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엽관제도(獵官制度)
沙月 李 盛 永(2005.12.27)

감투

  2005년의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세모에 서서 되돌아 볼 좋은 기억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없고, 하고싶지 않지만 해야 하는 이야기를 하려 한다.

  2005년 12월 26일 동아일보의 「盧정권의 ‘장관’이라는 자리」라는 제목의 사설에 ‘튀는 언동으로 유명한 열린우리당 유시민의원이 내년 초 개각에서 보건복지부장관에 기용될 것’이라는 화두 끝에 노정권의 “내 쌈지 안의 것을 ‘내 코드’에 맞춰 인심 쓰기로서니 무슨 시비냐”는 태도를 두고 ‘현대 행정의 복잡다기(複雜多技)한 특성과 작은 갈등조차 어려워진 행정의 질적 변화를 무시하는 태도’라고 꼬집고 있다.

  정권을 탈취한 자가 관직을 자기 당 또는 자기가 정권을 탈취하는데 공을 세운 이른바 공신(功臣)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을 행정학에서는 「잭슨식 민주주의(Jacksonian Democracy)」라 하고, 엽관제도(獵官制度, Spoils System)라고도 한다. '관직을 사냥하는 제도'라는 뜻이다.

  미국의 초대대통령 워싱톤이 관직에 대한 ‘적재적소원칙(適材適所原則)’을 강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2대 대통령 재퍼슨은 취임 후 25%의 공무원을 자기 당에서 선출하여 갱송하였고, 1820년에 미 연방의회는 ‘관직임기법(官職任期法)’을 제정하여 일정한 관직에 대해서는 임기를 4년으로 하고, 수의(隨意: 임명권자 뜻에 따라)로 면직할 수 있게 하는 등 관직의 교대제(交代制)가 점차 고개를 들기 시작하였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에 서 누구보다도 ‘관직의 交代制’를 강조하고 이를 실천에 옮긴 사람을 잭슨(Jackson) 대통령이라고 한다. 그는 1829년 의회에 교서를 보내면서 “민주국가에서는 누구라도 관직을 보유할 수 있으며, 관직에 오래 머물면 부패하기 쉽고, 관직에서 파면되더라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으므로 파면하는 것은 조금도 악(惡)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자기 나름의 「민주적인 관직관(官職觀)」을 공식적으로 표명하였는데 이것을 행정학자들은 「잭슨식 민주주의」(Jacksonian Democracy) 또는 꼬집어서「엽관제도」(獵官制度, Spoils System)라 명명한 것이다. ‘관직(官)을 사냥(獵)하는 제도’, ‘관직을 전리품(戰利品, 鹵獲品)으로 취급하는 제도’라는 뜻이다.

  잭슨이 대통령으로 있던 19세기 초만 하더라도 관리가 수행하는 행정이라는 것이 특별한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고, 그저 상식 선에서 다 처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직책에 따른 기술 보다는 오히려 공평성이 더 강조되던 시대인 만큼 잭슨의 이러한 주장은 상당한 국민들의 호응을 얻어 과감하게 추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관직(官職)을 정쟁(政爭)에서 이긴 정당의 전리품(戰利品, spoil) 또는 정치적 화폐(political currency, 공로자에게 보상으로 지급하는 돈)로 보는 엽관제도를 도입한 이후 여러 가지 폐단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맨 먼저 정권의 교체에 따라 많은 공직자가 갱송됨으로써 혼란(混亂), 부패(腐敗), 무능(無能) 이 나타났고, 불필요한 관직의 설치, 불필요한 행정비의 지출, 상급관료의 불필요한 시간 낭비, 행정질서의 문란, 행정의 중단, 공무원들의 정치적 업무에 열중, 정치헌금 강요 등이다.

  그래서 1855년 이후 개혁운동이 일어나 공개채용시험(公開採用試驗), 신분(身分)의 보장(保障), 정치적(政治的) 중립성(中立性), 전문성(專門性) 등을 내용으로 하는 성적제도(成績制度)에 의한 근대적 공무원제도로 발전하게 되었다.

