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정요(貞觀政要)-4
沙月 李 盛 永(2007.3.9)
    정관정요 책은 총 56개 대화 주제가 7개 장(章)으로 정리되고, 8장에 위징 등의 상소문이 실려 있다. 내용이 길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4개로 구획하여 옮기고자 한다.
    정관정요-1: 서언, 제1장(군주는 배, 백성은 물: 대화1-8), 제2장(善을 행하면 번영하고, 惡을 행하면 멸망한다: 대화9-16),
    정관정요-2: 제3장(민중을 직접 다스리는 지방관일수혹 좋은 인물이 필요하다: 대화17-24), 제4장(피서 궁전을 짓자는 진언을 물리치다: 대화25-32),
    정관정요-3: 제5장(법의 적용을 신중히 하여 무고한 죄인이 없게 하다: 대화33-43), 제6장(良臣과 忠臣은 어떻게 다른가?: 대화44-50),
    정관정요-4: 제7장(군주가 暗愚하고 신하가 아첨하면 나라는 망한다: 대화51-56), 상소문(4개 중 1개, 房玄齡이 高句麗 정벌을 반대한 상소)

    ◆ 대화(51) 큰 일은 작은 일에서 비롯한다.
    정관 6년(서기632년) 태종이 시신들에게 말하기를
    “옛 사람이 말하기를 ‘신하는 군주의 보좌역이다. 그 신하가 군주의 위험한 때에 떠받들어 주지 않고, 넘어지는 것을 도와 일으키지 않는다면 어찌 보좌역으로서의 재상이 필요하겠는가?’ 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군신의 도리로서 신하 된 자는 성의를 다하여 임금의 잘못을 바로잡아 위험에서 구원하지 않을 수 잇겠는가?

    나는 이전에 글을 읽다가 하(夏)의 걸왕(桀王)이 자기의 잘못을 간한 관용봉(關龍逢)을 죽이고, 한(漢)의 경제(景帝)가 나라를 위하여 도모한 조착(?錯)을 죽이는 것을 보고 충신과 의사가 비참한 운명에 이르게 되는 것을 슬프게 여겨 언제나 읽던 책을 덮어놓고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오직 바른 주장을 가지고 생각한 바를 거리낌 없이 간하여 나라의 정치와 교화에 이바지해 주기 바란다. 최후까지 그리고 군주가 불쾌한 낯빛을 보이더라도 주저하지 말고 간하라. 군주의 뜻에 거역한다는 이유로써 함부로 처벌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근자에 조정에 나가 정무를 결제하다 보면 그 중에는 율령(律令)에 위반되는 것도 눈에 뜨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들은 그것을 작은 문제로 여겨 자기의 의견을 주장하는 일이 없다.

    대체로 큰 일이라는 것은 다 작은 일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작은 일이라고 하여 그대로 내버려 둔다면 장차 큰 일은 어떻게 구할 도리가 없게 될 것이다. 나라가 기울어지는 위태한 지경에 이르는 것도 모두 이러한 원인에서다.

    수양제가 잔혹하고 포학했으므로 보잘것없는 필부의 손에 쓰러졌건만 천하의 백성들이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는 말은 거의 들어 본 적이 없다. 아무쪼록 그대들은 나를 위해서 수나라의 멸망을 생각하여 간해 주기 바란다.

    나는 그대들을 위하여 충의로운 용봉이나 조착이 처형된 사실을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군신이 서로 상대를 생각한다면 어찌 이것이 훌륭한 일이 아니겠는가?”
하였다.

    ◆ 대화(52) 제왕은 그 취미를 삼갈 것이다.
    정관 9년(서기635년) 태종이 시신들에게 일러 말하기를
    “제왕이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그 즐기는 것에 대하여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직 수렵에 쓰는 매나 개나 명마(名馬) 혹은 음악이라든가 미녀 특별히 진기한 음식이라도 내가 그것을 원하기만 한다면 곧바로 희망에 따라 손에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사람으로서의 정도(正道)를 깨뜨리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마음이 옳지 않는 간사하고 아첨하는 신하도, 충성되고 곧은 신하도 그때의 군주가 좋아하는 바에 따라서 모이게 마련이다.

