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竹)
沙月 李盛永(2013. 4. 25)
  동기회 홈페이지에 대나무꽃 영상이 게시되어 대나무에 관심이 높아졌으니 대나무와 관련된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대나무는 우리나라 특히 남부지방에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실제로 대나무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임업연구원 이유미 박사가 1995년에 지은 저서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나무 백 가지’를 중심으로 엮어 볼까 한다.
왕성한 왕대나무밭
  대나무가 나무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나무는 이라는 사람도 있다. 옛 선인들 중에도 대나무에 대한 이런 의문과 함께 대나무가 우리 인간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을 읊은 윤선도오우가(五友歌: 水,石,松,竹,月) 중에 대나무(竹)를 읊은 시조가 있다.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시기며 속은 어이 비었는다
  저리도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나무도 아닌 것 같고, 풀도 아닌 것 같고, 쭉 벋어 올라간 곧은 성품 즉 변하지 않는 지조(志操)는 누가 시켰으며(가르쳤으며), 속(마음)을 비운 듯 청렴(淸廉)하고, 늘 푸른 모습을 보이니 우리 사람이 본받고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는 대나무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노래 한 것이다.

  대나무의 우리말 어원은 모르겠고, 서양에서 대나무를 Bamboo(밤부)라 하는데 북방의 대나무와는 달리 말레지아 같은 남방계 대나무들은 포기나누기를 하여 분가(分家)한다고 한다. 바람이 많이 불면 대나무 줄기들이 흔들리며 마찰하여 불을 일으켜 낙엽에 옮겨 붙어 타면 대나무 줄기 속의 공기가 팽창하여 ‘평-(bam)‘ 하고 터지는데 이 때 대나무가 여러 포기로 나누어져 ‘푸-(boo)’ 하면서 튀어나가 분가를 하는데 이 대나무가 터지는 소리와 대나무 포기가 튀어나가는 소리가 합쳐서 ‘Bam-boo’가 되었다고 한다.(믿거나 말거나)
중국 복건성 무이구곡의 포기 대나무
2012. 11월 하순 중국 무이구곡 여행시 찍은 것
월남에도 이런 포기 대나무가 많았다.
베트콩들은 이 포기대나무 밑에 굴을 파서 은신 아지트로 삼있다.
이 베트콩 아지트는 대나무 뿌리가 마치 철근 역할을 해서 절대로 무너지는 일이 없다.
  강희안이 엮은 꽃나무의 등급을 매긴 『양화소록(養花小錄 )』대나무1등급에 넣고 있는데 이는 조선조에 시인 묵객들에게 사군자(四君子: 梅,蘭,菊,竹)의 하나로 사랑을 받기도 하고, 곧은 충절(忠節)을 상징하였던 나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국 북송 때의 문장가 소동파(蘇東坡)“고기 없는 식사는 할 수 있어도 대나무 없는 생활은 할 수 없다, 고기가 없으면 몸만 수척해 지지만 대나무가 없으면 사람이 저속해 진다”고 할 정도로 중국이나 한국의 옛날 사람들은 대나무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또 십장생(十長生) 중에 호랑이는 대나무 밭에 사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고, 신라, 백제 그리고 조선 순종 때 경희궁에 호랑이가 들어왔는데 이는 대나무 밭이 있기 때문이라 하였다. 옛날 풍습의 결혼식 초례상에 소나무와 함께 대나무를 양쪽에 꽂고 청실 홍실을 연결하여 신성함과 아울러 장수와 번영을 기원하였다.

  신라 13대 유례왕(儒禮王) 때 적군이 갑자기 쳐들어 와 막을 길이 없었는데 어디선가 귀에 대나무 귀고리를 한 군사들이 나타나 적을 무찌르고 감쪽 같이 사라졌는데 군사들은 보이지 않고, 선왕인 미추왕(味鄒王) 능침에 대나무 잎이 수북히 쌓여 있어 선왕이 나라를 걱정하여 대나무 잎을 군사로 둔갑시켜 싸우게 했다고 믿고 이 능을 ‘죽현릉(竹顯陵)’이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신라 31대 신문왕(神文王) 때도 대나무에 얽힌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어느 일관(日官)이 ‘동해의 작은 섬에서 큰 보물을 얻을 것’이라는 점괘가 나와 그 섬을 찾아갔더니 머리는 거북이 같은데 등 위에 대나무가 나 있다. 그런데 그 대나무가 낮에는 둘이고 밤에는 합하여 하나가 되었다. 임금이 이 보고를 받고 가 보니 합하여 하나가 되면서 7일간 천지가 진동하는 비바람아 몰아치다가 7일이 지나니 날이 개이자 임금이 다시 찾아가니 용이 나타나 흑옥대(黑玉竹)를 바치면서‘이 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불면 천하가 화평해질 것이라’ 하여 임금이 대나무를 베어 배에 오르자 그 섬은 용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임금이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불면 쳐들어 왔던 적군이 스스로 물러가고, 돌림병이 낫고, 가뭄이 사라지고 폭우가 잠잠 해 지므로 ‘만파식적(萬波息笛)’ 즉 ‘온갖 파란이 잠잠해지는 피리’라 하였다.


