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송령(石松靈) 소나무 이야기
沙月 李 盛 永(2011, 3, 26)
  2011년 3월 25일자 조선일보 A20면에 석송령(石松靈) 이야기가 올랐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석평마을의 영험 있는 소나무’가 사기를 당했다는 이야기다. 신문을 펼치면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이 시대 이 사회의 어두운 장면의 하나다.
천연기념물 제294호 석송령(石松靈)의 모습
위는 문화재청제공 25일 조선일보에 게재된 것이고
아래는 나의 홈페이지 ‘소나무’에 올려진 그림이다.
  경북 예천군은 지난해 5월 예천군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294호 소나무 석송령(石松靈)‘세계 최초로 재산을 보유한 식물’로 기네스 세계기록(Guinness World Records) 등재를 신청한다고 밝히고, 세계기록 등록 대행 수수료로 한국기록원에 1600만원을 지불했는데 등록에 실패하고 예산만 낭비했다는 것이다.

  내용인즉 국내에서 기네스 인증을 대행하는 기관으로 행세해 온 한국기록원이 이 석송령 건을 포함하여 여러 번 기네스 로고 사용료를 받는 등 사기행각을 벌인 것이 드러나 24일 경기경찰청이 김모(42)원장을 구속하고, 부인과 사무총장을 불구속 입건했다는 것이다.

  예천에 있는 석송령(石松靈)은 600살 된 반송인데 1000여 평의 땅을 소유하고 있어 지금도 종합토지세를 내는 부자 소나무다. 높이 10m, 줄기 둘레 4.2m로 우산을 편 듯 옆으로 길게 퍼져 동서 폭이 32m, 남북 22m나 된다.

  조선 초기에 큰 홍수 때 석평마을 앞 석간천에 떠내려 와 걸린 어린 소나무를 한 마을사람이 건져서 심은 것인데 1920년대 말 자식이 없던 이 마을 이수목이란 노인이 이 나무를 ‘석평마을의 영험 있는 소나무’란 뜻으로 ‘석송령’이란 이름을 지어주고, 소유 한 땅 1,191평을 이 나무에게 상속하고 죽자 마을 사람들이 석송계(石松契)를 조직하여 이 나무와 재산을 관리하면서 매년 제사를 지내주고, 종합토지세도 납부하고 있다.
---------------------------------------------------------
  나무 이야기가 나온 김에 소나무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우리나라 산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소나무는 그렇게 흔한 만큼이나 우리민족과 애환을 함께 해 온 나무다.
    ① 애기가 태어나면 금줄에 솔가지를 달고,
    ② 소나무로 지은 너와집에서 살면서 소나무장작으로 밥을 지어먹고, 군불을을 때서 방을 덥히고,
    ③ 송화가루 다식, 솔방울 술, 솔잎 송편을 만들어 먹거나 흉년 들어 소나무 껍질의 송기떡으로 부황(浮黃)을 이겨내고,
    ④ 늙어서 죽으면 소나무 관 속에 들어가 소나무가 둘러 싼 산등성이에 묻힌다.

  그래서 옛 말에 ‘딸이 나면 오동나무를 심고, 아들이 나면 소나무를 심는다’ 하였다. 오동나무는 십 수년이면 장롱을 짤 수 있는 재목이 되기 때문에 혼수 잘해서 딸 시집 보내려는 것이고, 소나무는 60년쯤 되면 관을 짤 수 있는 재목으로 자라기 때문에 좋은 관에 들어가 명산에 묻혀 집안의 융성을 도우라는 뜻이다.

  소나무는 원래 ‘솔나무’가 발음하기 좋도록 변음 된 것인데, 지금도 '솔가지' , '솔방울'처럼 소나무를 '솔'로 발음한다.
  ‘솔’은 우리말로 ‘으뜸’, ‘맨 위’, ‘우두머리’란 뜻의 ‘수리’‘술’로 되고, 또 ‘술’‘솔’로 변음 한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러니까 '소나무'‘나무 중에 으뜸나무’란 뜻이다.
  소나무의 한자어 松(송)자도 소나무를 몹시 높인 것이다. 글자를 파자(破字)하면 木公(목공)이 된다. 소나무를 公爵(공작) 작위에 올린 것인데 공작은 공후백자남(公侯伯子男)의 맨 위의 작위고 또 공(公)자는 관직의 맨 위인 정승(政丞: 영,좌,우의정)을 지칭한다. 경(卿)자가 판서(判書)를 지칭하여 '삼공육경(三公六卿)'은 삼정승과 육판서를 말한다.

