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들이 몸 던져 발전시켰으나 후손들에게 외면당하는

우리 땅의 산경(山經)

                                                   沙月 李 盛 永 엮음

 

국어대사전에 산맥(山脈)‘여러 산악(山岳)이 잇달아 길게 뻗치어 줄기를 이룬 지대, 즉 산줄기’로 정의하고 있다. 부연해서 설명한다면 산줄기가 강이나 계곡에 의하여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1900년대 초 일제에 강점된 이후 지금까지 지리학에서 우리나라 지형을 배우면서 맨 먼저 산맥을 배웠다. 북쪽의 장백산맥으로부터 최남단 노령산맥까지 열심히 외웠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깊이 생각해 볼 여유도 없이 그저 학교에서 가르치니까 배우고, 시험 답안지를 작성해야 하니까 그 이름을 외울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내 나이 이미 이순(耳順)에 든 지도 몇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그 동안 산을 좋아하여 열심히 산에 오르고, 산에 관한 서적들을 접하면서 점차 우리가 배웠던 ‘산맥(山脈)’이라는 것이 우리의 것이 아니고 일본 사람들이 그들의 식민통치에 맞도록 만들어 낸 개념이며 우리 서민의 일상생활에 있어서는 별 의미도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 오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우리 민족의 선조들은 우리 땅의 생김새에 대하여 별 관심도 없었단 말인가?  아니다. 우리 민족은 어느 민족보다 지세와 지형을 중시해 온 민족이다. 현대과학 입장에서 본다면 허무맹랑하게 보이는 풍수지리가 성행하여 집터나 묘 자리의 위치와 방향을 정하는데도 전후좌우의 지세(地勢)를 살펴서 정했던 것이 이를 입증한다.  그런 우리 선조들이 한반도 우리 땅의 생김새에 등한히 했을 리가 있겠는가?

 

우리 선조들은 일본인 그들보다 훨씬 일찍이 우리 땅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우리 땅의 생김새에 관해 스스로 몸을 던져 탐사하고, 연구하여 이미 1700년대인 조선 영조 때 여암(旅庵) 신경준(申景濬)에 의하여 ‘산경표(山經表)’라는 산맥도가 완성되어 문헌비고(文獻備考) 산수고(山水考)에 수록되어 오다가 1800년대에 작자미상의 산경표 3개 본이 발행되었고, 1913년 경성광문회(京城光文會)에 의하여 국판 102면의 활판본이 간행되었다.

 

그러나 일제 때부터 초, 중, 고, 대학의 교육체계가 정립되면서 양학이 도입되어 우리의 학문이 도외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지리학에서도 우리 선조들이 발전시킨 산경(山經)개념은 그 자취를 감추고 실종되어버리고, 일본 사람들에 의하여 자기들의 식민통치 목적에 부합하도록 고안된 산맥(山脈)개념이 교육되면서 현대를 사는 대부분은 사람들은 우리의 것을 알지 못하고 일본사람의 것을 마치 우리 것인 양 알고 쓰고 있다.

 

참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더욱 부끄러운 것은 이 분야 학자들이 자기들의 권위에 손상을 우려한 나머지 해방된 지 70년에 가까운 긴 세월이 흘렀는데도 우리의 것을 계속 무시하고 하다 못 해 연구의 대상으로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미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우리 것을 찾고 더욱 발전시켜야 할 때라고 생각되어 이 분야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더 많이 나와 깊은 연구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분야에 크게 연구한 바도 없는 본인이지만 다물(多勿)운동 차원에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기록하고자 한다.

   

일본인들이 급조 해서 내 놓은 산맥(山脈) 개념

우리들이 학교에서 배웠고, 지금도 중, 고등학교 지리에서 가르치고 있는 장백산맥에서 노령산맥까지 15개의 산맥은 1903년 일본의 지질학자 고토분지로(小藤文次郞)가 발표한 소위‘조선의 산악론’에 기초를 두고 일본의 지리학자 야스쇼에이(失洋昌永)가 재 집필한‘한국지리’라는 일제 당시 교과서에 내 놓은 것이다.

