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천(炭川)과 동방삭(東方朔)

 

탄천(炭川) 이름의 유래는 지금 성남시 탄리(숯골)에서 숯을 구워서 나라에 바쳤는데, 비만 오면 이 내로 흘러들어 시커먼 물이 흐른다하여 숯내 라고 불렀으며 한자로 炭川이라 표기하면서 탄천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탄천을 동방삭이의 행적과 관련하여 재미있는 이야기로 꾸며져 구전되어 왔다.

2003년 2월 10일자 중앙일보 [분수대] 난에 동방삭이 이야기가 실렸는데 내용을 간추려 보면,

 

<중국사(中國史)에 ‘진황한무(秦皇漢武)’라는 말이 있는데 진시황(秦始皇)과 한무제(漢武帝)을 일컫는 말이다. 두 황제는 대 제국을 통치하면서 흉노에 적극 대항했던 중국의 강성한 황제의 상징적 존재라는 공통점이 있고, 불로장생(不老長生)을 얻으려는 집념이 누구보다 강했다는 점이 또한 공통점이다.

 

이러한 두 황제의 곁에는 불로장생 집념에 불을 지른 방사가 있었는데 진시황에게는 서복(徐福)이라는 시종 있었고, 한무제에게는 바로 동방삭이라는 것이다.

 

서복(徐福)이 불로불사의 선인이 있다는 봉래산(縫萊山)을 찾아 다녔으나 끝내 신선의 명약을 얻지 못하여 진시황을 실망시키고, 말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신이 되었다는 전설과 함께 일본 와카야마(和歌山)현의 신궁 옆에 그의 무덤이 있어 매년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동방삭‘객난(客難)’, ‘비유선생지론(非有先生之論)’등의 글을 남긴 실제 인물로서 신인(神人) 서왕모(西王母)의 복숭아를 훔쳐 먹고 삼천갑자(三千甲子:1갑자: 60년, 삼천갑자: 18만년)를 살았다는 전설 때문에 그를 ‘삼천갑자 동방삭’이라 불렀다.

 

동방삭이 한무제를 위하여 불사약을 찾아 다닌 탐험기에 묘사된 내용 중에 북극을 설명하는 대목이 있는데 최근에 와서 ‘동방삭이 세계 최초로 북극을 탐험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동방삭은 살기도 오래 살았지만 그 이름도 21세기까지 관심을 끌며 장생하고 있다>
며 글은 끝난다.

 

내가 동방삭이란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어린 시절 어머님의 자장가에서다. 그러니까 어머님의 자장가의 내용을 알아 들을 수 있는 나이라면 국민학교에 갈 나이가 다 돼 갈 때인 것 같다. 50년도 더 된 이야기다.

“자장 자장 자장 자장/ 우리 애기 잘도 잔다/ 멍멍 개도 짖지 말고/ 꼬꾜 닭아 우지 마라/

금자동아 옥자동아/ 나라님께 충신동아/ 부모님께 효자동아/ 형제간에 우애동아/

금을 주면 너를 사며/ 옥을 주면 너를 사랴/

동방삭이 명을 주고/ 석수이(석숭이)가 복을 주며/ 이태백이 글을 준다/

자장 자장 자장 자장----”

 

어머니가 열이 불덩이처럼 펄펄 끓는 어린 동생들을 등에 업고  방 안을 서성이면서 이런 자장가를 부르시는 모습을 수도 없이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오십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그 모습이 생생할 뿐만 아니라 노래 가사까지 생생하게 생각난다.

 

우리 아기 잠 잘 자게 개도, 닭도 시끄럽게 짖지도 말고,  울지도 마라.

우리아기는 금과 옥과 같고, 충신, 효자 그리고, 형제간에 우애 깊은 사람이 될 것이다.

아기는 엄마에게 금보다, 옥보다 귀한 존재, 이세상 그 무엇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둘도 없는 존재다.

명도 길어야 하고, 복도 많이 받아야 하고, 글도 잘 해야 한다.

우리 어머니들이 아기에게 바라는 소망 바로 그것이다.

 

칭얼거리던 아기가 엄마의 정성에 보답 하듯 새록새록 잠이 든다. 맘 같아서는 언제까지나 이렇게 아기를 업어주고 싶지만 부엌에는 저녁 준비, 우물 가에는 빨래거리, 작은방에는 베틀---- 할 일이 태산 같다.

