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韓民族)과 고조선(古朝鮮)
沙月 李 盛 永(2008, 10, 8) 옮김
    조선일보가 2004년 2월 전후해서 「집중조명- 한민족의 북방 고대사」라는 제하의 기사를 낸 적이 있는데 2004년 2월 13일 자에 세 번째로 ‘만주의 청동기문명과 국가의 출현’ 기사를 실었다.

    이선민 기자의 「북방 예맥族과 남방 韓族이 합쳐 한민족 형성」과 박양진 충남대 고고학과 교수의 「예맥族 엘리트 집단이 첫 고대국가 고조선 세워」 그리고 편집자의 「 北韓과 중국의 ‘同床異夢’」이란 글을 한 면에 동시에 실었다.

    그 때 스크랩 했던 신문 쪽이 서가에 끼어 있어 다시 읽어보니 우리의 고대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多勿이야기’의 하나로 홈페이지에 올린다.
북방 예맥族과 남방 韓族이 합쳐 한민족 형성
이선민 기자(2004. 2. 13, 조선일보 A25면)
    오늘의 한민족(韓民族)은 북방의 예맥족(濊貊族)과 남방의 한족(韓族)이 합쳐져 형성된 것이다.

    만주의 중부와 서남부, 한반도 북부에 살고 있던
예맥족(濊貊族)은 다시 고조선(古朝鮮)을 세운 조선족(朝鮮族)부여(扶餘), 고구려(高句麗), 옥저(沃沮), 동예(東濊)를 세운 부여족(夫餘族)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들은 결국 기원후 5세기(?) 말 고구려로 통일된다.

    한편 한반도 중, 남부에 위치했던
한족(韓族)은 독자적인 신석기(新石器)청동기(靑銅器)문화를 갖고 있었다. 기원을 전후한 시기에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 등 3개 집단으로 분립(分立)한 한족(韓族)은 결국 백제(百濟)신라(新羅)로 양분된다.

   
예맥족(濊貊族)한족(韓族)은 서로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 특히 기원전 2세기 말 중국에서 이주해 온 위만(衛滿)에게 나라를 빼앗긴 고조선의 준왕(準王)이 자신의 지지세력과 함께 한반도 남부로 이주한 후에는 두 집단이 뒤섞이게 됐다.

    그리고 이 같은 혼합은 신라의 삼국통일로 1차 완성되고, 다시 고려가 후삼국(後三國)을 통일하고 발해가 멸망한 후 고구려계 발해(渤海)인들이 고려에 대규모 유입되면서 최종 완성된다.

    이런
한민족의 형성과정은 민족의 가장 뚜렷한 지표(指標)인 언어(言語)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어의 뿌리는 예맥족(濊貊族)한족(韓族)이 함께 사용하던 ‘부여한조어(扶餘韓祖語)’로 이것이 발전한 고구려, 백제, 신라의 언어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는 없었다.
    신라의 삼국통일에 따라 경주(慶州) 중심의 신라어(新羅語)로 통합된 언어는 고려 초기 한민족이 최종 완성된 후 개성(開城) 지방의 언어를 중심으로 집결된다.
예맥族 엘리트 집단이 첫 고대국가 고조선 세워
박양진 교수(충남대 고고학과, 2004. 2. 13, 조선일보 A25면)

    한민족(韓民族)이 세운 첫 번째 고대국가가 고조선(古朝鮮)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안다. 그러나 단군신화(檀君神話)로 우리에게 친숙한 그 고조선이 언제 어디에서 시작됐는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고조선에 관한 자료가 중국의 역사서인 사기(史記)에 나오는 짧은 기록 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고조선의 영역과 성립시기 등은 베일에 싸여 있었지만, 지난 수십년 동안 만주지방에서 이루어진 고고학적 발굴 결과 한반도 안에서 맴돌던 고조선에 대한 논의는 만주로 확대되었다.

    고조선은 만주지방의 청동기문명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성립됐다. 이 지역의 청동기문화는 늦어도 기원전 2000년 무렵 시작됐고, 그 위치와 주체에 따라 크게 셋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내몽골 동남부, 랴오닝(遼寧) 서부의
동호(東胡) 집단, 랴오닝(遼寧) 중부, 요동반도(遼東半島), 지린(吉林) 중부 및 남부 지역의 예맥(濊貊) 집단, 지린(吉林) 북부 및 헤이룽장(黑龍江) 지역의 숙신(肅愼) 집단이다.
만주 청동기문화의 주체 동호, 예맥, 숙신의 위치

    고조선은 이 중 예맥(濊貊) 집단의 엘리트들이 중국 세력의 진출에 맞서면서 세운 나라였다. 고조선은 늦어도 기원전 8-7세기 무렵 중국에 그 존재가 알려졌고, 기원전 4세기 말에는 국가 단계로 성장했다.

