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     지
沙月 李 盛 永(2005.12.6)
  나의 홈페이지(www.sungyoung.net/)의 ‘월남이야기’에는 200통의 월남편지와 고국편지가 수록되어있다. 내가 파월하여 월남전에 참전하면서 두 아이들과 고향에서 부모님을 도와 농사일을 거들고 있는 아내에게 보낸 월남편지가 106통이고, 서툴고 고단한 농촌 생활 속에서 졸리는 눈을 비비면서 또박또박 써 보낸 아내의 답신, 고국편지가 94통이다.

‘월남편지 고국편지’ 바로가기 주소(클릭): 월남편지고국편지

  귀국 후 전후방을 오가는 군 생활 때문에 10여 회 이사를 하면서 다른 편지들은 모두 없어졌는데 이 월남편지 고국편지만은 고스란히 이삿짐 속에 챙겨져 한 통도 없어지지 않고 보관되어 온 모양이다. 작년(2004년) 8월 우연히 이 편지 꾸러미를 발견하고 다시 읽어보는 과정에서 쑥스러운 부분도 있었지만 내 스스로 감격스러운 부분이 더 많았다.
  특히 내 평생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한 기억이 없고, 간혹 아내가 이에 투정을 부리면 “그래 꼭 말로 해야 해? 부부가 그저 마음으로 통하는 거지” 하고 핀잔을 주곤 하였는데 이 편지에는 ‘나스럽지 않게’ 여러 군데 그 말을 쓰고 있다. 편지에서는 매우 용감해졌던 모양이다.

  그 때부터 심심풀이로 운용하고 있는 나의 미니홈페이지에 올려 남들에게도 공개 하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나와 같이 월남에 갔다 온 사람들에게는 그 때를 회상하는 계기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고, 월남파병을 ‘용병’이니 뭐니 하면서 비하(卑下)시키는 부류들에게는 직업군인으로서 어떤 심경으로 전장에 임하여 전투경험을 쌓았으며, 한 푼, 두 푼 받은 수당이 어떻게 모여져 당시 가난했던 조국의 경제 발전에 이바지했는가를 현장감 있게 말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홈페이지에 올린 후 여러 동기생, 특히 부인들에게 인사를 받았고, 금년 3월 어떤 모르는 여인은 ‘나그네여인’이란 이름으로 홈페이지 게시판에
  ‘월남이야기를 읽고’라는 제목으로
  “왠지 눈물이 앞을 가려 간신히 읽었습니다. 이시대 젊은이들게 읽히고 싶습니다. 조국과 민족, 인내와 사랑,나이에 비해 젊으신 열정,잘가꾸어 오신 가정 그리고 반듯이 키운 자식들 모두 인내와 사랑으로 살아오신 안사람(사모님)의 후덕하심이 아닐런지요... 참이쁜가정과 가족사랑, 다른분 홈보다 진솔하고 소박해서 감격했습다”라고 격려해 주는 글을 남기기도 하였다.

  지난해 추석 한달전 쯤 시골에 가 있는데 핸드폰에 MBC방송국이라면서 아가씨 목소리가 나를 찾았다. 나의 홈페이지 ‘월남이야기’에서 ‘월남편지고국편지’들을 읽었는데 마침 MBC에서 돌아오는 추석날 밤에 방영을 목표로 제작중인 ‘편지’라는 프로에 나와 아내의 편지 내용을 넣고 싶은데 어떠냐는 것이다. 아울러 나와 아내의 인터뷰가 가능한지 묻는 것이었다.
  이미 나의 홈페이지에 올려 공개 한 것인 만큼 방송에 라고 못 내보낼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프로가 방영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나의 홈페이지를 찾겠구나 생각하면서 좋다고 했다. 그리고 인터뷰는 “지금은 시골에 와 있어서 안되겠지만 상경 후에는 가능할 것”이라고 답한 다음 상경 예정일자에 따라 대략적인 인터뷰 예정 날자를 정했다.