  현대에 와서는 공무원은 성적제도에 의하여 정당의 지배로부터 배제되고, 정치적 중립성과 신분보장, 전문성을 유지하는 것이 요구될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더 적극적인 창조(創造)와 지도(指導)의 책임을 다 할 것이 요망되고있다.
  그것은 현대국가의 복잡화(複雜化)와 행정기능의 확대, 정당과 의회능력의 불충분 등으로 현대 국가의 복잡한 여러 가지 문제들이 정치나 정당 및 의회정치 과정에만 의존해서는 만족스럽게 해결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과거에는 공무원은 다만 부여된 법과 정책의 기계적인 집행과 그 범위 내에서 전문성이 요청되었지만 지금은 보다 적극적인 정책수립의 기능과 지도가 요청되기 때문에 단순 사무가(事務家)로서는 불충분하게 된 것이다.
  현대 공무원제도는 정권을 잡은 정당의 봉사자가 아니라 ①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고, 엽관제도가 아니라 ②성적제도에 의거하며, 법과 정책의 단순한 집행 뿐만 아니라 ③적극적인 정책 수립과 지도의 기능까지 담당하게 된 것이다.

  세계의 행정은 이렇게 발전해 왔는데 우리는 지금 21세기에 접어들었지만 19세기 초의 ‘엽관제도’에서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오히려 그보다 더 못한 위치로 되돌아 간 듯한 것이 저간의 행태다. 공무원 세계 뿐만 아니라 국가경제의 일익을 담당하는 정부투자기관 소위 공기업(公企業)과 과학기술의 개발을 임무로 하는 출연연구소(出捐硏究所)에까지도 엽관제도가 철저하게 시행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요즈음 말로 ‘낙하산(落下傘) 인사(人事)’, ‘코드 인사’란 말이 보편화 되어있고, 현장에선 낙하산 인사로 군림한 그들에 의해 소위 ‘인사계혁’이니, ‘구조조정’이니 하는 미명(美名)으로 역시 코드 인사를 통해 제사람 챙기기에 급급한 현실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국민의 정부’의 호남인맥 등용 엽관제도나, ‘참여정부’의 코드인사 엽관제도나 간에 앞서 행정학에서 지적한 당장의 문제와 장래의 문제가 한꺼번에 쏟아지고 있다.
  많은 공직자가 갱송됨으로써 혼란(混亂), 부패(腐敗), 무능(無能) 이 나타났다.
  불필요한 관직의 설치로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수의 정부기관과 위원회가 우후죽순 격으로 솟아나 '위원회공화국'이란 말도 생겨났다. 경제에서는 나눠 줄 것도 별로 없으면서 '분배우선' 정책을 고집하면서, 관직에서는 공신과 개코들에게 주기 위해서 '성장우선'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다.
  말로는 ‘작은 정부’를 외치면서 정부기관과 공무원 수가 날로 늘어나니 행정비의 지출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정부조직상의 행정부서와 위원회 사이에 업무가 얼키고 설키니 자연 행정질서가 범벅이 되도록 문란해 졌다.
  공무원들은 맡은바 업무는 뒷전이고 줄서기, 눈치보기 나아가서 지방자치단체장 또는 국회의원 출마를 꿈꾸며 아예 정치에 줄대는데 열중하고 있다

  내가 지난 1990년부터 2000년까지 10년을 근무했던 국방과학연구소(ADD, 국과연)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나 하려고 한다. 1998년 소위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직후의 이야기다. 국민의 정부가 시작되면서 국민의 정부 성립 즉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는데 결정적 공신은 호남 사람들이기 때문에 항간에는 ‘호남공화국’이란 말이 공공연히 회자(膾炙)되리 만치 임명직 자리나 소위 실세(實勢) 자리가 호남 사람들로 채워졌다.

