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끼전
沙月 李盛永(2010. 1. 23)
내가 찍은 장끼 사진(2010. 1. 11. 촬영)
  나는 연초에 시골집에 갔다가 귀경하면서 상주에 사는 인척(妻姑從四寸) 댁을 들려왔다.

  인척은 서울, 용인 등지에 살면서 대학 교수로 있다가 퇴직 후 고향인 상주시 낙동면 낙동강변에 낙향하여 영계( - 鷄)리턴농장을 경영하며 노후를 근면하게 살고 있었다.
  그곳에도 사대강(四大江)사업 바람이 불어 곳곳에 사업장이 있고, 집으로 들어가는 장천뚝은 폭이 두배로 보강되어 있었다.

  김천에서 상주로 가서 상주-선산을 잇는 25번국도를 따라 선산방향으로 가다가 갑장산에서 발원한 장천의 방천길로 접어들었을 때 마치 당랑거철(螳螂拒轍 = 螳螂怒脾當拒轍 : 사마귀가 팔뚝 걷어부치고 수레바퀴를 멈추려고 대든다) 고사처럼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잘 생긴 장끼 한 마리를 만났다.

  얼떨결에 차를 멈추고 허리에 찬 디카를 꺼내 한 장 찍었다. 위 사진이다.
  장끼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포즈를 취해주며 사진촬영이 끝나고 길을 비키라고 크락션을 눌렀더니 그제서야 장천 냇물 갈대밭으로 날아가 버렸다.

  돌아와서 사진을 열어보니 장끼가 정말 잘 생겼다. 뚜렷한 이목구비, 화려한 몸통 색갈, 긴 알록꼬리--- 내가 여러 번 장끼 사진을 찍은 적이 있지마는 이렇게 화사하게 단장한 장끼는 처음 본다.

  잘 생긴 장끼를 보니 옛날 고교시절 고문(古文)에서 배웠던 『장끼전』생각이 났다.
  부부인 장끼와 까투리가 콩 하나를 놓고 까투리는 ‘위험하니 먹지 말라’고 말렸지만, 장끼는 듣지 않고 아전인수격으로 사설을 늘어놓으며 거드름을 피우고 먹다가 덫에 치어 죽는 다는 이야기로 기억나는데 장끼와 까투리가 실랑이 하는 말들이 재미있었던 것으로 생각난다.

  인터넷에 들어가 『장끼전』을 클릭해 보았다.
  장끼전은 작가, 연대미상의 국문(國文)소설, 우화(寓話)소설, 의인(擬人)소설, 판소리계소설에 해당하는 고문(古文)소설로 조선조의 남존여비(男尊女卑)개가금지(改嫁禁止) 사상에 대한 비판(批判)과 풍자(諷刺)한 소설이다.

  주요 내용을 보면
  장끼가 엄동 설한에 까투리와 같이 아홉 아들 열 두 딸을 거느리고 굶주린 몸이 되어 밥을 찾아 큰 들을 지나게 되었다.
  들에서 땅에 떨어져 있는 붉은 콩 한 개를 발견한 장끼는, 간밤에 불길한 꿈을 이야기하며 먹지 말라고 간절히 만류하는 까투리의 말을 무시하고, 그 콩을 먹으려다 그만 덫에 치고 만다.
  장끼는 이제야 죽게 된 줄을 알고 죽으면서 까투리를 보고 유언하기를 부디 개가하지 말고 수절하여 정렬 부인이 되라고 한다.
  덫의 임자가 나타나 장끼를 빼어 들고 가 버린 뒤 까투리는 장끼의 깃털 하나를 주워다가 장례식을 치른다.
  까투리가 상부(喪夫)하였다는 말을 듣고 조상 온 갈가마귀, 부엉이, 물오리 등이 청혼하나, 까투리는 거절한다.
  그러다가 까투리는 문상을 온 홀아비 장끼를 본 후로 수절할 마음이 사라져서 그 홀아비와 재혼한다.
  재혼한 이들 부부는 아들딸을 모두 혼인 시키고 명산 대천을 구경하다가 큰 물에 들어가 조개가 된다.

