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행호시(牛行虎視), 사행호시(蛇行虎視)
沙月 李盛永(2012. 3. 5)
  월요산학회가 매주 청계산 매봉을 오르고 점심 먹으러 가는 과천명가 벽에 ‘虎視牛行(호시우행)’이라는 글씨의 족자 하나가 걸려 있는데 수도암(修道庵) 해면(海眠)스님의 글씨라 적혀있다. 아래 사진이다.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니 ‘牛行虎視(우행호시)’로도 서예의 소재로 많이 애용되고 있음을 알았다.
과천명가 벽에 걸린 虎視牛行 글씨 족자
무진년(1988) 갑인월(?) 수도암 해면 스님이 쓴 것으로 되어 있다.
'牛行虎視' 서예작품
상형문자처럼 흥미롭게 썼다.
  처음에는 글씨 보다 글씨를 쓴 수도암(修道庵) 스님이 궁금했다. 나의 시골집에서 그리 멀지 않는 증산면 수도산 동쪽 중턱에 규모는 크지 않지만 역사가 깊고 보물 4점을 가지고 있는 아담한 암자가 바로 수도암인데 가야산(伽倻山 象王峰) 제1경을 조망하는 장소이기도 하여 세 번 수도산을 등산하면서 들렸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과천명가 주인은 족자에 있는 수도암이 어디 있는 절인지, 해면스님이 누군지 모른다고 했다. 하기야 우리나라에 수도암이 한 둘이라야지.
수도산 수도암에서 바라보는 가야산 제1경
수도암 대적광전
신라말 헌강왕 3년(859) 도선국사개창(道詵國師開倉)으로
오랜 역사를 가진 절이지만 훨씬 뒤에 창건된 골짜기 아래 있는 청암사의 암자로 되어 있다.
보물제307호 석조비로자나불
석조좌불로는 경주 토암산 석굴암 부처 다음으로 크다고 한다.
보물제296호 석조약사여래좌상
보물제297호 쌍삼층석탑
통일신라시대 형식이라 한다.
화대(火袋)가 없는 통일신라시대 형식을 갖춘 석등
  다음은 虎視牛行(호시우행)의 뜻에 관심이 모아졌다. 글자 그대로 ‘호랑이(虎) 눈초리(視線)와 소(牛) 걸음(行步)’을 말한다. 혹자는 앞 뒤를 바꾸어 牛行虎視(우행호시)라 쓰기도 하고, 혹자는 우행(牛行)의 行(행)자 대신 步(보)자를 써서 牛步虎視(우보호시)라 쓰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뒤에 사행호시(蛇行虎視)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에 제목에는 우행호시(牛行虎視)라 썼다.

  고사성어에 호시탐탐(虎視眈眈)이란 말이 있는데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① 호랑이가 먹이를 노리며 눈을 부릅뜨고 노려봄. ② 이권, 재물, 영토 따위를 탈취할 야심으로 기회를 노리면서 가만히 정세를 살펴봄 등의 해석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虎視牛行(호시우행)을 넌센스해석 하면 ‘소가 걸어가는 것을 호랑이가(어떻게 하면 잡아 먹을까 하고)노려보고 있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이런 면에서 호시(虎視)는 호시탐탐(虎視眈眈)의 호시(虎視)와 같이 다분히 탐욕, 야심 따위의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虎視牛行(호시우행)의 본래의 뜻은 이와 같이 부정적인 뜻이 아니라 ‘호랑이의 눈초리처럼 날카로운 통찰력과 소 걸음과 같은 신중하고 꾸준히 행함’을 말하는 사람이 지녀야 할 긍정적인 덕목이다.
  사람은 모름지기 호랑이의 눈으로 예리하게 상황을 관찰하여 정확한 판단을 내리되 소의 걸음처럼 신중하고 끈기 있게 행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호랑이는 어떤 사물을 볼 때 눈을 흘겨 보거나 고개만 돌려 보는 것이 아니라 온 몸 전체를 돌려서 정면으로 눈에 불을 켜고 직시(直視)한다고 한다. 또 소는 길을 갈 때 결코 서두르거나 그렇다고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뚜벅 뚜벅 한 걸음씩 꾸준히 걸어간다.

