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비홍수(綠肥紅瘦)
<초록은 살이 찌고, 붉은 빛은 야위어간다 >
沙月 李盛永(2019.6.30)
중국역사에서 4대 미인으로 서시(西施), 왕소군(王昭君), 초선(貂嬋), 양귀비(楊貴妃)를 꼽는다.
중국사람들은 이 미녀들에게 각각 수식어를 붙여주었는데
서시침어(沈魚 : 물고기가 서시를 보고 헤엄치는 것조차 잊고 바라보다가 그만 물 밑으로 가라 앉아버렸다 )
왕소군낙안(落雁 : 기러기가 왕소군을 보고 날개 짓 하는 것조차 잊고 바라보다가 그만 땅으로 떨어져버렸다)
초선폐월(閉月 : 달도 초선을 보고 부끄러워 구름 속으로 숨어버렸다)
양귀비수화(羞花 : 꽃이 양귀비를 보고 부끄러워 고개를 숙여버렸다)라 하였다. 참으로 중국사람 다운 표현들이다.
서안 화청지 중국4대 미인그림
오른쪽으로부터 서시, 왕소군, 초선, 양귀비
(2002. 9. 13. 서안관광 여행 때 찍음)
4대 미인에서는 빠졌지만 그 다음으로 치는 미인이 조비연(趙飛燕)이다. 그녀를 작장중무(作掌中舞: 하도 가벼워서 손바닥 안에서 춤을 춘다)라 수식하고 있다.
가볍고 야위었다는 말이다. 그녀의 이름 ‘飛燕’ ‘날으는 제비’라는 뜻이니 과연 조비연이 가볍고, 야윈 것이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이에 상대적으로 양귀비는 살이 찐(肥) 편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조비연과 양귀비를 비교해서 생긴 말이 연수환비(燕瘦環肥)이다. 연(燕)은 조비연을 말하고, 환(環)은 양귀비의 본명 양옥환(楊玉環)에서 따온 글자다.
이를 직역하면 '조비연은 야위었고, 양귀비는 살이 쪘다'는 말이지만, 의역하면 ‘조비연은 야위었어도 미인이고, 양귀비는 살이 쪘어도 미인이다’ 라는 의미다.
인터넷에 떠도는 조비연과 양귀비 영상
서안 화청지 양귀비 옥상
여기 살이 쪘다는 뜻의 비(肥)자와 야위었다는 뜻의 수(瘦)자가 들어간 녹비홍수(綠肥紅瘦)라는 제목의 드라마가 중화(中華)TV에서 지금까지 50회를 넘겨 절찬리에 방영되고 있는 중이다.
녹비홍수(綠肥紅瘦) 드라마 시작 화면과 주연

녹비홍수 | 매주 월-금 밤 10시 본방송
주인공 성명란(盛明蘭)역 자오리잉(趙爾領)과 고정엽(顧正燁)역 펑사오펑(馮紹峰)의 결혼식 장면
알고 있나요 '붉은 꽃은 지고, 푸른 잎은 짙어진다는 것(綠肥紅瘦)을'
이 말이 무슨 뜻인가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다.
위의 조비연과 양옥환을 비교한 수식어를 대입해 보면 ‘초록색은 살이 찌고, 붉은색은 야위었다?’로 해석할 수 있는데 그 의미와 주체를 모르겠다.

인터넷을 뒤지다가‘초록은 살이 찌고 붉은 빛은 야위어가니’라는 제목에 ‘야반(夜半)의 풍우(風雨)에 해당화 질 것을 걱정하는 마음’ 이라는 부제가 붙은 칼럼니스트 김태규씨의 글을 접하게 되었다.
바로 중화TV 드라마 녹비홍수(綠肥紅瘦) 제목의 어원(語源)이된 시(詩)의 작가 이청조(李淸照)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다.

녹비홍수(綠肥紅瘦)는 중국 송나라 때의 여류시인 이청조(李淸照) 시(詩)의 마지막 구절이다.
이청조는 조선의 황진이(黃眞伊)를 연상케 하는 중국 문학사상 최고의 여류시인이며, 호를 이안거사 (易安居士: 세상에 나가 출세하지 않고 그냥 집에서 지내는 사람) 또는 수옥(漱玉: 물에 말끔하게 씻어낸 옥구슬)이라 하였다.
그녀의 이시(詩)가 음률(音律)을 붙여 노래로 부르는 사(詞)가 되어 송사(宋詞)라고 불렸다.

