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유언
沙月 李 盛 永
우리 말에도 띄어쓰기를 잘못하면 전혀 엉뚱한 뜻이 되는 예는 많이 있다. '아버지가 방으로 들어가신다'가   '아버지 가방으로 들어가신다'로 되는 예는 초등학교 때부터 많이 들은 말이다.

한문 문장에도 이와 같은 것이 많은 모양이다. 물론 한문 문장에는 띄어쓰기라는 것이 없다. 간혹 금석문(金石文)의 한문 문장에서 한 자씩 띄운 것을 볼 때가 있는데 이는 문장의 구절(句節)을 구분하기 위해 띄운 것이 아니라 다음 글자가 임금을 칭하는 글자, 이를테면 天子(천자), ○宗(종), 上(상), 聖(성) 등일 때 한 글자를 띄운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지만 임금에 대한 존경을 표하는 것이다.

한문 문장은 띄우지 않고 쓰지만 해석할 때는 어느 글자에서 구와 절을 끊는다. 이 끊는 곳에 이른 바 토씨를 붙여 문장을 쉽게 해역 하도록 한 한문책도 많이 볼 수 있다. 내가 어릴 때 배운 동몽선습(童蒙先習)이란 일종의 교과서 책도 그렇게 구절이 끝나는 곳에 토씨를 붙이고 있다.

天地之間萬物之衆(천지지간만물지중)惟人(유인)最貴(최귀)하니所貴乎人者(소귀호인자)以其有五倫也(이기유오륜야)是故(시고)孟子(맹자)曰(왈)父子有親(부자유친)하며君臣有義(군신유의)하며夫婦有別(부부유별)하며長幼有序(장유유서)하며朋友有信(붕우유신)이라하시니人而不知有五常則(인이부지유오상칙)其違禽獸(기위금수)不遠矣(불원의)리라

(譯)천지간에 있는 만물의 무리 중에 오직 사람이 가장 귀하니 사람이 귀한 바는 다섯 인륜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부자간에는 친함이 있고, 군신간에는 옳음이 있고, 부부간에는 분별이 있고, 어른과 아이 간에는 순서가 있고, 벗과 벗 간에는 믿음이 있는 것이라 하시니 사람이 이 다섯 가지를 알지 못하면 새나 짐승과 다를 바가 없으리라.

내가 고등학교 때 나이 많은 할아버지 한문선생님이었는데, 한문 문장에서 해역 할 때 띄우는 것을 강조하면서 예를 든 이야기가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고 있다.

옛날 어느 부자집 부부가 딸 하나만 낳고 아들이 없어 아들을 낳기 위하여 별의 별 것을 다 한 끝에 나이 60살이 되어 늦동이로 금쪽 같은 아들 하나를 얻었다. 그러나 옛날 사람의 수명이란 것이 환갑 지나면 곧 끝나는 것이 통상이라 이 부부도 늦동이가 몇 살 되지 못하여 명을 다하고 말았다.

늦동이를 딸과 사위에게 잘 부탁하면서 다음과 같은 유언을 써 주었다.

六十生男非吾子財與壻他人勿關(육십생남비오자재여서타인물관) 이를 통상적인 관념으로 해석하면 六十(육십)에 生男(생남)하니 非吾子(비오자)라 財與壻(재여서)하니 他人勿關(타인물관)하라.'육십살에 생남 하니 이는 내 아들이 아니라 (그래서) 재물을 사위에게 주니 타인은 관여하지 말라.'는 뜻이다.
물론 사위도 그렇게 해석하고 흡족한 마음으로 동네 방네 유언장을 공개하고 또 부자집의 주인이 되어 늦동이를 잘 돌봐 키웠다.

그럭저럭 늦동이가 커서 서당을 다니게 되었다. 공부를 하면서 물리가 틔고, 사람들이 아버지에 관해서 말하는 것도 듣게 되었다. 자형이 갖고 있는 재산이 모두 자기 아버지 재산이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공부를 할수록 아버지의 재산이 자형에게로 넘어간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자형과 누나가 있는 앞에서 물어보았다. 자형은 곧 유언장을 내 놓으며 너도 이제 글을 배웠으니 읽어보라는 것이다. 과연 아버지가 자형에게 재산을 물려 준 것이 확실한 것 같았다.

그러나 늦동이는 서당을 다니면서 아버지의 유언 14자를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얼마를 지나 늦동이가 성년이 되었을 때 자형을 상대로 아버지의 재산을 자기에게 돌려달라는 소를 관가에 올렸다. 즉 고소를 한 것이다.

고소는 절차에 따라 날을 잡아 재판을 하게 되었다. 재판에서 유일한 증거는 아버지의 유언 14자 뿐이었다. 먼저 피고 측인 자형은 지금까지 생각해 온 데로 유언을 해석하면서 장인의 자식도 아닌 - 당시는 60 나이에 아들을 낳을 수 없으니 필경 다른 씨를 받아 태어났다는 뜻- 것을 잘 돌봐 키웠더니 배은망덕하게도 고소를 했다고 화를 냈다.

그러나 원고측인 늦동이아들은 차분하게 유언을 재해석하기 시작하였다.

六十(육십)에 生男(생남)한들 非吾子(비오자)리오 財與(재여)하니 壻他人(서타인)이라 勿關(물관)하라.'육십에 생남 한들 내 아들이 아니리오. 재물을 주니 사위는 곧 타인이라 관여하지 말라'는 뜻이다.

아비가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유언장 또한 유산 상속 소송에서 절대적인 지라 난감해 하던 고을 사또는 늦동이 아들의 유언장 재해석을 듣고는 무릎을 탁 치며 원고 늦동이 아들의 승소로 판결하여 아버지 재산을 아들이 온전히 찾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한문선생님은 덧붙여 만약 아버지가 명백하게 아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으로 유언장에 썼더라면 그 재산을 온전히 보존되었겠느냐는 것이다. 늦동이 아들이 성년이 될 때까지 그 재산의 관리인인 사위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빼돌렸거나 탕진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또 아들이 똑똑하지 못해서 재산을 찾지 못한다면 그런 아들에게는 재산을 물려줄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아들은 그 재산을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차라리 딸도 자식인 만치 똑똑한 사위가 갖고 잘 보존하는 것이 딸과 아들 모두에게 낫다고 생각한 것이라 했다.

듣고 보면 참으로 현명한 유언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