  그럼 대나무가 나무인가? 풀인가? 하는 이야기를 해보자. 한 해에 빠르게 하늘로 쭉 벋어 올라가게 자란 대나무는 다음해 아니 몇 년이 지나도 키가 더 커지지도 않고 줄기가 더 굵어지지도 않는다. 이런 대나무의 성질을 보면 대나무는 풀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옛날 사람도 대나무를 말하는 글자 竹(죽)자를 풀을 말하는 글자 艸(초)자를 거꾸로 놓은 모양으로 만들었으니 풀로 본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대나무는 추운 지방에서 온 세상이 꽁꽁 어는 겨울에도 땅 위에 나온 부분이 살아 있으니 나무가 틀림 없는 듯 하나 사람들은 나무가 인간 생활에 쓰여지는 것을 ‘목재(木材)’라 부르는데, 대나무가 인간 생활에 쓰일 때는 ‘죽재(竹材)’라 한다.

  대나무는 벼과식물(稻科植物: 벼 보리 등 주로 곡물로 4000여종)에 속하는 상록(常綠) 교목(喬木) 나무로 취급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어떤 식물학자는 대나무과(竹科)로 따로 분류하기도 한다고 한다. 어쨌던 나무라는 말은 맞다. 우리말 이름도 '대나무'다.
  아카시아나 자귀나무를 콩과식물(豆科植物)로 분류하는 것은 가지에 달리는 열매 즉 콩깍지 속에 콩 알이 들어있는 모양이 같기 때문인데, 대나무를 벼과(稻科)에 집어 넣은 것은 아마 꽃 모양에서 비롯된 듯 하다. 대나무꽃에 대해서는 뒤에 더 이야기 하기로 하고 넘어간다.

  대나무는 종류가 무척 많지만 크게 세 종류로 분류하는데
    ① 하늘 높은 줄만 알고 곧게 하늘 높이 커 올라가는 왕대(王竹)류,
    ② 마을부근에 모여 자라며 키가 5m를 넘지 못하는 흔히 사람들이 ‘시누대(海藏竹)’라고 부르는 이대류,
    ③ 보통 ‘산죽(山竹)’이라 부르는 것으로 주로 산 속에 낮은 키로 자라는 조릿대류 등이다.
  그러나 대나무 종류를 세분해 들어가면 무척 많다. 이들을 통칭해 부를 때 ‘대나무’라 부른다.

  관광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중국 계림(桂林)이강(삼점변離 江)을 유람하면 가이드 설명에 '이강의 오보(五寶)' 즉 다섯가지 보물 물소, 가마우지, 개화어(쏘가리), 민물새우 그리고 봉미죽(鳳尾竹)인데 봉미죽이 왕대인지, 죽순대인지는 잘모르지만 강가에 마치 봉(鳳)새의 꼬리처럼 탐스럽게 가지들을 촘촘히 그리고 가지런히 벋친 대나무가 숲을 이루어 참 보기가 좋다.
중국 계림 이강의 오보(五寶)중의 하나 봉미죽(鳳尾竹)
2002년 9월 계림 이강에서 유람선 관광을 하면 서 찍은 것이다.
  왕대(王竹)는 굵기가 보통 팔뚝만 하고, 봄에 땅 속에서 땅 위로 솟아오르는 새싹을 죽순(竹筍)이라 하는데 죽순이 자라면서 금세 마디마다 싸고 있던 껍질이 떨어져 나가는 성질이 있다. ‘참대’라고도 하는 왕죽(王竹), '분죽' 또는‘담죽’이라고도 하는 ‘솜대’, ‘맹종죽(孟宗竹)’이라고 하는 죽순대 등이 이 부류에 속한다.

