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부루크(INNSBRUCK) 단상(斷想)
沙月 李 盛 永(2005.12.29)
  오늘 아침신문 동아일보 첫머리에 아주 감동적인 기사 하나가 실렸다. 「소록도서 43년 봉사하다 홀연히 떠난 ‘오스트리아 수녀 할매’」라는 제목의 기사가 마리안 수녀 사진과 함께 실렸다.

2005.12.29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마리안 수녀

  소록도에서 43년간 한센씨병 환자들을 돌보다가 지난 11월 21일 편지 한 장을 남기고 홀연히 떠난 푸른 눈의 두 이국 할머니 마리안 수녀(71, 한글이름 고지순)와 마가레트 수녀(70, 한글이름 백수선)에 관한 기사다.

  떠날 때 써 놓은 편지에 “나이가 들어 제대로 일 할 수 없다. 부담을 주기 전에 떠나겠다”고 적혀 있었고, 취재팀의 인터뷰에 응한 마리안 수녀는 소록도 주민의 감사편지를 전하자 한없이 눈물 지며“내 몸이 늙어 부담 줄까 봐 몰래 떠나왔어요. 마음은 두고 왔으니 친구들 서운해 마세요”라고 했다고 한다.

  또 마리안 수녀는 주민들의 편지를 읽으면서 “눈을 뜨면 한국 생각이 나고, 소록도 꿈을 아직도 꾼다”고 말했다고도 한다. 또 인스부르크에 여동생이 자기집 3층에 꾸며준 3평 남짓한 방에는 한국에서 가져온 자그마한 장식품을 진열해 놓고, 방문에는 붓글씨로 쓴 ‘선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라’는 문구가 붙어있는데 “평생 마음에 담아두고 사는 말”이라 했다고 한다.

  1962년, 20대 후반 꽃 같은 나이에 이 땅에 와서 부모, 자식, 동기간도 ‘문둥병’이라면 고개를 돌리는 한센씨병 환자들 속에서 팔을 걷어 부치고 직접치료하고, 약이 부족해서 고국 오스트리아 지인들에게 호소하여 오스트리아, 독일, 스위스 등지에서 붙여오고, 영양실조의 어린 아이를 위해 영양제와 분유를 부지런히 구해 나르면서 젊은 청춘을 다 바친 43년, 이제 고희의 나이에 ‘부담이 될까 봐’ 홀연히 고향 오스트리아 인스부루크(INNSBURCK)로 떠났다 한다.
  온정과 사랑은 우리에게 주고 부담은 그녀의 고국으로 가지고 간 것이다. 정녕 천사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다. 좋은 기억 하나 없이 이 해가 저무는가 보다 싶더니 이 한 기사로서 올 한해의 보람을 찾은 것만 같다.

  옛날부터 ‘부모가 죽을 때는 정을 떼고 간다’는 말이 있다. 효성이 지극한 자식이 부모가 죽은 후에도 잊지 못 해 저 할 일을 제대로 못할 까 봐 ‘넌덜머리가 나도록 해서 정을 떼고 간다’고 했는데, 두 천사는 정을 떼지 않고 두고 갔다. 그러기에 소록도 주민들은 “큰 할매, 작은 할매 감사합니다”, “그토록 곱던 젊음을---, 소록도 사람들의 손발이 되어 평생을 보내신 두 분께 충심으로 감사합니다” 하면서 소록도 사람들은 그 정을 못 잊어 편지에 쓰고 있다.

  “오빠! 이렇게 산천은 아름다운데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사악한지 몰라” 언젠가 우리 동기간 등산 때 높은 산에 올라 바라보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던지 막내 여동생이 하는 말이 생각 난다. 산천이 아름다우면 그 속에서 사는 사람의 마음도 아름다운 법이다. 아름다운 인스부루크 산천이 이들 천사를 길러 냈다고 생각된다.

