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계획(栗谷計劃)과 박정희(朴正熙)
- 율곡게획과 관련된 박정희 대통령의 말씀 모음 -
첨부 < M16소총과 박정희 >
沙月 李盛永(2007. 7. 21)
  지난 6월 12일부터 4박 6일로 실크로드를 관광하면서 여행 가이더로부터 중국의 삼걸(三傑)이 진시황(秦始皇), 한무제(漢武帝) 그리고 모택동(毛澤東)이란 말을 듣고, 진시황과 한무제야 예로부터 ‘진황한무(秦皇漢武)’라 해서 중국 사람들이 중국 제왕들 중에서 가장 선호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왔지만, 모택동에 대해서는 선 듯 수긍이 가지 않았다.

  중국 13억 인민이 공산주의라는 마약에 중독되어 헤어나지 못하게 최면을 걸었던 사람이 아닌가.
  5천년의 긴 역사 속에 황화문명을 일군 세계의 중심, 중화(中華)민족이라 자부하면서 주변민족은 모두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 ‘오랑케’라고 비하하면서 자존심이 하늘 높은 줄 몰랐던 족속인데, 그 넓은 땅, 그 많은 자원을 가지고도 가난한 나라 남쪽의 우두머리로 전락하게 했던 사람. 그가 바로 모택동인데---

  우리에게는 57년전 김일성이 저지른 불장난의 응보로 북진통일을 눈앞에 두고 중공군을 투입해서 훼방을 놓았던 저주스런 기억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생각하면 그저 고맙기 그지 없는 사람이기도 하다.
  만약 그가 13억 중국인민을 공산주의 수렁 속으로 몰아넣지 않고, 장개석 같은 자유주의, 자본주의 정치가가 실권을 잡아 그들 특유의 수전노 근성을 살려 경제발전에 매진했더라면 우리 경제는 지금 어떻게 되어 있을까?
  모르긴 해도 동쪽 일본과 서쪽 중국 사이에 샌드위치가 되어 아마 숨통이 막혀 허둥대고 있을 지도 모른다.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일이다.

  그의 설명은 간단했다. 나라의 최고 지위에 있으면서 청렴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중국의 대부분 관리들은 청렴하고는 거리가 멀지만, 역대로 최고위층은 청렴도에서 알아줘야 한다는 것이다.
  모택동을 시작으로 해서, 주은래, 등소평, 강택민,---- 그것 하나로 중국 인민들은 자기들이 가난하게 살게 된 연유도 생각지 않고 지금도 천안문 광장에 큼직한 모택동 사진 을 높이 걸어놓고 우러러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청렴(淸廉)’과 '국가 경제 발전'에 관한한 우리도 내놓을 만한 사람이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다.
순박한 미소 짓는 박정희
조갑제저 「朴正熙」표지에서

  얼마 전 아사달동기회 홈페이지 회원게시판에 ‘M16소총과 박정희’(글 첨부)라는 숨은 이야기 하나가 소개되어 읽는 동안에 내내 코허리가 시큰함을 느꼈다.
  미국의 M16생산회사 간부가 인사차 찾아와서 회장이 드리는 것이라면서 수표 100만불이 든 봉투를 건넸는데 내용을 듣고는 고맙다며 받은 후, M16소총으로 바꿔달라며 다시 그 봉투를 돌려줬다는 이야기다.

  나는 박대통령을 가까이 한 적이 없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면 1961년 5월 17일 육사 4학년 생도로 5.16군사혁명 지지 시가행진이 끝난 후 시청 광장에서 마지막 순서의 결의행사를 할 때 나는 4중대 향도생도였기 때문에 맨 앞에서 잔뜩 긴장한 부동자세로 서 있었고, 항공점퍼에 검은색 안경을 쓴 박정희소장이 바로 앞 단상에 있었으니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육사 졸업장을 받던 그 순간일 것이다.
< 1961년 5월 17일 시청앞 광장 >
항공점퍼에 검은색 안경을 낀 박정희 소장
왼쪽 사진에서 가운데 박정희 소장, 왼쪽 박종규 소령, 오른쪽 차지철 대위
왼쪽 조갑제저 「朴正熙」중에서, 오른쪽 졸업앨범에서
시가행진을 마치고 시청앞 광장에서 휘날레 행사
오른쪽 아래 4중대 3구대 향도 ‘나’, 졸업앨범에서
5,16혁명 지지 성명
정재문 연대장생도가 5,16혁명 지지성명서 낭독, 오른쪽사진 왼쪽 임택근 아나운서
왼쪽 조갑제저 「朴正熙」중에서, 오른쪽 졸업앨범에서
1962년 2월 26일 육사18기 졸업식
당시 육군대장, 最高會議議長(최고회의의장)으로 참석하여
훈시,(왼쪽) 졸업장및 임관장 수여시 졸업생과 일일이 악수(오른쪽)하였다.(졸업앨범에서)

  그러나 1974년 2월 합참대학을 졸업하면서 합참 전략기획국에 보직되어 율곡게획을 수립 및 조정하는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박대통령의 의중을 가늠할 수 있는 유시와 지시사항들을 받으며 일했다.
  ‘M16소총과 박정희’와 일맥 상통하는 옥음(玉音)들이라 소개하려 한다.

  이 내용들은 그로부터 8년 후인 1차율곡계획 목표년도인 1981년 처음으로 합참사(合參史)를 편찬하면서 합참행정실에서 당시 전략기획국 부대계획과장으로 있는 나에게 율곡계획 분야의 합참역사를 초안하라고 해서 여기 저기서 찾아낸 자료들을 모아 초안을 작성하고, 타자하여 제출한 후, 나는 연대장으로 부임해 나갔는데, 그 때 원고를 버리지 않고 꽁쳐놨던 것이다.

  연대장을 마치고, 2군사령부에서 1년 근무하다가 특검단, 이어서 국방부 평가분석실로 보직을 받아 예편 때까지 그곳에서 근무했다. 그 때 합참사를 읽어 볼 기회가 있었는데, 옛날 내가 초안해서 제출했던 것과 별 차이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차이가 있다면 최초율곡계획 수립에서 VI차조정 때까지 수고한 사람들의 명단이 발간된 함참사에는 삭제된 것 뿐이었다.

  나는 1974년 2월 25일 율곡최초계획이 탄생하여 1979년까지 추진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여건 및 정세변화가 있어 6차에 걸친 율곡계획 조정이 이루어졌는데 그 때마다 직접 또는 청와대 참모를 통한 대통령의 유시와 지시사항을 접할 수 있었다.

