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에 대한 반론
沙月 李 盛 永(2010, 2, 7. 옮김)
  일제의 식민사관 학자들은 칠지도명문(七支刀銘文), 광개토태왕릉비문(廣開土太王陵碑文), 남제서(南齊書), 송서(宋書) 등의 억지해석을 그 근거로 들면서 ‘서기369년에 신라를 치고, 낙동강유역의 가야 여러 나라를 평정한 후 서기 562년까지 거의 200년 동안 가야일본부(日本府)라는 기관을 두고 가야뿐만 아니라 신라, 백제까지도 지배하였다’고 주장하여왔고, 지금도 이를 부정하지 않고 있다.
* 임나일본부설 바로가기(클릭): : 임나일본부설
  국과연 다물지 통권184호(2009.10.1)에는 윤내현저 <우리 고대사 상상에서 현실로> 중에 「임나일본부는 일본 오까야마(岡山)에 있었다」는 주장의 글을 실었다.
  일제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의 역사왜곡 목록 중에 빠지지 않고 있는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명쾌한 반론으로 생각되어 전문을 옮긴다.
임나일본부는 일본 오까야마(岡山)에 있었다.
윤내현 글<우리 고대사 상상에서 현실로> 지식산업사(2003)
  일본 역사서에서 우리의 감정을 건드리는 문제 가운데 하나가 ‘임나일본부’이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내용 왜곡에서도 이 문제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였다.
 
(우리들에게)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일본은 고대에 왜(倭)가야지방에 임나일본부를 설치하고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고 주장해 왔다. 이른바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남선경영설(南鮮經營說)’로서 가야는 일본의 식민지(植民地)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제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사국시대(四國時代)’가 아닌 ‘삼국시대(三國時代)’라 불렀다. 가야일본의 식민지였으므로 한국사에 포함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던 것이다.


  * ‘삼국시대’호칭 문제는 우리 조상들이 그들에게 빌미를 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고려 때에 기록한 역사서 김부식「삼국사기(三國史記)」일연「삼국유사(三國遺事)」고구려, 백제, 신라의 역사를 기록하면서 가야의 역사는 쓰지 않았던 것이 그것이다.

  일제의 어용학자들은 조선총독부 지원으로 한반도 남부의 각 지역에서 대대적인 고고학적 발굴을 진행하였는데 그 작업은 실로 놀랄 만큼 방대했다.
  당시 발굴보고서를 보면서 일제의 발굴 업적에 감탄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 그러한 발굴들은 고대 왜(倭)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남선경영설의 고고학적 근거를 찾기 위한 것이었다.
  발굴 결과 한반도 남부와 일본열도 사이의 문화적 공통성이 발견되면 그것은 바로 고대에 왜(倭)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던 증거라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우리가 일제의 발굴보고서를 읽을 때에는 그들의 유적과 유물에 대한 해석에 매우 주의를 해야만 한다.

  고대에 왜(倭)열도는 한반도에 견주어 아주 낙후되어 있었으므로 왜(倭)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일제의 학자들은 그들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일본서기(日本書紀)』의 기록이다. 『일본서기』에는 왜(倭)고구려, 백제, 신라, 임나 등과 전쟁을 하거나 사신이 오갔다는 기록이 자주 보인다. 임나가야를 말한다. 가야임나라고 불리어졌음이 여러 기록에서 확인된다.

  따라서 고대에 왜(倭)는 한반도에 진출하여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 등과 전쟁이나 사신교류 등의 접촉을 가졌음이 분명하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특히 임나에는 왜(倭)의 관리가 파견된 기록이 보이므로 왜(倭)가야를 지배했음이 분명하다고 그들은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인들의 임나일본부설남선경영설에 감정적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그 잘못된 점을 학술적으로 논증하여 반박하여야 한다.

