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지선(座右之先)
沙月 李盛永(2011. 7. 11)
  오늘(2011.7.11) 조선일보 문화면에 신용관기자의 기사 ‘길 위의 인문학’ 탐방단의 경북 영주 소수서원(紹修書院) 탐방 이야기가 실렸다. 나도 건성이기는 해도 한 번 가 본적이 있기 때문에 관심 깊게 기사를 읽었다.
소수서원 사액(賜額) 현판
소수서원 전경
  더욱더 내게 관심을 끌게 한 것은 이 기사 중에 나오는 직방재-일신재(直方齋-日新齋), 학구재(學求齋) 등 건물 이름과 좌우지선(座右之先), 좌우명(座右銘), 선달(先達), 건달(乾達), 건방(乾方) 등 그 유래나 본 뜻은 잘 모르면서 자주 써 왔던 말들을 이 기사를 읽으면서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직방재-일신재(直方齋-日新齋)
학구재(學求齋)
  먼저 집들의 이름에서 ‘齋(재)’자가 나오는데 이는 ‘집 재’이다. 齊(제: 가지런할 재)자와 비슷해서 혼돈하기 쉬운 글자다.
  역시 내가 근거도, 출처도 모르면서 알고 있는 ‘집의 격(格)’이 있다. 친구에게 들었는데 잊어버리지 않고 머리 속에 담아 둔 것이다.
  殿(전), 堂(당), 閤(합), 閣(각), 齋(재), 軒(헌), 樓(루), 亭(정)이다.
  옥편을 찾아 보니 殿(전)‘대궐 전’, 堂(당)‘마루 당’, 閤(합)‘침방 합’, 閣(각)‘층집 각’, 齋(재)‘집 재’, 軒(헌)‘추녀 끝 헌’, 樓(루)‘다락 루’, 亭(정)‘정자 정’으로 모두 집을 의미하는 뜻을 가지고 있다.

  다음 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들 글자들은 '집'을 의미하는 동시에 '집의 격(格)'을 나타내고 있다. 물론 殿(전)이 가장 높은 격의 집이고, 亭(정)이 가장 낮은 격의 집이다. 소수서원 기사에 나오는 집 이름 중에서는 직방재(直方齋)-일신재(日新齋) 보다 장서각(藏書閣)의 격이 더 높고, 여기는 안나오지만 향교나 서원이면 당연히 있는 대성전(大成殿: 공자의 위폐를 모시는 집)이 가장 높은 격의 집이다.
  殿(전) : 인정전(仁政殿), 교태전(交泰殿), 대성전(大成殿), 대웅전(大雄殿), 삼성전(三聖殿)
  堂(당) : 취선당(翠扇堂), 명륜당(明倫堂), 성황당(城隍堂), 선왕당(船王堂), 한훤당(寒暄堂: 김굉필), 쌍청당(雙淸堂: 이계준)
  閣(각) : 삼은각(三隱閣), 산신각(山神閣),
  齋(재) : 문강재(文康齋), 영모재(永慕齋), 점필재(占 畢齋: 김종직), 모재(慕齋: 김안국), 정관재(靜觀齋: 이단상)
  軒(헌) : 동헌(東軒), 오죽헌(烏竹軒), 저헌(樗軒: 이석형), 정헌(靜軒: 이기)
  樓(루) : 경희루(慶喜樓), 촉석루(矗石樓), 광한루(廣寒樓),
  亭(정) : 압구정(狎鷗亭), 반구정(伴鷗亭), 화석정(花石亭), 방초정(芳草亭: 이정복)

  또 이들은 특정 종교나 부류에서만 쓰이는 용어가 아니라 유교 불교는 물론 토속신앙과 궁중에까지 쓰이고, 아호(雅號)에도 많이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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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수서원의 집들 이름 중에 ‘일신재(日新齋)’‘날로 결점을 고쳐서 새롭게 발전한다’ 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지난 5월에 나의 고향마을 사월(沙月)에 나의 16대조 직강공(直講公諱淑璜)의 추모비 곁에 공의 유일하게 향교 현판으로 남아있는 유고(遺稿) 지례향교중건기문(知禮鄕校重建記文) 『明倫堂記(명륜당기)』를 오래 보존할 수 있도록 비석(碑石)으로 추가 건립하면서 원문(原文)과 해역문(解譯文)을 비문으로 새겼는데 그 문장 해역의 한 부분이 생각난다.

  명륜당기는 「鄒夫子有言曰設爲庠序學校以敎之皆所以明人倫也」(추부자유언왈설위상서학교이교지개소이명인륜야) 「人倫明於上小民親於下然則學校者人材之小自出人倫之所自明 國家之所倚重焉」(인륜명어상소민친어하연즉학교자인재지소자룰인륜지소자명 국가지소의중언)」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데 이는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상서(庠序
: 지방의 작은 학교)와 학교(學校)를 세워 가르치는 것은 모두 인륜(人倫)을 밝히기 때문이다”고 하였으니,
  위에서 인륜이 밝아지고, 아래서 소민(小民)이 친(親)하게 된다면 학교는 인재가 배출되는 곳이며, 인륜이 밝아지는 곳이니 나라가 의지할 중요한 곳이다. 」
라는 뜻으로 해역을 하였다.