昨夜雨疏風驟(작야우소풍취) 간밤에 비는 성기었으나 바람은 세찼었지,
沈睡不消殘酒(침수불소잔주) 단잠을 잤음에도 술기운이 남았구나,
試問卷簾人(시문권렴인) 발 걷는 아이에게 물어보았더니
却道海棠依舊(각도해당의구) 해당화는 아직 그대로라고,
知否(지부)知否(지부) 아니? 그럴 리가 그럴 리가,
應是(응시) 綠肥紅瘦(녹비홍수) 으레! 초록색(잎)은 살이 오르고 붉은빛(꽃)은 야위(시들)었을 터인데.

綠肥紅瘦(녹비홍수)의 녹(綠)은 초록색 해당화 잎이고, 홍(紅)은 붉은 빛 해당화 꽃이며, 비(肥)는 해당화 잎이 무성해 진다는 뜻이고, 수(瘦)는 해당화 꽃이 시들어 지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이 시의 주체는 간밤에 바깥 뜰에서 비바람에 시달렸을 해당화의 잎과 꽃을 생각하며 읊은 시다.

이 시를 접하고 보니 문득 생각나는 게 있다. 내가 울진-영덕-영일(일부) 동해안 경계/방어를 책임지는 연대장 근무를 하던 때(1983) 영일군 송하에 있는 보경사에서 파는 숙종대왕 어필 글씨 탁본 12폭 병풍차 한 질을 꽤 비싸게 구입하여 병풍을 만들었는데 아래 그림이다.
숙종대왕 어필 병풍과 낙관
<한자 식별과 한글음>




.






.




계갑
하자

.






.




<해역>
春眠不覺曉(춘면불각효) 봄 잠 깊이 들어 날 밝는 줄 몰랐는데
處處聞啼鳥
(처처문제조) 곳곳에서 들려오는 새 지저귀는 소리
夜來風雨聲
(야래풍우성) 밤새 비바람소리 들려왔으니------
花落知多少
(화락지다소) 얼마나 많은 꽃들이 떨어졌을고----
甲子季夏
(갑자계하) 숙종 10년 (1684) 늦 여름(음 6월) 씀
* 음력 월별 다른 이름(異稱)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맹춘
(孟春)
중춘
(仲春)
계춘
(季春)
맹하
(孟夏)
중하
(仲夏)
계하
(季夏)
맹추
(孟秋)
중추
(仲秋)
계추
(季秋)
맹동
(孟冬)
중동
(仲冬)
계동
(季冬)
* 孟(맹): 맏맹, 클맹, 우두머리맹, 仲(중): 버금중, 가운데중, 季(계): 끝계, 막내계, 어릴계
이 시(詩)는 제목이 『춘효(春曉)』(봄날 새벽)라는 5언절구의 짤막한 시로 작자는 이름이 호(浩)이고 자(字)가 호연(浩然)인데, 보통 자를 불러 맹호연(孟浩然)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당(唐) 중종(中宗) 사성(嗣聖)6년(689)~현종(玄宗) 천보(天寶)1년(740) 간 호북성(湖北省) 양양(襄陽: 현 襄樊양번)의 소지주 가정에서 태어나 시인으로 산 사람이다.