 

잠 든 아기가 행여 깰라 조심조심 아래 목에 내려 눕히고 포대기로 다독거리면서

“에이고, 고 새 잠이 들었구마, 이쁜 것”

 

그 다음 동방삭이 이름을 들은 것이 국민학교 몇 학년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국어교과서인가 무슨 교과서에 ‘삼년고개’라는 이야기 속에 동방삭이가 나온다.

 

옛날 어느 마을 어귀에 고개가 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사람들이 ‘삼년고개’라고 부르고, '이 고개에서 넘어져 구르면 삼년 밖에 못 산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왔는데 어느날 이 동네에서 가장 나이가 많고 점잖은 어른이 장에 갔다 오다가 이 고개 마루에서 발을 헛딛어서 넘어져 구르고 말았다.

 

집에 돌아 온 노인은 그 날부터 식음은 전폐하고 앓아 드러눕게 되었다. 하루 하루를 지날수록 수척해지고 기력이 쇠해져 갔다. 의원을 불러 대 보지만 차도는 없었다. 이대로 간다면 삼년은커녕 몇 달도 못 가서 죽을 것만 같다고 온 동네 사람들이 걱정을 하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동네 한 젊은이가 병문안을 왔다. 몇 가지 문안 대화가 오간 후 젊은이는 노인의 얼굴에서 노인이 극도의 절망감에 빠져있는 것을 느꼈다. 젊은이가 말했다.

젊은이: “어르신네 기력을 찾으셔야지요”

  인: “이제 삼년 밖에 못 사는데 기력을 찾아서 뭘 하나?”

젊은이: “왜 삼년 밖에 못 사신다고 하십니까 더 오래 오래 살 수 있습니다.”노인은 화를 벌컥 내며

  인: “뭐라구? 더 오래 살 수 있다구? 어떻게 이 사람아”

젊은이: “예! 방법이 있습니다. 어르신네 삼년고개에 가셔서 더 구르십시오”

  인: “뭐, 뭐라구? 이 사람아 그 고개에서 한 번 구르면 삼년 밖에 못 사는데 더 구르면 당장 그 자리에서 죽으란 말이 아닌가? 예끼 이사람”

젊은이: “아닙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한 번 구르면 삼년, 두 번 구르면 육년, 세 번 구르면 구년을 살 수 있지 않습니까?”

노인은 말이 없었다. 젊은이는 그만 일어나 인사하고 집을 나왔다.

 

저녁 해가 서산에 떨어지고 어둠이 깔릴 무렵 삼년고개 위에는 한 그림자가 몇 번이고 구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얼마를 굴렀는지 그 그림자는 고개 마루에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해 오래 살게 해 달라는 소원을 빌고 있었다. 이 때 숲 속 나무 뒤에서 엄숙한 소리가 들려 왔다.

  리: “그래, 너는 오래 오래 살 것이니라. 삼천갑자 동방삭이도 이 고개에서 굴렀느니라”

 

이 일이 있은 후 노인은 기력을 되찾아 오래 오래 살았다는 이야기다. 물론 고개 마루 숲 속에서 들려 온 소리는 바로 그 젊은이가 미리 숨어서 지켜보다가 대답한 것이었다.

 

나의 고향집 앞 집에 자녀가 2남 1녀를 두었는데 나보다 네살 아래인 큰 아들의 이름은 김동방석(동방삭을 잘 모르고 석으로 지었음), 딸이 김석순(석숭을 잘 모르고 순으로 지었음), 작은 아들이 김태백이다. 그러고 보면 큰 아들은 장수하라는 소망, 딸은 복을 많이 받으라는 소망, 작은 아들은 글을 잘 하라는 소망을 담아 이름을 지은 것이다.

 

지금은 큰 아들은 포항에서 포철에 근무하고, 딸은 출가하여 어디 사는지 잘 모르겠고, 작은 아들이 노모를 모시고 농사를 지면서 고향집을 지키고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漢韓大辭典(한한대사전)에 동방삭에 대 한 설명이 있다.

