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군대 갈려고 재신검 신청하는 사람도 있네”
沙月 李盛永(2009. 9. 29)
  징병 신체검사에서 불합격으로 만들어 군대를 안 가려고 하다가 적발되어 기소되는 일은 오래 전부터 심심찮게 방송과 신문에 올랐던 일이다.

  최근에도 멀쩡한 어깨를 탈구시키거나 무릎 연골까지 빼버려서 징병 신체검사에서 불합격을 맞아 병역을 면제받고, 중환자인 남의 진료기록을 바꿔치기하는 수법으로 군대를 피하는 병역비리를 저질러 무더기로 입건된 일이 매일 TV화면과 신문에 대서특필되고 있다.

  그런데 9월 26일자 조선일보 사설에는 눈을 의심케 하는 글이 실렸다.
  ‘제 돈으로 병고치고 군대 가는 이 젊은이들을 보라’ 라는 제하에
  「질병 등의 이유로 병역 면제나 보충역 판정을 받은 젊은이들이 현역병으로 입대하겠다며 재신검을 신청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 5년간만 해도 6396명에 달했다. 이들 중 현역병 복무의 꿈을 이룬 사람은 3224명이었다. ----
  이들 상당수가 “한국 남자면 군대를 가야 하는 것 아니냐?” 는 지극히 단순한 이유를 댄다고 한다. 부모님의 권유로 재신검과 입대를 결심한 청년들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군대 안 갈려고 하는 병역비리 소식만 접하다가 이 기사는 참으로 신선한 느낌을 준다. 더구나 내게는 이와 관련된 옛날 일을 회상케 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지금부터 꼭 22년 전의 일이다. 1987년 초, 대학 전산학과 2학년을 마친 아들 시화<時和>
  “이번 학년 마치고 군대 갔다 와서 나머지 학년을 해야겠어요” 한다.

  당시 전산학과를 졸업하면 군면제 대상이 되기 때문에 군대를 안 가도 되는 데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그는 선배들이 말하기를 군면제를 받고 직장에 입사하면 5년인가 그곳에 매여있어야 하기 때문에 자유스럽지 못하고, 상사로부터 홀대를 받는다고 하니 뜻뜻하게 군필자(軍筆者)로서 직장에 들어가 후렴(後斂)없이 근무에 매진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내심 놀라면서 한편으로는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군대 가는 것을 불출(不出)로 생각하는 당시 사회 전반의 분위기와는 정 반대인 시화의 생각에 놀랐고, 우리 애가 늘 철부지인줄 알았는데 제 갈 길을 확실히 잡고 있구나 하는 생각과 적어도 아버지의 직장인 군대를 업신여기거나 기피하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반가웠던 것이다.

  그래서 전산병 시험에 응시하여 2배순가 뽑는 학과시험에 합격을 하였다.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당시 군에도 컴퓨터가 도입되어 사단급 이상 부대에는 전산실을 창설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시화의 전공이 전산학이니만치 전산병으로 군대생활을 하면 전산 실력을 키우는데 보탬이 되겠다고 생각하여 알아보니 마침 전산병 모집 공고가 나 있어 즉시 응시 한 것이다.

  나머지는 신체검사를 하여 신체에 하자가 없으면 성적순으로 뽑는다는 것이다.
  학과시험 성적도 모집정원의 합격 범위 안에 들었고, 체격이나 체능을 보아 능히 합격할 것으로 생각하고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육군본부 전산실 무슨 과장이라면서 육본으로 좀 오라는 것이다. 당시 나는 국방부 평가분석실에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즉시 내려갔다.
  아들 시화의 신체검사 기록부를 보이면서 모든 조건이 훌륭하고, 학과 성적도 좋은데 시력(視力) 하나가 군 현역병 기준의 컷트라인에 걸려 있어 아까운 생각이 든다면서 ‘재신검’을 신청해 보라고 권유한다. 생각지 못한 의외의 일이었다.

  사무실로 돌아와 학교에 간 아들에게 겨우 전화가 연결되어 신체검사 결과에 대하여 말하니 그도 의외라는 것이다.
  점심시간에 학교 앞으로 가서 시화를 태우고 수도통합병원으로 갔다. 징병 신체검사 부서를 찾으니 상사가 어떻게 왔느냐고 물어서 징병검사 ‘재신검’ 을 신청하러 왔다고 하니, 소정의 신청양식을 주어서 기록하고, 접수하였다. 불합격 것트라인에 걸린 ‘시력’ 특정항목에 국한된 재검사 신청이었다.