인스부루크 위치도

  인스부루크(INNSBRUCK)는 인구 13만 명으로 알프스의 동쪽 끝 자락 오스트리아 티롤주 주도(州都)이다. 그 이름의 어원은 ‘인강(INN’s)에 놓인 다리(BRUCK)'라는 뜻으로 원래 다리의 이름이 도시의 이름으로 된 것이다. 인강은 흑해로 들어가는 다뉴브강 상류의 한 지류이다.

인(INN)강의 다리
서기1180년 안덱스백작이 인강 오른쪽 주거지역을 획득한 후 인강에 놓인 다리를
‘인스부룩(Innsbruck)’이라 부른 것이 시초라고 한다.

2002년 여행 때 '인강의 다리' 앞에서
사진 배경 초소막 왼쪽에 다리가 조금 보인다.

  인스부루크는 1세기경 로마제국 군대가 이탈리아에서 게르마니아로 진출하는 가장 쉬운 알프스횡단코스인 이 곳에 다리를 놓고 주거지를 건설한 것이 도시가 생기게 된 시초라고 한다. 중세 유럽의 안전보장체제인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200년 이상 연임하여 유럽대륙 최고의 권위가 된 합스부룩왕가로부터 1187년에 자치권을 인정 받아 왕가 직영지가 된 곳이기도 하다.


  인스부루크는 합스브룩가의 페르디난드 2세 황태자가 왕위계승권까지 사양하고 한 시민의 딸 필리피네와 결혼하여 아름다운 사랑의 꽃을 피운 암브라스성이 근교에 있고, 1765년 마리아테레지아여제는 그의 황태자의 결혼식을 이 곳에서 거행하고 그 기념으로 개선문을 세웠으며, 개축한 왕궁과 마라아테레지아 거리의 많은 건물들이 바로크건축양식의 진수를 보여 주며, 1964년과 1976년 두 차례 동계 올림픽의 개최지로 올림픽의 도시이기도 하다.

  내가 남부 유럽을 여행한 것은 한 번인데 2002년 육사 임관 40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남부유럽여행이 제안되었는데 모두 다 갔다 왔는지 신청한 사람이 없고, 제안자 여행부장 김연종 부부와 우리 부부, 겨우 네 사람이 관광여행사 프로그램에 끼어 갔었다.

  이 때 이태리를 거쳐 오스트리아 인스부루크에서 1박을 했다. 오후 늦게 도착하여 시내 구경을 하고 교외 언덕바지에 있는 알프스식 호텔에서 숙박한 다음날 아침 서둘러서 스위스로 떠났으니 인스부루크는 겨우 스쳐간 것 뿐인데 깨끗하고 아름다운 산천의 풍경은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산록에는 파란 풀밭과 말쑥한 낮은 집들, 산정에는 하안 만년설을 이고 있고 주변에는 침엽수림에 둘러 쌓인 거므스레한 암봉들, 시내에는 고층 빌딩이 보이지 않고 군데 군데 아름드리 마로니에 숲이 싱그러운 도시---

인스부루크 시가지와 교외 산간마을의 풍경

인스부루크 시내 마로니에 숲

  천재적인 정략으로 이탈리아, 스페인, 헝가리까지 영토를 넓히면서 본격적인 합스부룩가의 번영을 이끈 막시밀리언황제가 1494년 이곳에서 이태리 밀라노의 마리아 비앙카공주와 결혼식을 올리고 기념으로 신부 친정에서 가져 온 금으로 3000개의 금판을 만들어 ‘황금의 지붕’을 만들었다고 한다.

황금의 지붕

  세모의 아침에 신문에 실린 아름다운 천사 마리안, 마가레트 두 수녀의 이야기 때문에 3년 전에 가 본 인스부루크 기억을 회상하게 되었다. 왕년에 국가대표 단거리 육상선수였다가 지금은 이곳에 살고있는 교포 박순애씨가 편 낸 ‘티롤’이라는 관광 안내 책자의 책장을 넘기면서 인스부루크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감상해 본다.

인스부루크에 살고 있는 박순애씨가 편 티롤 소개 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