    만약 임용하고자 하는 신하에 현자를 얻을 수 없다면 어찌 나라가 멸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이에 시중인 위징이 답하여 말하기를
    “저는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옛날 제(濟)의 위왕(威王)이 순우곤(淳于?)에게 ‘내가 즐기고 잇는 것은 옛날의 제왕과 같은가? 그렇지 않은가?’하고 물었습니다. 이에 곤(?)이 말하기를 ‘옛날의 제왕이 즐긴 것은 네 가지였습니다만 지금 임금께서는 즐기시는 것은 다만 그 중 세 가지 뿐입니다.

    옛날의 성왕(聖王)은 여색을 좋아하였습니다. 임금께서도 그것을 좋아하고 계십니다.
    옛날의 성왕은 양마(良馬)를 좋아하였습니다. 임금께서도 그것을 좋아하고 계십니다.
    옛날의 성왕은 진기한 음식을 좋아하였습니다. 임금께서도 그것을 좋아하고 계십니다.
    다만 한 가지만 같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옛날의 성왕은 현자(賢者)를 좋아하였습니다. 그러나 임금께서는 현자를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하였습니다.

    이제 제왕(濟王)이 말하기를 ‘좋아할 만큼 가치 있는 현자가 없기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이에 곤(?)이 말하기를 ‘옛날의 미녀에는 서시(西施), 모장(毛?)이 있었고, 진기한 음식으로는 용간(龍肝), 표태(豹胎)가 있었으며, 양마로는 비토(飛兎), 녹이(綠耳)가 있었습니다. 그런 것은 지금 세상에서는 벌써 없어졌습니다.

    그렇지만 임금님의 찬간(찬간)이나 후궁(후궁) 또는 마구(마구)에는 옛날 미녀나, 좋은 음식이나, 양마에 필적할 만한 것들이 모두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임금님께서는 지금 시대에는 옛날의 현자만한 인물이 없다고 생각하십니다.

    대체 지난 시대 현자가 지금의 임금님과 만날 수 잇는 일입니까? 어떠하십니까? 미녀, 양마와 마찬가지로 열의를 가지고 구하신다면 얻을 수 있는 일이 안겠습니까’ 하였습니다.”
라고 하였다.

    태종이 위징의 이야기를 듣고 깊이 찬의를 표하였다.

    ◆ 대화(53) 군주기 암우(暗愚)하고 신하기 아첨하면 나라는 망한다.
    정관 2년(서기628년)에 태종이 시신들에게 말하기를
    “현명한 군주는 자기의 단점이나 과실이 있는 것을 생각하고 그것을 고치고자 신하의 충언을 들으려고 노력하므로 점점 선량해지고,
    암우한 군주는 자신의 단점이나 과실을 감싸면서 지키기 위해 신하의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언제까지나 암우한 것이다.

    수의 양제는 즐겨 자기의 재능을 자만하여 그 단점과 과실을 감싸고 지켜 신하의 간함을 거부하였으므로 진실로 군주의 뜻을 거슬리며까지 간하는 일은 대단히 곤란하다.
    재상의 지위에 있던 우세기(虞世基)가 나아가 직언하지 않는 것은 그러한 상태에 있어서는 아마도 큰 죄악이라고 할 수 없지 않을까?

    옛날 은나라의 미자(微子)는 주왕(紂王)을 간하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므로 거짓으로 미친 체 하여 자신의 안전을 보전했다. 그리고 공자도 또한 그를 인자(仁者)라고 말했다. 양제가 신하에게 살해 당할 때 우세기도 함께 피살되었어야 할 것인가, 아닌가?”
하고 물었다.

    이에 두여회(杜如晦)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효경(孝經)」에 ‘천자에게, 군주의 과실에 대하여 가차없이 엄하게 간하는 충신이 있으면 가령 무도한 천자라 하더라도 그 천하는 잃지 않는다’하였고, 공자도 ‘참으로 정직하구나 사어(史魚)라는 인물이여,

    나라에 바른 도가 행하여지지 않을 때에도 화살과 같이 참으로 정직하고, 나라에 바른 도가 행하여지지 않을 때에도 신변의 위험 같은 것은 생각지 않고, 역시 화살과 같이 참으로 정직하였다’ 고 이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세기는 어찌하여 양제가 무도한 인물이라고 해서 신하로서 간쟁을 하지 않아도 좋다는 말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국 입을 다물고 재상이라는 무거운 지위에 일시적인 안락을 구하고, 또 간언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하여 사직하여 은퇴를 출원(出願)할 수도 없었다는 것은 미자가 거짓 미친 척 하고, 지위를 떠났던 것과는 사리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옛날의 서진(西晉)의 혜제(惠帝)와 가후(賈后)가 민회태자(愍懷太子)를 폐하려고 했습니다. 그 때 사공(司空)인 장화(張華)는 결국 간절하게 간할 수가 없어서 알랑거리면서 사실을 밝히지 않은 채 한때 어려운 형편을 피할 수가 있었습니다.