  왕대(王竹)는 식물학적으로는 필로스타키(Phyllostachys) 속(屬)에 속하는데 이는 그리스어로 ‘잎’이라는 뜻의 필론(Phyllon)‘이삭’스타키스(Stachys)의 합성어로 ‘작은 이삭이 잎 모양의 포(袍)에 싸여 있다'는 뜻으로 곧 이 왕죽 분류의 특징을 나타낸 말이다. 대나무는 잎이 달리는 아래 부분에 짧은 털이 나 있는데 왕대는 이 털이 많고 떨어지지 않은 채 오래 남아 있다

  왕대는 어떤 나무보다 빨리 자란다. 죽순이 올라온 후 일정한 높이로 자라는데 두 달이 채 걸리지 않는다. 광릉수목연구소에서 왕대가 자라는 속도를 측정해 본 결과 최고 기록은 하루에 54Cm였다고 한다. 왕대 죽순이 빨리 자란다는 것을 비유한 유머 한마디 하고 넘어가겠다.

  옛날 갓을 쓴 점잖은 선비가 길을 가다가 갑자기 용변이 보고 싶어서 장소를 둘러봤지만 마땅한 곳이 없는데 마침 가까운 곳에 대밭이 있어 그곳이 노출되지 않고 좋겠다 싶어서 대밭으로 들어가 먼저 갓을 벗어 옆에 꽂혀있는 키 높이의 막대기에 걸고 그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시원스럽게 용변을 보고 밑을 닦고 일어서서 허리띠를 매고 갓을 찾으니 보이지 않는다. 분명 맞대기에 걸어놓고 앉았는데 그 막대기가 어디로 갔는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아 갓을 찾다가 하루 해가 다 갔다
  선비가 갓을 걸어놓은 곳은 막대기가 아니라 이제 한창 자라기 시작한 죽순이었는데 용변 보는 사이에 위로 쭉 커 올라가 선비의 눈에 갓이 보이질 않았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흔히 한 달을 놓고 셋으로 나누어 초순(初旬), 중순(中旬), 하순(下旬)이라 부르는데 이 말의 순(旬)는 옥편에 ‘열흘 순’이라 되어 있지만 그 어원은 죽순(竹筍)에서 온 말이라 한다. ‘죽순이 나와 열흘이 지나면 딱딱한 대나무가 되어 먹지 못하니 빨리 서둘러 꺾어라’는 경고의 뜻이 있는 말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왕대의 죽순도 먹을 수 있지만 약간 쓴 맛이 나기 때문에 고죽(苦竹)이라고도 한다.

  왕대는 땅이 기름지고, 습기가 넉넉하며 따뜻한 지방을 좋아하여 남쪽 지방에 잘 자란다. 중국 호북성이나 복건성이 원산지라고 하지만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도 대나무 화석(化石)이 발견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에도 오래 전부터 대나무가 자랐다고 할 수 있다.

  해안을 따라서는 서쪽은 서산, 동쪽은 강능까지도 올라가지만 북쪽보다는 남쪽이 성장이 훨씬 좋아 죽제품을 만들 수 있는 좋은 왕대들이 많다. 또 좋은 대밭은 강가에 많은 것도 기름지고 습기가 넉넉한 곳이 강가에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유명한 대나무 산지는 담양의 영산강 상류, 하동의 섬진강가, 울산의 태화강가 등이다.

  특히 죽향(竹鄕)이라 불리는 담양 고을에는 352개 마을이 있는데 대나무 밭이 없는 곳은 읍내 4개 마을 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담양이 죽향으로 유명한 것은 대나무가 많아서가 아니라 이곳에서 자라는 대나무는 강하면서도 탄력이 좋아 세공하기가 좋기 때문이다. 대나무로 유명하기는 담양 외에도 금화(?), 나주, 영광, 옥구 등이다.

  대나무가 많은 곳의 사람 생활도 대나무와 깊은 관련이 있다. 대나무를 잘라 집을 짓고, 사랍문을 만들고, 마당을 쓰는 비자루, 대갈퀴, 채반, 광주리, 조리, 사랑방의 붓통, 벼루집 등 죽제품은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다. 대 죽순을 먹고, 옛날에는 대나무를 잘게 쪼개 만드는 시원한 여름 옷도 있었다.

  죽제품 중에 재미있는 것은 죽부인(竹夫人)이 있다. 두껍게 잘라 낸 겉 대 가닥으로 사람의 키 만큼 원통형 엮어 놓은 것인데 집 떠난 한량들이 부인 대신 끌어안고 자면 대나무의 찬 느낌도 좋고, 시원한 바람도 잘 통해 무더운 여름 밤 나기에 그저 그만이다.
죽부인
  쪽을 찌는 여인네의 필수품인 참빗도 대나무로 만들고, 대자, 대발, 먼 길 떠나는 선비들이 쓰는 삿갓은 신라와 백제인들이 많이 썼다 하여 나제립(羅濟笠)이라 불렀다. 짚고 다니는 지팡이 죽장(竹杖), 귀중한 문서나 금붙이를 넣어두는 고리, 각가지 소쿠리, 곡식 까부는 키 등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다.
삿갓
  삿갓, 하면 어울리는 단어가 죽장(竹杖)인데 옛날에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 하는 가사의 ‘김삿갓’노래가 애창되었지만 삿갓도롱이도 좋은 짝을 이루는 옛날 사람들의 우비다. 비 올 때 머리에 쓰고 윗도리에 비가 맞지 않게 하는 것이 삿갓(笠,립)이고, 몸통에 둘러 비를 맞지 않게 짚으로 엮어 만든 것이 도롱이(蓑,사)다. 삿갓과 도롱이를 합쳐 한자어로 사립(蓑笠)이라 하는 데 이 말이 나오는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 유종원(柳宗元)강설(江雪)이란 시에 고주사립옹(孤舟蓑笠翁)이 나온다.