  선가(禪家)에서 牛行虎視(우행호시)는 매사를 예리하게 판단하여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하면서 정신을 엉뚱한 곳에 팔지 말고 수행(修行)에 정진하라는 가르침의 법문이기도 하다.

  牛行虎視(우행호시)는 두 가지가 합쳐질 때 그 진가를 나타낸다. 즉 우행(牛行) 없는 호시(虎視)는 자칫 공상(空想)에 그칠 것이고, 호시(虎視) 없는 우행(牛行)은 자칫 무모(無謀) 할 것이기 때문이다.

  牛行虎視(우행호시)란 말이 처음 쓰여진 것이 순천 조계산 송광사에 있는 보조국사 지눌(知訥) 부도비의 다음과 같은 비문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국사는 오직 도만을 위하고, 남의 칭찬이나 비방에는 그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셨다. 또 그의 성품은 인자하고 너그러우셔서, 후배를 지도할 때에, 성질이 패류한 사람이 있어 그 뜻을 거슬리더라도, 그를 가엾이 여겨 껴잡아 주고, 그칠 줄 모르는 정리는 사랑스런 아들을 대하는 어머니 같았다. 스님은 또 위의를 잘 거두어 항상 우행호시(牛行虎視-소걸음과 호랑이 눈빛)로 지내시면서, 힘드는 일과 운력하는데 있어서는, 항상 대중에 앞서 솔선하였다」

  송광사(松廣寺)는 고려-조선조 180여년 동안에 지눌을 비롯하여 16국사를 베출한 조계종 총림(叢林)이요 우리나라 삼보사찰(三寶寺刹) 중의 승보사찰(僧寶寺刹)로 불린다. (法寶寺刹 海印寺, 佛寶寺刹 通度寺)
송광사의 조계종 총림 비석과 승보사찰 표석
조계총림대도장
승보종찰조계산송광사
송광사가 배출한 16국사의 비석
2007년 3월 22일 세 가족(박영배, 이범수,이성영)이 송광사에 갔을 때 찍은 것인데
어느 것이 보조국사 지눌의 비석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보조국사 지눌(知訥)은 고려 중엽 제18대 의종 12년(1158)에 황해도 서흥에서 국학(國學: 조선조 때는 成均館)의 학정(學正: 정8품) 정광우와 부인 조씨 소생으로 8세 때 조계(曹溪: 六祖의 혜능)의 제자 구산선문(九山禪門) 사굴산파(?堀山派)의 종휘(宗暉) 선사에 의해 출가 하여, 후에 정혜결사(定慧結社)를 조직해 불교의 개혁을 추진하여 고려 불교의 중흥조(中興祖)로 칭송을 받아왔다.

  지눌(智訥)의 사상은 돈오점수(頓悟漸修)정혜쌍수(定慧雙修)로 요약되는데 돈오점수먼저 마음의 바탕을 분명히 깨치고 나서 그 깨침에 의지해 꾸준히 닦아가야 한다는 것이고, 정혜쌍수선정(禪定)과 지혜(智慧)를 함께 닦는 이른바 선(禪)과 교(敎) 어느 하나에만 치우치는 것을 경계하는 선교일치(禪敎一致)를 추구하는 것이였다.

  지눌(智訥)은 그 스스로 호를 목우자(牧牛子: 소 치는 아이, 목동)라 하면서 지리산의 제1폭포 근처에 있는 조그만 암자에서 수도하다가 입적하였는데 희종은 그에게 불일보조국사(佛日普照國師)라는 시호와 함께 그의 묘탑에도 감로(甘露)라는 이름을 내렸는데 그 후 그의 시호를 따서 수도하던 암자를 불일암(佛日庵)이라 하였고, 폭포를 불일폭포(佛日瀑布)라 하였다.
지리산 불일암과 불일폭포
불일폭포는 이 때는 갈수기라 수량이 적어 볼품이 없지만 지리산 10경중 제7경으로 뽑힌 장관이다.
  * 송광사 16국사(十六國師): 보조지눌(普照知訥: 804-880), 진각혜심(眞覺慧諶: 1178-1234), 청진몽여(淸眞蒙如: ? - 1252), 진명휘원(眞明煇元: 1191-1271), 원오천영(圓悟天英: 1215-1283), 원감충지(圓監沖止: 1216-1292), 자정(慈靜), 자각(慈覺), 담당(湛堂), 혜감만항(慧鑑萬恒: 1256-1355), 자원(慈圓), 혜각(慧覺), 진복구(覺眞復丘), 정혜(淨慧), 홍진(弘眞), 고봉법장(高峰法藏) (한국사대사전)

