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머리
沙月 李盛永(2011. 2. 8)
  잔머리! 국어사전을 보니 ‘잔꾀(얕은 꾀)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 정의 하고, 영어사전에는 (pretty) tricks 라고 되어 있다. 또 관용구로 ‘잔머리를 굴리다’‘머리를 써서 얕은 꾀를 생각해 내다’고 설명하고 있다. 어쨋던 '잔머리'는 좋지 못한 의미를 갖는 용어이다.

  요즈음 TV드라마에 가장 특징적인 것을 찝어 내라면 불륜잔머리를 빼서는 흥행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TV드라마에서 잔머리 굴리기는 작가가 창작해낸 것이지 실재 존재했던 사실은 아니기 때문에 사회에 건전하지 못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시청률은 오르는 모양이다.

  그러나 2011년 2월 7일자 조선일보 조선경제 B1면 첫머리에 「KCB(코리아크레딧뷰로: 신용평가사) ‘황당선거’」라는 제목의 기사는 현실에 실제로 존재하는 ‘잔머리 굴리기’의 극치를 보는 듯하다.

  이 기사의 내용은 누가 창작해낸 이야기가 아니고, 이 회사(KCB) 사장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고단수의 잔머리 굴리기 이야기며, 머리가 좀 둔한 사람은 기사를 읽고도 이해하기 조차 힘이 든다.

  KCB는 2005년 은행, 카드사, 보험사 등 19개 금융회사가 공동출자 해 설립한 개인신용평가회사인데, 은행연합회와 금융회사 등에서 수집한 금융거래 정보를 바탕으로 약 4천만 명의 개인 신용등급을 평가하고, 이 평가한 결과를 다시 금융회사들에게 제공해서 수익을 올리는 회사로서 한신정(NICE), 한신평정(KIS)과 함께 국내 3대 신용평가회사로 꼽히는 회사란다.

  KCB 사장 선출은 지분을 나눠 갖고 있는 농협, 국민은행, 신한은행 등 현 9개 주주 금융회사 대표 9명이 이사회를 구성하여 단일 사장후보를 선출하고, 주주총회에서 추인하는 절차에 따른다고 한다.
 여기서 ‘잔머리’ 이야기는 주주총회에 추인 받기 위해 추천할 사장 단일후보를 선임하는 과정에서의 이야기다.

  현 김용덕사장은 이미 2연임하였는데 3연임하기 위해 그가 사장 재임 중이던 2008년 2월부터 주주총회에 추천할 사장후보 선정 투표에 9개 주주 대표 외에 현직 사장과 부사장도 투표권을 행사 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꾸었다고 한다.

  이렇게 미리 정지작업을 해놓고 2011년 1월 24일 현 김용덕사장을 포함한 후보자 3인에 대한 1차 투표 결과 2인이 동점이 되어, 2차 투표를 실시하였는데 1, 2차 공히 9개 주주 대표의 투표결과는 다른 후보가 현 김용덕 사장을 앞섰으나 규정을 고쳐 투표권이 주어진 현 사장 자신과 부사장의 표 때문에 역전되어 결국 주주총회 추천할 1명의 후보로 현 김용덕사장이 확정되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조선경제에 게재된 3인 후보의 프로필과 KCB사장 추천을 위한 표결 결과는 다음과 같다.
사장 후보 출마자 3인의 프로필
(2011.2.7. 조선일보 조선경제 B1면 게재)
1, 2차 투표 결과
(2011.2.7. 조선일보 조선경제 B1면 게재)
< 1차투표 과정 >
  1차투표는 9개주주 대표 9인과 현직 사장과 부사장 계11인이 투표하였다. 각 투표자는 후보 전원에게 1순위, 2순위, 3순위 중 하나를 투표 하며, 1순위를 투표하면 4점, 2순위를 투표하면 2점, 3순위를 투표하면 1점을 흭득한다.
  (예) 어느 한 후보에게 11인의 투표자 전원 1순위를 투표한다면 총 44점(최고점)을 획득하고, 11인 전원이 3순위를 투표한다면 총 11점(최저점)을 획득하게 된다.

  1차투표결과 9개주주 대표로부터 홍성표후보가 23점, 진찬희후보가 21점인데 비해 현 사장 김용덕후보는 19점으로 가장 떨어진다. 그러나 규정 변경으로 추가된 현사장 김용덕이 자신(김용덕후보)에게 1순위를 투표하여 4점이 추가하고, 친사장계 현직 부사장이 김용덕후보에게 1순위를 투표 함으로서 또 4점을 추가하여 총27점이 되었다.