  千山鳥飛絶(천산조비절) 온 산에는 새들도 날지 못하고,
  萬逕人 足從 滅(만경인종멸) 모든 길에 사람의 발자국 없어졌네.
  孤舟蓑笠翁(고주사립옹) 외로운 배에 도롱이 입고 삿갓 쓴 늙은이,
  獨釣寒江雪(독조한강설) 홀로 찬 눈 덮인 강에서 낚시질 하네.

  산골 논 중에 넓이가 아주 작은 논을 삿갓다랭이라고 불렀다. 다랭이는 논을 세는 단위이다.
  옛날 산골에 논 다랭이를 많이 가진 부자 영감이 살았다. 눈만 뜨면 논에 가서 일을 하는데 하루는 비가 내려서 삿갓을 쓰고 논에 갔다가 곧 비가 그쳐 삿갓을 벗어놓고 일을 다 끝내고 논다랭이를 세어 보는데 한 다랭이가 모자란다.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세고 또 세어봐도 분명 한 다랭이가 모자란다. 귀신 곡할 노릇이라 생각하며 점심 먹고 와서 다시 세어 볼 요량으로 놓아 두었던 삿갓을 집어 들었더니 그 밑에 한 다랭이가 들어 있더란다. 그래서 삿갓 만큼이나 작은 논 다랭이를 ’삿갓다랭이’라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죽제품 중에 대금, 중금, 소금, 피리, 당적, 단소, 퉁소 등 국악기도 모두 대나무로 만드는데 이들을 죽부(竹符)라 부른다. 또 대나무는 한방에서 약용으로도 쓰인다. 대나무 껍질을 벗겨내고 가운데 층을 얇게 깎아서 말려 약으로 쓰는데 디글루코스, 규산, 석회, 컬리 등의 성분이 많아 해열, 진해, 진토, 거담, 지갈 등의 효과가 있어 구토, 기침, 신열, 황달, 입덧, 어린이 간질, 정신 불안 등에 처방한다.

  대나무 잎으로 쑨 죽은 고혈압과 노화 방지에 좋고, 죽순은 스테미나식품으로 알려져 왔는데 근래에는 항암 작용도 한다고 하며, 대나무 통에 소금을 넣어 구운 죽염(竹鹽)이 환경식품으로 인기가 높다. 줏순으로는 죽순채, 죽순탕 등 여러가지 음식을 만들고, 죽엽주(竹葉酒)는 빼 놓을 수 없는 민속주(民俗酒)의 하나다.

  대나무 잎으로 떡을 싸면 방부(防腐)효과가 있고, 동치미 단지에 대나무 잎의 띄워 놓으면 한 겨울이 다 가도록 군내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죽제품의 모양을 내는 기술로 낙죽(烙竹)이 있다. 간단히 말해 대나무를 달군 인두로 지져서 여러 가지 예쁜 무늬를 새기는 기술이다. 담양에는 이 낙죽 기술로 무형문화재가 된 이가 많다.

  미국에서는 옛날부터대나무로 종이를 만들었는데 지금도 대나무로 만든 종이는 고급품에 속한다고 한다. 그 밖에 낚싯대, 악가, 세공품, 약, 중요한 예술품 소재로 이용한다고 하며, 에디슨이 백열등을 처음 발명했을 때 쓴 탄소 섬유도 대나무로 만든 부채를 태워서 마들었다는 사실도 재미있는 일이다.

  작년(2012) 11월 하순에 중국 무이산-삼청산-황산시-항주시를 관광 여행 한 적이 있는데 황산에선가 쇼핑점에서 대나무에서 뺀 실로 짠 옷감으로 만든 옷이라며 선전하여 T-셔츠 한 벌 사와 애용하고 있는데 재질이 참 좋은 것 같다.