  며칠 후 또 MBC 아가씨가 핸드폰으로
  “선생님 홈페이지 ‘삼곡회게시판’에 회원들의 주소와 전호번호가 있는데 그분 들에게 옛날 편지를 소장하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은데 전화번호를 선생님이 주었다고 해도 되겠는지요”라고 했다.

  삼곡회(三谷會)는 작년에 내가 회장을 떠맡은 고향 부항국민학교 제14회 동기회 이름이다. 그렇게 하라고 대답했고, 그 후 내가 몇 몇 동기생들로부터 MBC에서 전화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내 나이 67세, TV든 라디오든 방송이라고는 나온 적이 없는데 뒤늦게 방송에 나가게 됐구나 하는 생각에 자못 흥분되기도 했기에 선친 제사 때 온 동생들에게 자랑도 했다. 동생들도 “오빠! 뒤늦게 매스콤에 뜨겠네!”하고 놀려대기도 하였다. 관악산에 오르는 월요등산에 나가서도 동료들에게 이야기 하기도 했다.

  귀경한 후 인터뷰 날자, 시각을 정하는 전화가 몇 번 있은 후 약속한 날자에 MBC 승합차가 아파트 앞 주차장에 세우고 4명이 각종 장비들을 집안으로 옮겨 위치를 정하고 설치하였으며, 외부 빛을 가린다며 검은 천으로 창문을 가리는 등 약 20분 정도 준비를 한 다음 부부 함께 앉아, 아내 단독 그리고 나 순으로 세 번에 걸친 대담이 진행되었다.

  담당 PD는 생각과는 달리(몇 번 전화를 통 한 것이 아가씨였기 때문에 그녀가 PD인줄 알았다) 좋은 인상의 젊은 남자였다. 그는
"요즈음 전화, E-mail등 통신수단의 발달로 사람들이 편지를 쓰는 일이 점점 사라져가는 시기에 옛날 편지를 통해 은근한 '정과 사랑이 오간 이야기'들을 시청자들에게 보이고자 하는 것이 이 프로의 목적"이라 하였고, 나도 그런 현상을 느끼던 터라 좋은 주제라 생각하였다.

  부부 함께 촬영 때는 나의 월남 파월 때의 생활과 아내가 아이들 데리고 시골집에 가 있는 동안의 생활에 관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아내와 나 단독 인터뷰 때는 그들이 고른 고국편지, 월남편지 한 편씩을 다 읽게 한 다음 편지 내용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오갔다. 실내 에어컨을 켜 놓고 있었지만 조명장치와 긴장한 때문인지 이마에서는 연신 땀이 흘러 수건을 준비하여 닦기도 했다.

  약 1시간 인터뷰가 끝난 후 그들이 지정하는 월남편지 2통과 고국편지 2통 그리고 사진첩에 있는 월남 전장에서 찍은 사진 10여 장을 가지고 갔다.

  그 후 별다른 통화는 없었는데 추석절에 임박한 어느날 또 MBC 아가씨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어떡하죠? 인터뷰한 편지 프로가 시간이 반으로 잘리는 바람에 선생님 편은 방영하지 못하게 돼서---”하고 말 끝을 흐렸다. 나는
  “나의 인터뷰가 신통치 않아 잘렸다는 얘기죠? 방송국 사정이 그렇다면 할 수 없죠 뭐”하고 전화를 끊고 ‘없었던 일”로 돌렸지만 뒷 맛은 개운치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동생들에게 자랑하고, 등산 동료들에게 이야기 한 것이 후회 되기도 하였다. 그렇게 될 걸 가지고 자못 긴장하고 흥분했던 내 자신이 쑥스럽기도 하였다. 추석날 밤에 그 프로가 방송됐는지는 모른다. TV채널을 그 쪽으로 돌려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월이 약이라 편지와 관련된 MBC 인터뷰는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런데 요즈음 국내외를 온통 들끓게 한 MBC ‘PD수첩’의 황우석박사팀의 줄기세포연구에 관한 취재 방송이 빚고 있는 물의는 나의 '월남편지고국편지'와 관련해서 MBC와 인터뷰했던 일을 되돌아 보게 한다.