 

일본인들이 내 놓은 산맥개념은 서언에 언급한 국어사전이나 일반 상식의 산맥개념과는 전혀 달리 지질구조선(地質構造線) 즉 암석의 기하학적 형(形), 암석들의 삼차원적 배치의 층층을 기본선으로 한 것으로 지상이 아니라 지하의 암석의 맥 줄기를 산맥의 기본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상에서 보면 산맥이라는 것이 강이나 개천을 건너  뛰고-‘끊어진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능선과 능선을 넘나든다.

그 한 예로서 광주산맥(廣州山脈)은 금강산 북쪽 언저리에서 시작되어 서남진 하다가 북한강 상류를 건너뛰어(끊어지고) 서울의 북한산에 이르고, 다시 남진하여 한강을 건너뛰고(끊어지고), 서울 남부 관악산-청계산을 거쳐 수원의 광교산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경우는 다른 산맥도 마찬가지다.

 

우리 선조들이나 지금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도로를 개설하면서 마을 옆으로 뻗어나간 산줄기를 자르게 되면 산의 맥을 잘랐다고 하면서 이 마을의 기운이 이로 인하여 쇠하여진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보면 미신 같은 생각일지 모르나 우리 민족은 그렇게 산의 맥을 중요시했다. 그런데 하물며 산의 맥이라는 것이 큰 강에 의하여 잘렸다면 그것은 한마디로 ‘맥(脈)’ 아닌 것이다.

 

일본 사람들이 내 놓은 산맥개념은 혹시 지질학이나 지하자원 개발에는 소용이 있을지 모르나 일반인들의 일상생활과는 아무런 소용도 의미도 없는 것이다. 무엇에 쓰는가?

 

약 백년 전에 일본의 지질학자와 지리학자가 개인적으로 내 놓은 학설이 어떤 객관적인 검증도 없이 그냥 교과서가 되어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배우기를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일본 사람들이 내 놓은 산맥개념은 지형이나 지세를 다루는 개념으로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어느 한 개의 산맥을 놓고 보더라도 처음이 어디고, 그 끝이 어디며, 그 중심선은 어디를 연하는 선이고, 폭 또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포함되는지 알 수 없는 그야말로 의문투성이들이다.

 

그 뿐인가 여러 개의 산맥들이 상호간에는 어떠한 관계를 가지며, 또한 산맥과 강은 어떠한 관계를 가지는가?  또 이러한 산맥들이 이 땅에 있어서 우리 인간의 생활에 어떠한 효용가치를 가지는가? 아무런 대답을 들을 수가 없다.

 

일제 식민지시대에는 그들의 학설이나 주장을 반박할 사회적, 학문적 여건이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해방 된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뜻도 의미도 효용가치도 없는 일본인들이 급조 창안한 산맥개념을 학교 교육 지리과목으로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으니 과연 우리가 올바른 민족의식과 독립심과 자존심과 얼을 가지고 있는 민족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조상들이 발전시킨 산경(山經)개념

국어대사전에나 국사대사전에 산경(山經)이란 말은 없고, 산경표(山經表)라는 말이 나온다.  국어대사전에는 산경표를 ‘조선 영조 때 신경준(申景濬)이 작성한 것으로 우리나라 전국의 산맥 분포를 표시한 것’이라고 설명 되어 있고, 국사대사전에는 ‘우리나라 전국의 산맥표, 조선 영조 때 신경준(申景濬)이 작성했다 한다. 백두산을 중심으로 뻗은 각 산맥들의 분포를 기록하고 있다. 1913년 경성광문회(京城光文會)에서 국판 102면 활판본으로 간행했다’고 되어있다.

 

산경(山經)이란 말은 산맥(山脈)이란 말 보다 훨씬 범위가 넓고, 의미 깊은 높은 차원의 용어이다. 옥편에서 경(經)자를 찾아 산과 관련이 있는 뜻을 열거해 보면  

① 지나간다. 통과한다(過)

② 경영한다. 관리한다(營)

③ 다스린다(治)

④ 지경. 경계(界)

⑤ 법칙(法) 

⑥ 짠다(織)

등의 뜻이 있다.