  죽제품으로 조리가 나왔으니 말인데 조리는 조릿대로 만든다. 섣달 그믐날 복조리를 대문 밖 위나 방문 밖 위에 걸어놓는데 이것은 섣달 그믐밤에는 잠을 자지 않고 밤을 지새우는 풍습이 있다.
조릿대와 제주조릿대
  그믐날 밤엔 야광귀(夜光鬼)란 놈이 몰래 들어와 자기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신고 달아나버려 신발을 잃어버린 사람 은 그 해 운수가 나쁘다 하여 남녀노소 없이 모두 신발을 방안에 들여 놓았다.
  그래도 마음이 안 놓여 대문이나 방 위에 체나 복조리를 걸어 놓으면 야광귀(夜光鬼)란 놈은 눈이 하나라서 복조리의 대나무 올을 세느라고 시간을 다 보내고 새벽 닭이 울면 신을 신어보지 못한 채 달아나 버린다고 믿었다. 일 년 동안 매달아 둔 헌 조리는 내려서 곡식을 이는 데 썼다.
복조리
  대나무로 아이들 장난감으로 물총. 연, 물방아를 만들어 가지고 논다. ‘죽마고우(竹馬故友)’란 말이 있듯이 대나무 막대기로 사람이 올라서게 만들어서 말처럼 올라타고 놀았고, 정월 대보름날에는 대나무를 잘라 마당이나 들판에다 달 집을 지어놓고 불을 붙이고 주위를 돌면서 요즈음 말로 캠파이여를 즐겼다.

  어른이 되어도 대나무와는 인연이 많다. 조부모나 부모 상(喪)을 당하면 상주는 대나무 지팡이로 상장(喪杖)을 만들어 짚고 고인을 잃은 슬픔을 대나무 상장에 의지하여 곡(哭)으로 표현한다.

  우리나라에 대나무와 관련된 문화는 신라 고분 천마총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 말 안장 밑에 까는 ‘장리’라는 것이 대나무 껍질로 만든 방석이고, 고려시대 송광사에 ‘결질’이라는 왕대로 만든 도구가 남아 있으며, 조선시대 한양에는 경공장(京工場)이라는 것을 두어 갖가지 죽제품을 만들어 대궐에 진상하였고, 지방에는 외공장(外工場)을 두어 우산이나 부채를 만들었다.

  대나무의 수명은 7-8년인데 어린 대는 연두색을 띄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황록색이 되고, 나이가 꽉 차면 황색으로 변해 죽는다. 죽제품 재료로는 연두색은 너무 연해서 안 좋고, 황색은 너무 굳어서 얇게 쪼개지지 않고, 황록색일 때가 좋다.

  대나무는 결이 종으로 곧고 강하다, 여기서 ‘대쪽 같은 곧은 선비’라는 말이 생겨났고, 대나무를 쪼갤 때 한 마디를 쪼개고 나면 그 여력으로 다음, 다음 마디까지 연이어 쪼개지는 데서 파죽지세(破竹之勢)라는 말이 생겨났다. 또 사철 푸르기 때문에 절개를 지키는 아낙 을 칭송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이렇게 대나무는 인간의 도리에서 ‘곧은 절개’라는 덕목을 가르쳐 준다.

  왕대류의 솜대는 마디가 곧으면서도 가늘고 짧아서 낚싯대 감으로 좋다. 죽순은 먹지 않고, 잔뿌리를 말려 놓았다가 우려서 차로 마시면 건강에 좋다고 하며, 왕대보다 가늘어서 광주리나 바구니, 부채 등을 만드는데 좋다.

  오죽(烏竹)솜대의 일종인데 줄기가 까마귀처럼 까만 색이라 검죽이라고도 한다. 처음 죽순이 올라와 첫 봄에는 초록색이다가 가을부터 점차 검은 색을 띄기 시작하여 한 해가 지나야 완전한 오죽이 된다.
  강릉 신사임당의 친정이고 율곡선생 생가인 오죽헌(烏竹軒)의 오죽이 잘 알려져 있다. 오죽은 왕대만큼 굵지 않으며 옻칠을 한 것처럼 반들거리는 색이 독특해서 옛날에는 이 오죽으로 담뱃대를 만들어 풍류를 즐겼다. 또 오죽으로 지팡이를 만들거나 가구 장식에 쓰기도 하였다.

  솜대와 오죽의 중간으로 반죽(班竹)이 있다. 초록색 줄기에 검은 점들이 얼룩져 있는 대나무로서 중국 소수(瀟水)와 상강(湘江)이 합쳐지는 이른바 소상강(瀟湘江) 강가에 많이 있어 ‘소상반죽(瀟湘班竹)’이라 한다.