  ‘편지’라는 프로로 나와 인터뷰를 한 것도 그들이 얘기한 것처럼 “정과 사랑이 오가는 이야기’보다 사실은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닌가? 나와 아내와의 인터뷰에서 그 의도하는 내용이 나오지 않으니까 ‘방송시간이 줄었다’는 이유를 대면서 잘라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 이유로 프로에 나와의 인터뷰가 제외되었다는 사실을 아가씨를 통해 통보한 후에 담당 PD는 전화 한번 없었고, 내가 몇 번 전화를 걸어 가져간 편지와 사진을 언제 돌려주느냐고 문의 하는 과정에서도 담당 PD는 연결할 수가 없었다. 편지와 사진을 돌려 보내온 소포 속에도 한 줄의 해명이나 미안해 하는 쪽지글도 없었다.

  또 인터뷰 과정에서도 그들이 인터뷰 목적이라고 말 한 편지 속의 ‘정과 사랑이 오간 이야기’에 관한 것 보다 “월남 전장에서 무섭지 않았느냐?”하는 질문을 여러번 받은 것으로 기억된다.
  “직업 군인이 전장을 무서워 해서야 되겠느냐?”, “맹호 150명을 거느린 중대장은 월남 같은 전쟁터에서는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는 강자였다”는 등 나의 대답에 별 관심을 보이지도 않았었다.

  만약 다른 의도가 있었다면 무엇일까? ‘월남전 참전 비하(卑下)’ 바로 그것이 아닐까? 이 정권 들어와서 정권을 주도하는 측이 박정희 대통령의 치적을 비하하면서 아울러 월남전 참전도 ‘용병’이니 뭐니 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의 결단으로 이루어진 파월 차체를 비하시키는 일이 여러 번 기억되는데 MBC는 바로 이 정권의 홍보에 ‘공영방송’이라는 자신들의 위치를 망각하고 맨발 벗고 뛰는 매체가 아닌가.

  황우석박사팀 줄기세포연구 취재에서 순진한 취재대상 연구원들에게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몰래카메라로 찍고, 조폭이나 시중 잡배가 대중을 등쳐먹고, 권위주의 독재시대 수사기관이 피의자에게서 자백을 받아내는 과정을 연상케 하는 행동, 대중 매체의 ‘취재도덕성’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협박과 회유가 자행된 것을 보면서 MBC는 '정권에 기여하는 목적', '한탕주의' 에 병들어 있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 아닌가 의심스럽게 한다.

  이번 사태를 이야기하는 동료들 중에는 그것이 단순한 MBC의 실수가 아니라 MBC가 이 정권 사람들과 연계하여 기획된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다. 즉 이 정권 사람들이 황우석 박사의 명성을 이용하려는데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응하지 않으니까 황우석 박사를 죽이기 위해 칼을 빼들었고, MBC PD수첩은 그 돌격대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황우석 박사는 구속된다’느니, ‘황우석 박사를 죽이러 왔다’는 등 당당하고, 자신에 찬 협박을 한 것을 보면 뭔가 믿는 데가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또 MBC PD수첩 취재진들이‘한국 밖에서는 황교수 망하는 것 보고싶어 한다’고 했다는 신문기사와 관련해볼 때 그들 MBC 측은 외국의 분위기를 우군으로 생각하고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취재한 내용을 방송하기 전에 연구팀의 한 외국인 멤버였던 새튼박사에게 보고(?) 하여 그로 하여금 '윤리문제'로 황우석박사와 결별하게 공작을 할 수 있었겠는가? 수긍이 가는 이야기다.

  MBC 측은 나와의 인터뷰에서 협박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혹시 ‘월남 전쟁에는 공연히 파병하여 귀중한 젊은 목숨들을 전장에서 헛되이 버리게 했다'하는 대답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게“월남 전쟁터가 무섭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반복하면서 회유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편지내용을 방송에 인용하던 말던 인터뷰는 거절하는 것이 좋았을걸. MBC 같은 그런 부도덕하기가 견줄 데가 없는 집단과 잠시나마 얼굴을 대하고, 이야기를 주고 받은 것이 후회가 되고, 두고 두고 나를 부끄럽게 할 것 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