    뒤에 조왕(趙王) 윤(倫)이 거병하여 가후를 폐하게 되었고, 조왕은 사자를 보내어 장화를 잡아오게 하였습니다. 그 때 장화가 말하기를 ‘천자와 가후가 태자를 폐하려고 하던 날에 나는 아무 말도 안 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당시 나의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 사자가 말하기를 ‘당신은 삼공(三公)의 한 사람이었다. 태자가 아무런 죄도 없이 폐위되려는 형편에 놓여 있을 때 당신의 간언이 용납되지 않은 이상 어찌 삼공의 자리를 내놓고 은퇴하지 않았던 것인가?’ 하였다. 그에 대하여 장화는 대답할 말이 없었습니다.
    결국 사자는 그의 목을 자르고 그의 친족까지 몰살하고 말았습니다.

    공자는 ‘신하는 군주의 보좌역이다. 그 신하가 군주의 위험한 때에 떠받들지 않고, 넘어지는 것을 도와 일으키지 않는다면 어느 점에서 보좌역으로서의 재상이 필요하겠는가?’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훌륭한 군자라고 하는 것은 나라의 큰 사건에 직면하면서도 위력이나 이익에 의해 그 정신을 동요시킬 수가 없는 인물인 것입니다.

    장화는 자기의 의지를 굽히지 않으면서 그의 절조를 온전히 지키지 못한 위에 겸손하게 재상의 지위에서 물러나 그의 몸을 보전하지도 못하였습니다. 임금의 신하 된 자의 절의를 완전히 땅에 떨어뜨린 자입니다.

    우세기 또한 재상의 지위에 있으면서 양제에 대하여 간언을 할 수 있는 처지였습니다. 그런데도 결국 임금을 위해 한 마디의 간쟁을 하지 못했습니다. 참으로 그도 또한 양제와 함께 죽었어야 마땅할 인물이었습니다.”
하였다.

    태종이 이르기를
    “그대의 말은 정당하다. 인군이라는 것은 반드시 충량(忠良)한 보좌인 대신의 도움에 의해 비로소 그 몸이 안정하고, 나라의 안녕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수의 양제는 충량한 신하가 없었고, 자신의 과실을 들을 수 없었던 탓으로 그의 악이 쌓이고 쌓인 재화(災禍)로 해서 멸망에 이른 것이 아니겠는가? 만약 인군으로서의 행위가 정당하지 못하고, 신하 또한 군주의 허물을 바르게 간하지 않으며, 군주의 뜻에 아첨하여 군주가 하는 일이라면 무슨 짓을 하더라도 무조건 잘한다고 치켜세울 뿐이라면 임금은 암주(暗主)가 되고, 신하는 간신이 되는 것이다. 임금이 암주이고 신하가 아첨이나 하는 자라면 나라의 위만(危亡)은 바로 목전에서 일어난다.

    지금 내가 뜻하는 바는 군신이나 상하가 제각기 최상으로 공평한 도리를 다하여 서로 경계하면서 향상(向上)을 도모하여 좋은 정도(政道)를 완성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대들은 제각기 성의 있는 직언을 다하도록 노력하여 나의 옳지 않는 점을 바르게 건져 줄 것이다. 끝까지 직언하여 내가 뜻에 거슬린다고 하여 발끈 화를 내거나 꾸짖는 등의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하였디.

    ◆ 대화(54) 지방관의 간언을 포상하다.
    이대량(李大亮)은 정관 연중에 양주(?州)의 도독(都督)이었다. 어느 해 조정에서 파견한 사자가 양주의 지경으로 왔는데 거기서 좋은 매가 있는 것을 보고 이대량에게 그 매를 천자에게 헌상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그의 뜻을 떠 보았다.
    이 말을 들은 이대량은 넌지시 상주문(上奏文)을 올려 말하기를
    “폐하께서는 오랜 동안 수렵에서 손을 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자는 매를 구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것이 폐하의 뜻이라면 수렵에서 손을 뗐다는 종래의 뜻과는 많이 다른 것이 됩니다.
    만약 사자가 자기 생각대로 그런 요구를 한 것이라면 그것은 그 사자가 조정의 사자로서는 적임자가 아닌 줄로 압니다.”
하였다.