  조선조 세조2년(1456) 저헌(樗軒) 이석형(李石亨)이 전라도 관찰사로서 익산을 순시하던 중 옛날 집현전 친구들이었던 사육신(死六臣)이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착잡한 심경으로 다음과 같은 ‘차익산동헌운’(次益山東軒韻) 이라는 짧은 시 한 수를 지었다.

  次益山東軒韻(차익산동헌운) 익산 동헌에서 짓다.
  虞時二女竹(우시이녀죽) 순임금 때는 이녀죽의 슬픈 일이 있었고,
  秦日大夫松(진일대부송) 진나라 때는 대부송의 영화로운 일이 있었네
  縱是哀榮異(종시애영이) 이것은 비록 슬프고 영화스러움이 다를 뿐
  寧爲冷熱容(영위냉열용) 어찌 차갑게(냉대), 따뜻하게(환대) 함이 용납되리

  이 시에서 二女竹(이녀죽)은 중국 고대 삼화오제의 마지막 임금 순(舜)임금은 아황(娥皇)과 여영(女英) 두 왕비를 얻었는데 모두 요(堯)임금의 딸이다. 순임금이 남쪽 창오(倉梧) 지방을 순시하다가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두 왕비가 소수(瀟水)와 상강(湘江)이 만나는 소상강(瀟湘江)까지 와서 슬피 울었는데, 두 왕비의 눈물이 강가에 무성한 대나무에 떨어져 반점이 생겼다. 사람들은 이 대나무를 ‘두 여인의 눈물로 반점이 생겼다’ 하여 ‘이녀죽(二女竹)’이라 불렀고, ‘소상반죽(瀟湘班竹)’ 이라고도 하여 ‘슬픈 일’ 을 의미하는 말이 되었다.
  대신 大夫松(대부송)은 중국을 처음으로 동쪽의 동이족(東夷族)들을 정복하고 중원을 통일하여 대 제국을 이룬 진시황이 중국 땅의 동쪽 맨 끝 산동지방에 우뚝 솟아 있는 태산(泰山)에 올라 천하 통일을 하늘에 고하는 제사(封禪)를 올리려 하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미쳐 우장을 준비하지 못하여 비를 맞게 되었다. 마침 가까운 곳에 큰 소나무 한 그루가 있어 그 밑에서 비를 피하고, 비가 그친 후 무사히 제사를 마칠 수 있었다. 제사를 끝낸 진시황이 그 소나무를 고맙게 생각하고 대부(大夫)의 벼슬을 내렸다. 사람들이 이 소나무를 ‘대부송(大夫松)’ 이라 부르면서 ‘영화로운 일’ 을 의미하는 말이 되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위 시에서 이녀죽(二女竹)사육신(死六臣), 대부송(大夫松)이석형 자신을 말한다고 풀이하고, 이 시는 ‘슬픈 일을 당한 사육신 즉 이녀죽이나 영화를 누리고 있는 이석형 자신 즉 대부송이나 단지 슬프고, 영화스러움만 차이가 있을 뿐 다를 것은 아무것도 없다. 따라서 사육신 그들을 냉대하고, 나를 열열히 환대할 일이 아니다’ 라는 의미로 해석하였다.

  이 시가 세상에 전해지자 헐뜯기를 업으로 삼는 대간(臺諫)들은 ‘이 시는 사육신(死六臣)을 동정한 시’로 단정을 내리고, 이석형을 국문할 것을 간하여 결국 전라도 관찰사로 있던 이석형이 잡혀와 세조 앞에서 국문을 받게 되었다.

  세조가 부왕 세종대왕이 키우고 아끼던 집현전 학자들을 많이 처형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부왕이 아끼던 이석형을 벌해야 할 지 모른다는 착잡한 생각이 들었던지 곧바로 국문에 들어가지 않고, 국문에 앞서 이석형에게 엉뚱한 질문을 하였다.

  “정몽주(鄭夢周)가 고려에서는 어떤 사람이고, 우리 조선에 있어서는 어떤 사람인가?” (上問鄭夢周於高麗朝何等人我朝何等人)
  이석형은 세조가 하문한 것을 시(詩)로써 답하겠다 하여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올렸다.