 

東方朔: 동방삭 (人) 漢(한) 나라 武帝(무제) 때의 사람. 字(자)는 曼靑(만청) 벼슬이 金馬門侍中(금마문시중)에 이르고 諧謔(해학)과 辯舌(변설)로 이름이 났음. 속설에 西王母(서왕모)의 복숭아를 훔쳐 먹어서 죽지 않고 長壽(장수)하였으므로 三千甲子(삼천갑자) 東方朔(동방삭)이라 일컬음」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2002년     일부터 2박3일로 추진한 임관40주년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추진한 길따라 맛따라 서남해안 순회 여행 때 남해의 금산 보리암에 들렸는데 이 산에는 많은 절묘한 기암들이 이름 지어져 있고, 이름과 형상에 따른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 중에 부소암도 하나다. 진시황의 장남 부소가 이 곳으로 귀양 와서 오르내렸다 하여 부소암(扶蘇岩)이라 명명되었다고 한다. 그 부소암 아래 지금도 해석을 못하는 상형문자의 글이 새겨져 있는데 전설로는 진시황의 시종 서복이 진시황의 명을 받아 삼신산의 불로초를 구하러 이 곳까지 왔다가 불로초는 구하지 못하고 경치 좋은 이 곳 금산에서 한 동안 놀다 가면서 그 내용을 적어 놓은 것이라 전해진다고 한다.

 

이 금산의 부소암 상형문자 이야기와 중앙일보 분수대의 서복 이야기를 연결 해 보면 서복은 불로초를 구하려고 금산에까지 왔다가 이 곳 금산의 경치에 반해 놀다 보니 면목이 없어 진나라로 돌아가지 못하고 방향을 바꾸어 일본으로 건너 갔는지도 모르겠다.


신시5899년(서기2002년) 10월 1일 발행한 多勿(다물: 국과연 다물회지) 통권100호에 편집부의 ‘倍達國(배달국)과 檀君朝鮮(단군조선)의 文字(문자)’라는 글에서 남해 금산의 부소암(扶蘇岩) 암벽에 쓰여있는 그림문자 글이 ‘신시고각(神市古刻)’이라 부르면서 단군이전 ‘신시(神市) 환웅(桓雄)시대 문자’라고 주장하면서, 현지 안내판에서는 ‘서시과차(徐市過此)’라 하며 ‘서복(徐福: 일명 徐市)이 이곳을 지나간 흔적’이라고 소개한 것을 함께 싣고 있다.
(첨부: 부소암 그림문자 해석) .

 

부소암 그림문자 사진과 필사

 










<사진 설명>(이선근저 大韓國史 12권 別冊, 寫眞으로 엮은 韓國史)
[서불제명각자(徐市題名刻字)] : 경남 남해군 이동면 양하리에 있는 큰 바위에 새겨져 있는 이 글자는 篆字(전자)도 隸字(예자)도 아닌 畵象文字(화상문자)다.
 : 전설에 의하면 중국 秦始皇(진시황)이 보낸 서불이라는 사람이 童貞女(동정녀) 5백명을 거느리고 三神山(삼신산)에 不老草(불노초)를 구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가 새겨놓은 것으로서 동양 最古(최고)의 畵象文字(화상문자)라 한다
 : 그러나 鄭寅普(정인보)씨는 이 글자에 대해 異見(이견)을 내세우고 있다. 이것은 서불이 새긴 것이 아니고 訓民正音(훈민정음) 이전의 우리 고대 문자로서 그 뜻은 '사냥을 하러 이곳으로 물을 건너와 기를 꽂다' 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내가 집 근처 단골로 다니는 ‘차박사 카쎈터’에서 차를 정비하는 동안 비치된 도서를 뒤적거리다가 ‘용인의 山水이야기’라는 책을 뽑게 되었다. 이제학 지음이다. 산을 좋아하기를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나기에 얼른 목차를 보니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용인의 산수가 하나 빠짐없이 망라되어 소개하고 있는데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산과, 물과, 바위 등 자연물에 사람들이 붙인 전설과 이야기 들이었다.

 

○ 탄천(炭川) 이름의 유래(由來) 이야기
수원 접경의 광교산(光敎山, 582m)에서 발원하여 수지, 분당, 성남을 거쳐 서울 청담동 올림픽주경기장 서편에서 한강으로 흘러 드는 탄천(炭川) 이름의 유래에 동방삭이 등장한다.

 

삼천갑자를 살다 죽은 동방삭이 천상에서 거짓말로 남을 속이는 버릇 때문에 옥황상제가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지상에 가서 1갑자 더 살면서 바르고 착한 심성을 배워 오라며 내려 보냈다. 그러다 어느덧 60년이 지나 죽을 때가 되어 저승사자가 잡으러 왔다.