 

산맥(山脈)이란 말이 물줄기(水脈), 광석줄기(鑛脈)처럼 단순히‘산의 줄기’의미 한다. 그러나 산경(山經)은‘뭇 산들을 통과하여 지나감(過)으로써 산줄기(山脈)를 이루는 것은 물론이고, 뭇 산들을 관리, 경영하고(營), 다스리며(治), 이 들 산줄기를 기준으로 양쪽 편을 나누어 분수령이 되어 지경을 이루고(界), 이들은 일정한 법칙에 따라(法) 조직적으로 엮어 짜여져 있다(織)’는 뜻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이 발전시킨 산경개념의 표현은 대체로 두 가지를 통해서 발전되어 왔다. 그 하나는 지도(地圖)인데 가장 오래 된 것으로는 15세기 초인 서기1402년에 제작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里歷代國都之圖)>가 있고, 16세기 중엽 서기1557년(조선 명종12년)에 제작된 전도류(全圖類)로서 <조선방역지도(朝鮮方域之圖)」(국사편찬위원회 소장, 국보재284호)를 비롯하여 18세기 중엽 서기1757년 조선 숙종-영조 연간의 학자 정상기(鄭尙驥)*의<조선팔도도(朝鮮八道圖)> 또는 <조선전도(朝鮮全圖)>, 그 외 군현도(郡縣圖)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지도류가 모두가 같은 맥락의 산경개념을 표현하고 있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조선방역지도


          조선전도
(우리땅 산경이 뚜렷리 표시되어 있다)

 

또 조선 철종-고종 연간의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는 위와 같은 전통기법의 지형 표현을 계승하여 「청구도(靑丘圖)」와「동여도(東輿圖)」그리고「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1861)」를 제작하였다. 특히 대동여지도는 보다 정확하고 상세한 산줄기, 물줄기의 지도로서 축척1:216,000 남북 길이 6.6m의 거대한 지형지세도를 완성하여 산경 개념을 지도상에서 완벽하게 정립하였다.

 

* 정상기<鄭尙驥, 숙종 4년(1678)-영조 28년(1752)>: 조선 영조 때의 학자, 자 여일(汝逸), 호 농포자(農圃子), 본관은 하동으로 정인지의 후손, 7세 때 부친을 여의고 몸이 약하여 과거 응시를 단념하고, 학문에 뜻을 두어 성호(星湖) 이익(李瀷)의 4대 제자 중의 한 사람으로 실학파 지리학의 대표적인 인물이 되었다.

 

중년 이후에는 저작에 힘썼는데 정치. 경제, 국방, 병술, 의약, 기계, 농경 등 다방면에 걸쳐 깊은 연구를 하였다. 특히 지도제작에 백리척(百里尺)의 축척법(一寸을 十里로 기준)을 써 우리나라의 과학적인 지도제작에  큰 공헌을 하였다.

 

저서로는 인자비감(人子備鑑), 농포문답(農圃問答), 심의설(深衣說), 도검편(韜鈐篇), 항향요람(鄕居要覽) 등이 있다.

 

* 김정호(金正浩): 조선 고종 때의 지리학자. 자 백원(伯元, 호 고산자(古山子), 황해도 출신으로 독학으로 조선 지도 제작에 힘써 30년 동안 방방곡곡을 실지 답사하여 청구도(靑丘圖)와 동여도(東輿圖)를 제작하고, 다시 정확하고 거대한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를 완성하여 철종 12년(1861)에 독력으로 각판(刻板)을 간행하였는데 지도는 22겹으로 가로 접게 되고 십리방안(方案)으로 거리를 측정하게 하여 상세한 부분은 5만분의 1 지도와 비할만 하다. 또 대동지지(大東地誌) 32권 15책 내어 여지승람(輿地勝覽)의 착오를 정정하였다. 후에 서대문 밖에서 그의 딸과 함께 지도를 판각하여 흥선대원군에게 올렸다가 나라의 기밀을 누설하는 것이라 하여 판각은 몰수되고 자신은 옥사 하는 화를 입었다.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산경개념의 또 다른 표현의 하나는 이와 같은 우리의 옛 지도에 나타난 산맥을 글로 정리한 것인데 1800년경에 찬표된 산경표(山經表)이다.  산경표는 여암(旅庵) 신경준(申景濬)이 동국지도류의 산줄기의 흐름을 토대로「문헌비고(文獻備考)」의 <산수고(山水考)>를 쓴 것을 누군가가 찬표한 것이다.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대표적인 산경표는 다음과 같이 3개 본(本)이 있으나 그 내용은 모두 같다.