  그런데 비석을 세워놓고 추모회 회장께서 ‘틀린 것은 아니지만 조금 모자라는 부분이 있다’ 면서 후회를 한다.
  「小民親於下」부분이다. ‘소민 즉 서민들이 아래서 배움과 친해진다’는 뜻으로 해역 하였는데, 그보다는 ‘소민이 배움과 친하게 되어 날로 새로워진다’ 즉 親(친)을 단순히 ‘친해진다’, ‘가까워진다’ 는 뜻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일신(日新)’, ‘새로워진다’, ‘새롭게 발전한다’는 뜻으로 해역 하였으면 직강공(直講公)의 더 깊은 참뜻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대학(大學)의 근본사상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대학 삼강령(三綱領)명명덕 (明明德), 친민(親民), 지어지선(止於至善)인데 두 번째 친민(親民)은 두 가지 뜻으로 해석되어 왔다. 하나는 글자 그대로 ‘백성과 친애하는 것’으로 고전적인 해석이고, 다른 하나는 ‘신민(新民) 즉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으로 주자(朱子) 이후 나온 새로운 해석으로 후자가 좀 더 깊은 뜻을 가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다. 이미 지나간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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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좌우지선(座右之先)좌우명(座右銘)이란 말이다. 신문 기사에서
  직방재(直方齋)-일신재(日新齋)의 오른쪽에 오늘날의 대학도서관에 해당하는 장서각(藏書閣)이 있다. 임금이 직접 지어 하사한 서책을 비롯하여 3000여 장서를 보관하던 곳이다.
  “우리나라 전통적 좌우지선의 예에 따라
(장서각을)으뜸자리에 둔다고 스승의 숙소 우측에 지은 것입니다. 좌우명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 ‘늘 자리 옆에 새겨두어 가르침으로 삼는 다는 말’도 오른쪽에 적어 놓았지요”(국사편찬위 사료조사위원회 박석홍위원의 설명)
  직방재, 일신재 왼쪽엔 유학생(儒學生)들이 공부하던 기숙사 ‘학구재(學求齋)가 있는데 해질 무렵 스승의 거처에 드리우는 그림자도 피한다는 의미에서 두 칸(12자, 3.6m) 뒤로 물려 지었고, 방바닥도 스승의 숙소보다 한 자(30Cm)낮추어 지었다.」하였다.

  좌우지선(座右之先)이란 글자 그대로 하면 ‘오른쪽 자리를 우선(優先)으로 한다’는 뜻이고, 좌우명(座右銘)이란 ‘오른 쪽에 새겨둔다’는 뜻인데 좌우명을 국어사전에 찾아보면 ‘늘 자리 옆에 갖추어 두고 아침 저녁으로 반성하는 격언(格言) 따위’라고 설명하고 있다.
  서원의 학자(교수)들이 책을 좌우명처럼 오른쪽 가까이 두고 항상 책을 접하면서 지식을 넓혀 후생들을 충실히 가르치라는 뜻으로 그들의 숙소인 직방재-일신재(直方齋-日新齋) 오른쪽에 장서각(藏書閣)을 두었다는 이야기다..

  왼쪽(左)과 오른쪽(右) 중에서 오른쪽(右)을 중시한 유래와 깊은 뜻은 잘 모르나 얼핏 생각으로 사람이 습관적으로 왼쪽보다는 오른쪽을 바라보기가 쉽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잘 바라보는 곳에다 새겨 놓아야 자주 바라볼 것이다.

  오른쪽을 중시한 예는 많다. 사당(祠堂)에 두 분의 신주를 모실 때 오른쪽(앞에서 바라볼 때는 왼쪽)에 상위(上位), 왼쪽(앞에서 바라볼 때는 오른쪽)에 하위(下位)의 위패(位牌)를 모시고, 세 분일 경우 가운데가 상위(上位), 그 오른쪽이 차위(次位), 그 왼쪽이 하위(下位) 위폐를 모신다.

  내가 사관학교 생도시절 군대예절 중에 상급자와 동행할 때 하급자는 상급자의 ‘왼쪽 일보(一步) 뒤’에 따라 가도록 배웠다. 이 또한 상급자를 우선하여 오른쪽 앞에 모시고, 그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좌우지선(座右之先)과 같은 맥락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또 군대 경축행사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열병식(閱兵式)과 분열식(分列式)인데 병사들이 '우로어깨총'을 하고 서 있거나 행진하는 상태에서 오른 쪽에서 왼쪽으로 앞을 지나가거나 오른쪽 단상에 서 있는 임석 상관에게 '우로어깨총'으로 인하여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기가 불편한데 지휘자의 '우로- 봤' 구령에 따라 향도를 제외한 모든 인원이 일제히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임석상관을 바라보며 목례로서 경례한다.
  이는 미군을 통해 서양 군사문화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인데 이 또한 좌우지선(座右之先)의 예라 생각한다면 너무 앞서나간 생각일까?