 

그러나 동방삭은 그가 천상에 있을 때 큰 공을 세워서 옥황상제로부터 삼천갑자를 더 살고 오라는 명을 받았다며 그를 듯 하게 속여 저승사자를 돌려 보냈다.

 

저승으로 돌아간 저승사자는 삼천갑자를 기다려 다시 동방삭을 잡으러 왔다. 이번에는 동방삭이 종기 자국을 내 보이면서 옥황상제가 삼천갑자를 더 살고 오라고 허락한 옥쇄 자국이라며 저승사자를 속여 돌려 보냈다.

 

저승사자는 또 삼천갑자를 기다렸다가 또 동방삭을 잡으러 왔는데 이번에는 동방삭이 둘러댈 핑계가 없어 하는 수 없이 사람들이 모르도록 변장을 하고 어디론가 숨어버렸다. 저승사자가 중국 땅을 구석구석  뒤지며 숨을 만한 곳을 다 찾아 보았지만 찾지 못하고 수소문하여 해동 조선 땅으로 찾아 나섰다.

 

저승사자가 조선 땅에 와서 숨을 만한 곳을 다 찾아도 못 찾고 시름에 잠겼다가 한 꾀를 생각해 냈다.

 

참숯을 한 수레 실어와 냇가에 앉아 숯을 씻기 시작하였다. 매일 쑤새미로 검을 숯을 박박 문지르며 닦고 있으니 검은 숯검정 물이 아래로 흘러갔다.

 

어느날 동방삭이 냇물 근처를 지나가다가 검은 냇물이 흘러내려 오는 것을 보고 호기심이 생겨서 상류쪽으로 올라 가 보니 어떤 멍청하게 생긴 녀석이 개울 가에 앉아서 숯을 닦고 있어서 이상하게 생각하고.

동방삭: “여보시오! 숯을 그냥 불 피우면 되지 왜 물에 씻어 닦고 있는 거요?”하고 물었다.

저승사: “숯이 검어 보기 싫어서 깨끗하게 하려고 그러오. 이처럼 닦으면 언젠가 하얗게 되겠지요” 하고 대답하였다. 동방삭이 하도 어이가 없어.

동방삭: “내 참! 내가 구천갑자를 살았지만 숯을 씻어 희게 만든다는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요”하였다.

저승사:  “옳거니 네가 바로 동방삭이로구나!” 하고는 동방삭을 잡아서 저승으로 압송해 갔다고 한다.

그 후 사람들이 이 내를 숯내'탄천'(炭川)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 동방삭이 3천갑자나 살게 된 이야기
동방삭이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가 있어 추가로 올린다. 이 이야기는 동방삭이가 어떻게 해서 삼천갑자나 살게 되었는가 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동박삭이는 원래 낚시를 무척 좋아하는 낚시광이었다고 한다. 아침 밥만 먹으면 점심 도시락을 싸서 들고 강으로 낚시를 나가는데 도시락이 변질되지 않도록 수수밭 그늘 깊숙히 두고 낚시를 했다고 한다.

이렇게 60 평생을 거의 대부분 낚시로 세월을 보내던 어느날 점심을 먹으려고 도시락을 찾았는데 도시락이 감쪽 같이 없어져버렸다. 워낙 낚시를 좋아하는 지라 점심을 굶고, 배가 곺은 것도 꾹 참아가며 오후 낚시를 계속했다. 그 다음날 도 분명히 점심 도시락을 수수밭에 놔 뒀는데 없어지고, 또 그 다음 날도 없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참을 수가 없었다. 오늘은 기여코 범인을 잡아야 겠다고 생각하고 점심 도시락을 숨겨 놓는 자리에 줄을 당기면 위에서 망태기가 떨어져 덮치는 덫을 놓고 낚시를 하는 척 하면서 온 신경을 도시락이 있는 곳에 집중하여 감시하였다. 정오쯤 됐을 무렵 도시락이 있는 곳의 수수대가 흔들리는 기미가 있어 순식간에 줄을 잡아당기면서 수수밭으로 뛰어 들어가 망태기 속에 갇힌 짐승을 잡았다. 여우였다.