  * 정혜결사(定慧結社): 불교에서 결사(結社)는 '뜻을 같이하는 스님들이 모인 수향(修行)모임'을 말한다. 정혜결사(定慧結社)는 고려 후기 보조지눌(普照知訥)의 주도하에 시작된 결사이다. 정(定: 자신의 몸을 가다듬는 공부)과 혜(慧: 사물을 바로 바라보는 지혜)를 같이 닦아야 한다는 취지이다.
  당시 고려 불교가 세속화 되면서 승려들이 도는 닦지 않고 돈과 권력을 좋아하는 흐름이 있었다. 이에 염증을 느낀 보조지눌 (普照知訥)은 당시 승과(僧科)에 급제한 엘리트였지만 사찰의 주지로 나가지 않는다. 보조지눌은 제도권 진입을 거부하면서 야로 나가 기존 불교를 강하게 비판하는 운동을 한 셈이다. 그래서 개성에서 되도록 멀리 떨어진 외딴 지역으로 내려가 결사를 선언했던 것이다.

  정혜결사(定慧結社)의 선언문의 첫 내용이 「人因地而到者 因地而起 離地求起 無有是處也」(인인지이도자 인지이기 이지구기 무유시처야)이다. 이는 '사람이 땅에 넘어진 자는 땅으로 인해서 일어서고, 땅을 떠나서 일어서기를 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 정혜결사(定慧結社) 도량은 순천 조계산 송광사(松廣寺)였다. 송광사에서 이후 16명의 국사가 배출된 배경에는 이 정혜결사의 저력이 뒷받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7.10.20. 조선일보 조용헌 살롱 <結社의 역사> 중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국정의 기조를 호시우행(虎視牛行)으로 삼았다고 한다. 노무현은 대통령에 취임한지(2003, 2월) 50여일 되는 시기에 청남대에서 쓴 虎視牛行(호시우행)을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리고 앞으로 국정운영의 지표로 삼겠다는 뜻을 다음과 같은 편지글 형식을 빌어 밝혔다는 것이다.
  “나라는 생각하지 않고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만 생각하는 일부 사람들이 아무리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고, 못난 저를 이 시대의 희망으로 보고 있는 양식 있는 국민(지지한 사람들)과 함께 저를 흔드는 사람들(반대한 사람들)까지 가슴에 안고 호랑이처럼 보고 소처럼 나아갈 것입니다.”

  호시우행(虎視牛行)이란 앞에 말 했듯이 '호랑이의 눈으로 예리하게 상황을 관찰하여 정확한 판단을 내리되 소의 걸음처럼 신중하고 끈기 있게 행보를 해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노무현은 국민앞에 호시우행(虎視牛行)을 약속해 놓고는 돌아서서 '노사모', MBC, 한겨레신문 같은 노무현 광신 친북, 좌파들 속에 파묻혀 끼리끼리 어울려 기세등등하게 흥청거리면서 부자와 빈자, 강남과 강북, 배운 사람과 못배운 사람 등 편가르기와 법조계, 언론계, 문화계, 교육계 등 사회 요소요소에 친북좌파를 심어 번식시키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 저력이 이명박정부 4년 내내 위력을 발휘하더니 이제 막바지에 이르러 정권 탈환을 장담하면서 보복과 정책 뒤집기를 공갈치고 있다. 죽은 노무현이 그가 키운 종북 좌빨들을 통해 노골적으로 탐탐(耽耽)히 호시(虎視)하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은 청렴(淸廉)을 마치 '조자룡 헌칼 쓰듯' 하면서 '함께 안고가겠다던 흔드는 사람들'(반대자)에 나락으로 밀어부치는 공격 무기로 써먹더니 청렴의 가면(假面)이 벗겨질 위기에 처하자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려야만 했던 그는 호시(虎視)는 있었지만 ‘예리한 통찰력’호시(虎視)가 아니라 호시탐탐(虎視眈眈)호시(虎視)만 있었을 뿐이고, 더더구나 우행(牛行)은 찾아볼 수 없고 촐싹거림만 있었으니 노무현의 호시우행(虎視牛行) 국정지표는 국민을 우롱하는 참으로 가소로운 구호에 그쳤을 뿐이다.