  李石亨詠詩而獻(이석형영시이헌) 이석형이 시로 읊어 올리다.
  聖周容得伯夷淸(성주용득백이청) 주 무왕은 백이숙제의 깨끗함을 알아 주어
  餓死首陽不用兵(아사수양불용병) 군사를 쓰지 않고 수양산에서 굶어 죽게 그냥 두었네
  善竹橋頭當日夕(선죽교두당일석) 선죽교 머리에 그날 저녁
  無人扶去鄭先生(무인부거정선생) 정선생을 따르는 사람도 없었는데

  이 시는 중국 주나라 무왕(武王)이 조국 은(殷)나라를 멸하려 할 때 이를 말리던 백이(伯夷), 숙제(叔齊) 형제의 말을 듣지 않고 은(殷:商)나라를 멸하자 주나라 곡식을 먹지 않겠다며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만 뜯어먹고 살다가 굶어 죽었는데 무왕이 군사를 풀어서 잡아 죽이지 않고(不用兵) 내버려 둔 고사와 조선조 개국을 반대하던 정몽주를 선죽교에서 죽인 일을 비교하면서 ‘정몽주는 고려의 신하 로써 기울어지는 고려를 붙잡으려 했으나 이미 대세는 기울어져 이를 돌이킬 만한 세력을 이루지도 못했는데(無人扶去) 그를 굳이 죽인 것은 도량이 좁은 처사’ 임을 은근히 꼬집는 내용이다.

  시를 읽은 세조도 이석형의 깊은 뜻을 이해하고 “그 시(익산동헌시)는 시인의 영감을 읊은 것일 뿐,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고 하면서 이석형에 대한 국문을 중지하고, 또 이석형을 내직으로 불러들여 예조참의(禮曺參議: 정3품)에 임명하였다.

  소상반죽을 소재로 한 조선 선조 때의 이조, 호조판서를 지내고 청백리에 기록된 청련(靑蓮) 이후백(李後白)의 시조 한 수가 있다.

  창오산(蒼梧山) 성제혼(聖帝魂)이 구름 조차 소상(瀟湘)에 나려
  야반(夜半)에 흘러들어 죽간우(竹間雨) 되온 뜻은
  이비(二妃)의 천년 누흔(淚痕)을 씻어 볼까 함이라


  (풀이) 창오산에서 돌아가신 순임금의 혼이 구름 따라 소상강까지 내려와서 한 밤중에 비를 내려 소상반죽 대나무에 떨어지는 의미는 아황(娥皇), 여영(女英) 두 왕비의 천년 묵은 눈물 자국을 씻으려 하는 것인가

  맹종죽(죽순대)도 왕대처럼 굵고 연하여 죽제품을 만드는데 쓰지만 그보다는 식용 죽순(竹筍)을 생산할 목적으로 기른다. 원산지는 중국인데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왔기 때문에 ‘일본대’라고도 하고, 중국의 양자강 남쪽에 많이 자라기 때문에 ‘강남죽(江南竹)’이라고도 하고, 주로 죽순 식용으로 기르기 때문에 ‘식용죽(食用竹)'이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에는 거제도에 이 죽순이 많이 난다.

  맹종죽이 많이 자라는 곳에서는 ‘죽순 맛을 한 번 보면 상장(喪杖)도 부질러 먹으려 한다’는 말이 있는데 맹종죽 죽순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옛날에 맹종이라는 효자가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효성을 다하며 살고 있었다. 어느 겨울에 노모가 깊은 병에 걸려 온갖 좋은 약을 다 써도 소용이 없었다. 노모는 살기를 포기하고 죽기 전에 죽순 한 번 먹는 것이 소원이었다. 맹종은 효자라 어머니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죽순을 찾아 나섰지만 한 겨울에 죽순이 있을 리 없어 맹종은 몹시 비통해 있었다.
  맹종이 너무도 비통해 하는 모습을 하늘이 보고 감동했는지 낙엽 속에서 죽순 한 개가 솟아났다. 맹종이 이 죽순을 꺾어와 장만해서 어머니께 드리니 어머니는 이 죽순을 먹고 기운을 차려 병이 나았다. 그래서 이 대나무가 ‘맹종죽’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한다.


  대나무꽃이 핀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를 본 사람은 드물기 때문에 신비스럽다. 그래서 옛날부터 전해오는 말에 ‘봉황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깃들지 않고, 대나무열매가 아니면 먹지를 않는다(鳳非梧桐不凄 非竹實不食)’ 말이 있다. 봉황은 성인이 태어날 때 나타난다는 전설적인 새다. 성인의 출현을 예고하고 축하하기 위해 봉황이 나타나고, 그 봉황을 위해 대나무가 미리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다는 얘기다.