  까투리가 말리는데도 장끼는 듣지않고 아전인수(我田引水)격 사설을 늘어놓으면서 콩을 쪼아먹다가 덫에 치어 죽게되자 까투리가 신세타령 하는 장면을 옮긴다
  「그렇지만 장끼란 놈 그 고집 버릴쏘냐.
  "콩 먹고 다 죽을까? 옛글 보면 콩탯자(太)든 사람은 모두 귀하게 되었더라.
  태고(太古)적의 천황씨(天皇氏)는 일만팔천살을 살았고,
  태호복희씨(太昊伏羲氏)는 풍성(風聲: 名聲)이 상승하여 십오대를 전했으며,
  한태조(漢太祖=漢高祖), 당태종(唐太宗)은 풍진 세상에서 창업 지주가 되었으니, 오곡 백곡 잡곡 가운데서 콩탯자(太)가 제일일세.
  강태공(姜太公
: 한무제 때 명제상)은 달팔십(達八十)을 살았고,
  시중천자(詩中天子) 이태백(李太白: 李白)은 고래 타고 하늘에 올랐고(騎鯨上天),
  북방의 태을성(太乙星
: 민속 陰陽家에서 북쪽 하늘에 있으면서 兵亂, 災禍, 生死 따위를 맡아 다스린다고 하는 신령한 별.)은 별 가운데 으뜸일세.
  나도 이 콩 달게 먹고 태공(太公)같이 오래 살고 태백(太白)같이 하늘에 올라 태을선관(太乙仙官) 되리라."

  장끼 고집 끝끝내 굽히지 아니하니 까투리 할 수 없이 물러났다.
  그러자 장끼란 놈 얼룩 장목 펼쳐들고 꾸벅꾸벅 고개짓하며 조츰조츰 콩을 먹으러 들어가는구나.
  반달 같은 혓부리로 콩을 꽉 찍으니 두 고패 둥그러지며 머리 위에 치는 소리 박랑사중(博浪沙中
; 중국 하남성 무양현에 있는 지명으로 나중에 한고조의 전략참모가 된 張良이 조국 韓을 멸망시킨데 보복하여 창해역사를 시켜 秦始皇을 저격하였으나 두번째 수레를 진짜로 알고 치는 바람에 실패함)에 저격시황(狙擊始皇)하다가 버금수레; (다음수레) 맞치는 듯 와지끈 뚝딱 푸드드득 푸드드득 변통 없이 치었구나.

  이 꼴을 본 까투리 기가 막히고 앞이 아득하여,
  "저런 광경 당할 줄 몰랐던가, 남자라고 여자 말 잘 들어도 패가(敗家)하고, 계집 말 안 들어도 망신하네."
  하면서, 위 아래 넓은 자갈밭에 자락 머리 풀어 헤치고 당글당글 뒹굴면서 가슴 치고 일어나 앉아 잔디풀을 쥐어뜯어 가며 애통해 하고 두 발을 땅땅 구르면서 성을 무너뜨릴 듯이 대단히 절통해 한다.
  아홉 아들 열두 딸과 친구 벗님네들이 불쌍하다 탄식하며 조문 애곡하니 가련공산(可憐空山) 낙목천(落木天)에 울음 소리뿐이었다.

  까투리는 그 슬픈 가운데서도,
  "공산야월(空山夜月) 두견(杜鵑)새 소리 슬픈 회포 더욱 섧구나. 통감((通鑑
; =송나라 사마광이 저술한 역사서 資治通鑑)에 이르기를 좋은 약이 입에 쓰나 병에는 이롭고(良藥苦口利於病), 옳은 말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는 이롭다(忠言逆耳利於行) 하였으니 당신도 내 말 들었더면 이런 변 당할 리 없지, 애고 답답하고 불쌍하다. 우리 양주 좋은 금실 누구에게 말할 손가?
  슬피 서서 통곡하니 눈물은 못이 되고 한숨은 비바람이 되는구나, 애고, 가슴에 불이 붙네. 이 내 평생 어찌할꼬?"


  * <양약고구(良藥苦口)> 고사성어:
      한(漢) 원년(BC26년) 한고조 유방이 진(秦)의 함양(咸陽)을 점령했을 때의 일이다,
      술과 여자를 좋아하는 유방이 진의 아방궁(阿房宮)으로 들어가자 화려한 장막,
      많은 재보, 수천의 미녀 궁녀들에 마음이 이끌려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를 눈치 챈 번쾌가 유방에게 "이 궁전에서 나가셔야 합니다"하고 간언을 하였다.
      그러나 유방은 듣지 않았다. 그것을 안 참모 장량(張良)이
      '유방에게 궁전을 보인 것이 나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유방에게로 가서
      "애당초 진(秦)이 도리에 어긋나는 짓만 해서 인심이 떠났기 때문에 주군께서
      이렇게 진의 영지를 점령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천하를 위해서 적을 제거했다면 검소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지금 진의 땅으로 들어오자마자 환락에 젖는다면
      이는 하(夏)의 걸왕(桀王)의 뒤를 따르는 결과가 되고 맙니다.
      '좋은 약이 입에 쓰나 병에는 이롭고(良藥苦口利於病),
      옳은 말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는 이롭다(忠言逆耳利於行)'