  국과연 소장 역시 전임자의 임기가 끝나자 마자 공군장군 출신 호남인사가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 소장에 취임하였다. 곧 이어 다른 임원의 한 자리인 상임감사도 육군장군 출신 호남인사가 의기양양하게 내려왔다. 다음은 임원은 아니지만 외부인사로 충원하도록 되어있는 행정담당 제2부소장 -사실상 필요도 없지만 장군출신 자리 하나 만들기 위해 위인설관(爲人設官)으로 생긴 자리- 또한 해군제독 출신 호남인사가 치고 들어왔다.
  이렇게 해서 삽시간에 정상의 세 요직을 점령하더니 그들은 서서히 소위 ‘구조개선’을 시작했다.

  국과연은 오래 전부터 소본부 참모기구와 5개 연구개발본부, 그리고 안흥에 멀리 떨어져 시험본부가 편성되어 있었다.
  제1연구개발본부는 화력과 기동장비 등 지상무기 개발,
  제2연구개발본부는 해상무기 개발,
  제3연구개발본부는 항공무기 개발,
  제4연구개발본부는 유도탄무기 개발,
  제5연구개발본부는 통신전자장비 개발을 통괄하여 왔다.
  90년대 초반, 개발비가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민간 기업에서 개발에 엄두도 못 내는 민-군 공용기술을 국비로 개발하여 민간에 원가를 받고 보급하는 방안이 대두되어 기술개발본부가 하나 더 생겨서 모두 6개 연구개발본부와 시험본부로 편성되어 있었다.

  소위 구조조정을 한다면서 제일 먼저 손을 댄 것이 기술개발본부다. 개발 중인 과제를 1-5개발본부로 쪼개 나눠주고, 기술개발본부를 없애버렸다. 상부기구를 줄이는 것이 효율적인 조직관리 차원에서 환영 받을 수도 있는 조치였지만 그 저의가 조직의 효율성 보다는 현 기술개발본부장을 해직 시키는데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 저의는 다음단계 구조조정에서 쉽게 노출되었다.

  통신전자장비개발을 임무로 하는 제5연구개발본부를 없애고, 그 하부 개발팀들을 지상군무기개발을 임무로 하는 제1연구개발본부에 예속시켰다. 통신전자장비는 지상군만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해상무기, 항공무기에도 공통적으로 필요한 장비일 뿐만 아니라, 이질적인 통신전자장비의 개발을 화력/기동장비개발을 주임무로 해 온 제1연구개발본부장이 통괄 하도록 하였으니 전문성이 떨어질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또 유도무기개발은 주임무로 하는 제4연구개발본부를 없애고 그 예하 개발팀들은 항공무기개발을 주임무로 하는 제3연구개발본부에 통합하였다. 유도무기와 항공무기는 공중을 날아간다는 데는 공통점이 있을지 모르지만 전혀 이질적인 무기가 아닌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짓거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 기가 찰 일은 1개 기술개발본부를 없앤 지 몇 달도 안 돼서 2개 기술개발본부를 신설하는데 제1기술개발본부는 일반적인 무기개발에 따르는 기초기술을 개발하고, 제2기술개발본부는 정보기술(IT) 및 IT시스템을 개발한다는 것이다.

  제 1,2개발본부장은 당연히 호남인맥이 앉았고, 전 제4,5연구개발본부장은 70년대 초 국과연 창설당시 유치과학자로 자타가 인정하는 과학자로서 그 동안의 관록이 붙은 베테랑인데, 하루 아침에 직책이 없는 연구위원(?)으로 무위도식 하는 부랑자로 만들었다. 유독 제2연구개발본부장이 호남바람을 타지 않은 것은 대전에 있지 않고, 경상도 깊숙히 진해에 따로 떨어져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이제 남은 간부급 자리는 제1부소장 한 자라만 남았다. 당시 제1부소장은 육사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일찍이 국과연에 몸담아 연구원에서부터 제1연구개발본부장을 거쳐 부소장에 보직된 국과연 지킴이였는데 무슨 무슨 스캔달을 긁어 내더니 해임하고 또 호남 출신으로 바꿨다.
  이렇게 해서 호남 인맥이 소장, 감사 등 임원 2인과 1,2부소장, 1,3연구개발본부장, 1,2기술개발본부장 등 상위 간부급 9인 중 8인 즉 90%를 점령하는데 6개월도 채 걸리지 않았다. 더욱 가공할 것은 후에 안 일이지만 이러한 일들이 국과연 바깥 호남인사(김대중이 대통령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1등공신)에 의하여 조종, 통제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뿐인가. 소장이 부임한지 6개월쯤 되는 시기, 그러니까 소위 구조조정을 끝낼 즈음에 퇴근 중 현관에서 졸도하여 입원하게 되었다. 1차 뇌수술을 했는데 경과가 좋지 않아 재수술까지 했다고 한다. 아무도 문병을 못 오게 하고, 새로 부임한 호남출신의 제1부소장이 병실을 드나드는데 들리는 소문에는 식물인간처럼 되었다고 한다. 국과연 소규(所規)에 정해진 최대 입원 가능기간은 6개월이라고 한다.