① 규장각의 <해동도리보(海東道里譜)> 중의 산경표

② 정신문화원 장서각의 <여지승람(輿地勝覽)> 중의 산경표

③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 崔南善)가 1913년 간행 영인본 산경표

 

산경표들은 전국의 산줄기를 1개의 대간(大幹), 1개의 정간(正幹) 그리고 13개의 정맥(正脈)으로 규정하고 이상 15개의 이름을 명명하였고, 여기에 다시 가지를 뻗은 것을 기맥(岐脈)이라 하고 그 이름을 명명하지는 않았다.

 

모든 산줄기의 연결은 자연 지명인 산이름, 고개이름 등으로 하고, 족보식으로 기술하였으며 그 산줄기의 순서는

①백두대간(白頭大幹)

②장백정간(長白正幹)

③낙남정맥(洛南正脈) 

④청북정맥(淸北正脈)

⑤청남정맥(淸南正脈)

⑥해서정맥(海西正脈) 

⑦임진북예성남정맥(臨津北禮成南正脈) 

⑧한북정맥(漢北正脈) 

⑨낙동정맥(洛東正脈) 

⑩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 

⑪한남정맥(漢南正脈)

⑫금북정맥(錦北正脈)

⑬금남호남정맥(錦南湖南正脈)

⑭금남정맥(錦南正脈)

⑮호남정맥(湖南正脈) 순이다.

 

 

 

 

 

 

 

 

 

 

 

 

 

 


산경도와 산경표

 

* 신경준<申景濬, 조선 숙종38년(1712)-정조5년(1781)>: 조선 영조 때의 실학자, 자 순민(舜民), 호 여암(旅庵), 본관 고령(高靈), 영조30년(1754)에 증광시 을과에 급제하여 승문원(承文院)에 들어가 성균관 전적(典籍: 正6品)을 지냈다.  해박한 지식과 학덕(學德)이 높아 천(天), 관(官), 직(職), 방(方), 성(聲), 율(律), 의(醫), 복(卜) 등 다방면의 학문과 역대의 헌장(憲章), 해외의 기서(奇書)에 이르기까지 도통하였다.

 

특히 팔도 산천도리(山川道里)의 지리에 정통하였다. 성균전적으로 있는 동안 왕명으로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을 감수하고 그 공으로 승정원(承政院) 동부승지(同副承旨: 正3品下)에 발탁되었다가 병조(兵曹) 참지(參知: 正3品上)로 옮겨 「팔도지도(八道地圖)를 감수하였다.

 

저서로 소사문답(素砂問答), 의표도(儀表圖), 조앙도(非頁 仰圖), 강계지(江界誌), 산수경(山水經), 도로고(道路考), 일본증운(日本證韻), 언서음해(諺書音解) 등이 있다.

 

* 문헌비고(文獻備考): 우리나라 상고로부터 대한제국 말기까지 문물제도를 분류하여 정리한 책.

최초 영조46년(1770) 왕명에 의하여 홍봉한 등이 널리 공사(公私)의 실기(實記)를 참고하여 중국의 마단림(馬端臨)의 「문헌통고(文獻通考)」를 본따서 상위(象緯), 여지(輿地), 예(禮), 악(樂), 병(兵), 형(刑), 전부(田賦), 재용(財用), 호구(戶口), 시적(市籍), 선거(選擧), 학교(學校), 직관(職官) 등 13개 고(考)로 분류, 100권을 편찬하여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라 하였다.

 

그러나 이 책은 약 반년간에 걸친 졸속으로 부실하고, 시대가 바뀜에 따라 법령과 제도가 변한 것이 많아 정조6년(1782)에 당시 박학다식 했던 이만운(李萬運)에 명하여 사택에 사자관(寫字官)을 두고 9년 여에 걸쳐 동국문헌비고의 틀린 것은 고치고 빠진 것은 추가하며, 새로이 물이(物異), 궁실(宮室), 왕계(王系), 씨족(氏族), 조빙(朝聘), 시호(諡號), 예문(藝文) 등 7개 고(考)를 증보(增補)하여 146권으로 편성하고 이를 「증보동국문헌비고(增補東國文獻備考)」라 하였다.

