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내현의 단군이야기
沙月 李 盛 永(2008, 10, 3) 옮김
    오늘 개천절 날에 즈음하여 윤내현단군에 관한 글 두 가지를 올린다.
    국방과학연구소 다물회지 「多勿」지 神市5905년 戊子(2008년) 7월 통권169호에 실린 글‘단군은 꾸며낸 이야기일까?' 와 9월 통권171호에 실린 글‘단군이 갈등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다.
단군은 꾸며낸 이야기일까?
윤내현 글<우리 고대사 상상에서 현실로> 지식산업사(2003)

    단군신화(檀君神話)는 고조선이 건국되기 이전의 상황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제왕운기(帝王韻紀)>에 실려있는 내용은 약간의 차이를 뵐 뿐 거의 비슷한데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실린 것이 원형에 가깝다고 학자들은 보고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고조선]조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앞부분은 단군 왕검이 출생하기 이전의 상황을 말하고 있고, 뒷부분은 단군 왕검이 건국한 고조선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앞부분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단군신화의 내용 즉 하느님으로서 환인(桓因)이 있었다는 것, 환인의 아들 환웅(桓雄)이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와 태백산 마루에 신시(神市)를 베풀었다는 것, 환웅은 지상에서 바람신, 비신, 구름신, 등을 거느리고 곡물, 생명, 선악, 질병, 형벌 등 사람들의 삶에 관한 일들을 관장하였다는 것, 곰이 여자로 진화해 그녀와 결혼했다는 것, 그녀와의 사이에 단군 왕검(王儉)이라는 아들을 낳았다는 것 등의 내용을 싣고 있다.

    뒷부분은 단군 왕검이 성장하여 고조선을 건국하였다는 것, 그 건국 연대는 중국의 요(堯)가 즉위한 해와 같다는 것, 고조선은 서너 번 도읍을 옮겼다는 것, 고조선이 건국된 뒤 1천5백 년이 되던 해에 중국에서 기자(箕子)가 망명해 왔다는 것, 기자가 망명해 온 뒤 고조선은 도읍을 두 번 옮겼다는 것, 고조선의 존속 기간이 1천9백8년이었다는 것 등의 내용을 싣고 있다.
황해도 구월산 삼성사에 모셔져 있는
환인
(왼쪽), 환웅(가운데), 단군왕검(오른쪽)의 초상화

    앞부분에는 하느님의 아들인 환웅이 지상으로 내려왔다던가, 곰이 여자로 진화하였다는 등의 과학으로 증명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있지만 뒷부분은 고조선에 관한 실제 상황을 말한 것으로 비과학적인 요소가 전혀 없다.

    그러므로 앞부분은 신화(神話)라고 할 수 있지만 뒷부분은 신화가 아니라 분명한 역사(歷史)의 기록이다. 그 역사 기록이 사실과 부합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은 그 다음에 논해져야 할 문제이다.

    지난날 일본인들은 단국신화를 부각해 그 내용이 비과학적이고 사실성이 없음으로 단군(檀君)이나 고조선(古朝鮮)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삼국유사(三國遺事)><제왕운기(帝王韻紀)>가 고려 말기에 쓰여진 점을 들어 고려 사람들이 몽골의 침략을 받은 뒤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일 것이라고 하였다. 이를 따라 지금도 단군(檀君)이나 고조선(古朝鮮)의 존재를 부인(否認)하는 학자가 있다.(이들이 소위 植民史學者란 자들이다)

    예로부터 사람들이 하느님을 섬겼다던가, 그 아들이 인간세상으로 내려왔다던가 하는 이야기는 다른 민족과 종교나 신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다른 민족의 종교나 신화에 나오는 그러한 내용은 매우 큰 의미를 부여하여 설명 하면서 왜 우리 신화는 거짓으로 꾸며진 이야기로 치부하려는 것일까?