      말이 있습니다. 부디 번쾌의 말을 들으십시오" 하였다.
      이에 유방은 충언(忠言)을 받아들여 진의 아방궁 창고를 모두 봉인하고
      본래 한(漢)의 수도 패상으로 돌아가 인망이 높이 오르게 되었다.(史記 留侯世家편)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장끼는 그래도 덫 밑에 엎디어서 하는 말이,
  "에라 이년 요란하다! 호환(虎患)을 미리 알면 산에 갈 사람 어디 있겠나? 미련은 먼저 오고 지혜는 누구나 그 뒤의 일이니라. 죽는 놈이 탈없이 죽을까? 그것은 그렇다 치고 사람도 죽고 삶을 맥으로 안다 하니 나도 죽지는 않겠나 어디 한 번 맥이나 짚어 보소."

  까투리는 장끼의 말을 듣고 그러려니 여겨 장끼의 맥을 짚어 보다가,
  "비위맥(脾胃脈)은 끊어지고, 간맥(肝脈)은 서늘하고, 태충맥(太衝脈)은 굳어져 가고, 명맥(命脈)은 떨어지오. 아이고 이게 웬일이오? 웬수로다."

  장끼란 놈 몸을 한 번 푸드득 떨고 나서 또 하는 말이,
  "맥은 그러하나 눈청을 살펴보게. 동자 부처 온전한가? "

  까투리는 장끼의 눈청을 살펴보고 나서는 한숨을 쉬면서,
  "이제는 속절없네. 저편 눈의 동자부처 첫새벽에 떠나가고,
  이편 눈의 동자부처는 지금 막 떠나려고 파랑보에 봇짐싸고
  곰방대 붙여 물고 길목버선 감발하네, 애고애고, 이내 팔자 이다지도 기박한가,
  상부(喪夫)도 자주 하네, 첫째 낭군 얻었다가 보라매에 채여 가고,
  둘째 낭군 얻었다가 사냥개에 물려 가고,
  셋째 낭군 얻었다가 살림도 채 못 하고 포수에게 맞아 죽고,
  이번 낭군 얻어서는 금실도 좋거니와 아홉 아들 열두 딸을 남겨 놓고
  아들딸 혼사도 채 못해서 구복(口腹
: 입과 배, 먹고 삶)이 원수로 콩 하나 먹으려다
  덫에 덜컥 치였으니 속절없이 영이별하겠구나.
  도화(挑禍
: 화를 일으킴))살을 가졌는가, 이 내 팔자 험악하네.
  불쌍하다 우리 낭군, 나이 많아 죽었는가, 병이 들어 죽었는가?
  망신살을 가졌는가, 고집살을 가졌는가?
  어찌하면 살려 낼꼬? 앞뒤에 섰는 자녀 뉘가서 혼취(婚娶)하며,
  뱃속에 든 유복자 해산구완 누가 할꼬?
  운림초당(雲林草堂) 넓은 들에 백년초(百年草)를 심어 두고 백년 해로 하잤더니
  단 삼 년이 못 지나서 영결종천(永訣終天) 이별초(離別草)가 되었구나.
  저렇게도 좋은 풍신(風神=風采) 언제 다시 만나 볼꼬?
  명사십리(明沙十里) 해당화야 꽃 진다고 한탄마라.
  너는 명년 봄이 되면 또다시 피려니와 우리 낭군 이번 가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미망일세, 미망일세, 이내 몸이 미망일세"」


  * 영결종천(永訣終天): 상례(喪禮) 발인제(發引祭) 때 이 세상이 끝나(終天)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영원히 이별한다는 것(永訣)을 고하는 견전고사(遣典告辭)의 끝말
    「靈 車而 旣駕往卽幽宅載陳遣禮永訣終天」(영이기가왕즉유택재진견례영결종천) "혼백이시어! 이미 상여가 준비가 되었고, 가실 유택이 마련되었기에 보내드리는 예(禮)를 펼처 이 세상이 끝나 영이별 함을(永訣終天) 고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