    고조선의 중심지는 요서(遼西)에서 시작돼 요동(遼東)을 거쳐 평양(平壤)으로 이동해 왔다는 것이 일반적인 학설이다. 이와 같이 중심지를 동쪽으로 이동하게 된 것은 중국의 전국시대(戰國時代) 연(燕)나라의 팽창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1960년대 북한 학자들은 고조선과 연나라의 경계인 패수(浿水)를 현재의 만리장성 남쪽의 난하(水변欒 河)로 해석함으로써 두 나라의 접경을 현재의 하베이(河北) 북부지역까지 확대하는 혁진적인 주장을 제기했고, 이러한 주장은 한국에서도 일부 학자들이 수용하고 있다.

    한편
동호(東胡) 집단은 한(漢)나라 때 오환(烏桓)선비(鮮卑)로 나뉘었는데, 훗날 거란족(契丹族)으로 이어진다.

   
숙신(肅愼) 집단은 한나라 때는 읍루(手변邑 婁), 남북조 시기에는 물길(勿吉), 수당(隨唐) 시기에는 말갈(靺鞨)이라 불렀고, (그 후 女眞이라 불렀는데) 뒤의 만주족(滿洲族)이다.

    고조선은 기원전 109년 막강한 한나라 무제(武帝)의 침공에 맞서 1년여 동안 대항할 수 있었던 군사력과 사회 조직을 갖춘 나라였다. 왕권을 중심으로 강력한 지배체제를 형성했으며, 법률 집행을 위한 강제력을 보유하였다. 돌무지무덤, 돌널무덤, 고인돌 등 석재를 이용한 무덤들이 그 같은 사회체제의 유산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요동반도의 구릉지대와 지린성(吉林省) 동남부에서 120기 이상 발견된 북방식 탁자 모양의 고인돌은 한반도 안에서 발견되는 고인돌과 거의 같은 형태로, 이 지역 문화와 집단이 한반도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었음을 방증한다.
만주의 한국형 고인돌
만주 랴오닝성(遼寧省)의 잉커우(營口) 스펑산(石棚山)에서 발견된 탁자식 고인돌
한반도 북부지역의 고인돌과 동일한 형태를 하고 있다.

    고조선은 또 수십만명으로 추산되는 인구를 지배하고, 중국과 한반도 남부지역 사이의 장거리 교역을 통제함으로써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획득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요동반도 남단에서는 늦어도 기원전 1000년 경에는 벼농사를 실시했던 것으로 밝혀져 고조선 경제력의 바탕이 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고조선에 이어 만주지방에 세워진
예맥 집단의 두 번째 고대국가는 부여(扶餘)로서 고구려(高句麗)로 가는 징검다리라고 할 수 있다.
    기원전 3세기 이후 부여는 현재의 지린성(吉林省) 지린시(吉林市)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해서 기원후 494년 고구려에 병합될 때까지 수백년간 지속되었다.

    유화부안주몽의 설화에서 보듯 고구려부여와 같은 종족이 세운 나라로 기원전 2세기 무렵 압록강 중류의 만주지역에 성립되었다.

    같은 시기에 한반도 동북지방의 두만강 유역에는 옥저(沃沮), 강원도 동해안 지역에는 동예(東濊) 등의
예맥(濊貊) 집단이 정치적 성장을 이룩하고 있었다.

    이들 집단은 처음에는 고조선의 영향 아래 있다가 고조선이 멸망한 후 고구려의 세력 아래 들어가게 되었다.
北韓과 중국의 ‘同床異夢’
<만주유적 둘러싸고 兩國 학계, 판이한 해석 내놔>
편집부(2004. 2. 13, 조선일보 A25면)

    1963년부터 1965년까지 북한과 중국의 고고학자들은 각각 17명씩 참가한 공동조사단을 구성하고, 내몽골(內蒙古), 랴오닝(遼寧), 지린(吉林), 헤이룽장(黑龍江) 지역의 청동기시대고구려, 발해 유적을 답사하고 시굴과 발굴 조사를 공동으로 진행했다.

    그러나 양쪽이 출토 유물의 해석에서 현저한 시각 차이를 노출하여 공동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자 북한은 1966년 ‘중국 동북지방의 유적 발굴 보고’라는 단행본을 독자적으로 출간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연구를 계속하여 고조선의 영역을 만주까지 확대하고, 다련(大連)강상(崗上)러우상(樓上) 무덤을 고조선 지배층의 순장(殉葬) 무덤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문화대혁명 등으로 자료 정리가 늦어진 중국은 30년 후인 1996년 ‘쌍타자 와 강상(雙 駝에서馬대신石 子與崗上)’, ‘육정산과 발해진(六頂山與渤海鎭)’을 각각 출간했다.

    이 보고서에서 중국 학자들은 만주지방의 유적들이 국가 단계에 도달했다는 고고학적 증거가 없으며 강상(崗上)과 러우상(樓上)의 무덤은 혈연관계의 씨족 공동묘지였다고 주장했다.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을 계기로 진행되고 있는 한-중 역사분쟁의 단초는 이미 30여년 전에 시작된 셈이다.
고조선의 유적 러우상(樓上) 무덤
만주 요동반도 남쪽 끝 다렌(대련) 부근에 있는 고조선 유적 러우상(樓上) 무덤의 발굴 전 모습
중국과 북한이 1960년 공동 발굴했지만 무덤의 성격을 둘러싸고 현저한 해석의 차이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