 

그러나 이는 출간되지 못하고 100여 년이 지나 고종 광무 연간인 1903년에 찬집청(撰集廳)을 설치하고 박대용(朴大容) 등 30여 명의 문사로 하여금 5년 여에 걸쳐 증보문헌비고 20고 중 (1) 물이는 상위에, 궁실은 여지에, 시호는 직관에, 왕계는 제계로 고쳐서 씨족을 통합하고, (2) 조빙을 교빙(交聘)으로 고쳐서 상위, 여지, 제계, 예, 악, 병, 형, 전부, 재용, 호구, 시적, 교빙, 선거, 학교, 직관, 예문 등 16개 고 250권을 편성하여 융희2(1908)에 간행하였다. 1957년에 동국문화사(東國文化社)에서 상, 중, 하 국판 3,051면 250권 50책으로 영인하였다.

 

선조들은 이렇게 산줄기의 순서를 배열하는데도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다. 마치 우리 땅을 생명이 있는 살아서 숨쉬고 있는 인체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목줄기, 등줄기에 해당하는 백두대간을 제일 먼저 놓고, 다음은 두상에 해당하는 장백정간, 그 다음은 하지에 해당하는 낙남정맥을 놓아 큰 골격을 얽어 놓은 다음 북쪽으로부터 백두대간에서 분기하는 순서대로 나열하고 있는 것이다. 이 한가지만 보더라도 우리 선조들이 우리 땅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겨 왔는가를 짐작케 한다.

 

우리 땅의 산경은 족보식(族譜式)으로 되어있다. 즉 할아버지 밑에 아들이 있고, 아들 밑에 손자가 있듯이 제일 위쪽에 대간(大幹: 白頭大幹 1개)이 있고 그 밑에 정간(正幹: 長白正幹 1개) 또는 정맥(정맥: 洛南正脈 등 13개) 그리고 그 이름을 붙이지 않은 무수한 기맥(岐脈)으로 3단계 분류를 하고 있다.

 

그러나 기맥은 그 시발이 대간, 정간, 정맥뿐만 아니라 다른 기맥에서도 시발하므로 기맥 그 자체에 여러 계단의 상하가 있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발전시킨 산경개념은 일본인들이 내 놓은 산맥개념에서 풀어주지 못하는 의문들을 흔쾌히 풀어준다. 위 의문들 중에서 우선 산맥 상호간의 관계는 산경은 산맥들을 3개 이상의 계층으로 나눈다. 맨 위의 계층이 대간(大幹)이다. 대간에는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한반도를 꾀 뚫는 백두대간(白頭大幹) 1개를 두고 있다. 대간 밑에 1개의 정간(正幹)과 13개의 정맥(正脈)을 두고 그 이름을 붙여주고 있다.

 

대간에서 이어지는 14 개의 정간과 정맥 외 직할 개념의 산줄기와 정간 또는 정맥에서 이어지는 산줄기들을 기맥(岐脈)이라 하였다. 기맥은 그 수와 계층을 다 헤아릴 수 없이 많기 때문에 각각의 산줄기에 이름을 붙여주지는 않았다. 이렇게 상하의 계층이 명확하고, 상하관계가 뚜렷한 이러한 형태의 체계가‘족보식(族譜式)’이다.

 

한 사람의 할아버지 밑에 수명의 아들이 있고, 그 아들들 밑에 수많은 손자(孫子)들이 있고, 그 손자들 밑에 증손(曾孫), 현손(玄孫), 5대손(五代孫)---으로 이어지는 족보(族譜)와 꼭 같은 개념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 땅의 산줄기 가 각각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간에 부자간, 형제간처럼 밀접한 관계로 보았던 것이다.

 

정간이나 정맥을 정함에 있어서도 명확한 법칙이 적용된다. 정맥은 대간이나 대간에서 흘러 온 정맥상의 산이 곧 시발점이고 그 끝은 반드시 바다나 강어귀에 이르는 산(山), 곶(串), 진(鎭), 대(臺)를 종착점으로 하고 있어서 시발점과 종착점이 명확하다. 어느 산줄기가 아무리 웅장하고, 길고, 높은 산들을 포함하고 있더라도 그 끝이 바다나 강어귀에 이르지 못하고 내륙에서 그치면 정맥의 이름을 주지 않고 기맥으로 분류한 것이다.

