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기제(雙冀制) 과거제도

沙月  李 盛 永

 

지례 향교 대성전

 

요즈음 KBS 1TV 주말 대하역사드라마 ‘帝國의 아침”이 방영되기 시작한지 한 참 되었다. ‘太祖 王建’의 뒤를 이은 드라마로서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였지만 왕건 사후에는 지방 호족들의 팽창된 권세에 눌려 황제는 꼭두각시에 불과했던 고려초기에 제4대 광종이 황권을 신장하여 황제 중심 제국의 새 아침을 연다는 내용인 것 같다.

 

이 드라마의 최근 몇 회에 중국 후주(後周)의 사신으로 고려에 왔다가 병을 핑계하여 돌아가지 않고 눌러 앉아 고려에 벼슬을 하게 되는 쌍기(雙冀)라는 사람이 등장한다.

 

그가 내 놓는 첫 작품은 노예해방을 통해 호족들의 사병(私兵)을 무력화 시키는 것이지만 다음에는 과거제도다. 글(文)을 아는 사람을 조정의 관직에 채용하는 과거제도를 시행함으로서 문을 숭상하여 무(武)를 힘의 근원으로 삼는 호족들은 더욱더 철저히 몰락시키게 되는 것이다.

 

나의 선친의 유고(遺稿) 중에 ‘지례향교(知禮鄕校) 명륜당기(明倫堂記)’라는 짤막한 글이 한편 있다. 나의 16대조 직강공(諱 淑璜)께서 조선 성종조 때 성균관 직강(直講: 정5품, 지금의 서울대학 평교수)을 지내고 지금 나의 시골집이 있는 곳(당시 知禮縣 沙月)으로 낙향하여 만년을 지내고 있던 중 성종16년(서기1485년)에 야성(野成) 김수문(金秀文)이 지례 현감으로 부임한 후 교육에 힘 써 기존의 지례향교에 명륜당 등을 증축하고 준공하면서 직강공을 찾아와 그 기문(記文: 자세한 내력을 적은 글)을 부탁하여 지은 글이다.

 

 

 

 

 

 

 

 

 

 

 

 


선친의 필사본 지례향교 명륜당기

이 글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惟吾東方 僻在海偶 舊無學校之敎 前朝 光廟 因雙冀制科擧 臨軒榮士 儒風梢興 自是以來 內立成均 外建鄕學 置敎官 聚生徒 敎之以窮理正心 相與切嗟琢磨 所養人材 禮樂文物彬彬 可考矣」

(유오동방 벽재해우 구무학교지교 전조 광묘 인쌍기제과거 임헌영사 유풍초흥 자시이래 내입성균 외건향학 치교관 취생도 교지 이궁리정심 상여절차탁마 소양인재 예악문물빈빈 가고의)

 

생각컨데 우리나라는 동방의 한 쪽에 치우쳐 있어서 옛날에는 학교교육이라는 것이 없다가 전조(고려) 광묘(광종) 때 쌍기제(雙冀制)의 과거제도가 들어와서 임헌영사(臨軒榮士: 벼슬에 임하고 영예로운 선비가 됨)하고 유학(儒學)의 풍토가 점점 일어나게 되었다. 이로부터 안(서울)에는 성균관을 세우고, 밖(지방)에는 향학을 세워서 교관을 두고 생도를 모아 궁리정심을 가르치고 서로간에 절차탁마하면서 인재를 양성하니 예악과 문물이 빛을 내게 되어 가히 높이 평가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글 내용에 등장하는 쌍기(雙冀)는 지금‘帝國의 아침’드라마에 주나라 사신의 일원으로 고려에 왔다가 눌러 앉는 그 사람인 것이다.

 

한국사대사전에는 쌍기(雙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중국 후주인으로서 고려에 귀화한 사람. 쌍철(雙哲)의 아들. 후주 무승군절도순관(武勝軍節度巡官)장사랑시대리평사(將仕郞試大理評事)직에 있었고, 고려 광종 7년(서기956년) 후주의 사신 설문우(薛聞遇)를 따라 고려에 들어와 병으로 핑계로 귀국하지 않고 체류하다가 귀화하였다.

광종이 그의 재주가 비상함을 보고 한림학사(翰林學士)에 임명하고 곧 이어 문형(文衡: 大提學)에 등용하였다. 그는 광종 9년(서기958년)에 왕에게 건의하여 과거제도를 창설하니 이것이 고려 과거(科擧)의 시작이며 이를 쌍기제(雙冀制) 과거제도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