  국과연소장 직책은 엄청난 연간 개발비 집행과 복잡다기한 내부적인 조직의 지휘관리에서도 하루를 공석으로 둬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청와대, 국방부, 과기처, 경기원, 육,해,공군, 국방연 등 외부기관과의 업무협조에 있어서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부소장이 있지만 외부기관에 가 봐야 애기 취급되고, 말 발이 서지 않았다.

  현직 식물인간으로 다시 소생하여 복직할 가능성이 극히 희소한데 소규를 핑계하여 소장직을 6개월 동안 공석으로 두고 봉급만 지급하다가 규정 기간이 지나니 할 수 없이 새로운 소장을 임명하여 보직 시켰다. 이야말로 엽관제도의 횡포치고는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이것이 곧 21세기 우리나라에 19세기 초의 엽관제도가 횡행하는 실태다.

  그럼 참여정부에 들어와서는 나아졌는가. 관직은 말 할 것도 없고, 공기업과 출연연구소 임원까지 ‘낙하산’에 ‘코드’ 완장까지 차고 내려간다는 것이 신문지상에 다반사로 들려주는 기사가 아닌가. 이런 판국에 노무현이 대통령 되는데 1등 공신에다 ‘개코(개혁코드)’까지 꼭 맞는 유시민에게 보건복지부장관 자리 하나 준다 해서 깜짝 놀랄 새로운 일도 아닌 것 같다. 하는데 까지 해 보라고 쳐다보고 있는 수밖에---

  골프장에서 유행하는 유모어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A,B,C세 친구가 내기 골프를 치는데 A가 나머지 B,C의 돈을 다 끌어간다. 돈을 잃는 B,C가 공모해서 돈을 따는 A의 발목을 잡는 이야기다.
  돈을 따고 있는 A가 티샷을 하기 위해 어드레스하고 있는 중에 잃고 있는 B가 C를 향해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로
  B :“야! 요즈음 노무현이 자-알 하고 있는 것 같애”
  C :“맞어, 사람 많이 달라졌더라고!”
  이쯤 되면 대부분 A는 조로롤 내기 마련이다.

  그러나 간혹 배짱이 두둑한 친구는 흔들리지 않고 굿샷을 할 경우가 있다. 그러면 다음 티박스에서는
  B :“야! 그런데 다음 대통령은 유시민이가 유력하다는데---”
  C :“걔, 참 똑똑하더라고---”
  여기서 A는 OB 100%이다.
  그것도 옛 버전이 되고 지금은 이 유모어에 이해찬, 정동영이 이름까지 끼어 든 모양이다.

  이왕 엽관제도 이야기가 나왔으니 관련된 이야기 두개를 더 실어야겠다.

  전두환이 몇 달 사이에 군대 계급을 사냥하듯 몇 달 사이에 소장에서 중장, 중장에서 대장으로 승진 할 그 시기에 국방장관실에 남미인가 어느 나라 실권자가 방문을 하였다. 전두환을 만나고 국방장관실로 온 것이다. 그도 얼마 전에 혁명을 통하여 정권을 잡았는데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고 12.12로 정권을 검어 쥔 한국을 친구로 생각하고 방문한 것이었던 모양이다.

