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굴과 돈벌레
沙月 李 盛 永
사람의 욕심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가 없다. 가야산국립공원 서남쪽 끝자락 별유산(別有山 일명 牛頭山) 의상봉 등산 중에 이름도 생소한 '쌀굴'이라는 조그마한 동굴과 관련된 전설을 이야기 듣고 사람의 욕심이 끝없음을 새삼 느꼈다.

온 산을 붉게 물들인 진달래가 한물 가고 철쭉이 봉우리를 터트리려는 4월 중순(2001년) 서울을 떠나 시골집에 온 지도 2주 쯤 되어 전지(剪枝), 시비(施肥) 등 과일나무 돌보기와 정원에 잔디이식 등 집안 꾸미기가 어느 정도 끝나고 혼자 방황하는 막내딸과 귀여운 손녀딸 휘림이가 보고싶어서 내외는 상경하기로 했다.

이 좋은 계절에 그냥 가기는 좀 뭣해서 조금 둘러가더라도 가야산 서남쪽 끝 자락에 있는 별유산(別有山) 의상봉(義湘峰, 해발1046m) 등산을 하고 가기로 하였다.

의상봉 남쪽 계곡 고견사 주차장에 도착하는데 한시간 남짓 걸렸다. 절은 주차장에서도 1.5Km나 더 올라가서 있었고 절로 오르는 길은 차가 오를 수 없는 등산로였다. 절에서 불사(佛事)에 필요한 건축자제를 실어 올리느라고 길 왼쪽을 따라 모노레일이 설치되어 있었다.

산이 높아서 여기는 이제 서야 이른 봄 꽃이 한창이다. 우리 시골만 해도 벌써 다 떨어진 생강나무 꽃이 여기는 이제 한창이다. 진달래도 아직 시들지 않았다. 고견사에서부터는 왼쪽 계곡길을 따라 오르고 오른쪽 계곡길로 내려오는 것으로 코-스를 잡았다.

의상봉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불끈 위로 치솟은 암봉이다. 고견사에서 오르는 급경사 길 한시간 동안은 내내 앙천(仰天)의 길이다. 산을 보는 게 아니라 하늘을 우러러 보는 것이다.

고견사에서 올려다 본 의상봉 암봉들
마지막 별유산-장군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에서 의상봉 정상으로 오르는 철계단은 완전 사다리길이다.

내려오는 길에 고견사 가까이 내려 왔을 때 '쌀굴 1Km'라 적힌 이정표를 보면서 '쌀굴'이 뭘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면서도 갈 길도 있고, 등산중에 새 길로 들어 1Km나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 그냥 내려와 고견사 스님에게 물어 보았다.

쌀굴은 옛날 신라 때 불교 화엄종의 시조가 된 의상대사가 아직 수도승일 때 동자승 하나를 데리고 이곳에 와서 수도를 하였는데 매일 끼니 때 마다 구멍에서 두 사람 분의 쌀이 떨어져 그것으로 겨우 연명을 하며 수도를 하였다.

불심이 깊은 의상대사야 그것으로 족했겠지만 아직 불심이 얕은 동자승은 몹시 배가 고팠던지 쌀을 더 많이 얻으려고 대사 몰래 쌀이 떨어지는 구멍을 더 크게 팠다. 그리고 내일 아침을 지을 쌀은 더 많이 나올 것이니 내일은 배부르게 아침밥을 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흐뭇한 마음으로 꿈 속에 들어갔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쌀 받을 바가지를 더 크게 뚫린 굴 앞에 대고 기대에 찬 얼굴로 쌀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쌀이 아예 떨어지지 않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굴이란다.

내가 사관학교 시절 영어 부교재에서 읽었던 '돈벌레' 이야기가 생각이 나서 함께 옮겨 놓는다. 돈벌레 이야기나 쌀굴 이야기나 모두 사람의 욕심을 경계하는 이야기다.

