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창선생의 「韓國古代史」 줄거리
다물 통권 14호(1995.8.1) 김태영 글 「小說 檀君」(2회) 중에서
沙月 李 盛 永 옮김(2008.8.23)
    문정창선생은 60년대와 70년대에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민족사학자이다. 왜정 때 군수를 지낸 것을 참회하는 뜻에서 주로 한국과 일본의 상고사를 연구하여 식민사학자들과 정면대결을 벌린 사람이다.
    선생은 「한국통사(韓國痛史)」를 쓴 박은식 선생과 「조선상고사(朝鮮上古사)」를 쓴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선생의 뒤를 이은 해방후의 대표적인 민족사학자(民族史學者: 植民史學者에 대칭되는 용어)이다.

    다음은 문정창선생이 사재를 털어 발간한 한국고대사(韓國古代史)의 간략한 줄거리를 선생이 이 책 서문에 기록한 것이다.
    우리가 학창시절 역사시간에 배운 고대사 내용 -고대사라기 보다 단군신화- 과는 전혀 다른 우리민족의 고대사 줄거리이기에 원문 그대로 옮긴다.

    『알타이 바이칼 지역에서 살던 한 종족이 온화한 곳을 찾아 남하하기 시작했다. 이동하는 알타이인들이 향하는 세 지역이 있었으니,
    그 하나가 중국 본토요,
    그 둘이 만주 대평원이요,
    그 셋이 한반도였던 것이다.

    이들이 정착하는 과정에서 2대 역사적 사실이 전개되었으니,
    그 하나가 서기전
(BC) 3000년경 북경지방에서 벌어진 치우(蚩尤)와 황제(黃帝)의 대결이요,
    그 둘이 서기전
(BC) 2300년경 만주 송화강 유역에서 건국한 단군조선의 발전이었다.

    치우는 선착한 알타이인이요,
    황제는 타림분지
(현 타클라마칸 사막이 있는 신강지방)에서 동하(東下)한 서장족의 세력을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것이
    서량지(徐亮之) 등 중국인 학자들의 견해다.

    조선족은 단군의 후예이며, 단군 조선인은 천여 년 동안 중국 본토에 진출하였다.
    여기서 조선족의 역사는 만주, 중국 두 줄기로 나누어지는 것이다.

    단군조선이 망한 후에 만주에서는 부여가 강성하였으며, 부여는 한(漢)나라 초기까지 합강성(合江省), 연해주(沿海州)지방에서 어로(漁撈
: 고기잡이), 혈거(穴居: 토굴속에서 거주)하는 읍루, 말갈 계통의 종족을 지배하였다.

    중국 본토에 진출한 단군조선인은 오늘의 화북(華北), 화남(華南), 산동(山東), 강소(江蘇), 기타 여러 지역에 부족국가를 건설하였다.
    *
(주) 이들을 중국 역사서에 우이, 견이, 풍이, 황이, 방이, 구이, 견이, 백이, 적이, 형이, 양이, 서이, 회이, 사이, 내이, 동이, 개이, 도근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동이족이다.

    은말(殷末
: 은나라 말기), 주초(周初: 주나라 초기) 공화(共和: 여러 사람이 共同, 和合하여 살아감)시대까지의 약 5백년간 이들 지역 내 단군조선계 국가군(群)의 역사활동은 자못 왕성하였다.

    그러한 단군조선인은
    서기전
(BC) 990년경 강소성 지방의 서국(徐國: 徐夷)을 주(周) 목왕(穆王)에게 잃고,
    서기전
(BC) 670년경 산동성 지방의 여러 나라를 제환공(齊桓公: 전국시대 산동지방의 제나라 왕 환공)에게 빼앗기고,
    서기전
(BC) 280년 화북성 지방의 번조선(番朝鮮)을 연소왕(燕昭王: 전국시대 북경지방의 연나라 왕 소공)에게 약취 당했다.
    여기서 단군조선의 역사는 다기화(多岐化
: 여러 갈래로 나뉘어짐)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미 망한 번조선인인 동호(東胡) 중 동으로 달아난 자는 후일 위만조선, 삼한, 삼국인이되고,
    오환산(烏桓山)과 선비산(鮮卑山)에 숨은 숨은 자는 후일 오환, 선비, 거란, 몽고, 토이기족(터키,
돌궐)이 되는 것이다.