  국방장관실에 들어 온 실권자라는 자는 군복을 입고 있었고, 계급은 의외로 ‘중령’이었다. 하기는 아프리카 우간다인가 에치오피아인가에서는 상사가 혁명으로 정권을 장악한 적도 있으니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니었다. 실권자는 장관실에 들어가고, 딱 한 사람 수행부관 대위가 부속실에 남았다. 장관실 사람들이 호기심에 대위에게
  “왜 중령이 정권을 장악했으면 계급을 장군으로 올리지 않느냐?” 고 물었다. 그 대위 대답 왈
  “혁명가는 계급이 필요 없지요. 혁명가는 자기 계급을 올리지 않는 법입니다. 혁명가가 자기 계급을 올리면 혁명가로서의 생명은 끝나는 겁니다.”참으로 뼈 있는 한마디였다. 내가 합참에 근무할 때 소문으로 들은 이야기다.

  조선조 16대 임금 인조는 소위 ‘인조반정’으로 임금에 올랐다. 공신록 등에는 김류가 맨 위에 기록되어있지만 인조반정의 실질적인 주모자는 이귀(李貴), 장남 이시백(李時白), 3남 이시방(李時昉) 삼부자였다. 반정이 성공하고, 논공행상 논의 때 서로 공을 앞세우며 왈가왈부 할 때 이귀는
  “나는 이번 반정에 광명정대(光明正大)했던 것만 인정해 달라”하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그렇지만 아무리 해도 이귀 삼부자의 공적을 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귀는 1등공신 두 번째. 이시백, 이시방은 2등공신 네 번째와 다섯 번째로 기록에 올랐다.

  인조반정 공신록에 오른 1등공신 8인 중 5인, 2등공신 11인 중 4인이 정승에 올랐지만 이귀는 끝내 정승직을 사양하고 좌찬성에 머물렀다.(卜相未拜로 기록됨) 혁명가로서 자기 직급의 승진을 사양한 것이 역대로 내려오면서 거울이 되어 역대 임금들은 다음과 같이 이귀와 그 후손, 9대에 걸쳐 11인을 정공신(正功臣), 원종공신(原從功臣) 및 보조공신(補助功臣)으로 군호(君號) 즉 부원군(府院君) 또는 군(君)에 봉했다.
  1대: 연평부원군(延平府院君) 이귀(李貴)-정공신 1등
  2대: 연양부원군(延陽府院君) 이시백(李時白)-정공신 2등,
         연풍부원군(延豊府院君) 이시담-원종공신,
         연성군(延城君) 이시방(李時昉)-정공신 2등
  3대: 연창군(延昌君) 이흔(炘) -보조공신
  4대: 연성군(延城君) 이상위(李相胃) -보조공신
  5대: 연은군(延恩君) 이영(李泳) -보조공신
  6대: 연원군(延原君) 이명희(이명희) -보조공신
  7대: 연릉군(延陵君) 이유(李瑜) -보조공신
  8대: 연천군(延川君) 이도양(李度陽) -보조공신
  9대: 연풍군(延豊君) 이압(李押) -보조공신

  그런가 하면 장수 출신 이괄(李适)은 2등공신에 봉해진 불만과 당시 위협이 고조되는 북변사(北邊使: 북방사령관)로 보직 된 데 대하여 불만을 품고 소위 ‘이괄의 난’을 일으켜 나라를 혼란의 도가니 속에 들게 했다가 결국 자신도 진압, 살해되었고, 1등공신에 기록된 김류, 김자점, 심기원 등이 정승에까지 오르고도 반심을 품다가 처형되었다.

  지난 일들을 돌이켜 보면 관직, 출세, 한 낱 물거품인 것을 사람들은 그것을 잡겠다고 불나비처럼 모여들고, 권력을 잡은 자 관직을 사냥(獵官) 한 것으로 생각하면서 사냥개들에게 고기 한 점씩 나눠 주듯 하는 ‘21세기 엽관제도(獵官制度)’가 활개치는 한심한 세상이 됐다.

  새삼스럽지만 인사(人事)의 삼원칙(三原則)을 한 번 읊어보고 끝내야겠다.

- 능력(能力)에는 승진(陞進)을, 공로(功勞)에는 포상(褒賞)을, 근속(勤續)에는 보수(報酬)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