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나의 수양벚나무 이야기
沙月 李 盛 永(2008,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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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수(隨)나라 양제(煬帝)가 중국 역사(役事)에 길이 손꼽히는 대운하(大運河)를 완공하고, 용배에 삼천궁녀를 가득 태우고 소주, 항주를 향해 나아갈 때 이야기다. 갑판 용상에 높이 앉아 주변 정경을 감상하던 양제가 운하 물가에 심은 버드나무에 눈길이 멎었다.
    원래 버드나무 가지가 하늘하늘해서 양류세지(楊柳細枝)라 하였지만 이 버드나무 가지는 세지(細枝: 가는 나무가지)가 아래로 늘어진 것이 머리 감는 여인네처럼 이를 바라보는 양제에게 무척 아름답게 보였던 모양이다.

    양제는 측근 신하를 불러 이 버드나무의 이름을 물었다. 신하가 머리를 긁적긁적 하자 이 아름다운 나무에 이름이 없다면 말이 되느냐면서 당장 지어 올리라고 호통을 쳤단다.
    눈치 빠르고 아부하기 좋아하는 신하는 잽싸기 이름을 지어 올렸는데 ‘수양(隨煬)버들’이다. ‘수(隨)나라 양제(煬帝) 버드나무’란 뜻으로 다분히 아부하는 이름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수양(隨煬)’‘수양(垂楊)’으로 바뀌어 ‘늘어진 버드나무’ 란 뜻이 되었다는 것이다.
수양버드나무

    이 이야기와는 관계가 없지만 수양제의 소주, 항주 대운하 나들이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양제가 이와 같이 백성의 고충은 아랑곶 하지 않고 대운하를 파는 역사(役事)를 벌리고, 그 호수 위에 삼천 궁녀를 싣고 색(色)여행을 떠나 있는 동안 견디다 못한 백성들이 농민반란을 일으켜 결국 수나라는 2대 27년 만에 망했다.

    농민반란의 소식을 접한 수양제는 소주, 항주에 싣고갔던 궁녀들을 모두 떼어놓고 일부 중신들과 단신으로 돌아왔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어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결국 나라는 이연의 당나라로 넘어가게 된다.

    소주, 항주 등지에 떼어놓고 간 궁녀들이 그 곳 남정네들과 결혼해서 살면서 아들 딸 낳아서 지금도 '소주, 항주에는 미인들이 많다'는 이야기가 여행 가이드들의 입을 통해서 전해지고 있다

    ‘수양버들’이름이 벚나무와 단풍나무에도 영향을 미쳐서 수양단풍수양벚나무가 생겨났다. 물론 이들은 수양버들처럼 가지가 아래로 축 늘어지는 수형(樹形)을 이루니 ‘수양’은 곧 '가지가 축 늘어진 모양'의 대명사가 된 셈이다.
수양단풍

    수양벚나무는 순수 우리말로는 ‘처진개벚나무’‘실벚나무’ 두 가지가 있단다. 전자는 말 그대로 ‘가지가 아래로 처졌다’는 말인데 '개'자가 붙은 것은 오리지널(원조)에서 벗어난 종류라는 뜻을 낮춰서 하는 말이고 , 후자는 ‘가지가 실처럼 가늘게 늘어졌다’는 뜻이다.
수양벚나무

    내가 근무했던 대전 국방과학연구소에는 수양 벚나무가 몇 그루가 있어 봄이면 가지에 화사한 꽃을 달고 축축 늘어진 모양이 참 보기가 좋다.
    지금부터 약 10년 쯤 어느 봄날 퇴근하면서 기숙사 주차장에서 뒤켠 옹벽을 따라 난 길로 내 방으로 가는데, 옹벽 군데군데 만들어 놓은 직경 5Cm 크기의 프라스틱 물구멍 중 하나에서 새 싹이 하나 삐죽이 내밀고 있어서 무심코 손으로 잡아당겨 보니 살아있는 어린 벚나무인데 뿌리까지 뽑혀 나오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벚나무 씨앗이 이 물구멍 속에 들어가서 싹을 틔워 세상 빛을 보려고 구멍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을까?
    마침 주말에 집사람이 서울서 내려와 함께 시골로 가도록 되어 있어서 화분에 심었다가 시골 울타리 가에 심었는데 1년쯤 크고 보니 가지가 아래로 처지는 것이 바로 수양벚나무다.

    우리 고장에서는 귀한 나무이기도 하지만 나와의 기이한 인연 때문에 시골집에 갈 때마다 관심 깊게 둘러보곤 했지만, 주위 키 큰 나무들에게 치인 탓인지 작년까지 꽃을 피우기는 해도 너무 초라했는데 올해는 아주 화사하게 꽃을 많이 피웠다.
시골집 나의 수양벚나무

    자리를 굳게 잡았다는 뜻이니 이젠 걱정할 것 없이 봄마다 수양벚나무의 화사한 꽃을 감상하며 나와의 기이한 인연을 오래 오래 추억으로 간직하련다.
2009년 봄에도---

    2009년 3월 28일-4월 6일간 시골집에 가 있는 사이 나의수양벚나무는 꽃을 활짝 피웠다.
2009년 나의 수양벚나무꽃
2011년 봄--올벚 한그루가 동무를 했네

    2011년은 좀 더 늦게 나의수양벚나무가 꽃을 활짝 피웠다. 4월 9일-4월 17일간 시골집에 가 있는 사이에 꽃을 활짝 피웠는데 올해는 올벚꽃 한 그루가 동무를 했다.