  상사가 신청서를 들고 나와 시화를 안내해서 안과 쪽으로 갔다. 안과에는 육군 소령 한 사람과 해군 대위 한 사람, 두 군의관이 책상에 앉아 있었다. 상사는 시화가 육군전산병에 지원했기 때문인지 육군소령 군의관에게로 갔다.

  상사와 이야기 하던 육군소령 군의관이 난색을 표한다. ‘원칙적으로 재신검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재신검 신청양식도 구비되어있고, 군대를 안 갈려고 재신검 하자는 것도 아닌데 그가 왜 그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맨 입으로 되느냐’는 뜻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 두 사람은 멀리서 지켜보며 꾹 참고 기다리고 있었다. 소령과 상사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장면을 보고 있던 해군 대위 군위관이 다가갔다. 해군 대위 군의관도 다 듣고 있었기 때문에 실랑이의 내용을 이미 알고 있는 듯 했다.

  두 사람 사이로 끼어든 해군 대위 군의관이 “세상에, 군대 갈려고 재신검을 신청한 사람도 있네!” 하면서 상사가 들고 있는 재신검 신청서를 낚아채 듯 뺏더니 “내가 책임지지” 하면서 시화를 따라오라고 손짓을 한다.

  시화는 해군 대위 군의관을 따라 시력검사장으로 들어가고, 육군소령 군위관은 밖으로 나가고 나와 상사는 자리에 앉아 기다렸다.

  한 참 후에 해군 대위 군의관과 시화가 나왔다. 해군 대위는
  “이 학생의 시력은 좋은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군 근무를 할 수 없는 상태는 아닙니다. 민간병원 안과에 가서 정밀 검사를 하여 안경을 쓰도록 하십시오. 시력은 합격으로 판정합니다” 하면서 시화의 어깨를 두드리며
  “전산학과면 군면제 대상도 되는데 현역병근무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니 참으로 반가운 일이야. 군근무 잘하고 오라” 고 하면서 수정된 신검기록부를 건네주었다.

  신체검사를 기화로 한 병력비리 문제가 매스컴에 오를 때마다 그 해군대위 군의관의 모습과 그가 내뱉은 말 “세상에, 군대 갈려고 재신검을 신청한 사람도 있네!” 하는 말이 떠오른다.

  또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용감했던 해군 대위 군의관이 있었기에 시화는 군필자(軍筆者)로서 삼성종합기술원에 들어가 올해 17년 째 아침 7시 출근, 저녁 11시 퇴근하면서 세계의 경쟁자들과 경쟁하면서 이 시대의 총아 IT기술 개발의 선두에 서서 진두지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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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신검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가지 더 하고 끝내야겠다.
  1967년 중위로 원주 1군하사관학교에서 교관, 교육통제장교로 근무하는데 느닷없이 광주 육군보병학교 구대장요원으로 발령이 났다.
  동기생들은 이미 한 해 전에 무더기로 보병학교로 뽑혀와 ROTC 4기 구대장을 하고 떠나거나 남아있었고, 그 때 나는 1군 하사관학교로 발령이 났던 것인데 1년 만에 또 보병학교로 발령이 난 것이다.

  보병학교 학생연대에서 육사 22기 초등군사반(OBC) 구대장, 보병후보생(IOCS) 구대장, ROTC 5기 중대장, 1차 단기OCS 중대장, 2차 단기OCS 중대장, 교수부에서 교육통제장교를 하고, 특별보수반(과도기 OAC) 교육을 받고, 월남으로 가서 소총중대장을 하였다.

  단기OCS는 군의 초급장교가 부족하여 전후방 부대에서 고졸 이상으로 근무하는 하사관 중에서 장교 희망자를 뽑아 12주 단기간의 교육 훈련을 마치고 해당 병과의 소위로 임관시키는 임시 제도였다. 임관 후 의무 근무기간은 5년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물론 장기 복무를 희망하면 계속 장교로 근무할 수 있었다. 1차 단기OCS는 주로 헌병, 부관, 경리, 병기, 병참 수송 등 행정병과였고, 2차는 포병, 기갑, 공병, 통신 등 보병을 제외한 전투 및 전투지원병과였다.