    여자가 되었다는 것도 그렇다. 진화론에서는 원숭이와 사람은 조상이 같다고 말한다. 원숭이 같은 동물이 진화해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과학교육을 한다는 모든 학교에서 ‘원숭이가 진화하여 사람이 되었다’고 가르치고 있지만 이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진화론이라는 과학의 이름으로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이 원숭이에게서 진화했다는 분명한 근거는 없다. 그것은 가능성이 큰 가설일 뿐이다. 이러한 진화론에 찬동하지 않는 학자들도 많다.

    단군신화에서는 (진화론의) 원숭이으로 바뀌어 있다. 원숭이와 곰도 모두 동물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사람은 동물에서 진화했다” 이렇게 말한다면 그 동물이 원숭이던 곰이던 문제될 것이 없다.

    한반도와 만주 지역에서는 두 발로 걸어 다니는 동물이 밖에 없었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인간이 곰에서 진화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이러한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터인데 우리는 왜 우리 것을 부정적으로만 보려고 하는지 짚어보고자 하는 것이다.

    신화는 인간들의 삶을 신들의 이야기로 바꾸어 놓은 것이 많다. 그러한 시각에서 단군 신화를 해석하고 이해해야 한다. 단군 신화를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아주 먼 옛날 우리 조상들은 하느님을 최고신으로 섬기며 살았는데 하느님을 환인(桓因)이라 불렀다. 그들은 인간사회가 형성되던 초기에 하느님 환인의 아들인 환웅(桓雄)이 지상에 내려와 사람의 삶을 도우며 함께 생활했다고 믿었다.

    사람의 생활 반경이 넓어지면서 하느님을 섬기며 살던 우리 조상들은 새로운 신을 섬기며 사는 사람들과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곰신을 섬기는 사람들과 호랑이신을 섬기는 사람들이었다.

    하느님을 섬기며 살았던 사람들은 곰신을 섬기는 사람들과 통혼관계를 맺어 유대를 공고히 하였다. 환웅웅녀와 결혼했다는 단군 신화 내용은 이러한 사실(事實)을 전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곰신을 숭배하던 사람들이 우리 조상으로 합류했으며, 이로써 세력확장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단군 신화에 호랑이도 등장하지만 호랑이는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고 했으므로 호랑이신을 섬기며 살았던 사람들은 세력확장에 참여하기는 했으나 사회적으로 높은 신분을 얻지는 못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단군 신화는 아주 먼 옛날 우리 겨레가 출현하기까지 성장과정을 수호신들의 이름을 빌어 전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단군이 갈등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윤내현 글<우리 고대사 상상에서 현실로> 지식산업사(2003)
    우리 민족의 구심점이 될 인물 한 사람을 찾는다면 단군(檀君王儉)일 것이다. 단군에 대한 인식이나 해석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단군(檀君)이 우리민족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라는 데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단군왕검(檀君王儉)고조선(古朝鮮: 檀君朝鮮)의 건국자이므로 과학적으로도 그러하지만 정신적으로도 우리 마음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오래 전부터 단군은 건국시조(建國始祖)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한 점에서 요즈음 남한과 북한 학계에서 단군과 단군조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북한에서는 1993년 단군릉(檀君陵) 발굴 이후 단군에 대한 연구가 매우 활발하다. 그 이전에도 고조선에 대한 연구는 진행되었지만 단군에는 깊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필자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 그곳의 한 역사학자는 북한역사학자들 가운데 70퍼센트 정도가 단군과 단군조선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 그 열기를 귀띔해 주었다.

    우리 민족의 뿌리를 밝히는데 북한 학계가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이것은 민족동질성(民族同質性)을 회복하는 작업도 된다.

    북한의 단군과 단군조선에 대한 관심을 놓고 북한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며 거부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로 말미암아 민족의 동질성이 회복되어 통일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지난날 이념과 체제의 차이로 이질감(異質感)만을 느껴오던 남한과 북한의 주민들이 단군과 단군조선으로 말미암아 민족 동질성을 회복하고 민족애(民族愛)를 느끼게 된다면 그처럼 바람직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요즈음 남한에서는 단군과 단군조선에 갈등(葛藤)분열(分裂)의 대상이 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하나는 단군상(檀君像) 건립(建立)과 그 파괴(破壞)이며, 다른 하나는 단군조선(檀君朝鮮)실존(實存)인정(認定)하는 것과 그것을 부정(否定)하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겠다는 어느 단체에서 학교와 공원에 단군상을 세우기 시작했고, 이를 우상숭배로 규정한 어느 종교단체에서는 단군상을 파괴함으로써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켜 왔다.