    태종은 상주문을 읽고 나서 이대량에게 칙서를 내려
    "그대는 문무가 겸비하며, 뜻이 바르고 굳으므로 지방의 장관으로서 이와 같은 무거운 임무를 맡긴 것이다. 근래 그대는 고을의 장관의 지위에 있어 그 훌륭한 공적은 멀리 도성까지도 알려지고 있다. 나는 그 충성스럽고 근실함을 생각하여 자나깨나 그대의 일을 잊은 적이 없다.

    조정에서 보면 사자가 매를 헌납하게 하였건만 자기의 소신을 지켜 그의 뜻에 따르지 않았다. 그리고 현금의 문제를 논하고 옛 사례를 인용하면서 멀고 먼 곳에서 직언을 올려 진심을 털어 말하는 것은 대단히 성의에 넘치는 일이다. 그대의 상주문을 읽고 기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이렇게 신뢰할 수 있는 훌륭한 신하가 있으니 나는 아무 근심할 필요가 없다. 그대는 이 성의를 지켜 항상 변함이 없도록 하라.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그대의 직위를 신중히 지켜 정직한 도를 애호하여 행한다면 신(神)은 그대의 행위를 인정하여 큰 행복을 줄 것이다.’하였고, 고인도 ‘한 마디의 가치의 무게가 천금과 같다.’ 고 하였다. 그대의 이 말은 깊이 존중될 가치가 있다.

    그래서 지금 그대에게 금술잔과 금주발 한 개씩을 하사한다. 이것은 천일(千溢)의 가치는 없다고 하더라도 내가 늘 써 오던 물건이다.

    그대는 그 뜻하는 바가 방정(方正)하고 절조를 다해 지킴이 지극히 공평하여 그 직분을 수행함에 당하여 언제나 그 임무에 적합하다. 따라서 공무의 여가에는 독서를 많이 하여 학문에 힘쓰도록 하라.

    그래서 여기 순열(荀悅)의 「한기(漢記)」 한 부를 그대에게 하사한다. 이 책은 그 서술 방법이 간단하면서도 요령을 얻을 수 있고, 그 논의는 깊고도 넓으며, 정치의 본질을 잘 밝혀 군신의 뜻을 충분히 서술하였다. 이 책을 잘 연구하여 살펴 봄이 좋겠다.”
하였다.

    ◆ 대화(55) 위대한 당(唐)나라를 건설한 것은 신하들의 힘이다.
    정관 9년(서기635년) 태종이 공경(公卿)에게 일러 말하기를
    “나는 천자의 지위에 있으면서 한 일도 없는데도 사방의 이민족은 모두 복종했다. 이것은 어찌 나 한 사람만의 힘에 의한 것이겠는가? 실로 그대들의 힘 입은 바 큰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 창업의 초기를 훌륭하게 수행한 것과 마찬가지로 유종의 미를 거두어 영원히 이 위대한 사업을 견고하게 지켜 자자손손에게까지 서로 도와 가며 위대한 공적이나 큰 이익을 후세에 베풀도록 하여 수 백 년 뒤에라도 우리 당조의 국사를 읽는 사람에게 이 당제국 건설의 위대한 공적과 분화국가로서의 성대한 사업을 빛나게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생각할 것이다.

    어찌 다만 주왕조(周王朝)나, 전한(前漢)이나 후한(後漢)의 광무제(光武帝), 명제(明帝) 시대의 옛 사실만을 칭미(稱美)할 뿐으로 좋을 것인가?”
하였다.

    이에 방현령이 나아가 아뢰어 말하기를
    “제가 근고 이래 난세를 다스린 군주를 관찰하니 모두 천자의 위에 오른 것은 그 연령이 40세가 넘어서였습니다. 그 중에서 후한의 광무제만이 33세였습니다. 이런 일은 어찌 폐하께서 18세 되시던 해에 일찍이 천하를 경륜하시는 사업에 전력을 기울이기 시작하여 마침내 천하를 평정하시어 29세로 천자의 위에 오르신 것과는 비교가 되겠습니까? 이것은 폐하의 무(武)가 옛날의 제왕들보다 뛰어나신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연소하신 시절부터 전쟁에 종사하시어 독서하실 틈이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천자가 되신 정관(貞觀) 이래 책을 손에서 떼신 일이 없이 항상 학문에 전심하시어 좋은 교화(敎化)에 의하여 백성을 선도하는 일이 정치의 본원임을 간파하시고 도덕을 중히 여기시는 정치를 실행하기 수 년에 천하는 대단히 잘 다스려져서 세상의 나쁜 풍속이 일변하여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신하는 임금에게 충성을 다하게 되었습니다. 이것 또한 폐하의 문(文)이 옛날 제왕들보다 앞서 있는 것입니다.

