼17):식용식물과 약용식물을 다루고 있다. 각종 산나물과 해초·소채·약초 등에 대한 명칭의 고증, 파종시기와 종류 및 재배법 등을 설명하고 있다.
③ 예원지(藝宛志, 권18∼22):화훼류의 일반적 재배법과 50여 종의 화훼 명칭의 고증, 토양, 재배시기, 재배법 등에 대하여 풀이하고 있다.
④ 만학지(晩學志, 권23∼27):31종의 과실류와 15종의 과류(瓜類), 25종의 목류(木類), 그 밖의 초목 잡류에 이르기까지 그 품종과 재배법 및 벌목수장법 등을 설명하였다.
⑤ 전공지(展功志, 권28∼32):뽕나무 재배를 비롯해 옷감과 직조 및 염색 등 피복재료학에 관한 논저이다.
⑥ 위선지(魏鮮志, 권33∼36):여러 가지 자연현상을 보고 기상을 예측하는 이른바 점후적(占候的) 농업기상과 그와 관련된 점성적인 천문관측을 논하였다.
⑦ 전어지(佃漁志, 권37∼40):가축과 야생동물 및 어류를 다룬 논저로서, 가축의 사육과 질병치료, 여러 가지 사냥법, 그리고 고기를 잡는 여러 가지 방법과 어구(漁具)에 관하여 설명하였다.
⑧ 정조지(鼎俎志, 권41∼47):식감촬요(食鑑撮要)는 각종 식품에 대한 주목할 만한 의약학적 논저와, 영양식으로 각종 음식과 조미료 및 술 등을 만드는 여러 가지 방법을 과학적으로 설명하였다.
⑨ 섬용지(贍用志, 권48∼51):가옥의 영조(營造)와 건축기술, 도량형기구와 각종 공작기구, 기재·복식·실내장식·생활기구와 교통수단 등에 관해서 중국식과 조선식을 비교해 우리 나라 가정의 생활과학 일반을 다루고 있다.
⑩ 보양지(養志, 권52∼59):도가적(道家的) 양성론을 편 논저로, 불로장생의 신선술(神仙術)과 상통하는 식이요법과 정신수도를 논하고, 아울러 육아법과 계절에 따른 섭생법을 양생월령표(養生月令表)로 해설하였다.(: 艸 아래 保)
⑪ 인제지(仁濟志, 권60∼87):의(醫)·약(藥) 관계가 주로 다루어져 있으나 끝부분에는 구황(救荒) 관계가 다루어지고 260종의 구황식품이 열거되어 있다.
⑫ 향례지(鄕禮志, 권88∼90):지방에서 행해지는 관혼상제 및 일반 의식(儀式) 등에 관한 풀이이다.
⑬ 유예지(遊藝志, 권91∼98):선비들의 독서법 등을 비롯한 취향을 기르는 각종 기예를 풀이한 부분이다.
이운지(怡雲志, 권99∼106):선비들의 취미생활에 관해 서술한 것이다.
⑮ 상택지(相宅志, 권107·108):우리 나라 지리 전반을 다룬 것이다.
(16) 예규지(倪圭志, 권109∼113):조선의 사회경제를 다룬 것으로 양입위출(量入爲出)·절생(節省)·계금(戒禁)·비예(備豫) 등을 다룬 것과 무역이나 치산(置産) 등을 다룬 화식(貨殖) 등이 논술되어 있다.

이 방대한 저술은 농업기술과 농업경제의 양면에서 종전의 농업이 크게 개량되어야 한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으며, 향촌에서의 생활 전반을 시대적 조건과 관련시켜 정연하게 정리한 실학서로, 당시의 경제사정과 경제정책을 살피는 데 사료적 가치가 높은 책이다.
이 책은 유일본(唯一本)인데, 전사(轉寫)한 것으로 보이는 전사본이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또한 서씨가(徐氏家)의 가장원본(家藏原本)인 자연당경실(自然堂經室)의 괘지(罫紙)에 쓴 것 31책이 일본 오사카[大阪]시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풍석문화재단 발간 임원경제지 16분야 번역본과 이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