  2006. 12. 21.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석상에서 내뱉은 “요새 아이들도 많이 안 낳는데 군대에 가서 몇 년씩 썩히지 말고 그 동안 열심히 활동하고 장가를 일찍 가는 제도로 전부 바꿔줘야 한다”는 말은 국군통수권자이기도 한 대통령이 도대체 나라의 국방을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호시(虎視)도 우행(牛行)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2006년 12월 21일 민주평통자문회의에서 연설 중
2003년 2월 대통령에 취임한지 50여일 만에 호시우행(虎視牛行) 을 국정지표로 내걸면서
“저를 흔드는 사람들까지 가슴에 안고 호랑이처럼 보고 소처럼 나아갈 것입니다” 했는데
2006년 12월 노무현은 어느새 이렇게 쌈닭으로 변신해 있었다.
국군통수권자인 그가 이 자리에서
‘군대가 젊은이들을 썩히는 곳’이라면서
온 국민이 지켜보고 있는 TV 카메라 앞에서 군대의 자존심을 짓밟으며 온몸으로 공격하고 있다.
  조선일보 2012. 2. 24. 정민의 世說新語(세설신어)에 『사행호시(蛇行虎視)』란 제목의 글이 올랐다. 위 牛行虎視(우행호시)와 비교하면 우(牛)자가 사(蛇)자로 바뀐 것뿐이다. 관련 부분을 발췌해 보면

  「중국 청나라 황균재(黃鈞宰)가 남긴 '술애정(述哀情)' 31칙은 인생을 살아가며 스쳐간 슬픈 광경을 해학을 섞어 나열한 글이다. 몇 항목을 소개한다.
        - 중 략 -
  "권세 높은 이의 집으로 달려가, 방에 들어갈 때는 뱀처럼 기어 들어가서, 문을 나설 때는 범처럼 사납게 째려보며 나오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奔走權貴之家, 入室 蛇行, 出門虎視, 豈不哀哉!)"
  들어갈 때는 뱀처럼 땅바닥을 설설 기며 온갖 비굴한 자태를 짓다가(蛇行), 문을 나설 때는 범처럼 사나운 기세로 제가 그 사람이라도 된 양 으스대고 거들먹거리며 나온다(虎視). 속물들! 선거철만 되면 늘 보는 광경이다.」

  인용한 구절 중에 사행(蛇行).호시(虎視)란 단어가 나온다.

  사행(蛇行)은 글자 그대로 하면 ‘뱀이 기어가는 모양’을 말하는데 국어사전에 찾아보면
    ① 뱀처럼 구불구불 휘어서 기어가는 것처럼 걸어감
    ② 하천이 뱀같이 구불구불한 유로(流路)를 취하면서 흐름(蛇行川=曲流川)

  소가 걷는 것(牛行)‘신중하고 꾸준히 행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라면, 뱀이 기어가는 것(蛇行)‘아첨하고 비굴한 것’을 뜻하는 말로 바뀐 것이다. 호시(虎視) 또한 ‘예리한 통찰력’이 아니라 ‘거만하고, 사납고, 거들먹거리고, 으스대고, 겁주는 눈초리’로 변한다.

  사행호시(蛇行虎視)가 어찌 선거철만 되면 보는 광경이겠는가. 상관 앞에서는 사행(蛇行)만 있고, 부하 앞에서는 호시(虎視)만 있는 자가 출세하는 세상, 사행(蛇行)하면서 우행(牛行)하며 경쟁했던 동료들을 밟고 승진한 후에는 호시(虎視)하면서 우행(牛行)했던 동료들을 깔보고, 업신여기는 사람이 어찌 한 둘 뿐이겠는가?
2012. 2. 24. 정민의 세설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