  대통령의 유시 또는 지시사항을 읽다 보면 당시 월남전에서 월맹의 승전에 고무된 북괴는 ‘없어지는 것은 휴전선이요, 생기는 것은 통일이라’고 큰소리치면서 기고만장해진 남침위협에 직면하여 박정희 대통령은 국방의 실질적인 힘인 '군 전력증강'을 통하여 보다 확실한 국가안전보장을 꾀하려는 확고한 철학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국가 경제를 부흥시키는데 보였던 자신감이 군 전력증강 분야에도 그대로 나타나 오히려 가능성에 대한 회의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군 장교들을 대통령이 일깨우고 다구치며 전력증강을 밀고 나갔음을 쉽게 느낄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타계한지 어언 28년, 지금
  육군은 세계 최상급의 전차로 장비되어있고, 대량 수출까지 하게 되었으며, 세계 그 누구도 추종할 수 없는 차세대 전차개발의 빅뉴스가 신문지상과 TV화면에 오르고 있다.
  오사, 코마급 북괴의 잠수함에 안절부절하고, 서해에서 수원27, 28호 어선이 북괴 해군 함정에 나포되어 가는 것을 빤히 보고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해군은 최상급 재래식 잠수함을 동서해에서 운용하고 있고, 최신의 국산 이지스함을 진수시켰다.
  공군은 국산화 된 KF-16기를 주력기로 장비되었으며, 국내 개발한 초음속 훈련기 T-50을 양산 해 터키등 우방국에 수출하게끔 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꿈이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의 확고한 안보정책과 국방운영의 묘를 기하지 못하고 있는데 있다.
  세계에서 그 유를 찾아 볼 수 없이 튼튼하게 구축된 한-미연합지휘체제를 스스로 허물면서 북의 적화통일 호구(虎口) 속으로 기어들어가고 있는 형국이라 안타깝기 그지없다.
< 1973-79 간에 율곡계획과 박대통령이 관련된 일들 >

  ▶ 합참본부장 이병형 중장이 평소 업무수행을 통하여 생각해 오던 자주국방을 향한 장기군사전략 수립과 자력에 의한 군사 전력 건설 문제를 임동원 육군 중령(진예)을 실무자로 발탁하여 1년 가까이 연구 검토한 것을 1973년 4월 19일 을지연습 ’73 시찰차 국방부에 내방한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다.
  예상 외의 보고를 접한 박대통령은 극구 칭찬하면서 장기군사전략과 전력증강계획(후에 율곡계획으로 명명됨) 수립을 승인하고, 청와대에도 김용환 경제제1수석을 팀장으로 하는 6인의 특별분석팀을 구성하여 지원하였다.
    * 임동원은 대령으로 진급하여 전략기획국 1과장에 보직되고, '75년 연대장으로 부임될 때까지 율곡최초계획, I차, I-1차, II차 조정계획 수립을 실무 지휘하였음.

  ▶ 1974년 2월 25일. 1974-81, 8년간에 76개 사업, ‘73불변가 15.3억$의 1차 전력증강계획을 승인하고, ‘율곡계획’이라 명명하였다.
  ‘M16소총과 박정희’ 이야기의 배경이 된 M16소총 생산사업은 이미 한미간에 합의하여 생산공장을 건설 중이었는데, 율곡사업으로 편입되었다.

  ▶ 율곡계획이 출범할 당시 1971년에 미 7사단 철수와 관련하여 15억불 상당의 군장비를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는 약속(이를 ‘현대화계획’이라 명명)이 추진 중이었는데, 이 현대화계획의 우선순위 조정에 따라 율곡계획의 조정이 불가피하여 1974년 6월12일 율곡계획I차조정, 1974년 8월 18일 율곡계획I-1차조정이 있었다.

  ▶ 1975년 4월 월남이 패망하고, 북괴 김일성이 북경을 방문하는 등 월남전 승리에 고무된 북괴는 한반도에서 전면 도발 가능상이 증대되어 ‘10월 위기설’이 공공연히 유포되는 등 긴장상태가 고조되었다.
  이에 대비책을 강구하여 보고하라는 대통령의 지시를 장관은 주로 ‘군수문제’로 보고, 백석주 군수차관보에게 임무를 부여하여 1975년 6월 일에 보고하면서 1,263억원의 추가소요 예산을 요구하였다.

  대통령은 다음 2개의 질문에 합당한 대답을 듣기 전에는 승인 할 수 없다고 하면서 승인하지 않았다.
            (가) 이러한 소요예산을 확보하여 보완한다면 피아 전력 균형은 어떠하며,
                  만약 북괴가 도발을 감행 했을 시 어느 정도 승산(勝算)이 있는가?
            (나) 기 추진 중인 율곡계획은 그 목표를 얼마나 단축하여 달성할 수 있는가?


  국방부로 돌아온 국방장관(서종철)은 심사숙고 끝에 합참이 주관하여 전면 재검토케 하고, 1975년 7월 18일. ‘율곡계획 II차조정’ 이란 이름으로 보고 하여 승인을 받았다.

  *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전적으로 합참 소관 업무이기 때문에 군수차관보가 답할 성격이 아니었다. 그래서 재검토 보고는 함참이 주관하도록 하였으며, 율곡계획II차조정으로 이루어졌다.
    그 바람에 나는 6월경 제35사단 군산지역 해안대대장으로 내정되어있었지만 나가지 못하고, ‘율곡계획 II차조정’작업이 끝나고 8월 중순에 제27사단 79연대 2대대장으로 나가게 되었다.(이를 어떤 동기생은 '2군 후방지역 대대장 나가기 싫으니까 이를 핑개로 연기토록 수를 써서 전방대대장 나갔다'는 오해까지 받았다)

  ▶ 1976도에 들어와 율곡계획 추진에는 큰 문제는 없었으나
      (1)북괴의 AN-2, MI-4 등 공중침투능력, 전차, 잠수함 세력의 증강,
      (2) 율곡예산의 1975년도 불변가격으로 재판단 필요성 제기,
      (3) 대통령지시에 따라 노후장비대체 사업을 율곡계획에 포함 등으로
      ‘75불변가로 46.7억불 규모로 증가한 율곡계획III차조정을 1976년 7월 26일 대통령에게 보고하여 승인 받았다.

  ▶ 1977년 카터태통령의 주한 미 지상군 철수 방침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기 위하여 정부차원의 ‘30위원회가’ 구성되어 만든 대비책이 ‘30계획’이다.
  이를 반영하기 위하여 율곡계획IV차조정이 수립되어 1977년 3월 15일에 대통령의 재가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직접 또는 청와대 참모를 통하여 여러 번 대통령의 지시 사항이 하달되었다.