    단군(檀君)이 민족 분열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에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민족 화합(和合)으로 통일을 이루어내야 할 중요한 시점에 남한 내부에서 분열이 있어서야 되겠는가? 단군(檀君)민족화합(民族和合)의 중심에 서야지 어떤 이유로도 분열(分裂)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필자의 솔직하고 변함없는 생각이다.

    그래서 필자는 단군상을 세운다는 단체에는 단군상을 세우는데 오해가 없도록 그 설명 내용은 역사적 사실에 충실 하는 것이 좋겠다는 제언을 했고, 단군상 설치를 우상숭배로 보는 종교단체에는 단군을 역사의 인물로 있는 그대로 이해하여 주기를 부탁했다.

    단군상을 더 이상 세우지 않는다면 (이미 설치한) 그것을 파괴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함으로써 두 단체의 갈등은 일단 중지되었다고 한다.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언제든 다시 발생할 여지가 남아 있기 때문에 이 싸움이 완전히 끝났다고 볼 수는 없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해결방법은 단군의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이라고 필자는 믿고 있다. 단군을 후대 왕조의 왕들과 같은 역사의 인물로 인식하는 것이다. 오직 칭호가 다를 뿐이다. 최고 통치자가 오늘날은 대통령(大統領)이지만 왕조(王朝)시대는 왕(王)이었고, 황조(皇朝)시대에는 황제(皇帝)였으며, 단군조선시대에는 단군(檀君)이었던 것이다. 단군을 두고 일어나는 싸움은 역사인식의 차이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단군 문제와 더불어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는 단군(檀君)단군조선(檀君朝鮮)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견해 차이다. 역사학자들 사이에 단군(檀君)과 단군조선(檀君朝鮮)에 대한 다소의 견해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 존재를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단군(檀君)과 단군조선(檀君朝鮮)의 실존(實存)부인(否認)하는 사람들이 있다. 학자의 연구결과는 중요시 되어야 하고, 그러한 주장은 학문적 소신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 문제는 특히 매우 조심스럽게 발표되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 민족의 구심점(求心點)을 무너뜨리는 결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실이 아닌 것을 그대로(사실로) 인정하자는 뜻은 아니다. 신중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중요한 문제에 학계에 이견이 있다는 것은 아직 그 연구가 충분한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단군(檀君)과 단군조선(檀君朝鮮)에 대한 갈등과 분열은 모두 우리 역사 연구의 수준과 그 인식 수준의 차이에서 출발한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 충분한 연구와 올바른 인식이 절실히 요구된다.


* 윤내현(尹乃鉉, 1939년 6월 11일 ~ )은 대한민국의 역사학자이다. 전라남도 해남(海南) 출생이다. 현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소장, 고조선사연구회 회장으로 한국고대사 연구와 남북역사학자 학술 교류 및 공동 연구를 하고 있다.

    <약력>
    - 단국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를 졸업
    - 단국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석사 및 박사과정
    - 하버드대학교 대학원 동아시아역사언어학과에서 수학
    - 단국대학교 사학과 학과장, 박물관 관장, 문과대학 학장, 부총장, 대학원장, 역임
    - 문화관광부 문화재위원, 단군학회 회장, 남북역사학자 공동학술회의 남측단장 등 역임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소장, 고조선사연구회 회장

    <수상>
    - '오늘의 책'상,
    - 일석학술상
    - 금호학술상
    - 국무총리 표창 등

    <저서>
    - 《상왕조사의 연구》, 경인문화사, 1978
    - 《한국고대사신론》, 일지사, 1986
    - 《고조선 연구》, 일지사, 1994
    - 《한국열국사연구》, 지식산업사, 1998
    - 《동아시아의 지역과 인간》, 지식산업사, 2005 외 다수 (네이버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