    옛날 주(周)나 진(秦) 이래 서방이나 북방의 이민족은 항상 중국 내부까지 침입하여 역대 왕조가 그 대책에 부심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이민족들이 폐하의 위광(威光) 앞에 꿇어 엎드려 거의 모두 우리 당조의 신하가 되어 있습니다. 이것 또한 폐하께서 멀리 있는 이민족을 회유하시는 정책이 옛날 제왕들보다도 뛰어나신 까닭입니다.

    이와 같은 위대한 공업이 있는 이상 어찌 처음이 훌륭한데 유종의 미를 완성하지 못할 까닭이 있겠슴니까?”
하였다.

    ◆ 대화(56) 군주기 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정관 3년(서기629년)에 태종이 시신들에게 일러 말하기를
    “군주 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만약 법률이 지나치게 엄격하면 선인(善人)에게 괴로움을 미칠까 걱정이 되고, 그렇다고 법률이 지나치게 관대하면 악인(惡人)을 단속할 수가 없다. 관대함과 혹독함 사이의 정도는 어떻게 하면 알맞게 될 것인가?” 하였다.

    위징이 이에 대하여 말하기를
    “예로부터 정치를 행함에는 그 때 형편에 따라 가르침을 베풀어야 합니다. 만약 그 때의 인정이 거칠고 여유가 없을 때에는 그것을 가르쳐 바르게 하는 데에 느슨한 법률을 쓰고, 만일 그 때의 인정이 너무 해이해 있을 때에는 그것을 바로 잡는 데에 준엄한 법률을 쓸 것입니다.
    때의 형편이라는 것이 일정하지 않은 이상법령이라는 것도 관대하고, 가혹한 것이 일정할 수가 없습니다.”
하였다.

    태종이 또 말하기를
    “나는 언제나 몇 가지의 일을 생각하고 있다. 예로부터 다만 천자로서 천하를 보전하는 자는 모두 그 왕조의 자손이 만세토록 오래 이어져 그 정치의 도가 옛날 성천자인 요순(堯舜)보다도 나아지기를 바란다.그러나 실제로 행하는데 있어서는 요순의 정도(正道)와는 정 반대다.

    저 진(秦)의 시황제(始皇帝) 같은 이도 영웅이기는 했다. 그러나 전국시대의 여섯 나라를 평정하여 천하를 통일한 뒤에는 간신히 그 자신에게 닥칠 재화(災禍)를 피할 수 있었지만 아들의 대에 와서 그 나라는 멸망하고 말았다.

    폭군이었던 걸(桀)이나 주(紂) 그리고 암군(暗君)이었던 주(周)의 유왕(幽王)이나 여왕(?王) 등도 또한 모두 피살되거나 겨우 몸을 피하여 달아났다.나는 이러한 것들을 생각하고 내 자신의 정도에 대하여 경계하고 두려워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천하의 백성들은 눈을 똑바로 뜨고, 귀를 기울여 오직 나 한 사람의 행위의 선악(善惡)을 감시하고 있다. 그러니 어찌 그런 점에 대하여 마음을 쓰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하였다.

    위징이 다시 아뢰어 말하기를
    “예로부터 군주 되기는 실로 어려운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군주가 오직 하면 그것이 선이 되기도 하고, 악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임금이 하는 말이 자신의 허물을 들으려고 한다면 그 나라는 흥륭(興隆)합니다.
    만약 하는 말이 신하나 백성이 자기 의지에 복종시키고자 한다면 그 나라는 멸망합니다.

    그러기에 공자가 ‘임금의 말 한마디에 의해 나라가 흥할 수도 있고, 한마디에 의해 나라가 망하기도 하는 것이다’라고 한 것은 확실히 이러한 점을 지적한 것에 틀림이 없습니다.