  ▶ 1978년 2월 3일 박대통령의 "국방비 규모를 GNP 대비 7%에서 6%로 낮추고, 국방비대 투자비 비율도 33%에서 30%로 낮추라"는 지시에 따라 율곡계획 가용자금의 변동이 생겼고, "2차율곡계획 기간을 5차 경제개발5개년계획 기간(1982-1986)과 일치토록 하라"는 지시에 따라
  1차율곡계획 목표년도를 1981년으로 환원시켜 1978년 12월 16일 1974-1981 8년간에 145개 사업, 경상가 66.3억불의 율곡계획V차조정을 장관 전결로 확정하고, 1979년 1월 24일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다.

  ▶ 1978년에 들면서 한미간에 복잡한 군사적인 일들이 두 가지 있었는데 그 하나가 한미연합사령부(CFC)의 창설이고, 또 하나는 카터 미국 태통령의 「주한미지상군철수」방침인데,
  한미연합사 창설이야 양측 군부는 모두 환영할 일이지만, 주한미지상군철수는 한국 뿐만 아니라 미군측에서도 환영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측보다 오히려 미군측에서 직, 간접적인 저항 움직임이 나타났다.
  직접적인 저항으로 싱글러브 연합사 참모장의 <카터정책비판>인데 그는 “카터의 정책은 잘못된 적정보를 바탕으로 해서 입안 되었다” 는 발언을 하고, 해직되었다.
  간접적인 저항으로 미군측 정보기관들은 싱글러브 발언을 뒷받침이라도 하는 듯 북괴군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쏟아냈는데 주요한 사항을 보면 다음과 같다.
                    북괴군에 관한 종전 정보와 새로운 정보 비교
구 분 종전 정보 새로운 정보 비 고
가용사단 53
(보병28,전차2,교도23)
61
(보병33,전차2,기계3,교도23)
+8
(보병+5,기계+3)
야 포 3,367문 4,362문 +995문
방사포 1,413문 1,893문 +480문
전 차 2,315대 2,732대 +417대
특수여단 15 19 +4
함 정 566척 571척 +5
잠수함 16척 19척 +3척
고속상륙정 74척 85척 +11척
전술기
(MIG-19)
694대
(145대)
705대
(177대)
+11대
(+32대)
육군 병력 48.4만 63.4만 +15만
해군 병력 3.2만 3.2만
공군 병력 5.2만 5.2만
총 병 력 56.8만 71.8만 +15만

  한, 미군 정보기관들이 북괴군에 대한 정보를 생산과정을 보면 종전에는 한국측이 많이, 미측이 적게 제시하여 이를 토대로 검토 결정하였는데, 새로운 정보는 그 반대였다.
  미측이 한국측보다 현저히 많은 수치를 제시한 것이다. 과거에 감춰뒀던 것을 이번에 내 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들었었다.

  이러한 미 군부의 직, 간접적인 저항으로 카터의 주한미제2사단 철수는 1개 여단 철군 후 중단되었고, 주한 미육군이 전방지역에 운용하던 개량호크(저공대공유도탄) 3개 대대와 어네스죤(지대지로켓) 1개 대대 등이 한국군에 무상 이양되고, 나머지 이양계획은 중단되었다.

  1979년에는 이들 새로운 북괴군정보에 대한 대비책(7월 12일)과 이를 반영한 율곡계획VI차조정(9월 29일), 두 차례 대통령 보고가 있었다.
  그로부터 27일 후 ‘10.26박대통령시해사건’이 발생하였다.
< 박대통령 유시 및 지시사항 모음 >
◆ 1973년 4월 19일
    < 을지연습‘73 시찰후 국방부회의실에서 「군사지휘체제와 군사전략」 보고를 받고 유시 >
  < 자주국방을 위한 군사전략 수립과 군사력 건설에 대하여 >
  (1) 작전지휘권은 언젠가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므로 합동참모본부는 이에 대비해서 참모훈련 및 장기군사전략 수립이 중요하다.

  (2) 우리 경제, 특히 중화학공업의 발전과 더불어 우리의 기술로서 소요의 무기를 생산, 장비해야 하며,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전략을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3) 자주국방의 달성 가능성에 대하여 비판하는 자도 있지만 1970년대 후반기에 가면 고성능 전투기와 미사일 등을 제외한 무기는 우리의 힘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되며, 자주국방을 위해서 무기의 국산화는 대단히 중요하므로 조속히 추진시켜 나가야 한다.


  < 수도권 방어에 대하여 >
  (4) 수도권 방어를 위하여 작년도에 대전차장벽을 설치했지만 이로써 방심해서는 안되며, 계속 검토 발전시켜 매년 점진적으로 보강해 나가도록 해야 한다.

  < 예비군 무장에 대하여 >
  (5) 예비군의 인력은 충분하나 무장이 부족하다. 전시 전방은 현역군, 후방은 예비군이 전담하도록 하고, 예비군이 전방부대 지원도 담당하게 되어야 한다.

  (6) M16소총 공장을 건설중인 바 양산되면 M16은 현역군에 장비하고, 현역군이 장비했던 무기는 예비군으로 전환될 것이며, 장차 생산되는 다른 무기들도 그렇게 될 것이다.
(기관총, 박격포, 대전차로켓, 무반동총 등을 말함)
  예비군은 점차적으로 현역사단과 같은 장비로 언제쯤 갖출 수 있는지 잘 판단하여 예비군 조직과 훈련을 강화시켜, 동원 시간을 단축시켜야 한다.

  < 장기군사전략 수립, 발전에 대하여 >
  (7) 합동참모본부는 각군 총장과 잘 협조하여 여러 가지 대책을 강구하고, 우리 자신의 독자적인 국방목표, 장기적인 군사전략을 수립하고, 발전시켜 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 1974년 2월 25일
    < 홍능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 율곡I차계획을 보고 받고, 결재하면서 지시한 사항 >
  (1) OERLIKON(에리콘)포는 좋은 무기라고 보는데, 중립국인 스위스가 분쟁국으로 보는 한국에 판매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합작문제가 가능한지 검토할 것

  (2) 전력증강과 같이 긴요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불요불급(不要不急)한 일반투자는 억제하고, 1980년 이후에 해야 할 것이다.
(예: 군 아파트 건립)

  (3) 방공무기 확보는 매우 긴요하다고 본다. 공업이 발전할수록 공장, 항만, 공업단지가 증가되고, 또 북괴가 남침시 초기 공격기의 50%는 격추시켜야 함으로 대공화기의 필요성은 매우 절실하다.

