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의 갸름한 눈썹, 하늘거리는 허리, 윤기 나는 머리카락

버드나무

 

 

 

 

 

 

 

 

 

 

 

 

 

 


예로부터 버드나무를 아름다운 여인으로 표현하였다. 버들잎 같이 갸름한 눈썹, 버들가지처럼 나긋나긋한 가는 허리, 길고 윤기 흐르는 유발(柳髮)의 머리카락, 미녀의 매력포인트가 버드나무로 비유되기 때문이다.

 

버드나무 하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도 드물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버드나무만 해도 40여종이나 된다고 하니 이들을 다 알아보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천안삼거리 능수버들,

새색시 꽃가마 위로 늘어져 춤추는 수양버들,

버들피리 불면서 봄을 알리는 시냇가의 버들강아지 갯버들,    

백두산 꼭대기에서 한 뼘도 안 되게 자라는  콩버들,

위풍당당한 버드나무 중에 장수목 왕버들,

포푸라로 더 잘 알려진 미류(美柳)나무,

털 뭉치 같은 유제(柳荑) 꽃차례의 떡버들,

고리짝 만들던 백정이 여차여차해서 양반 족보 얻고, 뇌물 먹여 감투 한자리 얻어 고을(현감) 살러 가면서도 ‘저 버들!-’ 했다던 고리버들, 직업 의식과 습성을 버리지 못한다는 얘기다.

 

버드나무는 갯버들처럼 관목이 있는 가하면 왕버들 같은 교목도 있어 모양도 생태도 다르지만 공통점은 ‘물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버드나무의 속명 셀릭스(Salix)도 라틴어로 ‘가깝다’는 뜻의 살(sal)과 ‘물’이라는 뜻의 리스(lis)의 합성어로 버드나무가 물을 좋아하는 특성을 나타내는 속명이다.

 

수양버들과 능수버들은 그 가지가 아래로 축축 늘어지는 것이 똑 같기 때문에 그 모양만으로는 보통 구별하기가 힘든다. 늘어진 1년 생 어린 가지의 색깔이 ‘황록색이면 능수버들’,‘적자색이면 수양버들’로 구별한다.

수양버들은 중국이 고향이고 특히 양자강 하류에 많은데 ‘수양버들’이란 이름의 유래는 이러하다.

 

중국 수나라 양제가 북경에서 항주까지 대 운하를 파고 그 양변에 운치도 있고 물가에서 잘 자라는 이 나무를 심도록 하였는데 용배에 삼천궁녀를 태우고 양편에 버들이 늘어진 운하 위에 유유히 떠가면서 양제가 신하들에게 그 나무 이름을 물었으나 아무도 대답을 못하자 ‘이 아름다운 나무가 이름이 없어서야 되나?’당장 이름을 지어 올려라 하니 신하들이 ‘수나라 양제’를 따서  ‘수양버들’이라 지어 올린 데서 유래되었다 한다.

또 대운하 남쪽 끝 자락인 소주와 항주에 미인이 많은 것은 수양제가 삼천궁녀를 싣고 대운하를 따라 소주와 항주에 왔을 때 양제의 학정에 견디다 못한 농민들이 봉기하여 궁녀들은 그곳(소주, 항주)에 남겨 놓고 주요 신하들만 데리고 급히 북경으로 돌아 왔으나 이미 나라는 기울어져 이세민의 당나라에 나라를 넘겨주게 되니 결국 궁녀들은 북경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소주, 항주에 남아 결혼하여 눌러 살게 되어 그들이 낳은 딸들도 또한 대대로 미인이라 소주, 항주에는 미인이 많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가지가 축 늘어지는 수양버들의 특성이 다른 종류의 나무에도 인용되어 수양벚나무, 수양단풍나무 등의 이름이 생겨났다. 수양버들의 이름에 관한 이야기가 있듯이 능수버들의 이름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옛날 천안삼거리에 능소라는 예쁜 처녀가 살았는데 과거시험을 보러 가던 젊은 선비가 이 곳을 지나다가 능소를 보게 되었다. 한눈에 반하여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게 되었고, 과거시험 날자가 다가오니 선비는 과거에 급제하여 꼭 너를 데리러 오겠다며 징표로 짚고 온 지팡이를 짚 앞에 꽂아 놓고 서울로 떠났다.