    다만 천하의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을 폐하께로 나아가 일신을 영화롭게 하고자 합니다.
    정당한 인물에 속하는 사람들은 정당한 도리로써 자신을 나아가게 하고,
    마음이 비뚤어진 인물은 부정한 수단으로 아첨하여 잘 보이고자 하고,
    세공(細工)을 잘하는 자는 기발하고도 교묘한 기구를 만들어 바치어 자기를 명예롭게 하려 하고,
    매나 개를 좋아하는 자는 수렵을 권하려 합니다.

    이와 같이 자기를 진출시키고자 하는 자들은 자기의 옳지 않은 점은 조금도 생각지 않고 모두 자신이 정당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폐하께서 정도를 지키신다면 악인들은 자기를 내세울 수가 없습니다. 만일 악인들이 진출할 길이 열린다면 마음이 뒤틀려서 남에게 아첨이나 하는 무리들이 자기의 사심(邪心)을 멋지게 달성하고자 합니다.”
하였다.

    이에 태종이
    “이 말은 참으로 그대의 말이 옳다.” 고 하였다.

    ◆ 상표문(3) 방현령(房玄齡)이 고구려(高句麗) 정벌을 반대한 상소.
    정관 22년(서기648년)에 태종이 거듭 고구려를 정벌하고자 했다. 이 때 방현령(房玄齡)은 병상에 누워 위독한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그러나 아들들을 돌아보면서
    “지금은 천하가 평화롭고 모든 것이 잘 되어 가고 있다. 다만 천자께서 동쪽에 있는 고구려를 정벌하고자 하신다. 이것을 그만 두지 않으면 반드시 장차 나라에 해가 될 것이다.
    천자께서는 고구려의 무례함을 격노하시어 정벌을 결의하시고, 신하 중에서는 천자가 불쾌하게 여기시더라도 이를 무릅쓰고 나아가 간하는 자가 없다.
    내가 이것을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 것은 마음에 한을 품은 채 땅 속에 묻히는 것이 된다.”
하면서 기어이 상표문(上表文)을 받들어 태종에게 간하였다.

상표문(上表文) 전문>
    “저는 이러한 말을 듣고 있습니다. ‘병(兵)은 모으지 않는 것을 미워하고, 무(武)는 창을 그치는 것을 존중한다’ 고 합니다.

    지금 세상은 폐하의 덕화가 어떠한 먼 곳에라도 미치지 않는 곳이 없어 상고에는 칭신(稱臣)하여 받들지 않던 나라도 폐하께서는 모두 신하로 삼으시었고, 제어하게 어렵던 이민족도 모두 제어하시었습니다.

    여러모로 고금의 역사를 관찰하건대 중국에 대하여 근심거리였던 것은 돌궐(突厥)보다 더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것을 폐하께서는 움직이지 않고 궁중에 계시면서 신(神)과 같은 책략(策略)으로 정벌의 수고도 없이 크고 작은 가한(可汗: 돌궐 추장)들이 속속 항복하여 이제 와서는 금위(禁衛)의 호위(護衛)를 분담하여 창을 들고 대열에 끼어 있습니다.

    그 뒤 설연타(薛延陀)가 맹위를 떨쳤습니다만 얼마 가지 않아 전멸되었고, 철륵(鐵勒)은 폐하의 은의를 사모하여 중국에 귀속하여 주현(州縣)의 설치를 원하고, 사막 이북은 만리에 걸쳐 티끌 하나 일어나지 않는 상태입니다.

    고창(高昌)이 멀리 유사(流砂) 일대에서 반역하였고, 토곡혼(吐谷渾)이 적석산(積石山) 일대에서 어정쩡한 태도를 취했습니다만 일부의 군대를 파견했을 뿐으로 어느 것이나 다 평정하였습니다.

    그런데 고구려는 역대에 걸쳐서 주벌(誅罰)에서 벗어나 이것을 토격(討擊)하지 못했습니다. 폐하께서는 그들이 반역하여 난리를 꾸미고, 주군을 죽이고, 백성을 학대함을 꾸짖어 스스로 대군을 인솔하시어 문죄(問罪)의 군을 일으켜 열흘도 지나지 않아 요동을 공략하여 떨어뜨리시어 전후의 포로가 수십만에 미치고, 그들을 여러 주에 분배하셨으므로 어디를 가나 그들 포로로 꽉 차 있습니다.