  (4) 원거리유도탄을 빨리 개발해야겠다. 북괴 김일성의 흉계는 부산까지 공격보다 국지도발을 통하여 한국 국민들오부터 현 정권을 불신케 하여 넘어뜨릴려고 할 것이다. 이러한 국지도발에 효과적인 보복을 할 수 있는 무기라고 본다.
  이번 서해사태
(수원27, 28호 어선 피납사건)의 경우 장거리 유도탄으로 황주, 진남포, 해주 등 깊숙한 목표에 감쪽같이 보복하여 버릇을 고쳐줄 필요가 있다.

  (5) 비행장 2개소를 신설한다고 했는데 직선코스가 있는 고속도로변이 좋을 것이다.

  (6) 탐색 및 구조헬기는 필요하면 갖도록 하되, 우선순위를 낮게 하고, 미군 장비를 활용하도록 발전시키는 것이 좋겠다.

  (7) 함대함(艦對艦)유도탄은 시급히 장비해야 한다. 몇 년 전부터 이야기 했는데 아직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가?

  경제성이나 실효성 때문에 좋은 무기만 골라 사려다가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 우선 손쉽게 살 수 있는 이스라엘의 「가부리엘」을 몇기만이라도 당장 구입하도록 하고, HARPOON(하푼:
최신 미제 함대한유도탄)이나 불란서제(엑소세, Exocet를 말함)는 차후 검토하여 장비하면 될 것이다.

  실제 「가부리엘」이 아랍 무기를 제압하고 있다고 들었다. 「가부리엘」이 사거리가 짧다고 하지만 적의 긴 사정 미사일함은 항공기로, 미사일이 없는 함정은 우리의 유도탕함정으로 격파한다든가, CHAFF(채프
: 전자 교란 대전자전 장비)를 이용해서 적함에 접근하여 짧은 사정의 미사일로 격파할 수 있고, 공군의 정밀폭탄으로 공격할 수도 있을 것이다.

  (8) SEA SPARROW(씨스페로우
: 함정용 대공유도탄)를 장비할 때까지 우리 구축함에는 2문의 발칸을 설치하여 해군의 방공력을 보강해야 할 것이다. 우선 육군에서 발칸 몇 문을 해군에 주어 시험해 보도록 하라. 구축함에는 OERLIKON(에리콘) 1문씩 장비하면 더욱 좋겠다.

  운영비와 병력, 연료가 많이 드는 구축함보다는 소형 함정에 유도탄을 장비하는 것이 더 실효성이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200-300톤급 함정으로 작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 값싼 노후 구축함을 개조하여 대잠(對潛)헬기를 탑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본다.

  서해에 구축함이 떠 있는 것을 보면 몹시 불안하다. 북괴 유도탄에 맞으면 군과 국민의 사기가 떨어질 것이 걱정스럽다. CIPIC(중형고속정,
10척이 계획되어 있었음) 위에 유도탄을 장비하면 작전상 유리하고, 북괴도 위협을 느낄 것이다.

  구축함이 싸다고 해서 매력을 느끼는 것 같은데 운영비와 기름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구축함 문제는 합참에서 재검토하라.
(구축함 5척이 계획되어 있었음) 이제부터는 소함정예주의(小艦精銳主義)여야 한다.

  (9) 전차개발은 가능할 것이다.
(현대에서 맡아 개발 중이었음) 이에 앞서 미측에 반납되는 M47전차를 고철로 사서 105미리 포신을 탑재하도록 개조하는 등 활용방안을 검토하라. 타국(M47전차를 가진)과 합작도 좋은 방법이라고 본다.(개량 소요를 늘려 단가를 낯추는 방법으로 제시한 것임)

  (10) SSM(지대지유도탄)은 항공공업사업(국과연이 개발 중인 백곰:장거리유도탄, 흑룡: 중거리로켓, 구룡: 다연장 개발사업을 말함)에 예산을 주어 추가하면 가용 할 것으로 본다. 외국 기술자를 불러들여서라도 앞당겨 개발해야 한다. (육군은 국과연의 유도탄 개발사업과는 별개로 LANCE를 상정한 SSM 2개대대 8기 구매를 요구하고 있었음)

  (11) 175미리는 미국이 이미 생산중지 했을 뿐만 아니라 포탄 생산문제도 있으니 항공공업사업에서 시제 중인 것과 비교, 검토하여 대체하고, 175미리는 안 하는 것이 좋겠다.(육군은 북괴의 장사정포에 대응하기 위하여 당시 보유중인 1개대대 12문에 추가하여 2개대대 24문을 구매할 계획이었음. 항공공업에 포함된 다연자로켓 '구룡'을 말하는 듯.)

  (12) 금년도(74년도) 소요 8,000만불은 필요하면 정부에서 줄 수 있으니 지금부터 국방부는 구체적인 교섭을 개시하라. (1974년도 총 계획 자금은 1억 1,263만불인데, 원화소요를 제외하고, 해외구매에 따른 계약금 등 외화 소요를 8,000만불로 판단하고 있었음)

  (13) 현대화5개년계획(미7사단 철군에 따라 약속한 15억불 상당의 군장비 무상지원을 말함)에 계획대로 되지 않을가봐 걱정할 필요는 없다. 현대화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이미 구매토록 지금부터 교섭하라.

  (14) 항공기 합작은 F-4팬텀기 같으면 하겠지만 F-5E 같으면 재고할 필요가 있다. F-4팬텀기를 구매하도록 최선을 다하고, 불가할 시는 제3국(
불란서 등)의 것을 고려해 볼 필요도 있다.

  (15) ADD는 항공공업에 중점을 두고 당초 계획을 앞당겨라. 적의 비행장 활주로 관제시설 등을 일시에 마비시키는데도 효과가 있고, 적이 백령도 등에 도발을 해 올 때 해주, 황주 등에 보복공격을 할 수 있는 좋은 방안도 가능해진다. 이는 억제전략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정예주의로 나가야 한다.

  (16) 율곡계획을 위한 특별예산회계법은 필요 없다고 본다. 군사기밀 보호법이 있으므로 국회 국방위원들과 야당의 간부에게만 사업 내용을 설명하면서 보안을 요구하고 양해사항으로 조치할 수 있다고 본다.

  (17) 오늘 보고 받은 내용은 계획이므로 무기 구입의 가능성, 시기, 가격 등으로 일부 조정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청와대에서는 필요시 오늘과 같은 자리를 준비해서 차후 토의토록 하라.