    오래 전에 대전 국과연 앞산에서 세 그루 캐다 심은 것인데 꽃도 시원치 않고, 꽃과 잎이 함께 나오는 품이 산벚인 것 같아 2년 전에 두 그루는 잘라버리고 그 자리에 묘목상에서 왕벛 한그루를 사다 심어 이제 키가 한길 반 정도 되었다.

    나머지 한 그루는 새로 심은 왕벚나무에 크게 그늘을 지우지 않기 때문에 새로 심은 왕벚이 크는 것 봐가며 자르려고 그냥 두었다.

    그런데 올해 꽃을 피우는 품이 이놈은 산벚이 아니라 완전한 올벚의 속성을 나타내며 꽃을 피웠다. 잎이라곤 흔적도 없는데 꽃만 허드러지게 피웠다. 산벚이 아니라 올벚인 것을 작년까지 꽃이 신통치 않아 내가 산벚으로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

왕벚은 올벚과 산벚의 잡종이라 번식력이 극히 약해서 자생지가 많지 않다. 이 나무는 대전 국방과학연구소 앞산 그러니까 계룡산 줄기에 동쪽 끝에 해당하는 연화봉 중턱에서 캐와서 심은 것인데 여러그루 산벚 속에 올벚이 한그루 끼었던 모양이다. 베었더라면 큰일 날 뻔 했다
2011년 나의 수양벚꽃 이모저모
나의 수양벚나무 동무가 된 올벚꽃
2012년 봄에도 나의 수양벚나무는 화사하게 꽃을 피웠는데---

    2012년 4월 16일 좀 무거운 마음으로 시골집에 왔다. 집사람 갑상선 수술 날자가 25일로 잡혀 오전까지 몇가지 수술전 검사를 끝내고 그 안에 시골집을 다녀와야 할 것 같아 서둘러 시골로 차를 몰았다.

    김천에서 김천의료원에 날벼락으로 입원 중인 새터마 할머니(김화자) 병문안을 하고 시골집에 들어와 보니 수양 벛나무가 화사하게 꽃을 피웠고, 그 옆 올벚나무 친구도 꽃을 잘 피웠고, 새로 사다 심은 왕벚도 올해 처음으로 꽃을 몇송이 피웠다.
    내친김에 부항면사무소 버스정류장 뒤에 서 있는 왕벚나무꽃도 몇 컷트 찍어 올린다.
2012년 나의 수양벚나무
나의 수양벚나무와 올벚나무
올벚나무
새로 심은 왕벚나무
면사무소 왕벚나무