  그런데 옛날(조선조) 관직(官職)의 서열에서는 이와 반대이니 좀 헷갈린다.
  우의정(右議政: 정1품) 보다는 좌의정(左議政: 정1품), 우찬성(右贊成: 종1품)보다는 좌찬성(左贊成: 종1품), 우참찬(右參贊: 정2품)보다는 좌참찬(左參贊: 정2품), 우승지(右承旨: 정3품)보다는 좌승지(左承旨: 정3품)가 품계는 같지만 서열이 앞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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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석홍위원의 설명 중에
  “학문을 통해 ‘곧바로(直方)’ 겉과 속을 익히게 되면 선비 또는 선달(先達)이 되지만, 겉만 익고 속이 설익으면 건방(乾方)만 들어 건달(乾達)이 될 뿐” 이라면서 유머스럽게 설명하여 청중을 웃겼다고 한다.
  국어사전에 보면 선달‘과거에 급제하였지만 아직 벼슬은 하지 않는 사람, 선비’ 를 말하고, 건방‘제는 체하여 주제 넘는 태도’ 를 말하며, 건달‘빈둥빈둥 놀거나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 돈도 없이 난봉을 피우고 다니는 사람’을 말한다.

  풍수학에서 방향은 24방(方)으로 나타내는데 10간(干) 중에서 甲(갑), 乙(을), 丙(병), 丁(정), 庚(경), 辛(신), 壬(임), 癸(계)의 8자, 주역 8괘(卦)중에서 乾(건), 坤(곤), 巽(손), 艮(간)의 4자 그리고 12지(支)의 子(자), 丑(축), 寅(인), 卯(묘), 辰(진), 巳(사), 午(오), 未(미), 申(신), 酉(유), 戌(술), 亥(해) 12자. 계24 글자로 표시한다.

  24방(方) 중 건방(乾方)서북방(西北方)을 말한다. 원주(圓周) 360도로 표시한다면 한 개의 방(方)은 15도의 폭을 가지며, 정북(正北)을 0도로 하여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며 표시한 건방(乾方)은 307.5도-322.5도 간을 말한다.

  그럼 왜 이 건방(乾方)‘제는 체하여 주제 넘는 태도’ 를 의미하는 말이 되었을까?
  아마 건달이 얌전하게 갓을 똑바로 쓰지 않고 갓 끈은 풀어 제키고 갓머리를 뒤로 삐딱하게 젖혀 쓴 모습을 ‘건방진 모습’ 으로 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갓을 똑바로 썼다면 정북(正北) 자방(子方)이 될 터인데 서쪽으로 반쯤 삐딱하게 썼으니 서북방(西北方) 즉 건방(乾方)이라 하지 않았나 싶다.(믿거나 말거나)
< 二十四方位(24방위) >
  (1) 子方(자방); 352.5-7.5도, 정북(正北, 12시방향)      (2) 甲方(갑방); 7.5도-22.5도
  (3) 丑方(축방); 22.5도-37.5도                                  (4) 艮方(간방); 37.5도-52.5도, 정동북(正東北)
  (5) 寅方(인방); 52.5도-67.5도                                  (6) 乙方(을방); 67.5도-82.5도
  (7) 卯方(묘방); 82.5도-97.5도, 정동(正東, 3시방향)     (8) 丙方(병방); 97.5도-112.5도
  (9) 辰方(진방); 112.5도-127.5도                               (10)巽方(손방); 127.5도-142.5도, 정동남(正東南)
  (11)巳方(사방); 142.5도-157.5도                              (12)丁方(정방); 157.5도-172.5도
  (13)午方(오방); 172,5도-187.5도, 정남(正南, 6시방향) (14)庚方(경방); 187.5도-202.5도
  (15)未方(미방); 202.5도-217.5도                               (16)坤方(곤빙); 217.5도-232.5도, 정서남(正西南)
  (17)申方(신방); 232.5도-247.5도                               (18)辛方(신방); 247.5도-262.5도
  (19)酉方(유방); 262.5도-277.5도, 정서(正西, 9시방향)  (20)壬方(임방); 277.5도-292.5도
  (21)戌方(술방); 292.5도-307.5도                               (22)乾方(건방); 307.5도-322.5도, 정서북(正西北)
  (23)亥方(해방); 322.5도-337.5도                                (24)癸方(계방); 337.5도-352.5도

  지리산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종주하다보면 반야봉-삼도봉-화개재 지나 토끼봉에 이른다. 이 '토끼봉'이란 이름의 유래가 위 24방과 관련이 있어 흥미롭다.
  즉 토끼봉은 지리산 서쪽에서 가장 높이 우뚝 솟은 반야봉(般若峰, 1733.5m)의 정동쪽 묘방(卯方)에 있는데 '卯(묘)'자는 12지(支)에서 토끼를 말한다. ○卯年에 때어난 사람을 '토끼띠'라 한다. 그래서 이봉우리 이름을 '토끼봉'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