  (18) 방산기구개편에 대하여 연구개발소요
(개발할 무기 기종과 수량)는 합동참모본부에서 하고, 기술적인 업무는 ADD에서 하는 것이 간섭도 적고, 능률적일 것이다. 국방부는 대외 구매교섭, 국내조변, 각군에의 할당 그리고 예산을 다루는 기구를 가지면 될 것으로 본다. 최소한의 인원으로 할 수 있도록 보고된 것보다 축소시키는 방향으로 연구하여 정부 심의위원회에 회부토록 하라.

  (19) 구매계약에 있어서는 사고예방에 특별히 유의하라.
◆ 1975년 7월 18일
    < 율곡계획 II차조정을 청와대에서 보고 받을 때 지시사항 >
  (1) 방위사단 장비 증강은 11개 1차 방위사단만 하고, 2차 방위사단은 후방경계 및 방어에 적절하도록 독립연대 혹은 대대 개념으로 발전시켜 나가도록 하라.

  (2) 수도권 대전차 접근로 상의 방어력과 방어시설을 계속 충분히 증강하도록 하라.

  (3) 육군의 특전부대를 군단규모로 확장하는 방안을 연구해 보라. 그러나 부대를 반드시 특전사에 예속시키라는 뜻은 아니므로 사단 등 전선부대에 편성, 훈련하는 방안도 강구하라.

  (4) 해군은 전 해상전력을 진해에 집결하고 있는 현상인데, 적의 공중공격에 대단히 취약하므로 이를 분산시키도록 하라.

  (5) 잠수함 도입은 원리금 상환에서 3-7년 상환이 좋다. 단 완제품 도입은 피하고, 설계도를 구매하고 기술제휴 하여 국내 건조하도록 노력하라.

  (6) 전력증강을 위한 투자비는 전액 방위세로 충당하고, 운영유지비는 일반 국방예산으로 조치하라. 투자비의 정의와 범주를 정립하되 노후장비 대체비는 투자비에 포함시키고, 차관 원리금 상환은 일반 국방지로 조치헤 나가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7) 확정된 사업계획은 UNC(유엔군사령관)와 주미대사에게 설명해주고, FMS차관 획득에 협조를 얻도록 하라. FMS차관 획득에서 불확실한 일이 있더라도 원계획을 차질 없이 추진해야 하므로 사전에 확정 지울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 나가도록 하라.

  (8) 율곡사업 집행과정에서 청와대 관계관들로 하여금 심의토록 하는 방도를 마련하고, 건의대로 6인위원회에 경제기획원차관을 참여시켜 경제적인 측면에서 조언할 수 있게 하라.

  (9) 율곡계획은 국내 방산육성과 동시에 경제발전의 계기가 될 수 있음을 감안하여 완제품 도입을 가급적 지양하고, 과감히 국산화 하도록 노력하라.

  (10) 계획대로 목표가 달성되더라도 아직 숫적으로 적보다 열세한 부분은 있지만 충분한 방위전력이 마련될 것이나 적의 도발을 억제하고, 격멸할 수 있는 정신자세의 확립이 긴요하다.
◆ 1976년 7월 26일
    < 율곡계획 III차조정을 청와대에서 보고 받을 때 지시사항 >
  (1) FMS차관은 저리(低利)도 아닐 뿐만 아니라 규모의 가변성 때문에 이를 가용 자금에 포함시 율곡계획의 빈번한 수정이 불가피하지 않겠는가?
  * 서종철 국방부장관은 8, 9차 SCM(한미안보회의)을 통해 교섭하였고, FY1976년과 FY1977년의 경우 변동이 없는 점을 들어 FMS차관을 율곡 가용자금에 포함할 것을 건의 한 결과 대통령께서 승인하였음.

  (2) 방산품목은 비록 국방부 소요가 없더라도 일정량을 계속 구매토록 하여 공장의 가동을 보장함으로써 기능공 확보 유지하여, 유사시 양산이 가능할 것이다.

  (3) 105미리 곡사포는 그간 몇 문이나 생산하였는가? 공이뭉치에 문제점이 있는 것 같은데 어떤 상태인가? 언제부터 양산 가능한가? 105미리는 구매할 필요가 없겠는가? 전량 국산화 하라.

  (4) 각군 공히 방산에 관심이 적은 것 같은데 직접 방문도 하고, 군 요구도 전달하여 방산을 촉진하라. 국방부, ADD, 업체의 삼위일체가 수시로 회합하여 문제를 해결해 나가도록 하라.

  (5) 외국 회사의 교섭에 있어서는 국내 실력 있는 민간 기업체로 하여금 교섭토록 하는 것이 경험도 있고 해서 가격을 낮추는 교섭술이 군에서 직접 하는 것보다 좋을 것이다. 전력증강 재원은 국민의 피땀어린 세금이기 때문에 한푼이라도 아껴 써야 한다 .

  (6) 각군은 전력증강에 있어서 비용 대 효과 즉 경제성을 계속 분석하고, 이를 고려한 전력증강을 하라.

  (7) F-4E가 대당 630만 불인데, 특전여단 2개 창설하는데 소요되는 자금이 670만 불로서 F-4E 1대가 2개 특전여단 창설 소요에 상응한다. 물론 항공기대 항공기로 따질 때는 F-4E가 좋지만 군의 종합적인 전력으로 볼 때는 2개 특전여단의 전력이 더 큰 것이다.
  따라서 전력증강 시는 대안을 놓고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인 것인가를 검토하고, 경제적인 군의 건설 및 운용을 기하라. 최신 병기를 가질 것이냐? 재래식 병기를 가질 것이냐?의 문제를 신중히 검토하라. 이는 미국에서도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8) 북괴가 1,900여 대의 전차를 보유하고 있다 하여 우리도 대등한 숫자의 증가만을 목표로 할 필요는 없다. 전차는 꼭 필요한 대수만 보유하고, 한국의 지형적인 제한으로 인한 전개 공간을 고려할 때 중동 시나이반도에서와 같이 북괴 전차가 기동하리라고 볼 수는 없다.
  전차 수는 약 1,000여 대 정도에 토우(TOW: 대전차 유도탄), 항공기, 대전차화기, 대전차장애물 등으로 보강할 때 능히 저지가능하다고 본다.

  (9) 해군 작전은 S-2E 등 대잠항공기를 비롯하여 공군과의 합동훈련을 강화하라. 8월에 있을 서해도서 훈련은 과감히 실시하라. 훈련시 유도탄 함정도 참가하는 것이 좋겠다.