동방삭: "옳거니 내 도시락을 훔쳐가 내가 점심을 쫄쫄 굶게 한 놈이 바로 네놈이구나! 잘 됐다 오늘은 여우고기로 배를 채워야겠구나" 하고 너털 웃음을 한바탕 웃었다. 그런데 망태기 속에 잡힌 여우가 사람의 말을 하는 것이었다.
여 우: "나는 천년 묵은 여우인데 아직 죽을 때가 안 되었으니 날 살려주면 그 댓가로 당신을 죽지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비결을 가르쳐 주겠읍니다." 원래 통이 크고 호탕한 동방삭은 맘 속으로 '비록 이 놈한테 속는다 쳐도 잃어버린 도시락 몇 개와 여우고기 저녁식사 뿐이지 않는가? 이 놈의 말이 사실이라면 영원히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것 아닌가? 밑져야 본전인데---' 하고 생각하면서
동방삭: "그래? 그럼 어떻게 할건데?" 하고 맘이 동하는 듯이 물었다. 여우는
여 우: "저승에 있는 인명부에서 당신의 이름을 빼버리는 방법입니다. 내가 살고 있는 집(동굴)에 비법이 적힌 책이 있는데 그걸 넘겨 주겠습니다"

그래서 동방삭은 여우를 묶어 줄을 잡고 뒷골 여우굴로 갔다. 여우는 동방삭에게 묶은 줄을 풀라고 했다. 사람을 잘 속이는 여우가 좀 의심스럽기는 했지만 워낙 통이 큰 동방삭은 여우를 풀어주었다. 여우는 동방삭에게 잠시 굴 밖에 기다리라고 해 놓고는 굴 속으로 들어가더니 잠시후에 조그만 책 한 권을 굴 밖으로 던져 주며 "반드시 집에 가서 열어봐야한다" 고 하고는 굴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동방삭은 그 책을 집어 들고 불이나케 집으로 달려와 등잔불의 심지를 돋우고 책을 열고 비법을 읽기 시작하였다. 비법에는 붉은 글씨로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육십갑자 환갑이 되는 날 저녁 때 동구박 느티나무가 있는 쉼터 앞에 제사음식을 떡 벌어지게 한 상 차려 놓고 대추나무 몽둥이 하나 들고 느티나무 뒤에 숨어 있어라. 자정이 가까워 올 때 검은 그림자가 하나 나타날 것이다. 이는 바로 너를 잡으로 오는 저승사자니라. 저승사자가 먼 길을 오다보니 시장기를 느끼고 아무 생각없이 상에 차려진 음식을 맛있게 먹을 것이다. 지승사자가 음식을 반 쯤 먹엇을 때 뛰쳐나가 대추나무 몽둥이로 후려치면서 "네-이-놈---, 이 상이 누구에게 올리는 상인 줄 알기나 하고 음식에 손을 대느냐? 이 음식으로 말할 것 같으면 바로 오늘 염라대왕이 이곳에 온다고 해서 대접할려고 차려 놓은 것인데 감히 네 놈이 겁도 없이 손을 대? 잠시 후면 염라대왕이 오실 테니 내 너를 염라대왕에게 넘겨 당장 저승으로 대리고 가서 지옥으로 가게 할 것이니라." 하고 호통을 치면 그자가 싹싹 빌면서 "무슨 소원이라도 들어 줄 테니 제발 염라대왕에게만 말하지 말라" 고 애원을 하면서 소원을 물을 것이다. 그러면 못 이기는 척 하면서 "정히 그렇다면 내 간단한 소원 하나를 말하지. 저승에 있는 인명부에서 '동방삭'이란 이름을 지금 바로 빼고 오느라" 」고 하라고 되어 있다.

날자를 쳐 보니 바로 내일이 그날이었다. 다음날 날이 새자 마자 부랴부랴 있는 돈 없는 돈 다 긁어 모아 시장으로가서 장바닥에 나온 것 중에 제일 좋은 것들만 골라서 사서 정말 먹음직스럽게 떡 벌어지게 한상차려놓고 기다리니

비법에 적힌대로 한 검은 옷을 입은 그림자가 휙 지나가는 듯 하더니 발길을 멈추고 제사상을 보고 침을 흘리더니 못참겠다는 듯 제사상을 빙빙 돌면서 이것 저것 음식을 먹기 시작하였다. 웬만치 먹었다 싶을 때 느티나무 뒤에 숨어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동방삭이 뛰쳐나가 소리소리 지르며 비법대로 떠들어 댔다. 일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비법대로 진행되어 저승 인명부에 동방삭의 이름이 빠지고, 동방삭이를 저승으로 데리고 가려고 왔던 저승사자는 빈 손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렇게 해서 저승 인명부에 동방삭의 이름이 빠지고 없다 보니 염라대왕도 인명부에 없는 동방삭을 잡으러 저승사자를 보낼리 없어 동방삭이는 죽을 날을 모르고 한없이 살아가게 되어 삼천갑자(三千甲子: 3000 X 60 = 18만년)나 살게 되었다.

