推鼓(퇴고)와 犯馬(범마)

沙月 李    永(육사18기 동기회 홈페이지에 게재. 增補)

‘글 다듬기’퇴고(推敲) 또는 다른 발음으로 추고(推敲)라고 한다. 글자대로 하면 ‘민다고 할 것인가, 두드린다 할 것인가’라는 뜻이다.

 

대부분의 훌륭한 글은 한번에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초고 후에 수없이 많은 글 다듬기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내가 중학교 때인가 이 말을 배울 때 국어 선생님의 재미나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옛날 어느 작가(일본인이라고 한 것으로 기억된다)가 뱀에 대한 긴 글을 써 놓고 글 다듬기를 하고, 또 해서 이제는 더 이상 다듬을 데가 없다고 생각했을 때 보니 네 글자만 남았더라는 것이다. 그 네 글자는 ‘너무 길다’였다고  한다. ‘뱀이 너무 길게 생겼다’는 뜻도 되고, ‘글이 너무 길었다’는 뜻도 된다.

 

글 다듬기라는 뜻인 퇴고(推敲)는 다음 이야기에서 유래된 고사성어(古事成語)이다. 중국 당나라 때 가도(賈島)라는 시인이 서울 장안(長安)으로 과거를 보러 갈 때의 일이다. 나귀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시상이 하나 떠  올라서 나귀등에서 한 수 지었다.

 

  閑居少隣竝(한거소린병) 인가 드문 곳에 한가한 집 있는데

  草徑入荒園(초경입황원) 풀 무성한 길이 거친 정원으로 나 있네

  鳥宿池邊樹(조숙지변수) 새는 연못 가 나무에서 잠자고

僧鼓月下門(승고월하문) 중은 달빛 아래 사립문을 두드리네

 

그런데 가도는 이 시의 마지막 구절에서두드린다’는 뜻의 鼓(고)자 보다 ‘민다’는 뜻의 推(퇴)자로 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 두 글자를 놓고 골똘히 생각하며 推(퇴)?, 鼓(고)? 推(퇴)? 鼓(고)?---하며 무아경에 빠져 정신 없이 가다가 그만 어떤 귀인(貴人)의 행차에 부딪히고 말았다.

 

그래서 행차 길을 범한 죄로 가도는 귀인의 앞으로 끌려와 문초를 받게 되었는데 사실 그대로 이야기하였다. 듣고 있던 귀인은 노여워하는 기색도 없이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역시 ‘민다’는 뜻의 堆(퇴)자 보다 ‘두드린다’는 뜻의 鼓(고)자가 좋겠군!” 하고 가도와 나란히 행차를 계속하며 다정하게 말을 주고받았고, 그 후로도 두 사람은 친한 문학 친구가 되었다 한다.

 

그 행차의 귀인은 중국 문학의 황금기라 하는 당대(唐代)와 송대(宋代)의 거장들,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이요, 당시 경조윤(京兆尹)으로 있던 한유(韓愈: 字 退之, 諡號 文公)였다.

 

이 일로 가도는 한퇴지(韓退之)와 같은 대문장가를 친구로 삼게 되었고, 이 때부터 글의 문장을 다듬고 고친다는 뜻으로 비슷한 말이라도 어느 것이 더 적절한가를 여러 번 생각하고 살피는 것을  ‘堆鼓(퇴고)’라고 하였다 한다.

 

조선조 명종-선조 때 시인이며 이조판서(吏曹判書)까지 지내고도 청백리(淸白吏)에 녹선된 청련(靑蓮) 이후백(李後白)이 이와 유사한 일이 있어 지은 시가 있는데 그 제목이 犯馬(범마)이다

 

犯馬(범마) 행차길을 범하다.

遠郊斜日眩西東(원교사일현서동) 먼 들판 저녁 햇살 동서로 어지럽고

撲面塵沙滾北風(박면진사곤북풍) 세찬 북녘바람 모래먼지 얼굴 때리네

誤觸牙旌知不恨(오촉아정지불한) 대감 행차 범하였지만 후회는 없다오

浪仙從此識韓公(낭선종차식한공) 낭선도 이런 일로 한문공을 알았으니

 

이 시에서 낭선(浪仙)은 앞 이야기의 가도(賈島)를 말하고, 한공(韓公)퇴지(退之) 한유(韓愈)를 말한다. 이후백이 저녁 햇살과 세찬 북녁바람을 핑계하여 시 한 수 지어 사과하고, 퇴고(推敲)의 고사를 들어 범마를 선처 해 줄 것을 넌지시 청하고 있다. 마음의 여유가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