    전국시대 중국 본토 내 조선족은 심히 비참하였다.
    진시황의 조선족 탄압정책은 드디어 산동, 화북 여러 지역의 조선인들이 유랑의 길에 나서 먼 훗날 경주 지방에 정착하여 신라국을 건설하게 만들었다.

    한제국(漢帝國)의 성립은 낙랑조선의 멸망, 위만조선의 성립을 자아내었고,
    한무제의 동방정책은 위만조선을 토멸하였다.

    1천여 년에 걸린 긴 역사 활동으로 1천만명의 겨레붙이를 중국 본토에 남겨놓고 되돌아 온 단군조선인은 이제 만주와 한반도에서 부여인과 더불어 삼한 삼국을 건설하는 것이다.

    삼한 삼국 중 빛나는 자는 고구려였다.
    고구려는 9백년의 사직을 자랑하되 남북 만주 전역과 한반도 예성강 이북을 강역으로 동북아에 군림하여
    한(漢)나라를 압박하고,
    수(隋) 양제(煬帝)의 2백만 대군을 격파하여 수제국을 자멸케 하고,
    당(唐) 태종(太宗)을 안시성에서 대파하고,
    북위(北魏)를 복속국으로 하였다.

    다음 빛나는 자는 백제국이었다.
    백제는 그 사직 존속 중 서로는 중국에 진출하여 요서(遼西), 진평(晉平) 양군을 설치하고,
    동으로는 난파조왜국(難波朝倭國)을 지원, 3백년간 지배하였으며,
    망한 후에는 대거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국을 건설하였다.

    신라의 건국자들은 산동성, 북경, 낙랑조선 등지에 유랑해온 조선인이며,
    이들은 한반도 동남쪽 한 모퉁이에서 일으나 화랑도정신을 기반으로 세칭 통일 신라를 건설하였다.

    고구려의 마지막 임금 보장왕의 아들 고덕무(高德武)대조영(大祚榮)
    남북 만주, 연해주, 한반도 북부를 강역으로 한 후고구려국(발해)를 건설하여
    2백40년간 해동성국(海東盛國)을 자랑하였다.

    이상이 3천년에 빛나는 한국 고대사의 대강이다.
    그러한 바 서기926년 후고구려국(발해)이 망한 후, 조선족의 국가활동이 압록강 이남으로 쭈구러들어 외세의 침입이 잦게 되었다.

    돌이켜 중국의 역사 편찬 경위를 보면
    춘추시대의 제후들은 자기 중심의 역사 편찬에 급급하였다.
    이에 뒤이어 진시황의 분서(焚書
: 책을 불태움),
    유향(劉向), 유흠(劉欽) 부자의 위경(僞經
: 經書 위조),
    당태종의 진서(晉書) 편찬과 오대사(五代史) 개수 등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한 전통을 가진 중국의 사적(史籍
: 역사 서적)에는 조선족의 역사를
    삭찬(削纂
: 일부를 삭제하고 편찬함),
    왜곡(歪曲
; 사실과 다르게 그릇되게 해석함),
    날조(捏造
: 남을 헐뜯기 위해 사실에 맞지 않거나 없는 일을 사실인 것처럼 거짓으로 꾸밈) 부분이 적지 않다.

    서기668년 고구려를 토멸한 당장 이세적(李世勣)은 평양에서 그 사적(史籍)을 모조리 불살랐다.
    서기1142년 금제(金帝) 희종(熙宗)의 압력하에 있던 김부식삼국사기 50권을 엮어냈다.
    김부식은 사기(史記)로부터 신당서(新唐書)까지의 십육사(十六史)를 참조했으나
    주로 진서(晉書), 오대사(五代史), 신구당서(新舊唐書)에 실려 있는 고구려, 백제, 신라 관계기사를 주워 모아 체계를 세웠다.
    4천3백년의 역사를 가진 이 나라에 820년 전에 편찬된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최고(最古)의 역사서가 되어 있다.

    그러한 삼국사기는 많은
    자욕(自辱
: 스스로를 욕되게 함)
    오류(誤謬
: 잘못)의 씨가 되어 크게
    오전(誤傳
: 잘못 전달됨)하였다.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국민의 소리가 높은 이즈음, 이에 이바지 하기 위해 본서
(1971년 문정창 선생이 사재를털어 발간한 「韓國古代史」를 말함) 내보내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