  오래 전부터 인터넷에 ‘대나무꽃’이라면서 떠도는 꽃 중에 대나무꽃과는 거리가 먼 빨간색 예쁜 꽃을 대나무꽃이라고 소개하는 경우가 있다. 어느 넷티즌은 이를 ‘노루귀꽃’이라고 했다.
대나무꽃 행세하며 인터넷에 떠도는 노루귀꽃
  대나무꽃은 몇십 년 만에 한 번씩 꽃이 핀다고 한다. 그런데 대나무가 꽃을 피우고 나면 그 대나무만 아니라 그 대밭의 모든 대나무가 일제히 죽어버린다고 한다. 모든 식물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종자를 퍼트리면서 번성해 나가는데 대나무는 꽃을 피우지 않고도 잘 번져나가다가 꽃을 피우고 나면 멸종을 하는 듯 일제히 죽어버린다니 참으로 신기하고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인터넷에서 퍼 온 대나무꽃의 이모저모
이들 꽃이 정말로 대나무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대나무가 식물학적으로 ‘벼과식물’로 분류되는데 .
이 꽃들이 마치 벼가 패서 꽃을 피우는 모습과 비슷하니 맞을을 것 같기도 하다.
  대나무는 우리가 눈으로 보는 땅 위 줄기 외에 땅 속에도 줄기를 키우고 있다. 땅 위 줄기는 한 해 크면 더 크지 않지만 땅 속 줄기는 살아있는 한 계속 벋어나간다. 우리는 흔히 대밭 곁에 밭을 일구면서 밭 가운데까지 벋어와 종종 봄에 땅 위로 대나무가 올라오는 것을 보고 캐내면서 뿌리가 땅 속 옆으로 길게 벋어 밭 가운데까지 온 것을 대나무 뿌리라면서 귀찮게 여기면서 캐내곤 하는데 그것은 뿌리가 아니라 땅속 줄기이다.

  그 땅속 줄기의 마디마다 수염 같은 것들이 나 있는데 그것이 곧 뿌리이고, 그 마디에서 땅 위 줄기를 내보낸다. 그러니까 땅 속으로 벋어나간 줄기의 마디마다 아래쪽은 뿌리가 달렸지만 윗 쪽은 줄기를 내보낼 눈을 가지고 있다가 날씨가 따뜻해지고, 비가오면 많은 눈둘이 싹을 틔워 땅 위로 내보내는 데 그것이 죽순이다. 그래서 많은 일들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을 우후죽순(雨後竹筍)이라 한다.

  이러한 대나무의 성격이 대나무를 뿌리에서 계속 줄기를 내보내서 포기를 이루는 관목(灌木)으로 분류하지 않고, 줄기에서 많은 가지들을 벋어내는 상록(常綠) 교목(喬木)으로 분류하는 이유인 것 같다.

  그러니까 대나무는 종자를 퍼트리지 않고도 즉 꽃을 피우지 않고도 이렇게 잘 번성해 나가는데 꽃은 왜 피울까? 여러 가지 설이 있다.
    (1) 60년 혹은 120년 만에 한번씩 일정한 기간을 두고 피운다는 주기설
    (2) 영양소가 부족하면 생존에 위기 의식을 느끼고 피운다는 생리설
    (3) 태양에 흑점이 많이 나타날 때 핀다는 설 등이 있지만 학술적으로는 증명된 것이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1956년 전남 강진에서 왕대 꽃이 피었다는 소식이 있은 후로 20년 동안 온 나라 대나무가 말라 죽어 대나무 밭을 처참하게 만든 적이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부산 용두산공원에 있는 대밭에서 대나무꽃이 피어 화제가 된 적이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대나무꽃이 피는 것은 길조(吉兆)라고 하기도 하고, 흉조(凶兆)라기도 한다.

  길조의 경우는 전언한 것처럼 성인(聖人)이 나타날 징조라거나 60년 주기로 꽃을 피우고 죽는 다는 음양설에 따라 꽃이 핀 이후로 60년간 상서로운 징조로 보는 풀이이고, 흉조로 보는 경우는 대나무꽃을 피워 열매를 맺고 나면 대밭 전체가 말라 죽기 때문에 나라에 흉사가 생기거나 전쟁이 일어난다고 풀이한다.

  대나무꽃이 피고 나면 대나무가 죽는 것은 대나무 잎이 나서 필요한 영양소를 만들어야 대나무가 살아갈 수 있는데 잎이날 자리에 꽃이 피어 광합성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양분이 부족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한다.

  대나무꽃이 피고 땅 위 줄기가 죽으면 땅 속 줄기도 함께 죽기 때문에 모든 대나무가 죽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땅 속 줄기 중에서 군데 군데 완전히 죽지 않고 살아서 풀처럼 작은 싹이 올라와 자라서 또 꽃을 피워 죽기를 두 번까지 한다. 그러니까 어미 대나무가 죽은 후 네 해째 봄에 나는 대나무는 꽃을 피우지 않고 살아 남아서 새로운 세대의 대나무 밭을 이루지만 대나무들이 크기가 가지런하지 못하고 잡초처럼 들쭉날쭉 하다가 옛날의 왕성한 대밭이 되려면 10년 이상 걸린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