  (10) 지난번 오산에서도 논의되었지만 북괴 항공기 침공에 대비하여 발칸, 에리콘포 등 방공분애에 있어서의 대응수단을 통합 지휘하여 종합적으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휘체제를 확립하고, 기구, 제도, 훈련을 발전시켜라.

  (11) 이번 CPX(지휘소연습)에서 논의되었지만 전시 물자동원이 문제인데 전시 물자동원계획은 계속 발전시켜야 하겠다. 무기의 전시 보충은 미국으로주터 충분히 지원 받을 수 있도록 고려하라.

  (12) 해, 공군에 있어서 최신형 무기와 전자 장비가 도입되고 있는데 부단한 요원의 교육훈련을 통해서 정비 기능요원을 확보하여 성능의 100%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하라. 금오공고에서 기술요원을 획득하는 것은 잘 하는 일이다.

  (13) 북괴 항공기 600대가 전부 가동되는 지는 의문이다. 상당 부분 가동 불가한 것이 있을 것이다. 500MD
(군용 경무장헬기)는 북괴의 AN-2 대응기인데 훈련을 잘 시키면 된다.

  (14) 전력증강계획(율곡계획) 추진에 따른 소감
  「율곡계획이 1974년에 시작된 이래 지난 2년간에 전력이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또한 1978년쯤 되면 우리의 전력은 크게 향상될 것이다.
  우리가 전력증강을 추진시키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북괴도 지난 기간 동안 그들의 전력을 증강시키는데 있어서는 막대한 고충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북괴도 군비증강에 혈안이 되겠지만 우리의 경제능력으로 보아 시간이 갈수록 우리가 유리해 질 것이다.
  경제력이 없으면 전쟁준비는 안되는 것이다. 북괴와 군비경쟁을 하고 있는 셈인데 그들은 우리를 따라오지 못할 것이다.
  1978년도에 가도 비록 수적으로는 우리가 열세하나, 장비의 성능면에서는 우리가 우월하기 때문에 카바가 가능하다. 고도의 훈련 및 운용의 묘를 기함으로써 북괴를 능가할 수 있을 것이다.」


  (15) 하문사항
  (가) 조종사 확보에 있어서 고령자 교체계획은 수립되었는가?
  (나) K-X, K-Y 기지 건설과 관련하여 토지매입과 이에 따르는 주민보상대책에는 문제가 없는가? (청주, 예천기지를 말함)
  (다) 북괴 잠수함 성능은 어떤가?
  (라) TOW(대전차유도탄)는 몇 기가 도입되었는가?
  (마) 국산 통신기(무전기)에 문제가 있다는데?
◆ 1977년 3월 15일
    < 미 카터태통령의 주한미지상군철수방침에 대비하기 위한 청와대 정부-여당연석회의시 지시사항 >
  (주한미지상군 철수에 따른 대비책을 [30계획]이라 명명됨)

  (1) 율곡계획은 1980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선 주한 미국 철수시까지 계획하고, 방위세는 5년 시한법이지만 5년 후에도 필요하리라고 본다.

  (2) 율곡계획은 최초 1974년-1981년 8개년 계획을 세웠으나, 일반 국방예산으로 어려워서 방위세를 신설하였고, 계획 내용도 수정 확대하여 1974년-1980년 기간의 계획으로 조정하였다. 다행이 방위세도 잘 걷히고, 주한미군
(지상군) 철수 시기와도 일치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3) 율곡 최초계획 수립 당시에도 미 지상군이 1980년도에는 없다는 전제하였음으로 그 때까지도 미2사단이 그대로 있으면 그만큼 이득이 된다.

  (4)
(앞으로 전쟁이 발발하면) 미해,공군의 지원은 있는 것으로 하고, 지상군은 단독 개념으로 임하면 되겠다. 지금부터 할 일은 앞으로 4년 동안 모든 계획을 완벽하게 하는 것이며, 율곡계획의 재원도 재검토해서 필요하면 수정하라.
◆ 1977년 4월 21일
    < [30계획]을 반영한 율곡계획 IV차조정을 청와대에서 보고 후, 5월 6일. 청와대 경제제2수석(오원철) 전언 지시사항 >
  (1) 현재 수행중인 ADD 항공공업사업은 계획대로 추진하면서 약 30Km 사거리의 값 싼 지대지로켓트를 개발 생산토록 하라.

  (2) 영국의 RAPIER(저고도대공유도탄)의 국내생산을 위하여 영국의 관계회사와 다은 사항을 고려하여 협상토록 하라.
      (가) 국내에 완전한 생산시설을 갖춘다.
      (나) 유도탄 생산기술은 국내에 완전히 이식한다.
      (다) 기술은 ADD에서 소화, 비축하고, 생산은 금성정밀에서 담당한다.
      (라) 국방부, ADD, 금성사가 합동으로 사업추진팀을 구성하여 우선 협상에 임한다.
      (마) 기술도입은 ADD 자금으로 조치하고, 생산은 차관으로 추진한다.

  (3) 창원, 안강, 여수의 방위산업시설 방호를 위한 대공방어 병력과 발칸포를 배치하고, 가능한 한 예비군에서 운용하도록 하라.

  (4) 장갑차, 전차, RAPIER 생산사업을 중점 추진하고, 특히 전차 생산공장은 일류급으로 건설하도록 하라.

  (5) ADD의 개발과제를 105미리 전차포, 대구경탄 개발을 추가하라.

  (6) 단거리 자유로켓트 실전용을 빨리 생산하라.

  (7) 한강화약공장을 대외에 너무 공개하지 않도록 하고, 대전기계창
(ADD 대전분소)은 이번 공개로 끝내도록 하라.

  (8) 방위산업체의 독신자 사택은 자체방어를 위한 비상소집과 배치문제를 고려하여 위치를 선정하라.
◆ 1977년 7월 8일
    < 청와대에서 한국형전차개발사업 종합보고 때 지시사항 >
  (1) 80년대 중반까지 완전 국산화 된 전차를 생산하라.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생산할 수 있는 전차를 개발하라.

  (2) 최종 결정을 내리지 말고 양측(미, 독)에 동일한 조건을 제시하여 그 결과에 따라 유리한 것을 택하라.

  (3) 미국에 너무 의존하지 말고, 1987년은 너무 늦으니 1985년을 일단 목표로 잡아라. 그렇다고 천천히 하라는 뜻은 아니다. 빨리 할수록 좋다.