  소나무가 우리나라에 있게 된 기록으로는 ‘성주풀이’에 나오는 것이 가장 오래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천상천궁에 있던 성주님이 죄를 짓고 땅으로 내려와 경상도 안동 땅 제비원에 거처하면서 제비들에게 솔 씨를 나누어주어 전국 이산 저산에 뿌려서 집 지을 재목으로 키워 냈다’는 내용이다.

  작은 집터를 닦아 다질 때 지금은 포크레인이 왔다갔다하면서 다지지만 옛날에는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모닥불을 피워놓고 농주 한 사발씩 들이킨 다음 ‘지신밟기’를 하는데 이 때 이 성주풀이를 읊으면서 여러 사람이 이 곡조에 맞추어 집터를 밟아 다진다.
  “--경상도 안동땅(후렴), 제비원에 솔 씨 받아(후렴), 이산 저산 뿌렸더니(후렴), 황장목이 되었네(후렴), 앞집에 김대목(후렴), 뒷집에 박대목(후렴), 나무 내러 가자세야(후렴)?“

  탄소연대 측정 등 과학적인 근거에 의거 소나무가 우리나라에 있었던 역사는 약 6,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3,000년 전부터는 전국적으로 많이 퍼져 자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소나무의 역사가 이렇게 길고 또 사람과 친근하게 지낸 만큼 자연히 사람들이 고유의 우리소나무, 이른바 조선솔에 붙여 준 별칭도 적송, 미인송 또는 여송, 육송, 금강송 또는 강송, 황장목, 춘양목 등 매우 많다.
    - 적송(赤松) : 소나무가 높게 자라면 윗 부분이 붉은 빛으로 윤기가 나기 때문에 붙인 별칭이다.
    - 미인송(美人松) 또는 여송(女松) : 여인의 자태처럼 미끈하고 아름답게 생겼다는 뜻으로 붙인 별칭이다.
    - 육송(陸松) : 물기를 좋아하지 않아서 바닷가나 강가보다는 내륙의 산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해송과 상대적으로 내륙에서 자란다는 뜻의 별칭이다.
    - 금강송(金剛松) 또는 강송(剛松) : 금강산을 중심으로 강원도 일원에 자라는 곧게 뻗은 소나무가 가장 질이 좋아서 얻은 별칭이다.
    - 황장목(黃腸木) : 나라에서 궁궐을 짓거나 왕의 관을 만드는 질 좋은 소나무는 말려서 켜면 속(창자, 腸)이 누런 빛깔이 나기 때문에 ‘누런 내장(속)을 한 소나무’라는 뜻으로 붙여진 별칭이다.
황장목(黃腸木)을 말해주는 사진 한 컷
조선일보 2011년 5월 22일자 게재된 벌목된 소나무 사진
갈라진 광화문 현판 재제작용으로 찾아낸 금강송,
황장목을 말해주는 듯 속(腸)이 누런(黃)색이다.

  황장목이 밀집한 지역에 벌목을 금하는 황장봉산(黃腸封山) 봉하고, 황장금표(黃腸禁標)를 설치하였는데 지금도 치악산 구룡사와 문경의 황장산에는 금표석이 남아 있으며 지리산 등 전국에 황장산이란 이름이 붙은 산은 모두 이렇게 해서 얻게 된 산이름이다.
황장금표석(黃腸禁標石)
왼쪽은 문경 황장산, 오른쪽은 원주 치악산에 있는 황장금표석이다.
  - 춘양목(春陽木) : 일제 때 철도가 생기면서 태백산 남쪽의 봉 화, 울진 등지의 질 좋은 강송을 춘양역(경북 봉화 춘양면)에 집결하여 기차로 전국 수요지로 실어 날은 데서 온 별칭.