동방삭이 삼천갑자가 되던 해에 삼천 번째 마누라가 죽었다. 염라대왕이 어떤 여인을 심판하기 위해서 심문을 하기 시작하였다.
염라대왕: "그대는 이승에서 무엇을 하였느뇨?"
여 인: "네- 저는 동방삭이의 아내였습니다" 하니 염라대왕이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
염라대왕: " 그-래? 거 참 이상한지고. 내 동방삭이란 놈의 콧배기도 한 번 못 봤는데 이제 그대가 삼천 번째 동방삭이의 마누라였다 하니 참으로 괴이한 일이로다" 하고는 저승사자 우두머리를 불러 "여봐라 도대체 동방삭이란 놈이 어떤 놈이길래 내 앞에 한 번도 안나타나고 그 마누라만 삼천 번째 오느냐? 당장 네가 직접 가서 동방삭이를 잡아 오느라" 하고 엄명을 내렸다.

염라대왕의 엄명을 받은 저승사자 우두머리는 저승사자 중에서도 가장 베테랑이라 우두머리에 오른 자였다. 그런 그도 저승 인명부에도 없는 동방삭을 잡아 온다는 것이 참으로 막연하고 암담했다. 어디 사는지도 모르거니와 얼굴 생김새도 전혀 모르니 마주치고 지나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생사여탈권을 쥔 염라대왕의 엄명이니 어덯게든 동방삭을 잡아와야 되지 않는가. 고민 고민 하면서 동방삭을 찾아 나섰다. 한양 고을에 왔을 때 수소문 한 결과 동방삭이 어디 사는 지는 모르지만 본 태생이 낚시광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저승사자 우두머리는 생각 끝에 한 꾀가 떠올랐다.

참숯을 한 수레 실고 강태공들이 많이 앉아 있는 강의 상류로 올라갔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강물에다 쑤세미로 숯을 박박 문지르며 씻기 시작했다. 시꺼먼 숯검정 물이 강물을 따라 흘러내려 갔다.

마침 강 아래쪽에 낚시를 던져 놓고 있던 동방삭이 시꺼먼 숯검정 물이 흘러내려오니 더 이상 낚시는 틀렸다. 동방삭은 낚시를 못하게 되니 화도 나고 또 호기심도 생겼다. 낚시를 걷어 짐을 싸서 집으로 갈까 하다가 호기심이 그대로 집으로 가지 못하게 하였다. 동방삭은 천천히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며 숯검정물의 발원지가 어디인가 찾았다.

얼마 쯤 강을 거슬러 올라 갔을 때 어떤 멍청하게 생긴 녀석이 달구지에 숯을 실고 와서 강물에다 숯을 씻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동방삭이 다가가서 화난 소리로
동방삭: "여보시오! 거 숯을 그냥 불피우면되지 뭣하러 씻고 있는 거요? 남 낚시도 못하게---" 저승사자는 돌아보지도 않고
저승사: "숯이 너무 검어서 보기가 싫어 깨끗하게 씻는 거요. 이렇게 씻다보면 숯도 하얗게 되겠지요." 동방삭이 하도 어이가 없어 하늘을 쳐다보며
동방삭: " 내 참, 내 삼천갑자를 살아도 숯을 씻어 하얗게 하겠다는 놈 첨 보네" 하면서 발길을 돌리려는데 어느세 그자가 뒤로 와서 목덜미를 꽉 움켜 잡으면서
저승사: "요놈! 네가 바로 동방삭이로 구나"

이렇게 해서 동방삭은 삼천갑자 되는 날 저승사자 우두머리의 꾀에 속아 저승으로 잡혀갔고, 저승사자가 동방삭을 잡기 위해 숯을 씻던 냇물을 사람들이 '숯내'탄천(炭川)이라 부르게 되었다
는 이야기다. .    