 

그 좋은 예로서 백두대간의 오대산에서 출발하여 양수리에 이르는 산줄기는 남한 제5봉인 계방산을 비롯하여 용문산 등 쟁쟁한 산들을 포함하여 먼 거리를 힘차게 달려오지만 북한강과 남한강의 합수(合水) 지점인 양수리(兩水里)에서 끝나기 때문에 정맥의 이름을 주지 않고 기맥으로 처리하고 있는 것이다.

 

또 대간, 정간, 정맥의 폭은 일정한 것이 아니라 그 산세의 크고 작음에 따라 포함하기도 하고, 제외시키기도 하는 융통성을 갖는다. 예를 들면 오대산의 제1봉 비로봉은 백두대간의 마루금에서 서쪽으로 6Km나 벗어나 있지만 오대산의 웅장한 산세로 보아 백두대간의 산으로 포함시키며, 덕유산 제1봉 향적봉 역시 대간 마루금에서 3,9Km나 북쪽으로 벗어나 있지만 30Km의 웅장한 덕유산 주능선 산세를 고려하여 역시 백두대간의 산으로 치부하고 있는 것이다.

 

산경개념에서 대간, 정간, 정맥, 기맥을 막론하고 각급 산줄기 중심선은 이를 기준한 양쪽을 가르는 마루금 즉 분수령(分水嶺)의 연결이기 때문에 어떤 산경의 중심선이 명확하다. 이 마루금의 왼쪽에 강수(降水)한 물이 결코 오른쪽으로 흘러갈 수 없으며 또한 마루금의 오른쪽에 내린 빗물이 결코 왼쪽으로 흘러갈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산경개념은 산의 문제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물의 문제를 다루는 치수(治水)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한 예로서 추가령(백산분기점)- 장명산 간의 한북정맥, 추가령(백산분기점)-속리산간의 백두대간, 속리산-칠현산 간의 한남금북정맥, 칠현산-문수산 간의 한남정맥이 그리는 마루금의 안쪽이 곧 한강 유역이다. 이 마루금 안쪽에 내린 빗물은 인공적으로 물길을 바꾸기 전에는 한강 이외의 다른 강으로 흘러 갈 수 없다.

 

우리 민족은 이미 단군조선 초기부터 물을 필요로 하는 벼농사를 주업으로 하여 정착생활을 해 왔기 때문 이러한 산경개념은 물의 치수에도 매우 유용할 뿐만 아니라 동일한 강물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사람들끼리 언어와 풍습과 생활  습관이 같거나 유사하게 되어 자연히 동일 문화권을 형성하게 마련이기 때문에 문화를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우리 땅의 산경과 물과의 관계도

 

이처럼 개념도, 법칙도 명확하고, 일상생활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우리의 산경개념이 왜 홀대를 받고 있는가? 일제 식민지시대야 일본인들의 것이 법이요 진리였으니까 나라 없는 설움으로 치더라도 해방된지 어언 56년이 아닌가? 만시지탄(晩時之歎)의 감은 있지마는 지금이라도 지리학계, 교육계 등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이 더 깊은 연구와 계획을 세워 우리 조상들이 몸으로 뛰어서 발전시킨 산경개념을 빨리 찾아 정립하여 학생들에게도 가르치고 어른들도 공부해야 할 것이다.

 

 

 

 

 

 

 

 

 

 

 

 

 

 

 

 

 

 

 

 

 

 

 


우리 땅의 산경도

 

산경개념과 산맥개념의 비교표(요약)

 

산경(山經)

산맥(山脈)

기 초

1557년(명종12년)경에 제작된 조선방역지도(朝鮮方域之圖)

영조때 정상기의 조선팔도도(朝鮮八道圖)와  군현도(郡縣圖)

고종때 김정호의 청구도(靑丘圖), 동여도(東輿圖) 및 대동여지도

  (大東輿地圖)

영조때 신경준의 문헌비고산수고

  (文獻備考 山水考)

1800년 경의 산경표 3개본

1903년 일본 지질학자 고토분지로(小藤文次郞)가 발표한 조선산악론(朝鮮山岳論)

 

위 고토의 논문을 기초로

 일본 지리학자 야스쇼에이(失洋昌永)가 재 집필한 한국지리(韓國地理)

개 념

, 능선, 고개, 계곡, 강, 내 등 땅 위(地上)의 형태 즉(地形)과 지세(地勢)에 바탕을 두고 분수령의 이음새 마루금을 기준선으로 삼아 대간(大幹), 정간(正幹) 또는 정맥(正脈), 기맥(岐脈)으로 상하간의 계층과 순서와 상호 관계를 엄격히 설정한 족보식(族譜式)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지하 지질구조선(地質構造線) 즉 땅을 형성하는 암석(岩石)의 기하학적(幾何學的) 형테(形態)와 이 들의 삼차원적(三次元的) 배치 층을 기본선으로 한 땅 속 암석의 맥(脈)이 산맥의 기본 개념인 바 이는 곧 지하 광맥이다.