  (4) 미측에 사전 통보 없이 제3국과 제휴할 시 현 보유 전차의 유지면에 지장을 줄 것이므로 일정기간을 정해놓고 우리의 요구를 제시하여 만약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제3국과 제휴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발송하라.

  (5) 우선 조립생산하고, 점차 국산화 하면 될 것이다. 완전 국산화 전차를 가급적 빨리 갖도록 하라.

  (6) 보유중인 전차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도 1985년부터 점차적으로 폐기할 것이므로 전차를 만들어 예비로 확보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7) 국산화가 어려운 주요 부품은 전쟁예비물자로 비축하는 방법도 해결책이 될 것이다.

  (8) 너무 많은 전차 대수를 가질 필요는 없다. 1,400대 기준은 되겠지만 꼭 맞출 필요는 없다. 지형을 고려할 때 적 전차의 대대적인 집중공격은 불가능 할 것이다.
  우수한 전차를 보유할 필요는 있으나 수적으로 너무 많이 가질 필요는 없다. GUNSHIP
(중무장헬기), 500MD(경무장헬기), TOW(대전차유도탄)를 많이 갖도록 하라.

  (9) 국산 전차는 우리 조건에 맞는 전차, 우리의 공업 수준 발전 및 과학기술의 진보 추세를 생각해서 하라. 1985년에는 엄청난 엄청난 수준이 될 것이며, 전부 국산화 될 것이다. 전투기 개발도 가능할는지 모른다.

  (10) 북괴는 경제사정 때문에 당장 새로운 전차 도입은 곤란할 것이다. 그 동안 M48전차를 개조해서 사용하라.

  (11) 미국에 바싹 붙어서 추진하고, 동일조건이면 미국 것을 하라. 그러나 우리의 조건에 맞지 않으면 도리가 없지 않은가? 빨리 서둘러서 국산전차를 개발하고, 후에 꼬리(예, 제3국 수출)가 붙지 않은 조건으로 하라.

  (12) 전차는 국방부에서 빨리 미, 독 중 택일하고, 현대에 통보하라. 업자로 하여금 이쪽 저쪽
(미국과 독일) 다니면서 교섭토록 할 것이 아니라 정부측에서 하라.

  (13)
(전차 뿐만 아니라) 새로운 무기를 선택 시는 국산화를 우선적으로 하라.
◆ 1977년 8월 12일
    < 청와대 경제제2수석(오원철)이 전언한 지시사항 >
  (1) 헬기 모함을 건조하도록 할 것
  (2) 해군 보유 ALOUETTE-III
(불란서제 대잠헬기)에 무장을 강화하고, 항공기 조종사의 안전을 고려하여 500MD 등 헬기는 병력 수송보다 공격용으로 고려할 것
  (3) 500MD 개조(Wide body)는 여타 기종과 비교 검토하여 추진할 것이며, 군에서는 500MD의 추가 소요를 검토하여 조기 발주하도록 할 것.
◆ 1978년 2월 3일
    < 율곡계획 ’74-’77 진척과 1978년도 사업계획 보고 때 지시사항 >
  (1) 2차율곡계획(!981년 이후) 국방비는 GNP 6%로 계획하라.
      * 국방비 대 GNP 비율을 6%로 하라는 것은 2차율곡 뿐만 아니라 1979년부터 적용 하라는 것임이 후에 밝혀짐. 1977년 당시는 7%였으므로 1% 내리라는 지시임.
  (2) 2차율곡계획 기간은 경제개발5개년계획과 계획기간을 일치 시켜라.
◆ 1978년 10월 19일
    < 청와대 경호실 차장(이재전)이 전언한 지시사항 >
  (1) 현재 추진 중인 장갑차와는 별개로 폭동진압용 장갑차를 개발, 생산케 할 것.
  (2) 전차는 전선 사단에만 치중하지 말고, 충분한 예비를 가지는 것이 좋다. 굼예비 중에서 수도기계화사단 같은 기갑사단(기계화사단을 말함)을 추가적으로 보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1979년 7월 12일
    < 북괴 군사력 재평가에 따른 대비책 1차보고 때 지시사항 >
  (1) 국방비는 GNP의 6%를 승인한다.
  (2) 병력은 최대한 절약해야 하겠다. 현역사단은 1개도 증가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고, 여단개념을 고려해 보는 것은 좋겠다.
  (3) 사회와 같을 수는 없겠으나 장병의 처우개선은 해야겠다.
(전력은) 양적으로 느는 것보다 질적으로 우수해야 한다.
  (4) 수도권의 보강 대전차 장애물은 허술하다. 몇 억이 더 들더라도 만리장성과 같이
(튼튼하게) 강화하라
  (5) 4게 관구를 해체하고, 10개 지역사령부를 편성하는 안은 좋다.
  (6) 42개사단과 현 병력을 유효적절 하게 사용하라’
  (7) 해군의 대형함정 증가보다 미사일과 고속정을 가지는 것이 좋다.
  (8) 공군은 전쟁 발발 후 제공권을 몇 일 안으로 장악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초기 피격을 극소화 할 수 있도록 하라.
◆ 1979년 9월 29일
    < 북괴 군사력 재평가에 따른 대비책 2차보고(율곡VI차조정) 때 지시사항 >
  (1) 북괴가 전력을 증가했다고 해서 우리도 병력을 증가할 필요는 없다.
  (2) 전차부대 편성에 있어서 동부와 서부를 균일하게 할 필요가 있겠는가?
      예를 들면 사단 전차중대를 일률적으로 편성할 필요가 있겠는가? 검토하라.
  (3) 수경사 전차대대는 전방방어 임무를 수행하게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4) 잠수함은 구매하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미 해군의 P-3
(대잠항공기)를 한국에 전개토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5) F-16은 엔진에 결함이 있다는데 구매할 것인가? 검토하라.
  (6) 임진강과 한강이 장애물인 것은 사실이지만 큰 장애물로 생각하지 말라 . 쏘련제 장비로서 이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으니 대비책을 강구하라.

  -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일당에 의한 통한의 ‘10,26 박대통령시해 사건’으로 박대통령의 옥음(玉音)을 더 이상 접할 수 없었다.-
첨부 < M16소총과 박정희 >
  대통령 박정희는 이런 사람이였습니다
  지금 이야기는 당시의 미국의 유명한 군사무기 제조업체인 맥도널드 더글라스사의 핵심 인사가 한국을 방문해서 박정희대통령과 나누었던 실화를 공개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월남전 참전으로 인하여 그 동안 소원해졌던 미국과의 관계가 다시 우호적이었고, 한국은 젊은이들이 월남전에서 목숨을 바치는 대가로 많은 국민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만큼의 물질적인 지원을 미국으로부터 받게 되는 위치에 서게 됩니다.

