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의  우리 겨레 후예들

 

沙月 李 盛 永

 

나는 태국을 두 번 여행한 적이 있다. 한번은 현역으로 있을 때 국방부 실무요원방문단을 이끌고 싱가폴, 태국, 대만순으로 순방하였고, 두 번째는 예편 후 부부가 관광차 태국을 다녀왔다.

 

그 때 마다 태국에서 관광 가이드가 북쪽 미안마와의 국경지대 산악지에 있는 치앙마이를 가 볼 것을 권하였으나 여행사를 통해서 짜여진 일정대로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그저 지나치는 말로 ‘다음에 가지’하면서 웃고 만 적이 있다.

 

다물지 13호에는 ‘1,300년만의 해후’라는 제하에 한배달회원 권태동이라는 분의 글이 실렸는데 바로 그 치앙마이 기행문이다. 그에 의하면 90년대 초에 김병호 박사가 「치앙마이」라는 저서를 내 놓았는데 그 책에는 ‘태국과 미안마 국경지대 치앙마이 북부 밀림지대에 현대문명을 등진 채 우리의 전래 풍습과 꼭 같거나 비슷한 풍습을 지키며 살아가는 종족이 있다’고 하였다 한다.

 

글쓴이(권태동)는 치앙마이에서 카누에 자동차 엔진을 단 8명정도 타는 쪽배와 코끼리로 밀림을 헤치며 방문한 라후족 마을과 아카족 마을에서 눈앞에 전개된 풍경을 다음과 같이 열거하고 있다.

 

산자락에 자리잡은 시골마을 정경 속에 눈에 보인 것은 투박한 장승과 솟대, 동네 앞 그네, 우리 것과 너무도 같은 절구와 디딜방아, 깨를 섞은 인절미, 꽹과리, 어린 시절을 연상케 하는 대가족, 강강수월래와 아리랑가락을 듣고 있는 듯한 노래와 춤, 이남이의〈울고싶어라〉를 연상케 하는 연가, 어린 동생을 등에 업고 있는 코흘리개 개구쟁이, 굴렁쇠 굴리는 아이들의 모습, 무당 등이었다„

 

이어지는 충격적인 이야기들이들은 100% 문맹, 의료혜택은 무당에게 의존, 내일을 기약하지 못하는 가난, 생활화 된 마약복용, 평균연령 38세, 비참한 모습으로 외부인 특히 서양 관광객들에게 신기한 관광거리 전락했으며, 이들에게는 땅도 주민권도 없고 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면서 악명 높은 마약왕 쿤사 아래서 양귀비를 재배하며 생계를 연명한다”면서 원시적이고 비참한 그들의 삶의 실상을 폭로하였다.

 

글쓴이는 “이보다 더 큰 비극은 그들이 자신들의 과거를 잃어버리고 미래의 꿈을 상실한 채 그저 동물적 생존이 있을 뿐이기 때문에 이 땅에서 멸종된 수많은 동물처럼 멸종으로 이어질지도 모르는 엄청난 비극을 잉태하고 있는 듯이 보여 마을을 떠나는 발걸음을 마냥 무겁게 했다”고 어두운 소감을 말하고 있다.

 

우리와 같거나 비슷한 풍습

    (김병호 저 「치앙마이)에서 인용한 것을 간추림)

의식주 생활

- 설날 색동옷을 입는 것 

- 여자들이 구슬을 목에 걸거나 모자와 옷에 장식하는 것

- 머리에 수건을 두르는 것

- 치마끈에 노리개를 다는 것

- 베로 된 각반을 다리에 차(두르)는 것

- 팔찌와 귀걸이를 패용하는 것

- 여자들 머리에 쪽을 찌는 것

- 옷에 수를 놓아 입는 것

- 변관이나 고깔을 쓰는 것

 

 

 

 

 

 

 

 

 

 

 

 

 

 

 

 


창마이 여인

- 숫가락,젓가락을 사용하는 것

- 김치(이곳 말로 왓치)를 담아 먹는 것

- 메주를 쑤어 된장을 만들어 먹는 것

- 설날에 인절미를 만들어 먹는 것

- 차진 쌀밥을 주식으로 하는 것

- 벼를 튀겨 먹는 것

- 개고기를 먹는 것

- 방 가운데 불을 지펴 방안을 덮이고 음식을 끓여 먹는 것

- 높은 산마루나 산 속에 마을을 이루어 생활하는 것

 

신체

- 동양인으로는 키가 큰 것

- 몸에 글자나 문신을 그리는 것

 

신앙

- 모든 사물에 귀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 무당(그들 말로 머피)이 있고, 병이 나면 굿을 하는 것

- 전지전능한 절대자(그들 말로 까므)를 숭상하는 것

    * 까므는 하느님(神)을 이르는 고구려 말, 일본말로는 가미(神)

- 솟대와 소도가 있는 것

-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하느님께 제사를 지내는 것

- 일년에 네 번 하늘에 제사지내는 것

- 제사지낼 때 동네사람들이 모여 술 마시고 춤추는 것

- 돼지 머리를 놓고 고사를 지내는 것

 

 

 

 

 

 

 

 


                          고사에 사용된 돼지머리

 

놀이

- 팽이치기, 실뜨기, 팔방놀이(사방치기), 공기놀이

- 그네 타기, 쎄쎄쎄 놀이, 비석 맞추기, 제기차기  

- 설날아침 꽹과리와 피리를 앞세우고 동네 집집마다 돌며 지신밟기를 하는 것

 