특 징

① 산줄기는 강(江), 내(川) 그리고 골(谷)을 나누는 분수령(分水嶺)을 명확한  기준선으로 하여 산의 크기와 세력에 따라 적절한 폭을 주는 융통성을 갖는다.

② 산줄기는 능선을 가로질러 건너가는 경우가 없고, 강, 내, 골을 건너가거나 따라가는 경우가 없으며 항상 산봉, 능선, 고개를 따라 이어진다.

③ 산줄기는 대간, 정간 또는 정맥, 기맥의 상하 및 상호간의 관계를 가지면서 섬을 제외한 전국의 산줄기는 끊어짐이 없이 모든 산줄기는 고구마 뿌리처럼 이어지며 홀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산줄기는 없다.

④산줄기는 물줄기를 가르는 분수령의 이음이기 때문에 전국토의 지형, 지세를 보다 쉽게 알 수 있고, 국토의 효율적 이용을 위한 계획 수립이 용이하다.

⑤산줄기들은 강, 내의 유역을 결정해 주고, 강수량에 따른 하천의 수량을 예측할 수 있는 등 사람의 일상 생활과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고, 특정 문화권을 형성해 주는 역할을 한다.

① 산줄기는 강이나 내를 건너는 경우가 많아 지상에서 보면 사실상 맥(脈)이라 할 수 없다.

 그 예로서 광주산맥(廣州山脈)은 금강산 북쪽 언저리에서 시발하여 북한강 살류를 서쪽으로 건너고 북한산에 이르러서는 또 한강을 건너 관악상, 청계산, 광교산으로 이어진다

② 산줄기의 시작과, 끝, 폭 등이 명확하지 않아서 각 산맥의 중간쯤에 있는 산은 어느 산맥에 속하는 지 모호한 경우가 허다하다.

③ 각 산맥간의 상하 또는 상호간의 관계가 설정되어 있지 않고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④ 지질학이나 지하자원개발에는 유용할 수 있으나 일반인들의 일상생활과는 관계가 없다.

 즉 산맥개념은 인간 생활에 별 의미가 없는 무용한 개념이다.

명 칭

① 백두대간(白頭大幹)

② 장백정간(長白正幹)

③ 낙남정맥(洛南正脈) 

④ 청북정맥(淸北正脈)

⑤ 청남정맥(淸南正脈)

⑥ 해서정맥(海西正脈)

⑦ 임북예남정맥(臨北禮南正脈) 

⑧ 한북정맥(漢北正脈)   

⑨ 낙동정맥(洛東正脈) 

⑩ 한남금북정맥 (漢南錦北正脈) 

⑪ 한남정맥(漢南正脈)

⑫ 금북정맥(錦北正脈)

⑬ 금남호남정맥 (錦南湖南正脈)

⑭ 금남정맥(錦南正脈)

⑮ 호남정맥(湖南正脈)

①장백산맥(長白山脈)

마천령산맥(摩天嶺山脈)

③함경산맥(咸鏡山脈)

④낭림산맥(狼林山脈)

⑤강남산맥(江南山脈)

적유려안맥(적유嶺山脈)

⑦묘향산맥(妙香山脈)

⑧언진산맥(彦珍山脈)

⑨멸악산맥(滅岳山脈)

마식령산맥(馬息嶺山脈)

⑪태백산맥(太白山脈)

⑫광주산맥(廣州山脈)

⑬차령산맥(車嶺山脈)

⑭소백산맥(小白山脈)

⑮노령산맥(蘆嶺山脈)

 

 

 

 

 

 

 

 

 

 

 

 

 

 

 

 

 

 

 

 

 

                       산경도                                                   산맥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