  춘양역에서 화차에 실려 전국 방방곡곡으로 운반된 강송 즉 춘양목은 유별나게 소나무를 좋아하던 우리 선조들에게 사랑을 받아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눈치 빠르고 돈 버는 데는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있던 당시 일본인 목상(木商)들은 아무데서 건 벌목해온 소나무를 ‘춘양목’이라 억지를 부리고 높은 가격을 받았다. 여기서 ‘억지춘양’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겨났다.
---------------------------------------------------------
  춘양목(春陽木)이야기가 나왔으니 일본국보 제1호 미륵보살반가사유상(彌勒菩薩半跏思惟像)춘양목에 얽힌 이야기를 하고 끝내야겠다.
일본국보제1호 목조미륵보살반가사유상
반가(半跏)는 한쪽다리(오른쪽)만 도사리고 앉은 자세,
양다리를 도사린 자세는 결가부좌(結跏趺坐),
사유(思惟)는 생각하는 자세
  일본국보 제1호 미륵보살반가사유상(彌勒菩薩半跏思惟像)은 얼굴 전체로 웃고 있는 삼매(三昧)에 몰입하면서 느끼는 환희(歡喜)로 기쁨이 마음에 넘치면서 얼굴에 환하게 피어난 웃음이다.
  독일의 철학자 야스퍼스‘진실로 완성된 인간 실존의 최고 이념이 남김없이 표현되었다’고 감탄하면서
  “지구상의 모든 시간적 속박을 초월하면서 도달한 인간존재의 가장 정결하고 지극히 원만하며, 가장 영원함이 함축된 모습의 표징이랄 수 밖에 없구나” 하며 경탄을 금치 못하였다 한다.

  그런데 이 일본국보 제1호가 신라에서 조성하여 일본으로 보내진 것으로 입증되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춘양목이 한 몫을 했다는 이야기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조선일보가 주최해서 매년 2회 실시하는 ‘일본 속의 한민족사 탐방’ 역사 기행에 2009년 5월 우리부부도 참석한 적이 있는데 교토 코류지(廣隆寺)정영호 석좌교수의 야외 강의에서 이 불상과 춘양목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었다.
코류지(廣隆寺) 마당에서 정영호교수의 강의 경청
  일본의 어느 미술대학 교수 인솔하에 미술학도들이 이 불상을 견학하고 퇴장하였는데 한 학생이 이 불상에 매혹되어 다 퇴실한 뒤에 혼자 남아서 너무 감격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 불상을 껴안았다가 옷에 걸려 부처의 오른손 새끼손가락 불어지는 사고 일어났다.
  이를 알게 된 학생은 겁이 덜컥 나서 부러진 손가락을 부처 밑 안 보이는 곳에 감추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뒤따라 나와 학생 듬에 합류하였다.

  불상의 손가락 하나가 부러진 이 사고는 곧 감지되어 라디오와 TV방송에 불이 났다. ‘일본 국보 제1호가 훼손되었다’는 소식은 온 일본열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물론 사고를 낸 학생도 TV를 보았다. 자기가 얼마나 큰 일을 저질렀는지 알게 되어 죄책감에 견딜 수가 없었다.

  학생은 교수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고백하였다. 인솔했던 교수(이름?)는 학생을 데리고 코류지(廣隆寺)로 가서 학생이 감춰둔 부러진 새끼손가락을 찾아와 당국에 신고하여 일본 최고 기술의 문화제 복원팀이 투입되어 불상은 훼손전과 다를 바 없이 복원되었다.

  그런데 이 일본국보 제1호 불상은 오래전부터 신라에서 조성되어 일본에 전해 준 것으로 알려져 왔는데 일제 침략기부터 지금까지 일본인 우월주의에 따른 체면 때문에 일부 학자들이 '일본에서 조성되고, 신라 사람들이 도와줬다' 하다가 아예 '일본에서 일본 사람이 조성했다' 는 주장을 펴 와서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인솔교수가 감춰둔 새끼손가락을 찾으러 갔을 때 교수는 불상 아래서 새끼손가락이 불어지면서 떨어져 나온 미세한 나무조각을 발견하고 종이에 깨끗이 싸서 가지고 와서 유전자검사 등 현대 과학적 기법으로 그 재질이 조선에서만 자라는 춘양목(春陽木)인 것을 확인함으로서 이 부처가 신라에서 조성(造成)하여 일본에 전해 준 것임을 입증하였다고 한다.

  일제 때 일본인 식물학자가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소나무 적송(赤松)을 세계 식물학계에 등록하면서 'Japaneses Red pine'이라 등록하여 지금도 학명이 그렇게 되어 있는데, 이렇게 일본에도 양심이 있는 학자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인 교수가 조선소나무의 통칭인 적송(赤松)이나, 질 좋은 소나무의 별칭인 금강송(金剛松) 또는 황장목(黃腸木) 같은 이름을 두고 굳이 춘양목(春陽木)이라 한 것은 이 별칭이 일제(日帝) 때 생겨나 일본인 목상(木商)들이 즐겨 썼고, 그 때 많이 유행했기 때문에 지금도 나이 많은 일본인들은 다른 호칭은 잘 모르고, 이 호칭에 익숙했던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