<첨부: 남해 금산의 부소암 그림문자 해석>
○ 현지 안내판 해석:
「이 석각(石刻)은 일명 徐市過此(서시과차: 서시가 여기를 지나가다)라 불려지는 평평한 자연암에 새겨진 그림문자를 말한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중국 진시황 때 삼신산 불로초를 구하기 위하여 시종인 서시(徐市)가 동남동녀(童男童女) 500여명을 거느리고 이 곳 금산(錦山)을 찾아와서 한동안 즐기다가 떠나면서 자기들의 발자취를 후세에 남기기 위해 새겼다고 한다」그러나 진시황 때는 이미 한문자(漢文字)가 사용되었기 때문에 그 이전의 고문자가 아닐까 추측된다.」

○신시고각(神市古刻):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 상주리와 이동면 낭하리 경계에 있는 금산(錦山: 681m)의 바위(扶蘇岩)에 고문자(古文字)가 새겨져 있는데 「환단고기(桓檀古記)」의 해석은
‘환웅천왕(桓雄天王)이 사냥 나왔다가 祭(제)를 三神(삼신)께 드리다’로 해석되어 있다.

○「조선사연구(朝鮮史硏究)」의 해석은 .    

부소암 그림문자 해석













  ① 사냥개를 형상화 한 것이다
  ② 수레를 타고가는 것을 형상화 한 것이다
    ②-1 머리(모자)에 꽂은 두 개의 깃(고구려 고분벽화에서 흔히 발견되는 양식이다)
    ②-2 몸을 지탱하여 고삐를 잡은 것이 은밀히 요약됨을 볼 수 있다.
    ②-3 뒷바퀴(車輪)
    ②-4 분명치 않지만 소나 말이 수레를 끄는 형상 ②-3과 함께 보면 뒤에는 수레바퀴가 있고, 앞에는 수레를 끌고 가는 짐승을 표현하여 움직이는 수레의 골격을 모두 갖추고 있다.
  ③ 짐승이 화살을 맞은 형상이다.
    ③-1 (육지) 짐승
    ③-2 화살촉 두 개가 짐승에 명중한 형상이다.
  ④-1 두 마리의 새가 앞과 뒤에서 서로 연이어 날아가는 형상이다.
    ④-2 화살촉, 대개 명중의 요체는 화살촉에 있으므로 화살촉을 그려 활을 쏜 것을 보인 것이다.
  ⑤ 물고기를 그린 것이다.
    ⑤-1 물고기 지느러미
    ⑤-2 꼬리를 비스듬히 그려 헤엄치는 것을 보임
  ⑥ 깃대 위에 기수가 있고, 깃대 두 개의 깃발을 묶은 것이 나와 있고, 그 깃대를 말뚝에 꽂았음을 표시한다.
    ⑥-1 깃대
    ⑥-2 旗手(기수)
    ⑥-3 위 깃발(잠깐 말리어 자태가 좋다)
    ⑥-4 아래 깃발(쫙 퍼져 날림)
    ⑥-5 말뚝

  이 모든 것을 종합해 그 배치순서에 의해 해석하면
    ‘사냥개를 뒤에 딸리우고 수래를 몰며, 옆으로 짐승을 쏘며, 앞으로는 새를 쏘고, 물고기가 헤엄치는 곳을 거너서 기와 깃대를 꽂았으니 기간(旗竿)을 세우는 것은 국경을 표시하던 것인데 물고기의 형상은 격지라는 것을 뜻하고, 그 너머에 깃발을 세운 형상을 붙인 것을 보면 사냥하던 길에 한 물(남해도와 육지 사이 노량바다)을 건너서 국경을 확정한 어떠한 제왕의 紀功銘(기공명: 공을 기록하여 새긴 것)인 것 같은데 남해의 지형이 육지에 가까운 섬이니 물고기 상을 중간에 놓은 것이 더욱 들어 맞는다.’
    '머리 위의 두 개의 획은 모자에 두 개의 새 깃털을 꽂는 우리나라 풍속과 들어 맞는다.(고구려 벽화, 백제와 산라 금관) 또한 깃발 끝이 둘, 셋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도 용강고분(龍岡古墳) 갑사수기도(甲士手旗圖)와 비슷한 것이다. 그리고 이 고각도 가로쓰기인데 「속 박물지」에 ‘倭(왜), 辰餘國(진여국) 惑(혹) 橫書(횡서) 惑(혹) 左書(좌서)라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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