  홍성표후보는 현직 사장과 부사장에게 몇 순위를 받았는지 밝혀지지 않았으나 최종 결과가 27점으로 9개 주주대표로부터 획득한 23점보다 4점이 추가되었으므로 사장으로부터 2순위(2점), 부사장으로부터 2순위(2점)를 받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진찬희후보도 현직 사장과 부사장에게 몇 순위를 받았는지 밝혀지지 않았으나 최종 결과가 23점으로 9개 주주대표로부터 획득한 21점보다 2점이 추가되었으므로 사장으로부터 3순위(1점), 부사장으로부터 3순위(1점)를 받았다는 것도 쉽게 알 수 있다.

  이렇게 해서 현직 사장 김용덕후보는 9개 주주 대표로부터 최 하위 19점을 받았으나, 후보이면서 현직 사장인 김용덕과 친사장계 부사장으로부터 각각 최고의 점수 8점을 얻어 2위였던 진찬희후보를 제치고 1위였던 홍성표후보와 동점을 만들었다.

  그래서 동점인 홍성표후보와 현직사장 김용덕후보를 대상으로 2차 투표에 들어가게 되었다.
  만약 현 사장과 부사장이 진찬희 후보에게 2순위(4점)을 투표했으면 25점, 홍성표후보에게 3순위(2점)을 투표했으면 25점으로 현사장 김용덕후보는 27점 단독 1위가 되고, 홍성표후보와 진찬희 후보는 각각 25점으로 공동 2위가 되니 2차 투표에 갈 필요도 없이 1차투표에서 당선될 터인데 그렇게 하지 않고 홍성표후보와 동점 공동 선두를 만들어 2차투표까지 간 것을 어찌 보면 머리가 좀 모자라는 듯 보이지만

  그게 바로 '잔머리의 극치'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즉각 후보 본인들과 이사들 간에 수습할 수 없는 반발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한 수 앞을 더 내다보고 즉 2차 투표의 표 계산을 해보아 승산이 있다고 판단되니까 반발을 미리 막는 수순을 밟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 2차투표 과정 >
  2차 투표는 역시 9명의 주주 대표와 후보자이면서 현직 사장인 김용덕과 친사장계 부사장 계 11인이, 대상 홍성표후보와 김용덕후보 중 한 사람에게 1표씩만 투표하도록 되어 있다.

  투표결과 홍성표후보는 9개주주 대표로부터 5표를 얻어 4표를 얻은 현직 사장 김용덕후보 보다 1표를 앞섰으나, 현직 사장 김용덕 본인과 친사장계 부사장이 모두 김용덕 후보에게 1표씩을 투표함으로써 김용덕후보가 6표로써 5표에 머문 홍성표후보를 제치고 주주총회 추천 단일후보로 확정되었다.

  이렇게 해서 현 사장인 김용덕후보가 오는 2011년 2월 21일 KCB주주총회에 차기 사장 단일후보로 추천되어 주총에서 추인하면 3연임의 사장이 된다고 한다.


  당사자는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에도 출마자 자신이 자신에게 투표를 하고 있으니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이 없다고 할 지 모르나
  전 국민 또는 선거구 전 주민에게 투표권이 부여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선거 투표는 후보자 개인의 한표가 차지하는 비중이란 선거 판세를 좌우할 만큼 크지 않기 때문에 선거의 공정성에 문제가 되지 않지만
  9명의 주주 대표와 2명의 현직 임원 계 11명의 투표에서는 한 표 는 9.09%라는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공정성을 기대할 수가 없다.
  특히 1순위와 3순위는 4배의 점수차이를 갖는 투표방식에서는 이번 KCB 사장 선출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간단히 판세를 뒤집는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선거는 공정하게 사람을 뽑자는 것이 그 본질로서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것은 공정성을 생명으로 하기 때문인데 이렇게 공정하지 못한 제도와 양심에 벗어나는 투표권 행사를 한다면 이것은 선거라고 할 수도 없는 한낱 요식행위에 불과할 뿐이다.
  투표권자가 후보로 출마를 했다면 본인은 당연히 투표권이 정지되거나 기권해야 할 것이다.

  대명천지 밝은 대한민국 하늘 아래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니--- 여기가 북한도 아니고, 아프리카도 아닌 대한민국에서 금융계를 좌지우지 하는 엘리트들이 모여 공동 출자해 설립한 회사의 사장을 뽑는 일이 어린이 놀이터 개구쟁이들의 대장 뽑는 것만도 못한 짓거리를 하고 있으니 정말 한심하다는 생각뿐이다.

  뒤늦게 정부 감독기관인 금감원 고위 관계자가
  “KCB 사장 선임과정에서 절차상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제기돼 지난달 말 KCB에 대한 검사에 착수했다”,
  “이번에 KCB 이사회가 사장을 뽑는 과정을 포함해 전반적인 지배구조에 문제가 없는지 들여다 볼 생각”
  “현직 사장이 자기에게 표를 던지는 선출방식이 공정한 것인지 들여다 보고 있다”,
  “KCB의 사장 선출 절차와 경위에 대해 전반적으로 검사할 예정”
이라고 말했다고 하지만 그 결과는 두고 보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