  그 지원중의 하나가 M-16 자동소총이었다. 이전의 한국에서 사용하던 무기는 단발식 M-1 소총으로 M-16과는 비교할 바가 못 되는 그야말로 장난감과 같은 수준의 무기였었고, 우리는 그런 낡은 무기를 들고 남북대치 상황을 견디어 내어야만 했었다.

  한국이 월남전에 군사를 파병하는 조건으로 얻을 수 있었던 M-16의 수출업체는 맥도날드 더글라스사였다. 미 행정부의 지원을 받아 한국으로의 수출 건을 따내게 된 뒤, 한국을 방문한 맥도날드 더글라스사의 한 핵심인사는 자신들의 무기를 수입해 주는 국가를 찾아 의례적인 인사치례를 하게 된다.

  "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그것도 너무도 더웠던 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을 합니다."
  대통령비서관의 안내를 받아 박정희대통령의 집무실로 걸음을 재촉하게 된다. 그러나 비서관이 열어주는 문안의 집무실의 광경은 나의 두 눈을 의심케 만들었습니다. 커다란 책상위에 어지러이 놓여진 서류더미 속에 자신의 몸보다 몇 배는 더 커보이는 책상 위에 앉아 한 손으로는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남은 한 손으로는 부채질을 하면서 날씨를 이겨내고 있는 사람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나라의 대통령의 모습이라고는 전혀 믿기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아무리 가난한 국가라지만 그의 행색은 도저히 대통령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을 보았을 때, 지금까지의 그의 허름한 모습이 뇌리에서 사라짐을 느낄 수는 있었습니다. 해서, 나도 모르게 몸이 굳어지는 긴장감을 맛보았습니다.

  그는 손님이 온 것을 알고 예의를 차리기 위해 옷걸이에 걸린 양복저고리를 입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때서야 비로소 그가 런닝차림으로 집무를 보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고,
  "각하 ! 미국 맥도널드사에서 오신 데이빗 심프슨씨입니다." 비서가 나를 소개함과 동시에 나는 일어나 대통령에게 예의를 갖추었습니다.

  "먼 곳에서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소. 앉으시오." 한여름의 더위 때문인지,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긴장 탓인지, 나는 무의식적으로 굳게 매어 진 넥타이로 손이 가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아, 내가 결례를 한 것 같소이다. 나 혼자 있는 이 넓은 방에서 그것도 기름 한 방울 나지않는 나라에서 에어컨을 튼다는 게 큰 낭비인 것 같아서요. 나는 이 부채바람 하나면 바랄 게 없지만 말이오. 이 뜨거운 볕 아래서 살태우며 일하는 국민들에 비하면 나야 신선놀음 아니겠소. 이보게. 비서관 ! 손님이 오셨는데 잠깐동안 에어컨을 트는 게 어떻겠나?"

  나는 그제서야 소위 한나라의 대통령의 집무실에 그 흔한 에어컨 바람 하나 불지 않는다는 것을 그 때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만나봤던 여러 후진국의 대통령과는 무언가 다른 사람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의 말에 제대로 대꾸할 수 없을 만큼 한 없이 작아짐을 느꼈습니다.

  "아, 네, 각하 !" 하면서 비서관이 에어컨을 작동하고 비로소 나는 대통령과 업무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예정대로 나는 내가 한국을 방문한 목적을 그에게 얘기하기 시작했다.

  "각하 ! 이번에 한국이 저희 M-16소총의 수입을 결정해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드립니다. 이것이 한국의 국가방위에 크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저희들이 보이는 작은 성의..." 나는 준비해온 수표가 든 봉투를 그의 앞에 내밀었다.

  "이게 무엇이오?" 그(박정희대통령)는 봉투를 들어 그 내용을 살피기 시작했다.
  "흠.. 100만 달러라...내 봉급으로는 3대를 일해도 만져보기 힘든 큰 돈이구려.." 차갑게만 느껴지던 그의 얼굴에 웃음기가 머물렀다. 그 순간 나는 그 역시 내가 만나본 다른 사람들과 전혀 다를 것이 없는 사람임을 깨닫고 실망하면서, 그리고 그 실망이 처음 그에 대해 느꼈던 왠지 모를 큰 느낌마져 많이 동요하고 있음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각하! 이 돈은 저희 회사에서 보이는 성의입니다. 그러니 부디......" 대통령은 웃음을 지으며 지긋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이보시오! 하나만 물읍시다."
  "예. 각하 !"
  "이 돈 정말 날 주는 것이오?"
  "네. 물론입니다. 각하 !"
  "대신 조건이 있소. 들어주겠소?"
  "네. 말씀하십시오. 각하 !"

  그는 수표가 든 봉투를 나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나에게 다시 되돌아온 봉투를 보며 의아해 하고 있는 나를 향해 그가 말했다.
  "자, 이 돈 100만 달러는 이제 내 돈이오. 내 돈이니까 내 돈을 가지고 당신회사와 거래를 하고 싶소. 지금 당장 이 돈의 가치만큼 총을 가져오시오. 난 돈 보다는 총으로 받았으면 하는데. 당신이 그렇게 해 주리라 믿소."

  나는 왠지 모를 의아함에 눈이 크게 떠졌다.
  "당신이 나에게 준 이 100만 달러는 내 돈도, 그렇다고 당신 돈도 아니오. 이 돈은 지금 내 형제, 내 자식들이 천리타향에서 그리고 저 멀리 월남에서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는 내 아들들의 땀과 피와 바꾼 것이오. 그런 돈을 어찌 한나라의 아버지로서 내 배를 채우는데 사용할 수 있겠소. 이 돈은 다시 가져가시오. 대신 이 돈만큼의 총을 우리에게 주시오."

  나는 낯선 나라의 대통령에게 왠지 모를 존경심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일어나서 그에게 힘있게 말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각하 ! 반드시 100만 달러의 소총을 더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나는 방금 전과는 사뭇 다른 그의 웃음을 보았습니다. 한나라의 대통령이 아닌 한 아버지의 웃음을...
  그렇게 그에게는 한국의 국민들이 자신의 형제들이요, 자식들임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배웅하는 비서관의 안내를 받아 집무실을 나오면서 다시 한번 돌아 본 나의 눈에는 다시 양복저고리를 벗으며, 조용히 손수 에어컨을 끄는 작지만 너무나 커 보이는 참다운 한나라의 대통령이 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