다시 녹비홍수(綠肥紅瘦) 시를 쓴 이청조(李淸照)의 생애를 살펴보고 이 시가 품고 있는 뜻을 새겨 보자
이청조는 1084년 3월 13일생이니 북송(北宋) 신종(神宗) 17년(元豊7년)이다.:
휘종(徽宗) 1년(1101) 18세로 명문가의 혼처를 만나 시집갔는데 이청조 부부는 양자강 북쪽에 엄청난 전답과 재산을 가진 부유한 집으로 넉넉한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휘종26년(1126) 북쪽의 여진족이 쳐들어와서 태상황과 황제 모두 여진족의 포로로 끌려가는 중국 역사가들이 이른바 ‘정강의 변(靖康之變)’이 일어났는데 그 해 연호 (年號)가 정강(靖康)이다.
이 일로 해서 송나라는 망했고, 황제의 동생이 양자강 남쪽으로 피신하여 지금의 항주(杭州)에 조정을 세웠는데, 이를 역사에선 남송(南宋)이라 부른다.
남송시절 여진족(금나라)의 침략을 막아내서 중국인들이 존경해마지 않는 충신 장군 악비(岳飛)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항주 송성가무(宋城歌舞) 쑈-악비전 한 장면
2012년 11월 무이산-삼청산 관광여행으로 옛날 남송의 수도 항주에 갔을 때
옛 송나라 성(城)을 복원하여 그 안에 가무장(歌舞場: 쑈장)을 지어 주로 송나라 때의 사건을 쑈로 꾸미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남송 장수 악비(岳飛)가 금나라군을 쳐부수는 내용의 가무쑈를 하고 있었다.
다시 이야기는 이청조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가자.
이청조 부부는 엄청난 전답과 재산을 다 포기하고 양자강 남쪽으로 피난을 가야 했다. 그리고 고생길이 시작되었다.
3년 후(1128) 남편이 사망하였는데 그녀 나이 44세. 그 이후 생활고 등으로 재혼을 했지만, 사기결혼이었기에 금방 이혼하고 만다.
정말이지 이청조의 자존심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을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그녀가 외롭게 홀몸이 되어 갖은 풍상을 겪는 가운데 남긴 성성만 (聲聲慢)이란 사(詞)를 보면 그녀의 처량한 심정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찾아보고 또 찾아보지만 차디찬 늦가을 바람에 처량하고 비참한 슬픔만 밀려오네,
잠시 따듯하다가 금방 차가워지는 무정한 계절에 마음 둘 곳 없어
두세 잔 싱거운 술을 들이켜 보지만 어찌 이겨낼 수 있으리!
저녁이 되어 급한 바람 부는 하늘을 날아가는 저 기러기 정말 가슴이 아프구나,
한 땐 반가운 소식도 전해주었는데
(요약)」
聲聲慢 [성성만] 詞-이청조작 원문
尋尋覓覓(심심멱멱) 찾고 찾으며 찾고 찾는다. 나는 무엇을 찾고 있는가.
冷冷淸淸(냉랭청청) 차디차고 써늘하다. 내게서 나오는 것은 찬 바람뿐.
凄凄慘慘戚戚(처처참참척척) 슬프고 처량하며 외롭고 비참하며 근심되고 걱정된다.
乍暖還寒時候(사난환한시후) 날씨조차 변덕스럽게 더웠다 추웠다 하여,
最難將息(최난장식) 마음놓고 쉴 수 없게 한다.
三杯兩盞淡酒(삼배양잔담주) 두서너 잔의 싱거운 술로
?敵他(즘적타) 어찌 이겨낼 수 있으랴, (즘: 乍아래心, 어찌)
晩來風急(만래풍급) 저녁 때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을.
雁過也(안과야) 아아 기러기가 날아가누나
正傷心(정상심) 내 아픈 가슴을 상처지게 하면서.
?是舊時相識(각시구시상식) 그리운 사람에게 소식을 전해 주던 저 기러기. (각: 谷우절, 물러나다)

滿地黃花堆積(만지황화퇴적) 마당 가득히 누런 국화꽃.
憔悴損(초췌손) 시들어빠졌으니
如今有誰堪摘(여금유수감적) 그 누가 꺾어주기나 하랴.
守著?兒(수착창아) 홀로 창가에 앉아 있느라면(창: 穴아래총, 창문)
獨自?生得黑(독자즘생득흑) 스며드는 어스름으로 더욱 처량해진다.(즘: 乍아래心, 어찌)
梧桐更兼細雨(오동갱겸세우) 누런 오동잎 떨어지는 소리와 보슬비 소리는
到黃昏(도황혼) 해거름이 올 때까지
點點滴滴(점점적적) 뚝뚝뚝뚝 내 귀청을 때린다.
這次第(자차제) 내가 지금 이런 신세가 된 것을
?一個愁字了得(즘일개수자료득) 어찌 한 글자, '근심 수(愁)'로 나타낼 수 있을 것인가. (즘: 乍아래心, 어찌)

* 인터넷 허용 한자가 제한되어 변환하지 못한 글자가 3가지 5자가 있다
풍요를 누리는 가운데 녹비홍수(綠肥紅瘦) 시에서는 '초여름 밤비에 뜰의 해당화 꽃이 시들 것을 걱정하던' 섬세한 시인이 이처럼 처참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인생은 고달팠지만 그녀가 남긴 시(詩)와 사(詞)들은 천년이 넘은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면서 동아시아 문학의 거대한 바탕을 만들어놓았다.

이청조 이야기 저자 김태규씨는 이청조의 녹비홍수 시를 읽으면서 또 다른 시가 생각난다며
중국 청나라 시절 수필문학의 정수라고 말할 수 있는 부생육기(浮生六記)라는 책에 실린 신혼살림을 차린 주인공의 아내가 녹비홍수(綠肥紅瘦)에서 비(肥)와 수(瘦)의 차례를 거꾸로 바꾸어 지은 시 구절을 소개하고 있다.

秋侵人影瘦(추침인영수) 가을기운 스며드니 사람 모습은 야위는데
霜染菊花肥(상염국화비) 서리에 물든 노란 국화는 더욱 살이 오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