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국화(國花) 알고 보면 우리 땅이 안태고향(安胎故鄕)

벚나무

 

 

 

 

 

 

 

 

 

 

 

 

 

 


왕벚나무

우리가‘벚나무’하면 어쩐지 거부감부터 갖게 되는 것은 벚꽃이 일본의 국화이기 때문이다. 남의 나라 국화라고 해서 왜 거부감을 가지랴 마는 나이 60이 넘은 노년층에게는 일제 때 일본인들이 식민통치를 하면서 앞세운 상징물에 일장기. 신사와 함께 벚꽃도 들어가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당시 소학교 교정은 으레 벚나무가 점령했고, 관공서는 물론 신사에 올라가는 길이나 일본인들이 활동하는 거리의 가로수는 벚나무로 꾸며졌다. 이런 마음 속에 남아있는 앙금 때문에 지금도 그렇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을 알고 보면 일본의 국화로 되어있는 왕벚나무는 고향이 일본이 아니라 우리 한반도라는 것이 밝혀졌다. 비록 일본 사람들이 이 꽃을 좋아해서 그들의 국화로 정했다면 우리는 기뻐하고 자랑스러워 해야 할 것이다. 원래 우리나무니까.

 

벚꽃으로 이름난 곳으로 진해를 첫 손가락에 꼽아야 할 것이다. 진해 벚꽃이 피기 시작하면 군항제(軍港祭)가 열린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본격적인 봄은 벚꽃축제로부터 시작되는 셈이다.  전주-이리간 백리 벚꽃 길, 쌍계사 십리 벚꽃 길, 여의도 윤중제 벚꽃 길 등도 봄을 전하는 TV뉴스에 나오는 소재들이다.

 

벚나무에는 산벚나무, 올벚나무, 왕벚나무, 개벚나무, 섬벚나무, 수양벚나무 등 여러 종류가 있는데 일반 사람들은 이들을 정확히 구별하기가 무척 어렵기 때문에 통틀어 벚나무라 부른다.

 

이 중에 일본에서 국화로 정한 것은 왕벚나무. 일본인들의 왕벚나무사랑은 꾀나 오래되었으며 그 많은 벚나무 종류 중에서도 유독 왕벚나무 만을 좋아하여 즐겨 심었고 나아가서 나라꽃으로 정했다. 그런데 일본인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왕벚나무 자생지를 일본에서는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이미 오래 전에 수차에 걸쳐 그것도 외국인에 의해 왕벚나무 자생지가 밝혀졌다.

1908년에 한국에 와 있던 불란서 신부가 한라산에서 자생하는 왕벚나무를 처음 발견하였고,

이어 1912년 독일인 식물학자가 한라산의 왕벚나무를 확인하고 정식으로 벚꽃의 학명(Prunus yedoensis Matsum)을 등록하여 우리나라가 왕벚나무의 자생지임을 확실하게 밝혔다.

그 후 해남의 대둔산에서도 발견되어 우리나라의 왕벚나무 자생지 세 곳, 제주 신예리(제156호) 봉개동(제159호), 전남 해남 대둔산(제173호) 모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왕벚나무는 한라산 해발 고도 500m 정도에 드문드문 자생하는데 왕벚나무 보다 좀더 높은 곳에 자라는 산벚나무와 더 낮은 곳에서 자라는 올벚나무 사이에서 잡종으로 생겨난 것이 왕벚나무로 추정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다음 두 가지로 뒷받침된다.

입자루와 꽃이 연결되는 부분의 모양과 털의 특성이 닮았다는 점

왕벚나무는 다른 두 종의 잡종으로 어렵게 탄생한 종이라 씨를 맺는 것이 부실하여 자연적으로는 번식하기가 힘들 다는 점 등이다.

 

아직 확실한 것으로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왕벚나무는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한 왜군들이 조선에 자생하는 왕벚나무를 일본으로 가져가 삽목 등의 방법으로 일본 전역에 식재하여 일본 국화로 정하고, 일제 대 역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신사, 고궁(대표적인 것이 창경궁), 군항(진해), 도로변(예: 전주-이리), 각급 학교 등에 심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벚나무를 구분하는데 필요한 몇 가지 상식은

올벚나무와 왕벚나무는 잎이 나오기 전에 꽃만 흐드러지게 핀다.

② 올벚나무는 꽃을 가장 일찍 피운다.

③ 산벚나무는 꽃이 필 무렵 입도 함께 나온다.

④ 울릉도에 있는 섬벚나무는 꽃이 연하여 흰색에 가깝다.

 

벚나무의 목재는 치밀하고 탄력이 있어 옛날에는 활을 만드는 재료로 쓰였는데 목질은 휘어서 활을 만들고 껍질은 손이 아프지 않도록 활에 감는 재료로 썼다 한다. 그래서 벚나무가 조선조 때 국방에 기여하고자 심은 것이 지금까지 남아서 강산을 아름답게 꾸미고 있는 것이 많다.

① 우이동에 있는 벚나무 단지는 수양올벚나무인데 병자호란 때 불모로 청나라에 잡혀갔다 돌아와 왕이된 효종이 북벌을 꿈꾸며 활을 만드는데 쓰려고 심은 것이라 한다.

② 전남 구례 화엄사의 한 암자에 있는 올벚나무(천연기념뮬 제38호)는 효종 때 화엄사에 있던 벽암스님이 효종의 깊은 뜻을 헤아려 절 근처에 많이 심은 올벚나무 중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이라 한다

 

중국 수(隨)나라 양제(煬帝)와 대운하와 관련되어 지어졌다는 ‘수양버들’이름이 벚나무에도 영향을 미쳐 수양벚나무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물론 수양버들처럼 가지가 아래로 축 늘어지는 수형(樹形)이니 ‘수양’은 축축 늘어지는 모양의 대명사가 된 셈이다.

 

 

 

 

 

 

 

 

 

 

 

 

수양벚나무

 

내가 근무하던 국과연에도 수양 벚나무가 몇 그루가 있어 봄이면 가지에 화사한 꽃을 달고 축축 늘어진 모양이 참 보기가 좋다. 그런데 신축 기숙사로 옮긴 지 2년쯤 지난 어느 봄날 퇴근하면서 주차를 하고 옹벽 옆을 따라 난 길로 내 방으로 가는데 옹벽 군데군데 만들어 놓은 직경 5Cm 크기의 프라스틱 물구멍 중 하나에 나무 가지가 삐죽이 내밀어서 손으로 잡아당겨 보니 살아있는 벚나무인데 뿌리까지 뽑혀 나오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벚나무 씨앗이 이 물구멍속에 들어가서 싹을 틔워 세상 빛을 보려고 구멍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을까?

 

마침 주말에 시골로 가도록 계획되어 있어서 화분에 심었다가 시골 울 가에 심었는데 1년쯤 크고 보니 가지가 아래로 처지는 것이 바로 수양벚나무다. 지금 키가 3m쯤 컸으니 금년쯤은 꽃을 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꽃도 꽃이지만 그 기이한 인연 때문에 시골집에 갈 때마다 한번씩 둘러보곤 한다. 끝