2020년 봄에도 나의 수양벚나무는 꽃을 피웠네

우한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리는가 하면 4.15총선이 17일 앞으로 닥아 온 시점 우리 부부와 아들 시화 부부가 함께 시골집에 왔다.
온 동네가 늙은이들만 남아 썰렁한데다가 우한나-19 때문에 노인정도 문 닫았고, '사회적 거리 두기 운동'(?) 때문에 이웃과도 만나기 께름직한 때라 목적한대로 봄갈이에 열중하였다.
일년지계(一年之契)는 재어춘(在於春) 하고,춘이불경(春而不耕)이면 추무소확(秋無所穫)이라. 일년의 계획은 봄에 있다. 봄에 심지 않으면 가을에 수확할 것이 없다.
감자와 상추는 2주전에 와서 심었고, 이번에는 알타리무와 옥수수를 심고, 고구마 심을 자리에 거름과 비료를 주어 두둑을 만들고 검은 비닐은 씨웠다.
그동안 올 때마다 수확해 먹은 표고버섯 나무가 시효가 다 된 것같아 참나무 한그루 베어다가 기리로 구멍을 뚫고 종균을 사와 구멍을 채웠다.
마침 나의 수양벗나무가 꽃을 피웠는데 늘 옆에 함께 피던 올벗나무는 아직 꽃망울이를 터트리지 않았다. 곧 상경하면 4.15총선 후에나 올 것 같으니 올벗꽃은 올해 못 보겠다.
카메라를 들고 나선김에 시골집 봄소식이 될 만 한 것들을 찍었다.
나의 수양 벗나무
수양 벗나무만 외롭게 꽃을 피웠다. 매년 함께 피던 옆의 올벗나무는 꽃봉오리를 터트리지 않았다.
까치집 하나
요즈음 물까치가 설치는 바람에 까치는 보기 힘드는데---
까치가 나무 꼭대기 높은 자리에 집을 지은 것을 보니 올 봄에는 봄바람이 심하지 않을 모양이다.
꽃밭 풍경
작년에 시화가 사다 심은 장미와 튜립(가운데와 오른쪽),
금년에 집사람이 미영이와 함께 용인 남사꽃시장에서 산 꽃이 활짝 핀 작은 장미(왼쪽)
아직 월동 중인 파초(바나나나무)
이번에 덮은 것을 벗겨주고 갈까 망설이는 중
새로 만든 표고버섯 종균목
상사화 싹
5월까지 이 상사화 잎들이 무성하게 자랐다가 6월쯤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꽃대들이 솟아 올라 꽃을 피운다.
잎과 꽃이 같은 뿌리에서 나면서도 얼굴 한번 못보고 그리워 한다고 해사 '상사화'라 부르게 되었단다.
모란꽃
모란꽃나무(목단), 1975년 서울 신림동에 집을사서 옥상에 심어 키우던 것을
2000년 시골집을 개축하고 이곳으로 옮겨 심은 것.
꽃나무도 나이를 먹으니 성세가 쇠락해지는 것 같다.
몇년 전 까지만 해도 40송이 정도 피었는데 주축이 되는 긴 가지가 죽고 작아졌다.
그래도 올해 꽃이 20송이는 필 것 같다.
갓 꽃
가을 김장 할 때 코허리를 시큰하게 하는 약념으로 쓰는 갓 씨가
마당 가에 떨어져 난 것이 꽃을 피웠다.
꽃이 유채꽃처럼 생겼다.
천리향, 무궁화, 왕벗나무
천리향은 상록수로 웓동을 하고 이찌감치 꽃을 피워 향기가 천리(千里)에 이른다는 꽃
무궁화는 제주도에서 황근(黃槿)이라고 씨를 얻어 온 것인데 보통 무궁화다.
왕벛나무는 수양벗나무와 올벗나무에 치어 커지 못하는 것을 2년 전에 감나무 죽은 자이에 옮겨 심은 것인데
작년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올패는 좀더 많이 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넝쿨 장미
시와가 3그루를 사다가 여기 저기 심은 것을 한 곳에 모았다.
커면 담장위에 얼기를 하여 퍼지게 할 계획이다.
담장에는 담쟁이 담장 위에는 넝쿨잔미, 미리 생각해 본다.
봄날의 시골집
오늘 새벽잠이 깨어 바라본 벽시계

2021년 봄에도 나의 수양벚나무와 올벛나무가 동무해서 꽃을 피웠네
2021년 봄 시골집 전경
박태기나무
삽작 오른쪽 문주 곁애 박태기나무가 자주색 꽃봉오리를 다닥다닥 맺었다.
이 나무 이름 '박태기'는 이 꽃봉오리 모양이 밥알
즉 '밥풀때기'를 닮아서 '밥풀때기나무'라 한 것이줄임/변음해서 박태기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삽작 왼쪽 문주 옆에 앵도나무꽃
너무 왕성해서 뒤에 나올 바나나와 능소화가 가려서 가지를 많이 잘랐다.
집앞과 뒤의 개나리
위 집앞 개나리는 시화가 꽃이 크고 좋은 장미를 뒷쪽에 심으면서 잘라버렸다.
내년부터는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아래사진 상주 집주인 고양이가 도망가질 않고 들어눕는다.
분재감 소철과 모란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둘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김영랑의 '모란' 중에서)
영랑시인은 일제 압박하에서 봄이 와도 슬픈 봄일 뿐,
2021년의 봄도 문제인 좌파정권의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 에서 '슬픔의 봄'일뿐이다.
작년에 시화가 사와서 심은 넝쿨장미
담장에 활작 날개를 폈다. 6월 쯤이면 빨간 장미가 덤성덤성 필 것이고,
내년에는 담벽을 꽉 채울 것이다.
.튜립
한 포기에서 15송이 꽃이 올라왔다. 며칠 후면 꽃을 활짝 피울 것 같다.
명자나무꽃
옆에 본 꽃나무가 너무 크고 왕성하여 낮게 잘라 올해는 꽃을 못피우고
이건 뻗어나오 뿌리에서 솟은 새끼나무가 이렇게 꽃을 피웠다.
상사화 꼴
6월경에는 이 꽃닢들이 흔적도 없이 말라버리고 8-9월에 꽃대가 올라와 흰색과 붉은색이 조화된 꽃을 피운다,
이 잎과 돋어날 꽃이 서로 보지도 못하면서 그리워한다고 해서 '상사화'라고 했단다.
위는 상사화사이에 모양은 새끼처럼 가냘프게 생겼지만 상사화와는 전혀 다른 '나리꽃'들이다.
아래 그림의 12개 검은 통은 시화가 인터넷 주문해서 산 부직포 화분이다.
집에서 쉽게 따서 요리할 고추, 파프리카, 토마토를 심겠다고 한다
자생한 금낭화/꽃
나의 수양벚나무(오른쪽)와 올벚? 왕벚?
수양벚나무 앞과 옆 얼굴
앞집 지붕위로 보이는 수양벚꽃 윗부분
나무 아래서 올려다 본 수양벚나무(왼쪽)와 올벚나무(오른쪽)
재작년에 옮겨 심은 어린 왕벚나무
작년에는 꽃이 엉성하더니 올해는 좀 촘촘한 것이 왕벚 티를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