옛날 가난하면서도 몹시 게으른 젊은 녀석이 일하여 돈을 벌 생각은 하지 않고 방안에 틀어박혀 공상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그저 힘들이지 않고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는 정도의 노력으로 돈을 벌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어디에선가 주머니 하나가 방바닥에 떨어지면서 '쨍그랑'하고 동전 소리가 나면서 엄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그 주머니 속에 손만 넣으면 얼마든지 황금동전을 꺼낼 수가 있다. 네가 이젠 돈이 더 필요 없다고 생각되면 그 주머니를 강물에 갖다 버려라. 네가 그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낼 때마다 너의 몸은 조금씩 작아지고 동전을 꺼내지 않더라도 주머니를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으면 마찬가지로 몸이 작아진다. 돈을 꺼내는 일은 남들이 보지 않게 하여야 한다. 다른 사람이 보게 되면 더 빨리 네 몸이 작아진다." 하였다.

젊은이는 신바람이 났다. 주머니에 손만 집어넣으면 손에 동전이 한 개씩 잡혀서 나온다. 젊은이가 이 동작을 반복할 수록 얼마 안되어 방바닥에는 동전이 수북이 쌓이고, 계속하면서 방이 가득하게 찼다.

젊은이는 우선 곳간부터 동전으로 가득 채웠다. 거액의 돈이었다. 평생을 일하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는 거액이었다. 그러나 돈이 쌓이는 만치 젊은이의 몸은 보이지 않게 작아져 가고 있었다. 끼니를 거르는 일이 많다 보니 건강도 쇠약해져 갔다.

어느 날 젊은이는 이제 그 돈주머니를 강물에 갖다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주머니를 가자고 대문을 나서다가 "아니다. 한번 버리면 다시 구할 수 없으니 좀더 돈을 꺼내고 버려야지" 하면서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는 돈 꺼내는 작업을 계속하여 작은 방도 채우고 부엌방도 채웠다.

몸은 점점 작아지고 쇠약해져 갔다. 처음에는 돈 꺼내는 재미로 침식을 잃었고, 지금은 식욕이 없고 돈 걱정과 돈주머니 처리 때문에 잠자는 것도 잊었다.

침실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돈을 채울 곳이 없을 때 이제는 정말 돈주머니를 버려야겠다고 독하게 맘먹고 강에까지 가서 강물에 돈주머니를 던져버리려는 순간 "아니지! 침실을 채우지 않았잖아"하면서 주머니를 강물에 던지지 못하고 집으로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침실에서 또 돈을 꺼내기 시작했다. 돈은 침대 밑을 채우고 순식간에 침대 위까지 수북히 쌓였다.

이때 이웃사람이 무슨 연장을 빌리러 와서 젊은이 이름을 부르니 안에서 모기 소리 만한 대답이 들려왔다. 이웃사람은 문을 여는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온 방이 누른 황금 동전으로 가득 차 있는 게 아닌가.

이웃사람은 자기가 꿈을 꾸고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정신을 가다듬어 보아도 그것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이웃사람은 또 젊은이의 이름을 불렀다. 방 한 쪽 구석에 있는 주머니 속에서 대답이 들렸다. 주머니를 헤집고 보니 그 속에는 열심히 황금 동전을 주머니 밖으로 밀어내고 있는 벌레 한 마리가 있었다. 젊은이가 벌레처럼 작아진 것이다. 돈벌레가 된 것이다.

지금 그는 돈이 왜 필요한지, 얼마나 필요한지 아무 목적도 없이 그저 욕심으로 돈을 꺼내고 있는 것이다. 벌레가 된 그에게 돈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야기는 사람의 욕심은 그 끝을 알 수 없다는 것과 사람은 그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이야기다.

불법과 부정과 비리, 심지어는 살인을 해서라도 무한의 돈을 벌고싶어 하는 부도덕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세태인가. 배가 고파서 쌀을 좀 더 얻으려 한 동자승의 애처로운 욕심은 눈감아 주지 않으면서 현대인의 억(億) 아니 조(兆) 단위로 높아진 욕심은 법외에 제재(制裁)할 길이 없단 말인가. 그 법망이란 것도 재수 없거나 점 찍히면 걸리고, 큰 고기는 빠지고 조므레기 고기만 걸리는 그물일 뿐이니 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