노래와 춤

- 노래에 장단이 있고 노래를 즐겨 부르는 것

- 노래 가락은 주로 단조이며 애조(哀調)를 띄는 것

- 남녀들이 모여 춤추고 노래하는 것

- 춤 출 때 여러 사람이 손을 잡고 원을 그리는 것

- 전통의 춤사위로 춤을 추는 것

 

임신과 출생

- 임신 중 비늘이 없는 생선을 먹지 않은 것

- 출산 시 금줄을 매는 것

- 갓난애의 손목에 실을 매주는 것

- 아기를 업을 때 띠를 띠고 등에 업는 것

- 쌍둥이나 기형아를 낳으면 재앙이 온다하여 죽이는 것

  

사랑과 결혼

- 남녀의 애정관계가 제약 없이 자유로운 것(삼국시대 풍습)

- 신부될 사람이 장차 남편을 위해 새 옷이나 수를 놓는 것

- 여자가 자기 결혼식에 쓸 돼지를 기르는 것

- 어린 여자아이를 사다가 며느리로 삼는 것(민며느리)

- 혼인식은 신부 집에서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것

- 결혼식 후에 폐백을 드리는 것

- 신랑을 매달고 발바닥을 때리며 술 또는 돈을 요구하는 것

- 첫날밤 동네 아주머니 들이 신방을 엿보는 것

- 신랑신부는 신부 집 뒤에 집을 짓고 3-4년 살다가 분가하여 독립하는 것

- 형이 일찍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는 것

 

병사(病死)

- 사람이 병들면 음식을 차려 놓고 비는 것

- 집 밖에서 죽은 시체를 집안에 들이지 않는 것

- 부모가 죽으면 자식이 슬피 우는 것

- 시체를 씻고 새 옷을 입혀 염하는 것

- 시체의 머리와 발 밑에 촛불을 켜 놓는 것

- 나무 관에 시체를 넣는 것

- 3-5일장을 지내는 것

- 상복을 입는 것

- 죽은 자가 평소에 사용하던 물건을 시체와 함께 묻는 것

- 장례 때 가족, 친지, 동네 사람들이 뒤따르며 우는 것

- 관을 땅에 묻고 봉분을 만드는 것

- 죽은 자의 옷가지를 태우는 것

- 무덤 앞에 음식을 차려 놓고 제사를 지내는 것

- 무덤의 풀을 깎는 것(벌초)

 

기타 풍습

- 꿈으로 길흉을 점치는 것

- 마을 사람들이 족장의 성을 따서 이름을 짓는 것

   (삼국시대 평민 이하는 성이 없고, 이름만 있었음)

- 물건을 머리에 이고 나르는 것

- 절구통과 절구공이를 사용하여 곡식을 빻는 것

- 디딜방아를 사용하는 것

- 곡식을 처마 밑에 달아 놓았다가 이듬해에 씨앗으로 사용하는 것

- 호롱박(조롱박)을 사용하는 것

- 닭을 부를 때 ‘구구’하고 부르는 것

 

언어

- 말의 순서가 같고 어원이 같거나 비슷한 것(주격, 목적격, 소유격, 강조조사, 호격조사 순)

    (예) 나는 서울 가요--------나래 서울로 까이요

         나는 너를 사랑해요-----나래 너타 하웨요

- 문장의 종지부, 동사와 형용사의 굴절, 형용사의 용법이 비슷하다는 것

 

유전자 감식

- 100명을 무작위 추출하여 혈액유전자 감식 결과 우리와 가장 근접한 유전인자를 발견하였다는 것

 

우리겨레와 관련성에 관한 주장

태국과 미안마 국경지대 치앙마이 북방의 한반도 면적과 같은 넓은 밀림지역에 흩어져 원시생활을 하고 있는 태국 산족(山族) 중에서 우리와 비슷한 종족은 라후족, 아카족, 리수족 등 세 개의 종족이며 수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200만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은 역사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민족의 갈래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주장이 있는데 그 경위는 차이가 있으나 시대가 같고 그들이 우리민족의 후손이라 주장하는 점은 일치한다..

 

나당연합군에 포로로 끌려간 백제와 고구려 유민의 후예

「치앙마이」저자 김병호 박사는 이들은 서기 660년과 669년에 백제와 고구려가 항복하고 나당연합군에게 포로가 되어 당나라로 끌려간 백제 및 고구려 유민들의 후예로 추정하고, 그 근거는

(1)「당서동이전(唐書東夷典)」의 고구려 편의

‘총장 2년(서기669년: 고구려가 나당연합군에 항복한 해)에 고구려 백성 3만명을 강희 산남으로 이주 시켰다’는 기록과

 

(2) 「삼국사기(三國史記)」 고구려본기 보장왕 편의

‘총장 2년 4월 당 고종은 우리 나라사람 3만8천3백호(약20만명)를 강희 남쪽과 제주의 광막한 땅으로 옮겼다’는 기록이다.

 

고선지 장군이 잔류시킨 고구려, 말갈, 선비의 후예

중국 소수민족의 전문가인 경남대 강명상 교수는 ‘중국의 학자들이 당나라 때 중앙아시아를 정벌한 고선지장군(당의 포로가 된 고구려 장수로서 당나라 장수가 되었음)이 회군 길에 고구려, 말갈, 선비 사람으로 구성된 1개 군단 8천명을 중국 서남지방에 잔류시켰으며, 라후족(우리와 가장 유사)은 이들의 후손으로 추정하고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 글쓴이(한배달 회원 권태동)는 이국 땅에서 1,300년 동안 우리와 단절된 상태에 있는 그들을 우리민족의 후예로서의 의문을 접어두고 그들의 삶이 번영할 수 있는 슬기로운 지혜를 가지도록 도와주는 방도를 찾는데 관심과 노력을 기울일 것을 제안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