    수대(隋代) 이래 중국에 쌓였던 치욕을 씻고 지난 날의 전사자의 유해를 매장하시었습니다. 그 공덕을 비교한다면 전대 제왕들의 만 배에 이릅니다. 그것은 성명(聖明)하신 폐하께서 스스로 잘 알고 계시는 일이므로 저 같은 사람이 자세하게 이야기할 것은 아닙니다.

    그 위에 폐하의 인자하신 은혜는 나라 안 구석구석까지 미쳐 그 효(孝)의 덕은 부군(父君)을 하늘에 배(配)하여 제사하는 최고의 것입니다.

    이민족의 멸망의 기미가 보이면 틀림없이 몇 해 뒤에 있을 것을 지적하시고, 장수에게 명령을 내리실 때는 만리의 먼 곳에 전기(戰機)를 결정하시어 그 결과의 보고가 들어오는 것은 마차 신(神)이 앞 일을 내다보는 것과 같아 계략에 조금도 틀림이 없으십니다.

    대오 중에서 장수 재목을 발탁하시고, 범용한 모임에서 인물을 찾아 내시며, 먼 나라에서 온 이민족의 사자라도 한번 보실 뿐으로 잊지 않으시고, 별것 아닌 하급 관리의 이름도 한 번에 기억하시며, 쏘시는 화살은 일곱 겹 갑옷의 비늘을 꿰뚫고, 활은 여섯 균(균: 1균은 30근)의 강궁(强弓)을 당기십니다.

    그 뿐만 아니라 서적이나 시가(詩歌), 문장(文章)에도 관심을 가지셔 필적은 옛날 종요(鐘繇), 장지(張芝)를 앞서고, 문장은 조식(曹植), 사마상여(司馬相如)에 앞서십니다.

    만민에게는 자애가 깊으시고, 군신(群臣)을 예우하시고, 작은 선행도 칭찬하시고, 법망(法網)은 관대하고, 되는 대로 사람을 벌주지 않으시며, 귀에 거슬리는 간언도 반드시 들으시고, 교묘하게 남을 중상하는 말은 딱 잘라 거절하시고, 생명을 좋아하시는 덕은 개울물을 막고 물고기를 잡는 것을 금하시고, 살생을 미워하시는 착한 마음은 도살장에서 칼을 휘두르지 못하게 하시며, 일부러 수레에서 내리시어 화살에 맞아 다친 이사마(이사마)의 고름을 빠셨으며, 그 집에까지 가시어 위징(魏徵)의 관 앞에서 그의 죽음을 조상하시었고, 전몰 졸병을 제사하여 곡하실 때는 그 슬픔이 전군을 통곡시키셨고, 요동(遼東)의 싸움에서는 진창길에 사졸과 함께 흙을 져다가 메우셨으며, 백성의 생명을 중히 여긴 점에 있어서는 특히 형옥(刑獄)의 신중을 기하셨습니다.

    저는 병으로 마음이 혼미하여 아무리 하여도 폐하의 위대한 공적을 다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폐하께서는 제왕으로서의 모든 좋은 점은 완전히 갖추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번의 고구려 정벌에 대하여 깊이 폐하를 위하여 이것을 애석하게 여기고 심히 경솔하다고 여깁니다.

    「주역(周易)」에 ‘나아갈 줄 알면서 물러설 줄 모르고, 보존함을 알면서 망하는 것을 모르고, 얻는 것을 알면서 잃는 것을 모른다면 이것이 성인인가?’라고 이르고, 또 이어서 ‘진퇴(進退)와 존망을 알면서 그 정(正)을 잃지 않는 자는 그것이 오직 성인인가?’ 하였습니다.
    이에 의하여 말씀 드리면 나아감에는 물러남의 뜻이 있고, 존(存)은 망(亡)의 기틀이며, 득(得)은 상(喪)의 이치입니다.
    노신이 폐하를 위해 애석하게 여기는 이유는 이러한 점에서 여쭙는 말씀입니다.

    노자(老子)가 ‘족(足)한 것을 알면 부끄럽지 않고, 그칠 줄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 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폐하의 위명(偉名)과 공덕(功德)은 충분히 족하고, 영토를 확장하는 일도 그만 그칠 때라고 여깁니다.

