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무상
沙月 李 盛 永(2008, 12, 17)
  1970년대에서 80년대에 우리나라 여자농구가 아시아는 물론 세계를 누빌 때 농구를 사랑하는 국민들은 우리의 국민선수 박찬숙을 기억한다. 이겨서 환호를 보내고, 힘에 부쳐 젔을 때 격려의 박수를 보냈었다.

  1989년 11월 내가 국방부/합참 동남아 시찰단 일원으로 싱가폴, 태국을 거쳐 자유중국(대만)에 갔을 때 대북시내 쇼핑점에서 박찬숙 모녀를 우연히 만나 반가워하면서 사진 한 장 찍은 적이 있다.

  박찬숙씨는 1985년 한국 농구에서 은퇴하고, 1986년 딸 서효명 양을 낳았고, 1988년에 대만에 진출하여 농구선수겸 코치로 활약 중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니까 그 때 딸은 만3살이었던 모양이다.

  지난 주말(2008. 12. 14) 아침 SBS TV 채널을 돌렸다가 나는 내 눈을 의심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박찬숙 모녀가 SBS 도전1000곡 한소절노래방에 출연한 것이다.

  내노라 하는 가수들도 도중하차 하는데 농구선수 출신 박찬숙씨가 출전했으니 과연 노래를 잘 하는 것인지, 용감한 것인지 흥미롭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이 짝궁으로 한 팀이 되어 무작위로 선정한 노래를 아는 사람이 부르면 된다. 박찬숙씨는 딸 서효명양과 모녀가 짝궁이 되어 출연한 것이다. 딸 서효명양은 올해 22세로 지금 대학 4년생에 농구경기 치어리더로 활약하다가 지난 8월에 CF에 출연하여 공식 연예계에 입문하였다고 한다.

  옛날 노래(곡명은 잊었음)를 박찬숙씨가 잘 부르다가 중간에 한 구절을 건너 띄는 바람에 ‘땡’ 하기는 했지만(그녀도 나이가 드는 모양) 김수희 같은 해비급 가수 속에서---

  어쨌던 반가운 마음에 방송 장면을 다운받고, 옛날 사진첩을 뒤져서 1989년 11월과 2008년 12월 14일 두 사진을 나란히 엮어 보았다.
  박찬숙씨는 잘 모르겠는데, 그 딸 서효명양을 보면 정말 '세월 무상'을 느끼게 한다.
1989년 11월
대만 대북시 어느 쇼핑점에서 우연히 만난 박찬숙모녀
반가운 마음으로 사진 한 장
2008년 12월 14일(일요일) 아침
SBS 「도전1000곡 한소절노래방」에 출연한 박찬숙-서효명 모녀
19년 전 엄마 품에 안겨 아저씨들과 사진찍으며 어떨떨해 하던 애기 서효명양이---

<增補> 공만 보고 살아온 농구 女帝-박찬숙, 환갑에 학사모 쓰다
沙月 李 盛 永(2019, 2, 28)
박찬숙 여자농구연맹 본부장, 고교 졸업 41년 만에 학사 학위
4년간 성적 장학금 받은 모범생
"자식뻘인 동기들과 함께 공부, 지도교수는 열 살 어린 후배였죠"
졸업식장에서 기념사진과 선수생활 때 사진
(왼쪽 사진)박찬숙(가운데)씨가 지난 23일 학사모를 쓴 채 환하게 웃고 있다.
(왼쪽)딸 서효명씨.(오른쪽) 지도교수 이의수 교수.
(오른쪽 사진)1980년대 농구 국가대표로 뛰던 박찬숙
"1학년 때 신입생 환영회와 MT에 갔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졸업이네요. 처음엔 늦게 공부하는 게 부끄럽고 주책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은 후배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됐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왕년의 농구 스타 박찬숙(60) 한국여자농구연맹(WKBL) 경기운영본부장이 1978년 숭의여고 졸업 후 41년 만에 학사모를 썼다. 서울문화예술대학교 사회체육학과 14학번인 그는 지난 23일 서울 서대문구 학교 캠퍼스에서 열린 전기 학위수여식에 참석해 졸업장과 특별공로상을 받았다.

190㎝ 장신에 슛이 정확했던 그는 1970~80년대 한국 여자 농구 국가대표팀 센터로 활약하면서 198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고교 1학년 때부터 국가대표였던 박씨는 졸업하자마자 태평양화학에 들어갔다. 당시 '대어'를 잡기 위해 13개 실업팀이 스카우트 경쟁을 벌였다. 백지수표를 제시한 팀이 있을 정도였다. 태평양화학은 박씨 합류 후 무적함대로 불리며 국내 여자 농구계를 평정했다.
"그땐 다들 대학으로 가지 않고 바로 실업팀에 들어갔어요."

그래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은 계속했다. 그런데 쉽지 않았다. 1985년 은퇴 후 실업팀 코치 등을 거쳐 2005년엔 여성으로 처음 여자농구 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대한체육회에서 부회장(2005~ 2009년)으로도 일했다. 2014년 당시 한국여성스포츠회 부회장이었던 박씨는 주변 임원들의 적극적인 권유로 대학 입학을 결심했다.
"은퇴 후 결혼·육아에 일까지… 앞만 보고 살았죠. 스포츠 행정을 경험하다 보니 제가 부족한 게 많다고 느꼈어요. 기회가 오면 대학에 가고 싶었는데 입학 허가를 받은 거죠."

하지만 자식뻘 되는 학생들과 공부하려니 어색했다고 한다. 지도교수도 열 살 이상 어린 마라토너 출신의 체육계 후배였다.
"한 번 부딪쳐보자는 마음이었어요. 제가 좀 도전적이거든요. 모임이나 행사마다 빠지지 않고 먼저 말을 걸었어요." 성적도 4년 동안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좋았다.
박씨는"사회생활을 하면서 이것저것 겪어서 그런지 이해가 잘됐다"고 했다.

박씨는 작년 10월부터 WKBL에서 초대 경기운영본부장을 맡고 있다. 기존 심판위원회와 경기부를 합친 경기운영본부는 심판 관리와 경기 운영 전반을 총괄한다. WKBL 2018~2019시즌이 작년 11월 시작되면서 거의 매일 경기장으로 '출근'한다. 그래도 인터넷을 통해 예·복습하며 수업을 따라갔다.

그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아직 여자 농구와 체육계를 위해 할 일이 많다고 했다. 바쁜 와중에 대학 공부를 마친 것도 이 때문이다. 부족한 것을 채우면 자신감이 생기고 앞으로 다른 일을 할 때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는 우선순위로 WKBL 최초 여자 감독을 꼽았다. 아직 프로팀에선 여자 감독이 나오지 않았 다.
그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것저것 겪어서 그런지 이해가 잘됐다" "10년 전쯤 도전했다가 남성의 벽에 가로막혔다"며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제가 좀 교만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감독 하면 잘할 수 있는 후배들도 있는데 첫 여성 감독으로 조명을 받다가 실패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두려움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 같아요. 제가 먼저 나서서 길을 닦으면 후배들이 좀 더 편하게 도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조선일보 송원형 기자
입력 2019.02.28 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