 

그러나 서울로 떠난 선비는 감감 무소식인데 꽂아 놓고 간 지팡이에서는 싹이 나서 자라기 시작하여 몇 년이 지나니 가지를 축축 늘어뜨리고 그늘을 만들어 이 집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쉼터를 제공하였다.

 

한편 능소는 선비만 믿고 시집도 안 갔는데 부모가 다 죽고 혼자 남아 살 길이 막연하여 그 집에 술집을 차렸다. 그 때쯤 능소는 한창 예쁘기도 하지만 상냥하고 친절하기가 그지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술도 술이지만 능소를 한번 보려고 들리는 사람이 줄을 이었고, 이 소문은 전국적으로 퍼져 젊은 사내녀석들의 입에 능소의 이야기가 오르내리기가 일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주막은 ‘능소가 있는 버드나무집’이란 말이 점점 변하여 ‘능수버들’이 되었다 한다. 사람은 죽고 없지만 나무 이름으로 남아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미류(美柳)나무는 시냇가나 넓은 들 한복판 물길 둔덕에 여러 그루가 나란히 서서 큰 키를 자랑하는 전형적인 시골 풍경을 연출하던 나무인데 논밭에 그늘이 진다 해서 한 그루, 두 그루 잘라낸 것이 지금은 보기조차 힘들게 되었다.

 

왕버들은 투박하고 튼실하여 풍체가 위풍당당하면서도 새순이 돋아날 때면 붉은 색이 도는 잎이 또한 매력적이다. 왕버들을 한자어로 귀류(鬼柳: 귀신버드나무)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왕버들 목재에는 인(燐)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는데 밤중에 비에 젖으면 인불 빛을 내기 때문에 사람들이 ‘귀신불’이라 하고 이 나무를 이렇게 부르게 된 것이다.

 

냉전시대의 남북 대치의 한복판이었던 휴전선 판문점공동경비구역에서 60년대 어느 해에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하던 미군 병사를 북한 군인들이 도끼로 살인까지 하는 이른바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을 저질렀고, 며칠 후 미군측은 상징적 보복으로 이 미루나무를 베어버리는 ‘미루나무 절단작전’이란 이름의 군사작전을 벌렸던 기억이 난다.

대부분의 버드나무가 속성수인 반면 수명이 짧은데 왕버들 만은 오래 살아서 들녘의 그늘을 드리우는 정자목이 되어 왔으며 왕버들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는 것은

  김제 봉남면 왕버들(제296호),

  청송읍 부곡리 왕버들(제297호),

  청송 파천면 관동 왕버들(제193호) 등이 있고

  이 외 청도 각북면 털버들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전북 장성읍에 있는 수 백년 된 왕버들은 도둑이 이 마을에서 물건을 훔치고 이 나무 밑에 버리지 않으면 도망을 가도 밤새 이 나무 밑을 벗어나지 못하고 뱅뱅 돌게 된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나무인데 동네 사람들은 이 나무 밑을 지날 때는 담뱃불을 끄고, 담뱃대도 감추고 공손히 지나다닌다고 한다.   

 

갯버들은 냇가에서 겨울동안 회색 솜털 같은 겨울눈을 달고 있다가 이른봄에 형형색색의 꽃술을 터트려 버들강아지가 되어 봄을 알린다. 어린 시절 물이 오른 연약한 가지를 잘라 비틀어서 버들피리를 만들어 불던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버드나무 가로수가 봄에 솜덩이처럼 생긴 꽃가루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하여 천대를 받고 있으나 사실은 이것이 꽃가루가 아니라 씨앗인데, 씨앗을 가볍게 하여 멀리 날아가 퍼지도록 하는 종(種)의 생존전략이다.

 

알레르기 반응과는 무관하다 하더라도 길과 집안을 어지럽히니 귀찮은 것은 사실이다. 마침 버드나무는 자웅이수(雌雄異樹)이므로 이후 심을 때는 수나무를 골라 꺾꽂이하여 묘목을 재배하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될 문제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