    저 고구려 같은 것으로 말씀 드리면 까마득하게 먼 변경의 보잘것없는 이민족으로서 인의(仁義)의 도(道)로써 대우할 상대도 아니고, 중국의 예의를 요구할 만한 상대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약간 무례한 짓을 하더라도 너그럽게 보아 모른 척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만약 그들을 멸종시키고자 하신다면 짐승도 쫓기다 몰리면 돌아서서 물어뜯는 것이니 고구려도 반드시 완강하게 저항할 것입니다.

    더욱이 폐하께서는 사형수를 재결하심에 있어서도 반드시 세 번을 조사하고 다섯 번을 주상하여 절대로 틀림이 없다고 할 때에 비로소 사형에 처하십니다. 그리고 그 집행하는 날에는 고기 없는 소식(素食)을 권하고, 음악을 금하시는 것은 사람의 목숨은 소중한 것으로서 거룩한 자애심을 감동시키시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병사들은 아무런 죄도 없고, 이유도 없이 전쟁터로 끌려나가 칼날 아래 목숨을 던져 그들의 간(肝)과 뇌(腦)는 진창에 짓밟히고, 그 혼백은 갈 곳이 없습니다. 그들의 늙은 부모나 어린 자식, 남편을 잃은 아낙들은 관을 실은 수레를 바라보며 눈물을 짓고, 고골(枯骨)을 끌어안고 가슴을 두드립니다.
    이렇게 된 많은 백성의 슬픔이 모이는 곳은 반드시 음양의 변화가 생겨 날씨가 불순해지고, 농사는 흉작이 되며, 온 국민의 격렬한 원한이 될 것입니다.

    그뿐이겠습니까? 병기는 흉기이고, 전쟁은 위험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득이한 경우에 한해서 쓰는 것입니다.
    가령 고구려가 당조(唐朝)에 대하여 신하로서의 절의를 지키지 않는다면 폐하께서는 그를 주벌(誅罰)하시어도 상관없습니다.
    고구려가 중국의 인민을 침략한다면 폐하께서는 그를 멸하셔도 상관없습니다.
    고구려가 영원히 중국에 대하여 해를 끼치는 근심거리가 된다면 폐하께서는 그를 공격하여 항복시키셔도 상관없습니다.
    그 중에 어느 것 하나만이라도 있다면 설사 우리 병졸을 하루에 만 명을 죽이는 전쟁을 한다 해도 부끄러운 행위가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세가지 중 해당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중국을 번거롭게 하고, 저들의 내란에 의해 막라지(莫離支)가 그 군주인 고무(高武)를 죽이고, 국정을 전단하고 있는 것을 옛 왕을 위헤 한을 풀어주고, 막라지가 신라를 침략한 것에 대하여 복수를 해 준다는 이유 뿐입니다. 얼마나 얻는 것은 적고, 손실은 지나치게 큰 것이겠습니까?

    아무쪼록 폐하께서는 황조(皇祖)이신 노자(老子: 당 종실 ?西李氏의 祖라함)의 지족(止足)의 계(戒: 노자의 ‘知足不辱, 知止不殆’를 말함)에 따라 만세에 걸치는 명예를 보전하시고, 빛처럼 광대한 은혜를 발하시고, 관대한 조서를 내리시어 양춘(陽春) 같은 덕택(德澤)은 베푸시어 고구려를 용서하여 반성시키시고, 바다에 띄워 있는 큰 선단(船團)을 불사르시어 응모한 병졸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신다면 자연히 중국도 이민족도 모두 폐하에게 따르고, 먼 곳에 있는 나라도 조용해지고, 가까운 국내도 평화로워질 것입니다.

    저는 노변 중에 있는 삼공(三公)으로서 머지 않아 세상을 떠날 것입니다. 다만 유감인 것은 저의 티끌 같고 이슬 같은 작은 힘이 폐하의 바다 같고, 산 같은 위대한 덕에 조금이라도 공헌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삼가 죽은에 임하여 남은 목숨이 끝날 때가지 다하여 사후에 풀을 묶어 생전의 은혜를 갚았다(結草報恩)고 하는 옛날 위무자(魏武子)의 첩(妾)의 노부(老父)의 정성을 미리 대신하고자 합니다.

    만약 나의 죽음에 임한 가련한 울부짖음이 받아들여진다면 저는 죽더라도 썩지 않을 것으로 믿습니다.”


    태종이 이 상표문을 읽고 탄식하며
    “이 사람은 이와 같이 위독한 상태에 있으면서도 우리 나라의 전도에 대하여 우려하고 있다. 참다운 충신이다.” 하였다.

정관정요-4 끝, 모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