  일본인들의 주장을 완전히 뒤엎는 주장은 일찍이 1960년대에 북한의 김형석이 제기한 바 있다. 그는 『고대조일관계사(古代朝日關係史)』를 발표하여 『일본서기(日本書紀)』왜(倭)와 전쟁을 했거나 사신 왕래를 했다고 기록된 부분의 고구려, 백제, 신라, 임나는 한반도가 아닌 왜(倭)열도에 있었던 나라들이라고 주장하였다.
  한반도에 있었던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사람들이 왜(倭)열도로 이주하여 그곳에 나라를 세우고 자신들의 조국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는데 『일본서기(日本書紀)』의 내용 대부분은 왜(倭)와 이들의 관계를 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나라들은 (倭)열도에 세워진 우리민족의 분국(分國)으로서 고대에 우리가 오히려 (倭)열도를 지배했음을 알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임나일본부왜(倭)열도에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그 뒤 남한 학계에서는 『일본서기(日本書紀)』는 원래 백제(百濟)의 역사인데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역사로 변조한 것으로서 임나일본부백제가야에 설치했던 기구였다는 주장이 있었는가 하면, 임나일본부대마도에 있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이렇게 되자 일부 일본학자들은 슬그머니 그들의 종래 주장
(‘임나일본부는 왜가 가야를 지배했던 기구’)을 변형하여 임나일본부왜(倭)가야지배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가 아니라 가야통상을 하거나 외교통로로 이용하기 위해 가야에 설치해 놓은 기구였을 것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우리 학자들 가운데도 이 견해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 이것은 임나일본부가 한반도 남부의 가야지역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다만 그 성격을 달리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등장하는 임나한반도에 있었던 가야가 아니라는 점이다.
  『일본서기(日本書紀)』의 기록을 보면 한반도에 있었던 가야가 멸망한 뒤까지도 왜(倭)는 계속 임나와 교류를 가진 것으로 되어있다. 즉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한반도의 가야서기 562년에 완전히 멸망하였는데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그 뒤 서기646년
(가야 멸망 84년 후)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임나와 사신 왕래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임나북쪽바다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한반도) 가야는 지금의 경상남도로서 북쪽바다가 없다.
  이러한 사실들은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등장하는 임나는 한반도에 있었던 가야가 아니었음을 분명히 해주는 것이다.

  요즈음에는 북한의 조희승김형석의 견해를 더욱 발전시키고 있다. 그는 「가야사 연구」에서 그 동안 일본에서 발굴된 여러 유적에는 돌무지무덤, 고인돌 등 한반도에서 건너간 무덤 양식이 보이고, 청동기, 철기, 무문토기 등 한반도에서 수입해 간 것으로 확인된 유물이 많이 출토되고 있는데 특히 가야의 영향을 받은 유적과 유물이 많음을 지적하였다.
일본 후쿠오카현에서 출토된 무문토기
수혜기라 불리는 이 질그릇은 서기 5세기 전반기에 속하는 것으로서
가야의 질그릇으로부터 일본의 특징을 지닌 질그릇으로 변화되어 가는 초기의 것인데
아직도 가야 질그릇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倭)열도 남부 각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계통의 지명(地名)이 많으며,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에 실린 일본의 명문가들 가운데는 한반도에서 이주한 가문의 후손들이 많은 점도 지적하였다. 이러한 사실들은 일찍부터 우리민족(倭)열도로 이주하였음을 알게 해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서기(日本書紀)』의 여러 기록을 보면 임나일본부가 있었던 곳은 한반도가 아니라 지금의 일본 오까야마(岡山)였음을 고증하고 있다.
일본 오까야마(岡山)의 위치도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일본사람들이 임나일본부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바꾼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지금도 사전류나 일반 서적들에는 일본이 고대에 임나일본부를 설치하여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고 적혀 있다.

  필자가 보기에 임나일본부에 대한 가장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연구는 김형석조희성이 이룬 내용이다. 하지만 그 내용은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혹시 북한 학자들의 연구결과이기 때문은 아닐까. 민족의 바른 역사가 정치체제나 이념의 대립 때문에 왜곡되거나 외면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 윤내현(尹乃鉉, 1939년 6월 11일 ~ )은 대한민국의 역사학자이다. 전라남도 해남(海南) 출생이다. 현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소장, 고조선사연구회 회장으로 한국고대사 연구와 남북역사학자 학술 교류 및 공동 연구를 하고 있다.

    <약력>
    - 단국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를 졸업
    - 단국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석사 및 박사과정
    - 하버드대학교 대학원 동아시아역사언어학과에서 수학
    - 단국대학교 사학과 학과장, 박물관 관장, 문과대학 학장, 부총장, 대학원장, 역임
    - 문화관광부 문화재위원, 단군학회 회장, 남북역사학자 공동학술회의 남측단장 등 역임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소장, 고조선사연구회 회장

    <수상>
    - '오늘의 책'상,
    - 일석학술상
    - 금호학술상
    - 국무총리 표창 등

    <저서>
    - 《상왕조사의 연구》, 경인문화사, 1978
    - 《한국고대사신론》, 일지사, 1986
    - 《고조선 연구》, 일지사, 1994
    - 《한국열국사연구》, 지식산업사, 1998
    - 《동아시아의 지역과 인간》, 지식산업사, 2005 외 다수 (네이버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