  2차 단기OCS 중대장을 할 때의 이야기다.
  후보생으로 발령이 난 하사관들이 하루 전날부터 도착하기 시작한다. 일찌감치 젊은 중사 한 사람이 중대 행정반으로 들어서는데 얼핏 보기에도 보통이 넘는 거인이었다. 한쪽 옆 책상에서 작성하여 제출한 신상명세서를 보니 병과는 포병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저녁 때까지 절반쯤 들어왔다. 저녁 식사 후 후보생 복장으로 갈아입은 다음 중대사전에 집합시키고, 3개 구대로 임시편성을 하면서 그 거인 입소자를 중대장후보생으로 임명하였다.
  일석점호 때와 다음날 일조점호 때, 그리고 보급품 지급하는 과정에서 유심히 지켜봤는데 덩치가 다른 입소자들을 압도할 뿐만 아니라 아주 착실하고 통솔력이 있어 보였다.

  입소할 인원이 250명으로 기억되는데 한 사람 빠짐없이 전원 입소하였다. 다음날은 신체검사를 받는 날이다. 구대장 한 사람 감독하에 중대장 후보생이 인솔하여 전교사 의무대로 갔다.

  두 시간쯤 지난 후 몇 사람이 먼저 왔는데 신체검사 불합격자였다. 그 중에 중대장 후보생이 끼어있는데 그 당당하던 녀석이 풀이 푹 죽어서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중대장 실로 불러 내막을 물어봤더니 신체검사에서 과체중으로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장교의 상위 체중 한계가 85Kg인데 그는 92Kg이었기 때문에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나도 처음 듣는 얘기다. 장교에게 체중의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들은 것이다. 규정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 그러나 불과 이틀간 지켜 본 것 밖에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지만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교 체중에 한계를 두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아마 체력은 약한데 체중이 무거워서 체력으로 체중을 가늠하지 못해 선두에 서서 병사들을 이끌지 못하는 살찐 돼지 같은 상황을 상정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렇다면 체중이 무겁더라도 체력이 이를 지탱할 수 있도록 체력이 강하다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닌가? 그래 한 번 시험해 보자’ 순간적으로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그리고 그를 데리고 연병장으로 나갔다. 먼저 엎드려 팔굽혀펴기(Push-up)을 시켰다. 30번을 느끈히 해냈다. 다음은 철봉에 매달려 턱걸이를 시켰다. 15번을 가볍게 올랐다. 마지막으로 달리기를 시켰다. 100m에 13-14초 정도 되엇던 것으로 기억된다. 다른 후보생들에게 떨어지지 않은 수준이었다.

  이만한 체력이면 자신의 체중을 충분히 지탱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에게 내무반에 가서 기다리라고 하고 중대장실로 돌아와 ‘중대장 소견서’라는 제목을 붙여 신체검사 담당 군의관 앞으로 서신을 썼다.

  내 나름대로 생각하는 ‘장교 체중의 한계’를 두는 목적과 의미, 그를 이틀간 임시 중대장후보생을 시키고 관찰한 내용, 체력을 시험해 본 내용 등을 쓰고, 군의관께서 그의 체력을 직접 시험해 보고 그 체력으로 그 체중을 지탱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합격’으로 판정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아울러 규정 조항의 내용에 앞서 이 조항을 둔 목적이 우선하는 것 아니겠는가. 비록 조항에 규정된 수치가 조금 벗어난다 하더라도 이 조항이 목적하는 바에 벗어나지 않으면 본인에게 유리하게 판정하는 것이 순리가 아니겠느냐? 하는 등등의 내용을 소견으로 쓴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맞는 말인지 궤변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 때 신검담당 군의관도 내 소견에 전적으로 동의 했던 모양이다.
  중대장 소견서를 들려 그를 의무대로 보냈는데 저녁 식사기간이 지나서야 온 몸이 땀에 험뻑 젖어서 돌아왔다. 군의관과 함께 연병장에서 장교 체력검정 항목 대부분의 체력검정을 받고 ‘신체검사합격’으로 판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12주 후 수료 때까지 중대장 후보생을 맡아서 훌륭히 해냈고, 육군 포병소위로 임관하여 휴가를 마친 후 포병학교에서 초등보수교육(OBC)을 이수하고 전방으로 부임하였다.

  그 후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나는 알지 못한다. 이름조차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히 그는 훌륭한 포병장교로서 남못지 않게 맡은바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을 것으로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